어린 시절 KBS의 전쟁 드라마 <전우>는 최고의 인기드라마였다. 밖에서 놀다가도 <전우>를 시작할 시간이면 집으로 달려와 TV앞에 앉곤 했다. "우린 간다 ~"로 시작하는 주제가를 목청껏 따라 부르면서....
그 시절 소대장 역을 맡았던 탤런트 나시찬은 얼마나 멋있었는지....
 
어머니는 <전우>같은 전쟁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내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로 시작하는 '전우가'를 부르면, 진저리를 치셨다. 아마 소녀 시절 겪었던 참혹한 전쟁의 기억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린 시절 <전우>를 즐겨보던 소년은 그 시절 어머니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중년의 직장인이 됐다.
세상도 많이 변했다. '빨갱이'라면 치를 떨던 나라가 이제는 '수구꼴통'이라는 딱지를 붙여 애국진영의 입을 막는 나라,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46명이 죽어도 보복은 엄두도 못 내는 나라, 천안함에서 죽은 병사들이 국립묘지에 묻히기가 무섭게 종북(從北)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종북세력이 활개치는 나라가 돼 버렸다.
 
KBS, <전우>를 다시 만들면서 反戰-평화 강조
 
그런 차에 KBS에서 2010년판 <전우>를 만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반가웠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향수가 되살아났다.
한편으로는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정연주 사장 아래서 <서울1945>라는 드라마를 통해 노골적으로 대한민국과 건국세력을 폄하하고 북한과 공산세력을 찬양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오늘 KBS홈페이지 <전우>코너에 들어가 보았다. 첫 방송은 6월19일, 주인공인 1분대장 이현중 일등중사 역은 최수종이 맡는다고 한다.
 
그런데 기획의도를 보는 순간,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았다.
기획의도 어디를 봐도 북한 공산집단의 불법남침을 고발한다거나, '애국심', '자유' '희생'과 같은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기획의도에서 강조하는 것은 '반전(反戰)과 평화의 메시지'였다. 기획의 변(辯)을 보자.
 
"6-25는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민족의 비극이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비극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 다음이 문제다.
"전쟁터는 난장판이다. 돌격명령을 받고 달려가는 병사의 머릿속이 충성심으로  꽉 차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꿈도, 이상도 명예와 도덕도, 전쟁터엔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전쟁의 참상을 통해 우리는 반전과 평화라는 인류 최고의 가치를 보여주고자 한다. 시커먼 구정물을 보아야만 작은 옹달샘의 깨끗함을 깨닫듯이, 드라마 <전우>는 참혹한 전쟁의 모습을 통해 반전과 평화의 소중함을 말할 것이다."
 
反戰과 평화가 인류 최고의 가치?
 
이게 무슨 중뿔난 얘기인가?
KBS가 기획의도에서 말하는 것처럼 전쟁은 처참하다. 전쟁은 인간의 생명이 덧없이 사라지고, 인간성이 철저히 말살되는 현장이다. 그래서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기획자의 주장처럼 과연 '반전'과 '평화'가 인류 최고의 가치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60년 전 북한이 쳐내려왔을 때 총을 내려놓고 김일성에게 항복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3년여에 걸친 처참한 전쟁도, 수백만명의 죽음도, 이산(離散)의 아픔도, 그리고 '분단'도 없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진주만을 기습당했을 때, 일본에 항복했어야 한다. 그러면 태평양전쟁은 없었을 테니까... 물론 그랬다면 식민지 조선의 해방도 없었을 것이다.
'반전'과 '평화'가 인류 최고의 가치라면, 처칠은 히틀러에게 손을 들었어야 하고, 드골은 레지스탕스의 횃불을 들지 말았어야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쳐들어왔을 때, 조선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켜 맞서 싸울 것이 아니라, 손을 들고 항복했어야 했다.
 
'반전'과 '평화'가 최고의 가치라면, 이완용이 지난 100년 동안 '매국노'로 지탄의 대상이 될 이유도 없었다. 그는 나라를 들어 곱게 일본에게 넘김으로써 일본과의 '무익한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지켰으니까 말이다.
 
평화보다 소중한 자유
 
하지만 역사는 어떠했던가?
우리의 선배 세대들은 6-25가 터졌을 때, 항전(抗戰)을 포기하지 않았다. 낙동강 교두보까지 밀리면서도 싸웠고, 학도병, 소년병들이 스스로 전장에 뛰어들어 싸웠다. '코리아'가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미국, 유럽, 심지어 남미의 콜롬비아, 아프리카의 남아공과 이디오피아, 동남아 태국과 필리핀의 젊은이들까지 달려와 피를 흘리며 싸웠다.
 
미국은 진주만 기습에 분노해 일어섰고, 처칠은 런던이 폭격으로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도 히틀러와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드골은 BBC방송을 통해 "레지스탕스의 횃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임진왜란 때 의병의 항전, 일제 강점기 동안 수많은 지사(志士), 열사(烈士), 의사(義士)의 항쟁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왜 싸웠을까?
'반전'과 '평화'의 소중함을 몰라서?
아니었다. 그들은 '반전'과 '평화'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싸웠다. 그것은 바로 자유와 독립이었다. 그들은 '평화'라는 미명 아래 '노예의 삶'을 살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햇볕정책'을 비판하면 "그럼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윽박지르고, 천안함 사태의 와중에서 전쟁공포를 불러일으켜 국민들을 미혹한 정상배(政商輩)들과는 다른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KBS는 <전우>를 통해 자유와 조국의 소중함, 애국심과 같은 가치들을 설파하겠다고 나섰어야 한다. 생명을 바쳐서라도, 일시적으로 평화를 희생시켜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얘기해야 한다.
 
하지만 KBS는 그와는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이를 보면서 공영방송 KBS는 아직도 탈환되지 않았음을, 우리 사회를 정상화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길인가를 다시 한번 절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