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도병의 편지

“어머니! 꼭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written by. 최경선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냄새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영화 ‘포화 속으로’에서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편지의 주인공은 당시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이었던 이우근 학생이다. 그러나 그의 편지는 어머니에게 부쳐지지 못했다. 그는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자중학교 앞 벌판에서 숨을 거뒀다. 전사 후 그의 주검을 수습하던 동료에 의해 편지가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다.

이 영화는 계급도 군번도 없는 71명의 학도병이 포항에서 인민군 766유격대를 맞아 사투를 벌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훈련도 되지 않은 데다 M1소총 한 자루와 실탄 250발씩이 가진 무기의 전부였던 이들 학도병은, 북한의 정예 군인들에 맞서 싸우다 48명이 장렬히 전사했다. 군인에게는 군복이 수의지만 이들에겐 군복조차 없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 가겠습니다.”

당시 이우근의 나이 17세였다. 그는 죽을 것을 알고도 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나는 17세 소년의 가슴에 담긴 조국이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하다. 지금과 같은 자유와 평화 속에서도 조국의 가치를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때 그가 품은 이상에 조국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좌우익의 대립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조국에 대한 희망이 있었던가?

그는 의로운 죽음을 선택했지만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었다. 살아서 17세의 소년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행복을 누렸어야 했다. 참혹한 전투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한가닥으로 적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기려 들 나이가 아니었다.

“어머니! 꼭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살아서 다시 쓰겠습니다.”

그가 바랐던 것은 아주 작은 평화였지만 전쟁은 그것조차 용납지 않았다. 살아서 쓰겠다던 편지는 이어지지 못했고, 어머니와 형제들을 만나러 돌아오지도 못했다. 부치지 못한 피 묻은 편지만이 살아 남은 자의 가슴에 쓰라린 상처와 눈물로 남았다.

올해 6·25전쟁 60주년이다. 60년 전 그곳에도 삶의 기대에 부푼 어린 소년들이 있었다. 올해 17세인 큰아이의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얼굴도 모르는 어린 학도병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konas)

최경선(인터넷 안보신문 코나스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