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가 옆에서 죽어나갈 땐 제정신 아니었다"

국토 대장정 대학생들, 부산서 참전용사와의 대화 "이 나라의 좌파세력들은 (지금도) 국민과 국가를 모략"

 

 "전쟁이 터지던 그 해 내 나이는 여러분과 비슷한 21살이었습니다. 지금 내 나이 81세입니다. 1950년 6월25일 새벽에 잠을 자고 있는데, 태릉의 삼육대 쪽에서 포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저는 돈이 없어 외출을 하지 않고 영내에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해)남은 생도들은 단독군장으로 정문에 집합해서 육본으로부터의 명령을 수령하게 되었습니다."

 노(老) 참전용사의 음성은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이 넘치고 있었다.

 '6·25전적지 답사 대학생 국토대장정'(주관 :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마지막 날인 6일 아침 부산 유엔기념공원 추모관에서 대학생 대원들과 마주한 6·25참전용사이자 예비역 육군 대령인 박장우(육사 10기)씨는 6·25가 발발하던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참전용사와의 대화 시간'에 강사로 나선 박장우 (예)대령. 81세의 노구에도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학생들에게 자신의 6.25체험담을 설명해 대학생들의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konas.net

 이 날 참전용사와의 대화에 초청된 박 (예)대령은 "6·25전쟁이 북한에 의한 남침인데도 일부 학생들이 북침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엉터리 소리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육사생도였지만 졸병으로 출동해 포천 지구 전투에 투입됐다"며 "한참 싸우면서 보니 적들은 전차로 기동화 돼 중심에 배치된 반면 우리는 도보로 무기도 대검도 없는 M1 소총으로 무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9.5파운드나 되는 M1 총은 무겁기도 무거웠지만 특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비에 젖고 밥을 굶으면서 겨우 건빵이나 캬라멜로 대신하며 3, 4일씩 전투를 하다 보니 움직일 기력마저 없을 지경이었다"며 "그래서 철모도 버리고 런닝셔츠 바람으로 동기생들이 (적탄에)죽으면 그가 매고 있던 칼빈 총으로 바꿔 가면서 후퇴했다"며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고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증언했다.

 박장우 씨는 이어 당시 군복이나 군화 등이 미군용을 사용했기 때문에 옷이나 신발이 맞는 것이 별로 없어 때로 행군할 때 전투화를 벗고 아예 맨발로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며 열악하기 짝이 없던 당시 보급상황을 설명하고는 "친한 동료가 옆에서 죽어 나갈 때는 제 정신이 아니고 앞이 캄캄해진다. '어머니' '하나님'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그러면 정신 없이 달리게 된다"며 "그 비참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고 돌이켰다.

 그는 1950년 8월4일 낙동강 방어작전을 설명하면서 "포항, 안강, 영천지구 전투는 낙동강 전선의 마지막 방어선으로 (대한민국이)바다로 가느냐, 아니면 (북한군을)이길 수 있느냐는 막다른 골목이었다"며 "가진 무기도 없는 가운데 정신력으로 싸웠다. 나 아니면 나라가 죽는다. 나를 버리더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심정으로 싸웠다"고 당시 풍전등화의 기로에 서 있던 대한민국 상황을 일깨웠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에 의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으로 아군이 수도 서울을 탈환, 중앙청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하기까지의 국군의 활약상을 설명하면서 "90일 동안의 공산집단 치하 아래서 국민은 너무 비참했고, 남로당 계열의 완장을 찬 공산당은 돈과 땅을 가진 사람들을 '인민의 적'이니 '반역자'로 몰아 무자비하게 죽임으로써 인간으로써 감당할 수 없는 모욕과 고역을 치르게 했다"며 "그래도 나는 용케 살아나 살아 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고 말해 학생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다같이 노력해서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때에 이 나라의 좌파세력들은 국민과 국가를 모략하고 있다. 이건 순전히 북한 공산당, 괴뢰집단과 다름없다"고 우리사회의 일부 친북 좌파 세력들의 해악상을 적시한 뒤 "나는 월남에서도 봤다. 당시 월남은 매일 극렬한 데모가 일어나고 분신자살을 해 국민의 감정을 혼란시켰다. 자동적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괴뢰집단이다"고 고조된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 대화가 끝나고 박수를 치며 답례를 보내는 학생들. ⓒkonas.net

 이어 강정구 교수의 6·25관련 발언과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주장 등을 빗대면서 "인간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맥아더 동상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해 놓으니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한다. 너무 분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서 "지난 60년 동안 북한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천안함 사태가 그렇고 어마어마한 침투 사건이 이를 증명해 준다"고 강조했다.

 박장우 (예)대령은 유엔기념공원에 묻힌 영령들을 언급, "여기 기념공원에는 2,300기의 영령들이 누워 계십니다. 누구를 위하다 여기에 묻혀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된 마음으로 뭉쳐 국가안보를 지켜야 합니다"하는 말로 짧은 대화시간을 마무리했다.

 이 날 참전용사와의 대화의 시간이 끝나고 학생들은 박 대령의 가슴에 주렁주렁 매단 훈장과 기장에 놀람을 표하면서 기념사진 촬영을 요청하기도 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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