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智元(박지원) 前 청와대 비서실장이 現代그룹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은 사건과 관련, 대법원이 최근 이 사건을 無罪(무죄)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낸 데 이어, 高法이 朴씨를 保釋(보석)으로 석방하자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 관심이 다시 모아지고 있다.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의 개요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鄭夢憲(정몽헌) 회장이 16代 總選(총선) 3개월 前인 2000년 1월 權魯甲(권노갑) 前 민주당 고문에게 3000만 달러(약 360억원)를 제공한 데 이어, 2000년 3∼4월 總選자금 지원명목으로 200억원을 추가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鄭회장이 이와는 별도로 2000년 4월경 朴智元 前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금강산 유람선의 카지노 사업 허가 등을 부탁하며 150억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權魯甲씨에 대해서는 2004년 10월8일 대법원 판결을 통해 징역 5년에 몰수 50억원(국민주택채권), 추징금 150억원을 선고한 원심이 최종 확정됐다. 權씨는 현재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朴智元씨의 경우, 항소심(고등법원)에서 징역 12년에 추징금 148억5000만원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上告(상고)했다. 대법원은 2004년 11월12일 朴씨가 現代그룹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無罪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서울고법은 현재 朴씨 사건에 대한 재판을 진행 중이다. 서울고법은 지난 3월12일 朴씨를 보석으로 석방했다.
 
 
 
대법원의 서로 다른 판결 

  權魯甲씨와 朴智元씨 사건을 다루면서 대법원은 동일한 진술인의 진술내용에 대해 서로 다른 판결을 했다. 그 진술인은 金榮浣(김영완·52·무기중개상ㆍ美國 체류 중)씨와 李益治(이익치) 前 現代증권 회장이다.
 
  權魯甲씨 사건의 개요는, 權씨가 金榮浣씨를 통해 現代그룹 鄭夢憲 회장에게 200억원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고, 鄭회장은 당시 現代상선 사장이던 金忠植(김충식·美國 체류 중)씨에게 200억원을 조성토록 했다는 것이다. 鄭회장은 李益治씨에게 이 돈을 金榮浣씨에게 전달토록 지시했고, 金榮浣씨는 200억원 중 150억원은 2000년 3월 總選 직전에 權魯甲씨에게 전달했고, 나머지 50억원은 보관 중이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鄭夢憲 회장과 李益治씨, 金忠植씨의 진술서와 金榮浣씨의 자술서 등을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朴智元씨 사건의 경우, 朴智元씨가 金榮浣씨를 통해 鄭夢憲 회장에게 150억원 지원을 요청했고, 鄭회장은 이 돈을 李益治 現代증권 회장을 통해 1억원짜리 CD(양도성 예금증서) 150장(150억원)으로 朴智元씨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朴씨는 이 돈을 金榮浣씨에게 관리토록 했고, 필요할 때마다 金씨로부터 돈을 받아 사용해 왔다는 게 검찰 측 주장이었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증거로 權魯甲씨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鄭夢憲 회장, 李益治씨 진술서와 金榮浣씨의 자술서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검찰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한 반면, 대법원(3심)은 동일한 진술인의 진술내용에 대해 서로 다른 판결을 했다 <도표 참조>.
 
  朴智元씨의 사건을 맡은 대법원 2부(주심 柳志潭ㆍ유지담)는 「돈을 직접 朴智元씨에게 전달했다는 李益治씨의 진술과 돈을 관리해 왔다는 金榮浣씨 자술서가 진실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 사건을 無罪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은 李益治씨의 진술내용에 대해 「사리에 맞지 않고 일관성이 없다」며 李씨 진술내용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金榮浣씨가 자신의 변호인을 내세워 외국에서 작성,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에 대해서도 「자술서의 작성경위와 방법이 非정상적이어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의 계좌추적 과정에서 朴智元씨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物的) 증거가 나오지 않은 점도 無罪 취지 파기 환송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權魯甲씨 사건을 맡은 대법원 3부(주심 朴在允·박재윤)는 鄭夢憲 회장과 李益治씨 등의 진술내용을 그대로 받아 들여 權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李益治씨 등의 진술내용에 대해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상세하다」며 이들의 진술내용을 증거로 채택한 것이다. 재판부는 金榮浣씨 자술서에 대해서는 朴智元씨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돈은 다 어디로 갔나? 
  權魯甲씨 변호인인 文炯植(문형식) 변호사는 『대법원 재판부가 같은 진술인의 진술내용에 대해 한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받아들인 반면, 다른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文炯植 변호사는 재판부가 「鄭夢憲 회장으로부터 전달받은 돈 200억원 중 150억원을 權魯甲씨에게 전달했다」는 金榮浣씨 자술내용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으면서도 權씨에게 추징금 150억원을 선고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文변호사는 『權씨에게 150억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유일한 증거인 金榮浣씨 자술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면, 법적으로 權씨에게 돈이 전달됐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文변호사는 『대법원이 權魯甲씨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金榮浣씨의 주장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은 지금이라도 이 돈의 향방에 대한 再수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과정에서 金忠植 前 現代상선 사장에 대한 검찰 측 태도 역시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金忠植씨는 2000년 3월 鄭夢憲 회장의 지시를 받아 용선료 등의 명목으로 비자금 200억원을 조성했다. 現代상선의 200억원 비자금 조성 사실은 月刊朝鮮 2002년 12월호와 2003년 1월호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金忠植씨는 이에 앞서 1999년 12월에서 2000년 1월 사이 鄭夢憲 회장의 지시로 비자금 3000만 달러를 조성, 金榮浣씨가 알려 준 스위스 UBS은행 계좌로 송금했다. 이는 鄭夢憲 회장과 李益治씨, 金忠植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진술함으로써 드러난 것이다.
 
  李益治씨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金榮浣씨가 權魯甲씨의 부탁을 받아 鄭夢憲 회장에게 3000만 달러 지원요청을 했고, 金榮浣씨로부터 스위스 은행 계좌를 전달받아 鄭회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그러나 3000만 달러 수수 사건에 대해 權魯甲씨를 입건만 했을 뿐, 지금까지 정식으로 起訴하지 않고 있다. 宋光洙 검찰총장은 지난 3월7일 月刊朝鮮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3000만 달러 송금사건과 관련, 權魯甲씨를 起訴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직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출국금지 조치 
  검찰은 現代상선 3000만 달러 송금사건 수사과정에서 사건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金忠植 前 現代상선 사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했었다. 金忠植씨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3000만 달러 송금영수증을 美國 LA에 거주하고 있는 美國人 知人에게 맡겨 두었다』고 했다. 검찰은 金忠植씨에게 이 영수증을 가지고 오라며 金씨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일시적으로 해제했고, 金씨는 2003년 7월31일 자신의 변호사와 함께 美國으로 출국했다.
 
  金忠植씨는 美國으로 출국한지 4일 뒤인 2003년 8월4일 鄭夢憲 회장이 투신자살하자 귀국하지 않고 美國에 머물러 있었다. 金씨는 그러다가 2004년 11월1일 비밀리에 입국했다가 1개월여 뒤인 12월10일 다시 美國으로 건너갔다. 金씨는 이 사이 대검 중앙수사부에 출석, 3000만 달러 송금을 비롯한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왜 金忠植씨 美國 출국을 막지 않았나? 
  金忠植씨는 2004년 11월1일 귀국하는 과정에서 검찰과 사전조율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고위 간부는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팀으로부터 金忠植씨가 귀국하기 전에 金씨 귀국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金忠植씨는 귀국하면서 3000만 달러를 스위스 은행으로 송금한 영수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金忠植씨는 귀국 1개월여 만인 2004년 12월10일 다시 인천공항을 통해 美國으로 출국했다. 현재 金忠植씨의 서울 집은 金씨의 친척인 여성이 혼자서 지키고 있다. 이 여성은 지난 3월1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金씨 부인은 물론, 그동안 金씨 내외와 함께 살던 아들 부부도 장기 출타 중』이라고 말했다.
 
  金忠植씨는 權魯甲씨에게 전달됐다는 200억원과 스위스 은행으로 송금한 3000만 달러(약 360억원)를 비롯해 최소 56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당사자인 동시에 해외에 도피 중인 金榮浣씨와 함께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 全貌(전모)를 밝혀 줄 핵심 인물이다.
 
  검찰이 金忠植씨를 통해 확인해야 할 부분은 ▲스위스 UBS은행 계좌로 송금된 3000만 달러의 수신자는 누구인가. ▲스위스 은행으로 송금한 금액은 3000만 달러인가, 아니면 2500만 달러인가 여부다.
 
 
 
3000만 달러의 최종 수신자는 누구인가? 
  검찰은 3000만 달러 송금영수증을 확보하기 위해 2003년 7월31일 金忠植씨와 金씨의 변호인 趙俊炯(조준형·법무법인 김&장 소속) 변호사를 美國으로 보냈다. 美國에 도착한 趙변호사는 출국 3일 뒤인 8월3일 오후 4시(한국시간) 대검 중앙수사부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月刊朝鮮은 이 사건과 관련한 검찰 내부보고서(2003년 8월5일 작성)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이날 담당검사는 趙변호사에게 『(3000만 달러) 송금자와 수신인은 누구인가』에 대해 물었다. 趙변호사는 『자세한 내용은 송금영수증에 나와 있는데 한국시간으로 8월4일 오전 9시10분경에 검사와 다시 통화를 한 뒤 사무실로 팩스 송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趙변호사는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부분에 대한 영수증은 물론 송ㆍ수신자에 대해서도 입을 굳게 닫고 있다.
 
  金忠植씨가 스위스 은행으로 송금한 돈의 액수에 대해서도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鄭夢憲 회장과 李益治 前 現代증권 회장, 金忠植 前 現代상선 회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스위스 은행으로 송금한 돈의 액수는 3000만 달러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金忠植씨와 함께 美國으로 가 송금영수증을 확인한 趙俊炯 변호사는 송금액수가 2500만 달러라고 전했다. 다음은 趙변호사와 사건 담당검사의 국제전화 통화내역이다.
 
  <
검사: 송금영수증을 확보하고 실제로 확인하였나요.
 
 
趙변호사: 金忠植 사장과 함께 송금영수증을 보관하고 있는 美國人 知人을 만나 송금영수증을 확보하고 제가 확인했습니다.
 
 
검사: 송금액이 얼마인가요.
 
 
趙변호사: 2500만 불입니다.
 
 
검사: 3000만 불 아닌가요.
 
 
趙변호사: 송금영수증상 2500만 불입니다. 金忠植 사장은 검찰조사시 3000만 불로 알고 그렇게 진술하였는데, 송금영수증상 실제 송금액은 2500만 불이라고 합니다. 2500만 불이 韓貨로 300억원인데, 그래서 당사자들이 3000만 불로 알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검사: 2500만 불 외에 또 다른 송금영수증은 없는가요.
 
 
趙변호사: 없습니다>
 
  사건 담당검사와 金忠植씨 변호인인 趙俊炯 변호사 간 통화내용으로는 송금액수가 2500만 달러인 것 같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과정에서 鄭夢憲 회장과 李益治ㆍ金忠植씨 3명 모두 송금액수가 3000만 달러라고 한 진술이 잘못됐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문제는 상식적으로 「3000만 달러」와 「2500만 달러」라는 돈의 액수 자체가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語感(어감)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趙변호사는 검찰에 『(송금액이) 300억원인데 당사자들이 3000만 달러로 잘못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으나, 300억원과 3000만 달러 간에는 60억원이 차이가 난다. 鄭夢憲 회장 등 사건 핵심 인물들이 60억원이라는 거금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검찰은 왜 3000만 달러 부분에 대해 權魯甲을 조사하지 않았나? 

  검찰은 鄭夢憲·李益治·金忠植씨가 모두 수사 과정에서 「權魯甲씨의 요청에 의해 金榮浣씨가 알려 준 스위스 은행 계좌로 3000만 달러를 송금했다」고 진술했으나, 정작 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權魯甲씨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 金榮浣씨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에서 「3000만 달러」 부분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이 사건 수사팀은 수사기법상 權魯甲씨를 대상으로 3000만 달러 해외송금 부분에 대한 수사를 權씨의 구속영장 청구 단계 때까지는 보류하겠다는 내부 보고서를 올렸다. 다음은 月刊朝鮮이 확보한 검찰 내부 수사보고서(2003년 8월12일 작성) 내용이다.
 
  〈權魯甲 고문이 金榮浣을 통해 鄭夢憲 회장으로부터 2000년 2월경 2500만 달러를 해외계좌로 수수하고, 2000년 3월경 200억원을 현금으로 수수한 사실이 鄭夢憲·李益治·金忠植 등의 각 진술과 자료 등에 의해 인정되나, 2500만 달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송금영수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자금조성 경위를 조사하지 못하였으므로 수사기법상 2500만 달러에 대해서는 영장단계까지는 權魯甲에게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을 보류하고 일단 200억원에 대해서만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검찰은 그러나 2003년 8월 초 權魯甲씨를 現代그룹으로부터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한 이후, 지금까지도 3000만 달러 수수혐의에 대해서는 추가 起訴를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의 핵심 인물인 金忠植씨가 지난 연말 귀국을 했는데도, 왜 金씨에 대한 출국을 금지시키지 않았던 것일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 金忠植씨 출국을 막지 않은 것은, 金씨가 「송금영수증을 가지고 오겠다」며 처음 출국했던 2003년 7월31일 이후 적극적으로 金씨의 귀국 노력을 해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月刊朝鮮이 최근 입수한 검찰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검찰은 金忠植씨가 영수증을 가지고 오겠다며 美國으로 출국을 한 이후 수차례에 걸쳐 金씨의 귀국을 위해 노력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 수사팀은 2003년 8월7일 다음과 같은 수사보고서를 검찰 수뇌부에 올렸다.
 
  〈趙俊炯 변호사와 金忠植 前 사장이 美國에 송금영수증을 가지러 갈 때 朴在榮(박재영·송금 당시 現代상선 회계담당 전무·現 現代상선 美國 현지법인 지사장) 전무의 자술서도 받아오기로 하였으나, 鄭夢憲 회장이 투신자살한 후 朴在榮 전무가 자술서 작성 및 제출시 現代상선에 피해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유보하여 趙俊炯 변호사가 朴在榮의 자술서를 가져오지 못한 상태로 귀국하였으므로 추후 정식으로 소환하여 조사 필요가 있다〉
 

 
 
돌아오지 않는 金忠植씨 
  검찰 수사팀은 2003년 8월12일에도 「金忠植 前 사장이 자료(송금영수증) 확보 후 2∼3일간 美國 內 병원에서 肝(간) 진단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여, 송금영수증 원본을 趙俊炯 변호사를 통해 보내고 2∼3일간 병원 진단을 한 후 곧바로 귀국토록 요청하였는 바, 8월12일 현재까지 송금영수증을 보내지 않고 金忠植 前 사장도 귀국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했다.
 
  수사팀은 2003년 8월21일과 28일, 9월1일 등 수차례에 걸쳐 「金忠植씨의 귀국을 종용하고 있으나, 金씨가 귀국을 하지 않고 있고, 송금영수증도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수사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수사팀은 특히 2003년 9월19일 작성된 수사보고서를 통해 「趙俊炯 변호사를 통해 金忠植 사장의 귀국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 바, (귀국을 하지 않고 있고) 金忠植이 귀국하는 것이 現代상선 보호를 위해서도 좋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귀국을 촉구했다」고 했다.
 
  金忠植 前 現代상선 사장의 귀국과 3000만 달러(또는 2500만 달러) 스위스 은행 송금영수증을 확보하기 위해 이처럼 노력했던 검찰이 2004년 11월 金씨가 귀국을 했는데도, 金씨에 대한 아무런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金씨가 다시 출국할 수 있도록 방치했다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金忠植 前 現代상선 사장과 더불어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의 全貌를 밝힐 수 있는 핵심 인물이 金榮浣씨다. 金씨는 權魯甲 前 민주당 고문에게 現代그룹의 돈 200억원을 전달했고, 朴智元 前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150억원을 지원해 줄 것을 鄭夢憲 現代그룹 前 회장에게 부탁했던 장본인이다.
 
  金榮浣씨는 「對北송금사건 특별검사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무렵인 2003년 3월20일 美國으로 출국한 뒤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金씨가 출국한 뒤 3개월쯤 뒤인 2003년 6월18∼30일 사이 金씨 부인 張모(51)씨와 아들(13), 딸(22) 가족 모두 美國으로 떠났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의 金榮浣씨 가족 출국신고서에는 부인 張모씨의 경우 「단순 美國 방문」, 아들은 「硏修(연수)」, 딸은 「관광시찰」으로 기재돼 있다.
 
 
 
金榮浣의 국내 재산은 1500억원대 

  月刊朝鮮이 확인 결과, 金榮浣씨는 현재 서울에 주택과 업무용 빌딩 등 최소 1500억원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이 재산은 金씨 장인인 張모(75)씨와 金씨의 고려大 동기(1971학번)인 許모(55)씨가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인 張씨는 해군사관학교 2기 졸업생이며, 국가안전기획부(現 국가정보원) 국장을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金榮浣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0의 32번지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의 「靑廈(청하)빌딩」과 서울 강남구 도곡동 411의18번지 지상 6층 규모의 「中央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金榮浣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靑廈빌딩(대지 101평, 연건평 810평)의 경우,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이 터지기 몇 개월 전인 2002년 6월14일 외국계 회사(브래드 게이트 코퍼레이션)로부터 매입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中央빌딩도 대지(135평)는 1989년 8월에 매입했고, 건물(연건평 495평)은 1991년 9월에 신축했다.
 
  中央빌딩은 金榮浣씨의 대학 동기인 許모씨가 관리하고 있다. 許씨는 金榮浣씨의 부탁에 따라, 朴智元 前 청와대 비서실장이 現代그룹으로부터 받았다는 CD(양도성 예금증서) 150억원어치 중 10억원어치를 현금으로 바꿔 준 인물이다. 許씨는 실제 金榮浣씨 소유였던 (주)J&C캐피탈(서울 중구 무교동 7)의 관리이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기자는 지난 3월10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中央빌딩을 방문했다. 이 빌딩이 金榮浣씨 소유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기자는 빌딩 이름이 「中央빌딩」임을 보고 직감적으로 金榮浣씨 소유라는 것을 알았다. 金榮浣씨는 서울 중앙高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 1층 현관 유리창에 「75평(2층)짜리와 40평(5층)짜리 사무실을 임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기자는 빌딩 관리인에게 『사무실을 임대하려고 하는데, 누구와 얘기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빌딩 관리인은 『許이사님과 얘기를 하면 된다』고 했다.
 
  기자는 수차례 이 빌딩 관리사무실로 전화를 해 許이사를 찾았으나, 직원들은 『자리에 없다』, 『무슨 일로 그러느냐』, 『누구냐』는 등 꼬치꼬치 캐물었다. 기자는 이후 「許이사」라는 사람의 신분과 金榮浣씨와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金榮浣씨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15층 규모의 「서림빌딩」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빌딩은 부동산 개발업체인 (주)운남매니지먼트社가 2003년 6월에 1940만 달러(약 230억원)를 주고 외국계 부동산 투자회사인 B社로부터 매입했다고 한다. B社는 세계적 租稅(조세) 피난처로 유명한 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에 주소를 두고 있으며, 이 회사는 서림빌딩을 매각한 직후, 국내 영업소를 폐쇄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 청산절차를 밟았다.
 
  서림빌딩을 매입한 (주)운남매니지먼트社는 金榮浣씨가 실질적인 소유주이며, 金씨 부인 張씨와 장인이 각각 감사와 이사로 등재돼 있다.
 
  金榮浣씨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443의9번지 대지 260평, 건평 140평,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단독주택도 소유하고 있다. 등기부 등본에는 대지의 경우 金씨와 金씨 장인의 공동 소유이며, 건물은 金씨 단독 소유인 것으로 기재돼 있다.
 
 
 
『金榮浣은 국내 재산을 정리 중』 

  金榮浣씨는 현재 외국에 거주하는 중앙高 동기를 통해 국내 재산을 정리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金榮浣씨 주위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金씨는 행동을 극히 조심스럽게 하며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고 한다.
 
  金榮浣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했던 (주)J&C캐피탈 대표이사를 지낸 朴모씨는 2003년 9월 對北송금 특검 조사 과정에서 金씨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金榮浣은 매우 비밀스럽고 괴팍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극히 꺼리는 사람이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 누군가 말하거나 알려고 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도 金榮浣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金榮浣은 휴대전화를 두 개 이상 가지고 있거나, 전화번호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회사에서 연락해도 전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밀스럽게 다녀 그가 누구와 만나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金榮浣씨는 對北송금 특검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2003년 3월 美國으로 출국한 이후 줄곧 美國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의 정확한 行蹟(행적)을 아는 사람은 없다. 美國에 거주하고 있는 在美교포 朴모씨는 『金榮浣씨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다』면서 『金씨는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고,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에도 고급식당의 룸을 이용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金씨는 美 덴버와 뉴욕 등지를 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지 교포들의 눈에 띄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金榮浣, 美國 이름 改名 추진 
  美國 시민권자인 金榮浣씨는 美國에 도착한 직후, 현지 변호사를 통해 「Young Kim(영킴)」으로 된 美國 이름의 改名 신청을 美 당국에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金씨는 현재 美國 內 굴지의 법무법인을 자신의 변호인으로 선임, 모든 일을 이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金榮浣씨와 초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내 온 한 인사는 金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金榮浣은 6共 때 착수됐던 율곡사업 중 헬리콥터 도입과 관련된 중개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金榮浣은 金大中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알짜배기인 무기부품 중개업을 주로 했고, 이 과정에서 4조원 정도의 돈을 주물렀던 것으로 알고 있다.
 
  金榮浣은 2003년 3월 美國으로 도피할 때 가정부까지 모두 데리고 갔다.
 
  金榮浣은 서울 청운초등학교와 중앙中·高, 고려大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金榮浣은 초등학교 때 덩치가 좋아 싸움을 잘했고, 야구나 축구·농구 등에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중학교 때에도 班 대항 축구·야구·농구 시합에 대표선수로 출전했고, 항상 주전자리를 차지했다. 야구를 할 때는 피처를, 축구를 할 때에는 센터 포워드를, 농구를 할 때에는 포워드를 맡았다.
 
  金榮浣은 대학을 다닐 때,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았다. 고교 동창회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의 장인은 駐獨 한국대사관에 武官(무관)으로 근무했고, 국가안전기획부(現 국가정보원)에서도 근무를 했다. 金씨가 결혼할 때, 주위에서는 정략결혼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金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별다른 직업이 없어 고전을 하다가 장인의 도움으로 獨逸과 의류 오퍼상을 시작하면서 돈을 벌었다. 金大中 정부 시절 중앙高 출신인 육군 4星 장군 출신이 서울 태릉에서 金榮浣과 골프를 쳤는데, 시종일관 金씨에게 쩔쩔매는 것을 보고 그의 파워를 실감했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다.
 
  金榮浣은 金大中 정부 말기부터 무기사업에서 손을 떼고 다른 사업을 하려고 中國 등지를 오가다 결국 부동산 사업에 손을 댔고, 이 사업에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의 국내외 재산은 3000억~4000억원으로 추정되며 1조원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金榮浣은 美國에 거주하면서 여행을 즐겨 러시아와 말레이시아, 태국 등 東南亞지역 국가들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金榮浣은 잠잘 때도 水脈을 따진다』 
  金榮浣과 친분이 있던 국내 한 정치인은 그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金씨와 우연히 외국 여행을 가게 됐고, 호텔에 함께 투숙을 했다. 잠이 오지 않아 金榮浣의 방에 갔더니, 그는 水脈(수맥)을 찾는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뭘 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水脈을 찾아 잠을 자야지만, 탈이 없다」며 호텔 직원을 불러 침대를 자기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이동시켰다.
 
  金榮浣은 占(점)을 보는 것도 즐겼다. 자주 占을 보러 가자고 했으나, 함께 간 적은 없다.
 
  그는 자신의 신분 노출을 극히 꺼렸다. 한번은 골프를 치러 갔다가 일행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金榮浣이 사라졌다. 金榮浣은 사진을 찍으려고만 하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는 누구를 만날 때도 항상 혼자서 왔다. 아주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다』
 
  鄭夢憲 現代그룹 회장이 죽은 지금,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의 全貌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金忠植 前 現代상선 사장과 金榮浣씨가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을 떠나 현재 美國에 체류하고 있다. 검찰은 2004년 말 귀국한 金忠植씨에 대해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덕분에 金忠植씨는 1개월여 뒤인 2004년 12월10일 다시 美國으로 출국할 수 있었다.
 
  검찰은 現代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 도중 鄭夢憲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를 계속했다. 그런 검찰이 비자금 사건의 핵심 인물인 金忠植씨가 출국하는 데도 왜 그냥 보고만 있었는지, 외국을 마음대로 다니는 金榮浣씨에 대해 왜 강제귀국 등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지 검찰은 이제 명확하게 그 입장을 국민에게 밝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