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自殺

'군대 안 간 대통령'에 이어 '군대 안 간 당대표'를 뽑아 어쩌자는 것인가?
 

인사동 역주행 사건


14일 저녁 서울 인사동길에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하던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 때문에 정상 주행하던 차량 수십 대가 멈춰서고 이 일대 차량 통행이 40여분간 마비된 것이다. 이 승용차의 운전사는 맞은편 승용차 운전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시민들이 모여들어 항의하자 차 문을 잠그고 서류가방을 든 채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황당하고 한심한 일이다. 에쿠스 승용차를 소유할 정도면 우리 사회에서는 무척 많은 것을 가진 자에 속할 것이다. 설사 자신의 차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차를 가진 분을 모시는 기사라면, 최소한의 상식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일방통행로로 들어선 몰상식도 한심하지만, 사단이 벌어졌다고 차 문을 잠그고 달아나버렸다니, 이건 아이큐가 한 자리 수인 인간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 달아나도 차적 조회만 하면 간단히 추적할 수 있는데, 그 순간만 모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이 황당한 뉴스를 접하면서 문득 어제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마친 한나라당을 떠올렸다. 새로 선출된 대표도, 그런 사람을 선출한 한나라당도 인사동길을 역주행한 무개념 운전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신임 당대표의 병역기피 의혹


새로 한나라당 대표가 된 분에 대해 왈가왈부할 만 그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큰 관심도 없다. 하지만 대표 경선 가운데 터져 나온 두 가지 문제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하나는 병역기피 의혹이다. 본인은 한사코 고의적인 병역기피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솔직히 믿기 어려운 얘기다. 고시공부하는 사람은 고시합격하기 전까지는 될 수 있는 한 군대를 안 가려고 기를 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병역문제를 엄격히 따지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검사 임용장을 받았고, 4선 의원을 하는 동안 충분히 검증받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잘못이다. 박 대통령이 병역문제를 엄격히 따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일반 공직자들까지 공직 임용에 불이익을 받은 것은 아니다. 병역 미필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은 것은 청와대 근무자들뿐이었다. 그들도 원 소속부처로 돌아가 근무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그 시절 검사 임용을 받았다고 해서 병역 미필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국회의원 선거에서 병역 미필 사실이 당락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크게 문제가 된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또 그런 논란을 이기고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그게 병역 미필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좌파, 걸핏하면 "이명박은 군대 갔다 왔냐?"


중요한 것은 그가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대통령, 국무총리, 국가정보원장 등 권력핵심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병역을 면탈했다는 사실과 더해지면서 ‘이명박 정권은 병역기피자 정권’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 정권의 잘 나가는 인간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들이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애국우파의 투쟁에서 얼마나 걸림돌이 되는가를…예컨대 천안함 사태 등과 관련해 인터넷에서 대북 응징을 주장하면, 좌파들이 하는 말은 간단하다.

 

“이명박은 군대 갔다 왔냐?”

“그러는 너는 군대 갔다 왔냐?”

 

그 순간 애국우파는 맥이 풀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지'를 모르는 이 나라의 '가진 자'들에 대해 욕이 나온다. 비단 좌파가 아니더라도,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대통령과 국가지도부가 젊은이들을 전쟁에 몰아넣은 도덕적 자격’이 있느냐는 문제의식은 우리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져 있다. 이제 여기에 한나라당 대표까지 더해진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부터 당대표까지 죄다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병역기피 정권’이라고 말이다.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잘못된 선택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생각했다면, 그는 대표경선에 나서지 말아야 했다. 물론 그로서는 억울할 것이다. 의정 생활 내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그까짓 병역’문제 때문에 대표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것이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 당과 이 정권을 생각했다면, 병역 문제가 터져 나오는 순간 억울해도 경선에서 물러났어야 했다. 그게 정치인으로서의 예의고 염치다. 그랬다면 그는 ‘멸사봉공(滅私奉公)’할 줄 아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보다는 자신을 앞세웠다. 그게 한나라당 정치인들의 공통적인 한계기는 하지만…

 

그가 경선 완주를 고집하더라도, 한나라당 대의원들은 그를 대표로 뽑지 말았어야 했다. 국민들이 왜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는지, 왜 젊은이들이 “이명박은 비호감”이라고 말하는지, 왜 한나라당이 젊은층에게 외면을 당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최소한 ‘군대 갔다 오지 않은 당대표’를 선출하는 우(愚)를 저지르지는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군대 갔다 오지 않은 대통령’에 이어 ‘군대 갔다 오지 않은 당대표’를 선택했다.


다른 하나는 그가 개를 키우는 이웃을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웃집 개소리, 그게 지나치면 나도 소송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국회의원이다. 싫은 소리도 참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걸 못 참아 소송을 냈다면, 국민들은 그 ‘속 좁음’을 탓할 것이다.  안 그래도 ‘소통부족’이 문제되는 이명박 정권이다. 그런데 이웃집 개 짓는 소리를 못 참는 협량한 사람을 당대표로 뽑았다? 이건 아니다.


‘안정’이 아니라 ‘안주’ 택한 한나라당


언론은 한나라당 대의원들이 그를 선택한 것을 두고 ‘안정’을 택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건 잘못된 표현이다. 한나라당은 ‘안정’을 택한 것이 아니라 ‘안주’를 택한 것이다.  왜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는지에 대한 처절한 반성 대신 이지고잉을 택한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개혁을 하면서 2012년을 준비하는 대신 웰빙을 택한 것이다. ‘고소영’이라면 치를 떠는 국민들의 정서를 다시 한번 외면한 것이다.

 

어제 새로 뽑힌 당대표는 두고두고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애국우파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물론 다른 후보들이 썩 탐탁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한나라당은 자기개혁의 의지도, 능력도 없는, 구제불능의 웰빙정당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한나라당이 2012년에 정권을 재창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특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그에게 기대서 쉽게 가려 하면 한나라당은 망한다. 이는 2002년 대선에서 이미 입증됐다.

 

한나라당이 이기려면, 대세론에 안주하지 말고, 젊고 참신한 후보, 좌파와 투쟁하려는 단호한 의지를 가진 후보를 발굴해야 한다. 그들을 앞세워 스스로 ‘대세론’부터 깨야 한다. ‘대세론’을 앞세우는 후보와 박 터지게 싸워서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감동하게 하는 일대 정치 이벤트를 벌여야 한다. 그 결과 누가 후보가 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나라당이 ‘안주’하지 않는 정당, ‘깨어 있는 정당’ ‘쉬지 않고 자기 개혁을 하는 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자살

 

이번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한나라당은 그걸 못했다. 이건 누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이명박 정부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어제는 한나라당이 '역주행' 끝에 자살한 날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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