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뭘 더 찾아주면 믿을 것인가"

천안함 폭침범 김정일의 지문을 찾아낸 대평호 金南植 선장 인터뷰
천안함 爆沈 증거 찾은 쌍끌이 어선 대평호 金南植 선장
 
“도대체 뭘 더 건져주면 믿을 것인가?”
 
⊙ 막대한 어획고를 포기하고 천안함 사건 현장에 투입
⊙ 사막에서 바늘 찾기 같았던 작업… 하늘이 도와줘서 성공
⊙ “현장을 지휘한 해군 특수전 여단 권영대 중령이 숨은 영웅”
李相欣 月刊朝鮮 기자 (hanal@chosun.com) 
대평호 김남식 선장.
 지난 5월 20일, 국방부 민군(民軍) 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을 폭침(爆沈)시킨 북한 어뢰 잔해를 공개하자, 천안함을 둘러싼 온갖 음모론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범행 현장에서 범인의 지문(指紋)을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북한 어뢰 잔해를 건져 올린 대평11호 선장(船長) 김남식(金南植ㆍ48)씨는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장에서 “그물에 걸린 프로펠러를 봤을 때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바로 이것이구나’ 했다”며 “천운(天運)이 따랐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초 서울에서 김남식 선장을 만났다. 키가 작고 다부진 몸매를 가진 김 선장은 짙은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그의 고향은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다. 현재는 부인과 열 살 된 딸과 함께 제주도에 살고 있으며, 30년째 배를 타고 있다고 한다. 다음 조업 출항을 위해 준비를 하는 사이 휴가를 받아 서울에 잠시 들렀다고 했다.
 
  김남식 선장은 “그동안 많은 기자가 찾아와 ‘당신이 진짜 어뢰를 건진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며 “기자들이 혹시 내가 국방부와 짜고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할 때는 정말 답답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진 어뢰도 북한 것이 아니라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그 사람들에게 ‘도대체 뭘 더 건져주면 믿겠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어뢰가 가짜라면 수많은 외국 전문가들을 어떻게 속일 수가 있으며, 설사 그렇게 국제사회를 속인들 그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내가 직접 건져 올렸으니 이제 그런 의심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백령도 천안함 폭침 현장에서 쌍끌이 어선 대평호가 투망 작업을 하고 있다.

  부산 선적의 쌍끌이 어선인 대평11ㆍ12호(135t급)가 백령도 천안함 침몰 현장에 투입된 것은 4월 29일이다. 쌍끌이 어선은 2척이 항상 같이 조업을 하며, 두 척을 합쳐 ‘한 통’이라고 부른다. 주선(主船)인 11호에 13명, 종선(從船)인 12호에 11명의 선원이 탄다. 대평호는 우리나라 남해 부근뿐 아니라, 필리핀 근처 공해까지 내려가서 작업한다.
 
  그는 “천안함 사건이 났을 때 내가 현장에 투입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우리(대평수산)가 2006년과 2007년 두 번에 걸쳐 바다에 추락한 공군 전투기 잔해를 건져 올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조업하고 있는데 사장(김철안ㆍ51)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은 ‘방금 국방부 관계자를 만나고 오는 길인데 우리가 현장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제가 전자 해도(海圖)로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부근의 바다 지형(地形)을 살펴보니까 수심의 기복이 심하고, 주변이 전부 암반지대였습니다. 저는 사장에게 그곳 지형을 설명하고 ‘조업(작업)할 장소가 아닌 것 같다’고 하자, 사장이 ‘국방부에 100% 자신이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하시더군요.”
 
  김남식 선장은 곧바로 백령도로 출발할 준비에 들어갔고, 가장 먼저 부산에 있는 대어산업이라는 어망제조업체를 찾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물코가 5mm, 가로 25m, 세로 15m, 길이 60m에 무게가 5t인 특수그물을 주문했다. 그물 제작엔 일주일이 걸렸다. 김 선장은 그물 제작 과정에서 자신이 조업을 통해 얻은 여러 노하우를 제공했다고 한다. 백령도 해저 지형이 암반지대였기 때문에 그물이 찢어지지 않게 안쪽에 코가 덜 촘촘한 그물을 한 겹 더 덧대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4월 27일 김 선장은 부산에서 그물을 싣고 백령도로 출발했다. 대평수산의 김철안(金喆安) 사장도 대평호에 동승했다.
 
 
  그물 자꾸 찢어져 매일 새벽 1~2시까지 손질
 
대평호 갑판에서 천안함 폭침의 결정적인 증거물인 어뢰 프로펠러를 포장하고 있는 합동조사단원들.

  대평호는 4월 29일 현장에 도착했지만, 곧바로 작업을 할 수는 없었다. 천안함 침몰 현장에서는 천안함에서 떨어져 나온 가스터빈 인양작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선장은 “할 수 없이 어뢰폭발 때 생긴 화구(火口)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시험으로 작업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걸려오는 것 없이 어구만 망가졌다”고 말했다.
 
  “작업 여건이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물살이 세고, 바닷속은 아무것도 안 보이고, 바닥은 돌밭이었습니다. 그물이 견디지 못했습니다. 사장은 10일 정도 작업을 지켜보다가 부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작업이 계속 늦어지자 군(軍)에서 가스터빈 인양 작업을 일단 뒤로 미루고, 우리를 현장에 투입했습니다.”
 
  김 선장이 수색해야 할 지점은 가로세로 500야드(457m) 넓이의 바다였다. 김 선장의 설명이다.
 
  “해군에서는 0.1mm 파편까지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화구 10~20m 옆에 천안함에서 떨어져 나온 가스터빈이 떨어져 있고, 또 그 바로 옆에는 오래전에 침몰한 어선이 한 척 있었습니다. 이 가스터빈과 침선(沈船)에 그물이 걸리면 그물을 분실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피해서 투망(投網)을 해야 했습니다. 수색해야 할 구역의 50%를 잃은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한 거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건 현장의 조류가 너무 험해서 왔다갔다하는 왕복 작업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투망 작업은 항상 조류의 반대방향으로만 진행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물이 조류에 밀려서 안정적으로 펼쳐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투망 장소와 배의 진행 방향도 극히 제한됐다. 투망 작업은 서쪽에서 동쪽 방향(백령도 방향)으로만 진행해야 했다. 쌍끌이 어선과 그물을 연결하는 줄의 길이가 300~400m에 이르는데, 백령도 쪽에서 투망하면 그물이 물속에서 충분히 펼쳐질 공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김 선장은 “한 번 투망을 해서 배를 끄는 시간이 평균 7~8분이었다”며 “그렇게 수도 없이 그물을 던지고 올리는 작업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물을 연결하는 밧줄굵기가 52mm인데 이 줄이 작업 중에 침선에 걸려서 두 번이나 끊어졌습니다. 다행히 줄이 걸렸지만, 그물이 걸리는 날이면 그길로 그물을 잃어 버립니다. 또한 작업 중에 바윗덩어리가 그물에 걸려 올라오곤 했습니다. 그런 큰 돌은 작업 구역을 벗어난 곳에 버려야 합니다. 작업장에서 보니까 북한이 바로 코앞에서 빤히 보이더군요. 작업하다가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배가 북으로 넘어갈 것 같아서 무척 신경이 쓰였습니다. 현장에 가 보니 북에서 몰래 넘어와서 한 방 쏘고 달아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 선장은 “이런 어려움을 헤쳐가면서 화구 근처를 수색하기 시작하자 온갖 천안함 잔해들이 걸려오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그물이 화구를 정확하게 지나가도록 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300~400mm 뒤에 딸려 오는 작은 그물이 화구 위를 정확하게 지나가게 끌어야 하는데, 조류가 너무 세기 때문에 정확하게 포인트(목표지점)를 맞추기가 힘이 듭니다. 화구를 타깃 삼아 수도 없이 그 위를 훑고 지나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해저는 전부 돌밭이라 한 번 투망할 때마다 그물이 여기저기 찢어졌습니다. 일을 마친 후에는 새벽 1~2시까지 전 선원이 달려들어 그물을 수리해야 했습니다. 어망파손이 너무 심하고, 작업 여건이 좋지 않아 저는 작업 성공률이 10%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평호가 건진 북한 어뢰 잔해. 윤덕용 민군합동조사단장이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어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숨은 영웅, 권영대 중령
 
대평수산 김철안 사장.

  김 선장은 그물이 견디지를 못하자 김철안 사장에게 “예비 그물을 하나 더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건의했다. 만약 작업 중에 그물을 잃어 버리기라도 하면 그물을 다시 제작하는 동안 손을 놓고 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선장의 제안을 받은 김철안 사장은 즉시 그물을 주문했다. 김 선장의 말이다.
 
  “우리 사장은 의협심과 사명감이 강한 분이에요. 이번 일은 정말 돈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작업에 투입될 무렵 제주도에서 삼치가 엄청나게 났습니다. 우리 배 한 통(쌍끌이 배 한 쌍)이 하루에 1억8000만원씩 소득을 올렸습니다. 일주일만 작업하면 국방부와 계약한 돈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장은 그것을 포기하고 한 달 계약 조건으로 천안함 어뢰 잔해 수거 작업에 참여한 겁니다. 사실 사장 입장에서는 큰돈을 들여서 예비 그물을 미리 만들어 놓을 의무도 없었는데, 책임감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나중에 어뢰 인양 작업에 성공하고 언론이 ‘쌍끌이 어선이 1등 공신’이라고 보도하자 사장이 아주 기뻐했다고 한다. 김 선장은 “우리 선원들도 사명감이 없었으면 그렇게 열심히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루에 3~4번 정도밖에 투망할 수 없는 여건이었는데도 8번까지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김 선장은 “현장을 지휘한 해군 특수전여단 권영대 중령과 호흡이 맞지 않았으면 작업을 순조롭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어뢰 인양의 숨은 공로자는 권 중령”이라고 말했다.
 
  “저는 권 중령과 군인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것 보고 ‘이래서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산다고 하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열악한 여건에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더군요. 권 중령은 막중한 책임이 자기 어깨에 걸렸으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겠습니까. 선장들이 원래 고집이 센 편인데 만약 선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군대식으로 ‘이래라저래라’하고 명령했다면 일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권 중령이 없었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김 선장은 “권 중령이 천안함 수중 수색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와 친했는데 한 준위가 죽은 일에 대해 너무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어뢰 건진 후 군이 보안 위해 휴대전화 수거해 가
 
  김남식 선장이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 지 닷새째인 5월 15일, 드디어 쌍끌이 어선에 어뢰 잔해가 걸려 올라왔다. 그날 오전 8시에 출항해 첫 번째 투망에서 소위 ‘대어(大魚)’를 낚은 것이다.
 
  “프로펠러가 걸려온 것을 보는 순간 ‘우리가 찾던 것이 저거다’고 생각했죠. 어뢰 잔해는 천안함의 다른 잔해들과 같이 걸려 올라왔습니다. 그물을 잘라서 어뢰 잔해를 갑판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우리가 작업할 때는 민군합동조사단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 동승을 하는데, 그 사람들이 어뢰 잔해를 보더니 작업 중에 막 달려들면서 ‘이거 빨리 한쪽에 잘 보관해야 한다’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아직 양망(揚網·그물을 건져 올리는 것) 중이라 무척 위험할 때였습니다. 투망과 양망 과정은 한순간만 방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작업입니다. 그 사람들 그날 저한테 욕 많이 먹었죠. 하하. 그런데 말려도 소용없더군요. 군인들은 어뢰 잔해를 자기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김남식 선장에게 “그날 아주 재수가 좋았네요”라고 말하자, 그는 “재수가 아니라 천운(天運)”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0년간 조업한 경험으로 볼 때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어뢰 잔해를 찾고 나서도 김 선장은 현장에서 계속 작업을 했다. 어뢰 잔해를 건진 후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군에서 선원들의 휴대전화를 거두어 보관했다고 한다. 김 선장이 자신이 건진 어뢰 잔해를 다시 만난 것은 국방부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장에서다.
 
  “백령도를 출발해 발표가 있던 당일 새벽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국방부의 발표장에 들어섰는데, 아무도 저에게 뭘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답해서 국방부 담당자에게 ‘무슨 말을 하면 됩니까?’하고 물어봤더니 ‘그냥 선장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됩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날 발표장에 어뢰 잔해를 가져다 놓았는지도 몰랐습니다.”
 
  김 선장은 “발표 후 기자회견할 때 ‘어뢰 잔해를 찾아서 천안함 전사자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긴장이 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세상에는 멀쩡한 사실이 왜곡될 수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도 전통적인 야당 지지자입니다만,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가 ‘천안함 사건을 북한이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다’는 말을 했을 때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 야당이라지만, 국가 안보가 걸린 문제를 두고 저런 식으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터뷰 마지막에 김 선장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여주었다. 국방부 장관에게 받은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가 대평호 쌍끌이 어선 선원 전원에게 시계와 벨트 세트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는 “천안함 조사 발표를 마치고 국방부 장관이 나를 불러 격려해 주었다”며 “이번 사건으로 나 같은 작은 존재가 국가를 위해 이렇게 큰일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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