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처마 밑의 둥지에서 태어난 세 마리 아기 새

어제는 暴雨가 쏟아져 식구 모두가 걱정이다. 수시로 창틀 위로 올라가 어미새의 동태를 살핀다. 비를 맞으면서 아기새를 품고 있는 어미 모습이 보이면 모두가 안도한다.
한 달 전에 우리 집 처마 밑에 있는 나뭇 가지 위에 럭비공만한 새 둥지가 생겼다. 참새보다는 크고 까치보다는 약간 작은 갈색 새(어치?)가 종일 앉아 있는 것이 알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분주하게 움직이는 새가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사람이 나무 밑에서 왔다갔다 해도 날아가지 않았다. 사진기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알을 품고 있는 새는 가까이 가도 날지 않아 사진 찍기에 좋다고 한다.

1주일 前 드디어 새끼 세 마리가 둥지에서 머리를 내 보였다. 털도 나지 않는 발간 머리가 오르락내리락 했다. 어미새는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다 준다. 우리는 에어컨을 틀면 더운 공기가 둥지 위로 올라갈까 봐 선풍기를 틀고 있다. 어제는 暴雨(폭우)가 쏟아져 식구 모두가 걱정이다. 수시로 창틀 위로 올라가 어미새의 동태를 살핀다. 비를 맞으면서 아기새를 품고 있는 어미 모습이 보이면 모두가 안도한다. 둥지가 나뭇가지 밑에 있어 비를 많이 맞지는 않는다.

한시도 가만 있지를 못하는 게 새이다. 그런데 근 한달 간 出産을 위한 苦役(고역)을 감내한다. 흔히 말하는 種族(종족)보존의 본능이라고 하면 그만인가? 본능이라기보다는 '사랑'일 것이다. 귀여운 아기새가 너무나 귀여우니 어미는 고통을 무릅쓰는 용기가 생기는 게 아닌가?

이런 母性愛(모성애)는 모든 동물이 共有한다. 그러니 피붙이에 대한 사랑은 너무 내세울 게 없는 것이다. 새도, 개도, 고양이도, 뱀도, 악어도 가진 것인데 인간이 가졌다고 이를 美化하고 알리고 할 필요가 있을까? 한국 드라마의 거의 전부가 이 피붙이 사이의 사랑을 다룬다.

사랑의 가치는 그것이 미치는 범위의 넓이에 달려 있을 것 같다. 新約(신약) 聖經(성경) 갈라디아書에서 使徒(사도) 바울은 "성경을 한 줄로 요약하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이다"라고 썼다. 偉人(위인)들의 전기물과 회고록을 읽어보면 인생 末年에 느낀 인생의 가치에 대한 술회가 나온다.

한 軍人 출신은 "나는 계급이 인간의 등급인 줄 알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포로생활을 10년간 하면서 여러 사건과 여러 인간 類型(유형)을 겪고 나니 인간의 가치는 "남을 위하여 얼마나 희생하였는가"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예수, 공자, 석가 같은 분들을 聖人으로 부르는 것은 이분들의 사랑이 가족과 민족을 너머 人類(인류) 전체를 향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李承晩, 朴正熙를 민족주의자로 부르는 것은 자신과 가족보다는 민족을 더 사랑하고 그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희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드라마는 재미 있고, 일본 드라마가 재미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한국 드라마는 家庭事(가정사)가 주이지만 일본 드라마는 公的인 것을 많이 다룬다. 역사, 전쟁, 마을, 회사 같은 것들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애인끼리 감싸고 희생하는 것보다는 戰場(전장)에서 戰友를 위하여 희생하는 행동이 더 고귀하다. 前者의 사랑은 우리 집 나무 가지 위에 둥지를 튼 새도 할 수 있다. 생명체의 본능적 사랑이다. 後者의 희생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高貴(고귀)한 행동이며, 이성적 사랑이고 決斷(결단)이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