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주 수석이 상임대표로 있던 6·15서울본부(준) 서울본부가 주최한 '우리민족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서울 페스티발'행사를 다룬 인터넷신문 캡쳐 사진. 이 자리에서 "올해 자주평화통일의 새로운 전환기를 만들자"는 결의가 나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李대통령은 박인주 사회통합수석에 대해서는 『보수에서 의심할 정도로 중도좌파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고 평생을 중도에서 잘 활동해 오신 분』이라며 『그런 역할을 앞으로 잘 해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기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서울본부(以下 6·15서울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利敵團體(이적단체), 從北團體(종북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6.15실천에 앞장서 온 인물에 대해 『평생을 중도에서 잘 활동해 왔으며』 『그런 역할을 앞으로 잘 해 줄 것』이라 평가한 것은 심각한 이념盲(맹)이다.
<민중의례로 진행된 6·15 기념식>
박인주 사회통합수석은 6·15선언에 단순히 동조한 게 아니라 가장 맹렬히 주장해 온 인물이다.
그는 6·15서울본부 상임대표 자격으로 2006년 6월10일 흥사단 대강당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6·15공동선언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선언문』을 낭독했다. 『6·15기념일 제정은 민족공동의 평화 의지를 내외에 널리 선포하는 뜻 깊은 과정이자 7천만 겨레의 다짐』이라는 내용이었다. 행사는 국민의례가 아닌 이른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민중의례」로 진행됐다.
(관련기사 : http://www.vop.co.kr/A00000044819.html)
2003년 4월13일 서울 상암올림픽 경기장 북측 광장에서 「우리민족끼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서울 페스티발」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박인주 수석이 상임대표로 있던 6·15서울본부(준) 서울본부가 주최한 행사였다. 朴수석의 축사에 이어 범청학련 통일선봉대의 문예공연이 이어졌다. 利敵團體(이적단체)인 범청학련은 김정일을 『한국을 미국의 구속에서 해방시켜 7000만 전체를 하나로 재결합하는 민족지도자』, 『구국의 영웅(以上 2004년 4월1일. 기관지「나팔수」)』등으로 묘사하는 김정일의 전위대이다.
6·15서울본부는 마지막으로 「1천만 서울 시민에게 드리는 호소문」 발표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남북해외 온 겨레가 모여 삼천리강산에 평화통일의 목소리가 힘차게 우려 퍼지게 해 하자.···올해 반드시 자주평화통일의 새로운 전환기를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친북좌파는 「자주평화통일」을 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로 해석해왔다.
(관련기사 : http://www.vop.co.kr/A00000028176.html)
<맥아더동상 파괴 주도 통일연대 관계자들 참가한 6·15서울본부>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6·15서울본부의 人的(인적)구성이다.
박인주 수석과 함께 김규철 서울 통일연대 대표(겸 범민련남측본부 서울연합 명예의장)가 상임대표를 맡았고, 민노당 서울시당 정연욱 부위원장, 서울 통일연대 강용준 집행위원장 등이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상임대표와 집행위원장를 통해 6·15서울본부를 사실상 주도한 통일연대는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한미동맹파기·615선언 실천』을 주장하며 2005년 9월11일 인천 맥아더동상파괴 난동을 벌였다. 통일연대 주축세력은 대선 직전 한국진보연대를 만들어 2008년 미국산 쇠고기수입반대 촛불난동을 벌였다.
통일연대 상임의장 한상렬은 현재 密入北(밀입북) 상태이며,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한충목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서 『맥아더동상파괴』 등을 기도한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단체 사무처장 민경우는 間諜(간첩) 혐의로 두 번이나 실형을 살았다. 그리고 서울 통일연대 대표는 박인주 수석과 함께 6·15실천 서울본부를 만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식 연방제를 수용한 6·15선언을 실천하자며 골수 좌익들과 함께 連帶(연대)해 온 인물에 대해 『평생을 중도에서 잘 활동해 오신 분』, 『그런 역할을 앞으로 잘 해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이 박인주 수석과 안면이 있었다 해도 이 같은 정보는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李대통령에게 국가안위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fact)을 전달하지 않거나 隱蔽(은폐)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만일 주변의 만류에도 李대통령이 박인주 인사를 강행했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어떤 쪽이건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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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주氏가 참여한 Corea 국호 변경운동의 正體(정체)
「C-코리아 되찾기」 운동은 대한민국의 국호인 Korea를 Corea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이는 2002년 6월 월드컵 당시 T-셔츠에 Corea 문구가 잠시 등장한 뒤 같은 해 말 북한정권과 국내 從北(종북)단체 선동으로 본격화됐다. 북한정권과 從北(종북)단체는 대한민국이 한반도 내 唯一(유일)합법정부라는 정통성 부정 차원에서 Corea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해왔다.
남북한 좌익의 최초 大衆(대중)선동은 2002년 9월7일 「남북축구대회」였다. 「통일연대」와 「실천연대」라는 단체는 이날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남북축구대회에서 「One Corea」가 새겨진 하늘색 티-셔츠와 한반도기를 준비해 소위 시민들과 거리응원을 벌였다.
「실천연대」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서 反국가활동을 벌이다 지난 해 利敵團體(이적단체)로 판시된 단체이다. 「통일연대」는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한미동맹파기·615선언 실천』을 주장하며 2005년 9월11일 인천 맥아더동상파괴 亂動(난동)을 벌였던 단체이다.
통일연대를 이끌었던 한상렬은 현재 密入北(밀입북) 상태이며,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한충목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서 『주한미군철수』,『맥아더동상파괴』 등을 기도한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단체 사무처장 민경우는 間諜(간첩) 혐의로 두 번이나 실형을 살았다.
<北, 남한에 Corea 국호 개정 토론 제의>
從北(종북)단체를 통해 변죽만 울리던 북한은 2002년 12월27일 직접 선동에 나섰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일본은 식민지였던 「조선」이 국제무대에서 일본(JAPAN)보다 뒤에 있어야 한다는 「고약한 심보」 아래 국호의 영문표기 첫 글자 C를 K로 바꿨다』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문 표기인 「KOREA」를 「Corea」로 정정하는 문제를 다룰 공동토론회를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조선중앙방송은 하루 전인 26일 『국호의 영문표기를 바로잡기 위한 북한 언어학학회, 역사학학회 연합학술토론회가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됐다』며 토론회 참가자들은 『국호의 영문표기를 바로잡는 것은 일제에게 짓밟히고 억눌려온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찾고 일제의 식민지 잔재를 청산해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중대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再犯(재범)간첩, 『6.15이행 강력히 촉구할 수 있는 운동』>
2003년 들어서도 북한정권과 從北(종북)단체의 Corea 선동은 계속됐다.
2003년 3월9일 북한 평양방송은 『Corea라는 국명 표기가 20세기 초 日帝(일제)가 조선을 강점할 때 KOREA로 바뀌었다』며 『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교활하고 고약한 심보가 작용했다』고 반일감정을 부추겼다.
통일연대는 2003년 4월25일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해 9월29일 과천시민회관 등지에서 Corea 국호변경을 촉구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사무처장 민경우는 인권委(위) 행사에서 『단일기(한반도기)와 아리랑보다 1민족 1국가 철학을 확산시키는 데는 Corea 사업이 현재적 의미가 있다』며 특히 『6.15선언 이행의 관점에서 민간 통일운동이 강력히 촉구할 수 있는 운동으로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경우는 2003년 8월27일 「Corea 되찾기 운동에 참가하자」는 통일뉴스 기고문에서 「Corea 되찾기 운동은 『일제가 조작한 영문 표기, Corea를 되찾고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운동은 가장 강력한 6.15선언 이행 운동』,『민족 공조의 이념을 간명하게 집약한 대중운동』 및 『외세의 개입을 차단하고 반민족적인 정치세력을 제거하는 운동은 6.15 공동선언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민경우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間諜(간첩) 혐의로 두 번이나 실형을 살았던 인물이다. 再犯(재범)간첩의 해석에 따르면, Corea 국호 변경 운동은 6.15선언 이행과 소위 민족 공조, 외세 개입 차단, 反(반)민족적 정치세력 제거를 위해 필요하다는 요지이다.
<.Corea 되찾기는 반외세 통일운동...韓(한)연방고려공화국>
2003년 5월14일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는 「일제잔재 청산과 영문 국호 Corea 되찾기 청년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단체는 利敵團體(이적단체)로 판시된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였다.
발제자로 나선 김상일 한신대 교수는 『더 이상 우리는 일본과 미국의 질곡에 시달릴 수도 필요도 없다』며 이른바 反외세를 주창하면서 다음 번 國號(국호)는 『영어로는 Corea, 우리 말로 「韓(한)연방고려공화국」을 국호로 정할 것을 제안했다.
한청의 간부인 송현석은 『통 큰 대담한 사업과 일상 사업이 병행돼야 한다』며 『당면해서 북측과의 청년 교류 테마로 청년들이 국호 Corea를 민족공조 측면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양 김일성대학에서 남북한 토론회 개최>
2003년 8월21일에는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소위 「국호 영문표기 문제 남북 학술토론회(공동준비위원장 강만길 상지대 총장. 문영호 조선언어학회 위원장)」가 열렸다.
이날 남북한 참가자들은 토론회 후 「남과 북, 해외의 학자들과 온 겨레에게 보내는 공동호소문」을 발표, 『긍지롭고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영문 국호 Corea가 일제에 의해 농간질 당했다』며 『온 겨레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굳건히 지켜 나가는 데 앞장설 것』을 호소(?)했다.
<2004년부터 박인주 내정자도 참가>
2004년 들어 Corea 국호 변경 선동에 박인주 사회통합수석 내정자도 참여한다.
朴씨는 2004년 5월29일 경희대에서 열린 「통일국호 Corea되찾기연대회의 제1차 포럼」에서 『Corea 국호개정운동은 남과 북이 통일이후 구호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운동이며 남·북·해외를 아우르는 8천만 민족의 한민족 공동체를 구성하여 통일뿐만 아니라 문화공동체, 역사공동체로서 이 지구촌에 민족적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는 운동이다』고 설명했다.
2005년 이후 Corea 국호변경 문제는 종북단체의 맥아더동상 철거 난동, 평택범대위 반미 폭동 등으로 이슈에서 밀려났다. 놀라운 偶然(우연)은 북한정권의 문제제기가 사라지자 남한 내 從北(종북)단체도 일제히 침묵해버린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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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주 내정자와 한 편이었던 利敵, 從北 인물들
박인주 청와대 시민통합수석 내정자는 노무현 정권 기간 6.15선언 실천을 앞장서 실천해 온 인물이다.
朴씨의 과거 활동을 살펴보면 그의 향후 활동 예측이 가능하다. 그는 자신의 운동권 경험과 인맥을 기초로 한 「시민통합」에 나설 것이다.
<장면1.....6.15실천 서울본부 출범식>
2005년 6월 15일 오후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는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남측준비위 산하 서울본부(준) 발족식이 열렸다.
박인주氏는 당시 김규철, 장승학氏 등과 함께 6.15실천 서울본부 상임대표로 취임했다.
朴씨와 함께 상임대표를 맡은 김규철氏는 서울 통일연대 대표(겸 통일연대 공동대표)이자 범민련남측본부 서울연합 명예의장이었다.
통일연대는 현재 越北(월북)한 한상렬 목사가 상임대표자회의 의장을 맡았던 조직으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진보연대로 흡수됐다.
이 단체는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한미동맹파기·615선언 실천』을 주장하며 2005년 9월11일 인천 맥아더동상파괴 집회를 주최했다.
통일연대는 당시 『맥아더는 분단과 학살의 원흉, 전쟁미치광이』라며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나선 것은 바로 분단의 원흉이요 전쟁과 학살의 책임자이며, 이 땅 萬惡(만악)의 근원인 駐韓美軍(주한미군)을 몰아내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라는 등 일련의 주한미군 철수 성명을 냈었다.
범민련남측본부 역시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연방제 통일 등 북한정권을 노골적으로 추종하며 利敵團體(이적단체)로 판시된 단체이다.
범민련남측본부는 미군을 『强占(강점)세력』으로 인식하며, 북한의 『先軍(선군)노선』을 찬양하고, 『連共(연공: 공산주의와 연합)·連北(연북: 북한정권과 연합)을 통한 연방제를 실현하자』고 주장한다(2005년 9월8일 성명 外).
<범민련·통일연대 대표 등과 함께 공동대표 취임>
박인주, 김규철氏와 함께 6.15실천 서울본부 상임대표를 맡은 장승학氏는 한겨레평화통일협회 이사장으로 알려졌다. 한겨레평화통일협회는 홈페이지도 없고 기사에도 검색이 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단체이다. 장승학氏가 2003년 10월23일 이른바 「송두율 교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에 참석한 것을 통해 성향을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2005년 6월15일 발족식에서 6.15실천 서울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민노당 서울시당 정연욱 부위원장, 서울 통일연대 강용준 집행위원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고정호 사무처장이 맡았었다.
민노당은 노골적인 從北(종북)행태를 보이는 정치세력이며, 서울 통일연대는 앞서 설명한 통일연대의 서울조직이다.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역시 통일연대 참가단체이다. 놀랍게도 6.15실천 서울본부 실무진은 從北(종북)정당, 從北(종북)단체 관계자들로 채워졌다.
발족식은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서울 의장의 폐회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한청은 이적단체 「범민련 남측본부」 산하 청년단체로서 한청 역시 2004년 이적단체로 판시돼 있다. 당시 법원은 『한청의 강령이나 소식지는 남한 사회를 美(미)제국주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있고, 북한의 先軍(선군)정치를 찬양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인민민주주의 혁명 등을 주장하고 있어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당시 참가자들은 『통일의 이정표인 6.15 공동선언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노력할 것』과 『상설적인 연대기구로서의 지향을 바탕으로 1,300만 서울시민의 통일열망에 부응하기 위한 각종 사업을 힘차게 펼쳐 나갈 것』 등을 결의했다,
언론에 보도된 6.15서울본부(준) 참여단체는 아래와 같았다. 아래 단체 중 보수성향 단체는 물론 찾을 수 없다.
《21세기통일봉사단, 6.15공동위강동.송파준비위, 강혜숙춤패, 겨레하나되기운동연합, 겨레하나합창단, 국토수호독도사랑학술문화예술제중앙본부, 국학운동시민연합,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남북문화교류협회, 남북청소년교류연맹, 남북코리아미술교류협의회,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동서울시민연대, 민족자주평화통일서울회의, 민족통일국민운동본부, 민족통일서울특별시협의회, 민족통일촉진회, 민주노동당서울시당,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당서울시당, 백두산문인협회, 범민련서울시연합,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 서울지역대학생6.15운동본부,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서울청년단체협의회, 서울흥사단, 서울KYC, 선단학, 세계평화청년연합서울시본부, 신사회공동운동연합,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전교조서울지부,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서울빈민연합, 전국연합서울, 조국평화통일불교회, 통일교육문화원, 통일맞이, 통일여성안보중앙회, 평화를여는카톨릭청년, 평화통일시민연대, 푸른시민포럼, 한겨레평화통일협회, 한국노총서울본부, 한국민족종교청장년회, 한국역술인협회, 한반도평화운동본부 (이상 51개, 가나다순)》
<장면 2.....6·15기념일 제정 촉구 행사>
2006년 6월10일 오후 흥사단 대강당에서는 「6·15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겸 「6·15 공동선언 발표 기념일 제정 촉구 서울 선포식」이 열렸다.
민중의 소리가 보도한 당시 6·15 서울본부 김규철 상임대표의 대회사와 박인주氏가 낭독한 선언문은 이랬다.
『6·15선언이 있었기에 효순, 미선 사건에 대해 미국에 사과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고, 광화문 촛불문화제가 열릴 수도 있었다』
『6·15 공동선언은 우리에게 참으로 엄청난 힘을 주어서 국가보안법이 있어도 국가보안법에 위배되는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다』
『민족의 자주성과 반전평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민족의 대단합이 필요하다... 6·15 공동선언을 기어이 지켜서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以上 대회사)』
『6·15기념일 제정은 6·15 공동선언을 제도화하는 첫걸음이며, 남·북 간 화해·협력정책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고, 더불어 민족공동의 평화 의지를 내외에 널리 선포하는 뜻 깊은 과정이자 7천만 겨레의 다짐이다(朴씨가 낭독한 선언문)』
민중의 소리는 이날 행사에 『범민련 서울시연합 우동철 부의장,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의 정종권 위원장과 이상규 사무처장, 서울청년단체연합 김규성 조직위원장을 비롯한 운영위원들, 민족통일국민운동본부 윤소년 공동대표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또 『6·15 대학생운동본부의 김하얀 서총련 의장이 6·15 공동선언 전문을 낭독하며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범민련은 이적단체로 판시돼 있으며, 서울청년단체연합과 서총련 역시 각각 이적단체인 한국청년단체연합, 한총련의 서울지부이다.
從北(종북)정당과 從北(종북)단체 관계자들이 주도한 이날 행사는 박인주氏의 「6·15 공동선언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선언문」 발표에 이어 이른바 「民衆儀禮(민중의례)」가 이어졌다.
민중의례는 좌파세력이 國民儀禮(국민의례)를 대신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이른바 열사에 대한 묵념 등 의식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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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반대자를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에 內定!
6.15선언 실천에 앞장서 온 박인주 평생교육진흥원장이 청와대 조직 개편에 따라 신설될 사회통합수석으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60세인 朴씨는 경북 칠곡 출신으로 경북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흥사단 이사장, 통일교육협의회 상임의장 등을 지냈다.
<『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노력할 것』>
청와대가 사회통합수석으로 거론하고 있는 박인주씨는 노무현 정권 기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서울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6.15실천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朴씨는 2005년 6월15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6.15남측委 서울본부 상임대표로 취임했다. 당시 서울본부 집행위원장으로는 민노당 서울시당 정연욱 부위원장, 서울 통일연대 강용준 집행위원장 등이 선출됐다. 통일연대는 2005년 9월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파괴난동을 주도한 친북단체이다.
朴씨 등 참가자들은 이날 발족선언문을 통해, 『6.15공동선언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친다면 그 어떤 역경도 순경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통일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며 『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노력할 것』을 결의했다.
당시 朴씨는 친북매체인 인터넷 통일뉴스 인터뷰에서 『6.15정신을 살리기 위해 6.15공동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자체가 무척 의미 있는 행사고 조직구성』이라며 『6.15정신을 이 땅에 다시 뿌리내리게 하고 그것이 통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6·15 공동선언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선언문』>
朴씨는 2006년 6월10일 흥사단 대강당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6·15 공동선언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朴씨는 선언문을 통해 『6·15공동선언 발표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은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의 소중한 약속이 될 것』이라며 『기념일 제정은 6·15공동선언을 제도화하는 첫걸음이며, 南北(남북)간 화해·협력정책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고, 더불어 민족공동의 평화 의지를 내외에 널리 선포하는 뜻 깊은 과정이자 7천만 겨레의 다짐』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에는 利敵團體(이적단체)인 범민련 서울시연합 우동철 부의장, 利敵團體 한총련의 서울조직인 서총련의 김하얀 의장, 민노당 서울시당 정종권 위원장과 이상규 사무처장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朴씨가 이끄는 6.15남측委 서울본부는 2005년 8월12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 광장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서울페스티벌」을 열었다. 이 단체는 통일뉴스 인터뷰에서 『평양에서 열린 6.15통일대축전의 정신을 이어 나간다는 의미에서 페스티벌을 준비했다』고 대회취지를 밝혔다.
<盧정부 「통일 메시지」 일반에 전달하는 기능?>
朴씨는 노무현 정권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통일교육협의회 공동의장(2005~), 상임의장(2007~)을 맡아 盧정권 對北정책을 민간에 알리는 窓口(창구) 역할을 해왔다.
통일교육협의회는 2007년 11월2일 정세현 前통일부 장관을 초청한 「2007 회원단체 워크샵」을 개최했는데, 鄭 前장관은 2007년 10·4선언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 대해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극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NLL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사람들이 최고목표가 해상경계선 새로 긋자는 것이다. 자기네들에게 너무 불리하니. 그게 안 되면 해주직항로라도 열어달라는 것이다···(중략)···북은 그래서 해주로 들어가는 대롱 같은 길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열어줘야 한다. 물론 군함은 안 되겠지만.』
朴씨는 별도의 기조강연을 통해 『통교협은 민간의 제안을 정부에게 전달하고, 역으로 정부의 통일 메시지를 일반에 전달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코리아 되찾기」 운동>
朴씨는 「C-코리아 되찾기」 운동도 벌여왔다. 그는 2004년 5월29일 경희대에서 「통일국호 COREA되찾기연대회의 제1차 포럼」을 통해 『COREA 국호개정운동은 남과 북이 통일이후 구호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운동이며 남·북·해외를 아우르는 8천만 민족의 한민족 공동체를 구성하여 통일뿐만 아니라 문화공동체, 역사공동체로서 이 지구촌에 민족적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는 운동이다』고 설명했다.
이날 포럼에는 이른바 평화운동가 김승국, 오정윤 한국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장의균 민예총 남북문화예술교류위원장 등 좌파 이론가들이 발제에 나섰다.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문성근 사무차장은 『2003년 8월 남북학자들이 모여 학술회의를 열고 COREA가 고유 국호였으니 통일국호로 사용하자고 합의한 바 있다』고 말했다.
< 「이라크戰 파병반대」 등 「반전평화운동」>
朴씨는 「이라크戰(전) 파병반대」 등 이른바 「반전평화운동」도 열심히 벌여왔다. 2003년 4월1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侵攻(침공) 반대를 위한 시민대회」가 열렸다. 흥사단 시민사회단체위원장 자격으로 참가한 朴씨는 자신이 낭독한 성명을 통해 『수많은 이라크 국민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후세인 정권을 강제로 교체하려는 것은 세계 민주시민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미국의 오만과 독선』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의 석유확보를 위한 전략과 다른 종교·문명을 부정하는 기독교의 원리주의적 관점이 있다는 강한 의심』이 있다며 파병반대를 주장했다.
朴씨 등은 같은 달 16일 「반핵반전평화를 위한 시민네트워크」를 결성,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의 승리가 또 다른 전쟁에 대한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불행한 前例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