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의 방일(訪日)은 성과가 있었다. 북한은 2002년 납치를 인정하고 큰 양보를 취하는 듯했다. 그러나 납치 피해자인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와 요코타(橫田) 메구미 등에 대한 사망 정보를 조작, 이들의 소재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이 거짓말을 반복하는 동기에 대한 해명이 필요했고,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김현희의 존재였다.
‘김현희 가짜설’은 통용(通用)되지 않는다
북한은 김현희가 실행범이 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에 대해 김현희는 가짜라는 주장을 지금까지 무너뜨리지 않고 있다. 야에코 씨나 메구미 씨가 돌아와서 김현희와 만나면,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 북한의 범행임이 완전히 증명된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북한은 살아 있는 사람을 ‘사망’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방일로 김현희와 다구치 가족은 교류를 깊이 했다. 김현희가 기억하고 있던 요코타 메구미의 특징을 듣고, 메구미의 양친은 감동했다. 이것만으로도 김현희가 가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즉 북한이 주장하는 김현희 가짜설의 기만(欺瞞)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거짓이 폭로되면 비밀을 유지할 의무가 없어진다. 북한 정권이 무리를 해가면서 “일본인 납치자는 13명 뿐이며, 이 가운데 8명이 사망했다”고 하는 기존의 거짓말을 되풀이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북한은 일본인 납북자 전원을 송환시켜, 대북 제재 해제와 대북 지원 획득을 노리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시도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후원(後押)으로서 일본의 여론 환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양심과의 싸움 끝에 협력 자세를 취했던 김현희
그러나 한계도 있었다. 김현희의 방일을 주도한 일본정부는 위와 같은 방일 의의를 거의 설명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비밀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관계자가 밀실에서 면회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작다. 김현희의 기자회견이 실현되지 않은 것도 유감이다.
한국의 언론인 조갑제(趙甲濟)씨는 “김정일과 김현희의 진실 게임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월간조선)고 했다. 전 공작원이 조금씩 김정일의 거짓말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북한이 필사적으로 거짓말을 유지하려 압력을 가해온 것을 묘사한 발언이다.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은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실행됐다. 그녀는 도주 도중 체포되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소생(蘇生)했다. 한국에 호송되어 "남조선 인민은 미(美)제국주의의 식민지배하에서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북한의 세뇌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115명을 폭살한 자신의 범행이 정의(正義)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북한에서 정치범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함께 수용소에 보내진다. 김현희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사죄하고 싶다는 내심(内心)의 목소리와 이를 실행에 옮기면 양친(両親)이 수용소에 보내진다는 우려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러나 최후에 “부모님은 마시지 않으면 죽게 되는 한 잔의 물을 양보해 줄 정도로 자신을 사랑했다”는 자문자답(自問自答)에 도달해 자백을 했던 것이다.
진실 게임의 제1막은 이렇게 해서 김현희의 승리가 된 것이다. 그녀의 일본어 교관을 강요당했던 다구치 야에코의 존재가 밝혀지고, 1988년 참의원예산위원회에서 일본 정부는 다구치를 포함한 8명의 납치 피해자의 존재를 인정했다. 김현희의 용기 있는 자백이 없었다면 납치 피해자의 존재는 어둠에 숨겨졌을 것이다.
김정일의 박해를 고발하는 제2의 역습(逆襲)
2002년 김정일은 북한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에게 일본인을 납북한 것을 인정하고, 5명의 피해자를 귀국시켰다. 그러나 “납치한 것은 13명, 5명(일본 귀국 인원)을 제외한 8명은 죽었다”는 새로운 두 개의 거짓말을 했다.
모든 피해자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거짓말을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이 점에 있어서도 김현희와 김정일의 진실 게임이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이 납치를 인정한 것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는 친북좌파세력이 '김현희는 가짜'라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그녀는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몸을 감출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렸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납치 피해자 가족과의 면회가 최근까지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2008년 한국의 정권교체 이후 김현희는 좌익정권 시절 자신에게 가해진 박해를 고발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진실게임의 제2막이 되는 역습이었다. 지난 해 3월 한국 부산에서는 김현희와 다구치 가족과의 면회, 그리고 이번 방일 등이 위와 같은 사건을 둘러싼 허위와의 싸움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
그녀는 아직도 대한항공기 폭파를 인정하지 않고, 많은 납치 피해자를 계속해서 억류하고 있는 북한과 정면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일본 정부의 조치는 테러의 산증인을 특별조치로 입국시켜, 테러를 고발하는 증언을 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 자체가 진정한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이번 방일로 김현희는 1976년 김정일이 스파이의 현지화(現地化) 지령을 내렸고, 그 1기생이 자신들이며, 중국인 납치 피해자에게서 중국어를 배우고, 동기생인 남성 스파이 6명은 동남아시아 담당이었다는 새롭고 중대한 증언을 했다. 이러한 새 증언을 활용해 김정일 정권의 허위의 전체구조를 밝히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필자] 니시오카 츠토무(西岡力), 동경기독교대학교수
[원제] 東京基督教大学教授・西岡力 総書記の「嘘」を暴いた元工作員
[출처] 日산케이신문 2010년 7월27일
金正日의 거짓을 폭로한 金賢姬의 訪日
- 西岡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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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28, 16: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