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국가에 대한 책임감

*이 글은 토론방에서 퍼온 것이다.

국가에 대한 책임감




영적 책임감이 투철한 성도

에스겔 3장 17~19절


미국 남북전쟁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한 부대에서 중요한 비밀 문서를 다른 부대에 전달해야 되는데 그 메신저를 보호해서 데리고 갈 병사를 찾던 중 한 용감한 육군 상병이 지원하고 나섰습니다. 적군이 들끓는 적진을 통과하던 중 그 문서를 가진 사람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게 되자 호위해 가던 그 병사가 그 문서를 낚아채 가지고 돌진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이 병사도 옆구리에 적탄을 맞아 상처 입고 피를 흘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병사는 그 중요한 문서를 상처난 자기 옆구리에 쑤셔 넣고 계속 돌진해 목적한 부대에 거의 다 가서 창백한 얼굴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군의관이 숨진 병사의 시체를 검사하다 보니까 그 병사는 입술에 미소를 띄우고 말은 못하니까 손가락으로 자기 옆구리를 가리킨 채 쓰러졌더랍니다. 시신을 검사한 군의관이 말하기를 “옆구리의 상처는 죽을 만큼 치명적이 아니었는데 그 서류를 옆구리에 쑤셔 넣은 것 때문에 죽었다(Wound itself not fatal)”고 보고했습니다.
이 용감한 병사가 얼마나 책임감이 투철합니까? 책임 완수를 위해서 문서를 상처난 옆구리에 집어넣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책임감이 투철한 사람을 찾고 있으며 우리 영적 군대의 총사령관이신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런, 책임감에 충실한 성도들을 찾고 있습니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 자기의 책임을 제멋대로 벗어던지는 무책임한 사람은 교회에도, 하나님의 나라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크나 작으나 책임을 맡으면 그 용감한 병사와 같이 최선을 다해야 주님도 기뻐하시고 큰 상급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죽을 때까지”, 즉 중간에 변절하지 말고 충성하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책임완수를 위해서 목숨이라도 버릴 각오를 하고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받고 은혜를 받으면 그만큼 책임도 따릅니다. 남달리 축복을 받으면 그만큼 책임완수의 의무도 따르는 법입니다. 교회의 직분도 맡으면 그 직분만큼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어떤 분은 집사, 권사, 장로가 되거나 무슨 기관의 장이 되면 그것을 벼슬처럼 생각하여 세도나 부리고 좌지우지 하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직분을 받으면 받은 만큼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령한 은혜와 은사를 받고 남달리 축복을 잘 감당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수평을 이룬 저울대와 같습니다. 한쪽은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이라고 하면 다른 한쪽은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드리고 헌신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는 쪽만 자꾸 무거워지고 다른한쪽, 즉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일과 영적 책임을 감당하는 쪽이 가벼우면 언젠가는 뒤집혀서 물질이나 사업이나 건강이 파산되고 쓰러지는 날이 옵니다.
잠깐 있다가 썩어지고 없어지는 세상 것에 치중하고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청지기입니다. 대통령도 잠깐이요, 장관, 국회의원도 잠깐입니다. 몇천 억 제물을 모았어도 잠깐입니다. 죽을 때는 옷 한 벌, 관 한 개면 족합니다. 영원한 것, 영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 두는 것이나 교회에서 책임을 잘 감당하는 것은 영원히 남는 것이며 천국의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쾌락을 위해 먹고 입고 쓴 것은 다 썩어 없어지고 마는 것이지만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뿐 아니라 파손이 있으면 그 자손에게 복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사람이 정말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난 뒤부터는 세상의 부귀영화는 분토와 같이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진리의 말씀을 전하면 농담으로 여기거나 웃기는 말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불심판 받는다고 할 때 그 사람들이 코웃음치며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재산도 불타고 생명도 불타 죽었습니다. 바벨론 제국도 멸망했고 그 후신인 이라크도 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파사 제국의 후신 이란도 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언젠가는 미국도, 독일도, 일본도 다 멸망하고 심판받는 날이 옵니다. 영적 책임을 완수하고 영혼 구원하는 일과 교회 일을 하는 것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1. 자신과 가정을 위한 책임

엊그제, 자기 두 아이를 한강 물에 집어던진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무책임한 아버지입니까? 그럴 것 같으면 장가를 가지 말고 자식을 낳지 말았어야지, 귀찮다고 한강에, 아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집어던져죽이다니 한마디로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가정을 이루면 그만큼 책임이 중한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 신랑이나 신부나 책임이 따릅니다. 그전에는 남의 여자, 남의 남자와 만나는 것도 자유로웠지만 결혼 후부터는 다방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찬들은 영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녀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도록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대학엔 떨어져도 지옥엔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전에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이 암살당한 뒤에 Dallas에 있는 한 침례교회 교회학교 선생님한테서 온 편지가 그곳 신문에 게재된 적이 있는데, 그 암살범 오스왈드(Lee Harvey Oswal)가 어려서 그 교회학교 선생을 두세 번 찾아왔던 일이 있는데 잘 만나주지도 않고 방문도 안 했는데 그런 큰 죄를 범했다고, 자기의 책임을 통감하고 후회하는 편지를 보내왔다는 것입니다.
5년 후 로버트 케네디(Robert F. Kennedy)가 암살된 다음에 패사디나에 있는 나사렛 교회의 교회학교 선생님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로버트 케네디를 암살한 암살범 씨란 씨란(Sirhan Sirhan)이 어렸을 때 자기가 담임한 반 학생이었다고 하면서 검은 피부의 씨란이 어렸을 때 잘 지도하지 못한 무관심 때문이라고 하면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보냈더랍니다. 그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관심을 가지고 잘 지도했다면 그런 비극이 없었을 것 아닙니까?
전에 저의 모친께서는 예수님 잘 믿지 않는 자식이 있을 때에는 며칠 밤씩 철야기도 하시면서 “내 자식이 지옥 갈 바엔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시더라도 내 자식 구원받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술 먹고 담배 피고 깡패 노릇하던 동생 김국도 목사가, 저의 모친이 다리에 시커멓게 멍이 들도록 자기 몸을 때리면서 기도하신 것을 보고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고 결국 목사가 되었습니다.
자기 가족 식구들에 대한 영적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신앙 지도를 잘해야 될 것입니다.2. 영혼구원의 책임감

사람이 가진 감정과 열정 중에 가장 귀하고 복된 것은 영혼 구원에 대한 사랑과 열정입니다. 육신은 아무리 일류 대학을 나오고 큰 재벌이 되어도 100여 년 살다가 죽어 흙이 되고 말지만 영혼은 영원한 것입니다. 장차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느냐,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으며 지내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도 영혼구원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6장 38~40절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멸망할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양 아흔 아홉 마리보다 잃은 양 하나를 찾아오는 기쁨이 더 크다고 했습니다(눅15:7,15:10). 잃었던 탕자가 돌아왔을 때, 죽었던 아들이 살아왔다고 큰 잔치를 배설하고 기뻐했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시는 목적도 능력 받고 나아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다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영혼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후예들에게 영혼구원 하는 일 외에 다른 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휘트필드(Gearge Whitefield)는 “하나님이여, 나에게 영혼을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 영혼을 거두어 가시옵소서”라고 구령열에 불타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선교사 프란시스 자비엘(Francis Xavier)은 “내가 매를 만 대를 맞더라도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 매를 맞겠다”고 했습니다. William Booth 대장은 “한 영혼이 구원받는다면 거꾸로 서서 춤을 추라고 해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영혼구원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육신구제, 섬김, 봉사만 강조합니다. 그런 것들은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가 부흥되면 자동적으로 하게 마련입니다. 영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큰 교회를 까고 치며 숫자만 많으면 되느냐고 물량주의가 어떻고 하면서 비판합니다. 영혼구원의 책임감 때문에 선교사업도 하고 개척교회도 하고 예배당도 짓는 것입니다.

3. 국가에 대한 책임감

성경 전체를 보면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였고 목숨 바쳐 충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 모두가 그랬습니다.
나라가 잘못 되어 갈 때 눈물 흘리며 기도했고 근심하고 탄식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① 진리파수를 위한 책임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은 “진리를 안 후에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그 진리 외에 다른 진리를 없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거듭난 크리스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신앙 외에 다른 데는 구원이 없다”는 확신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면 독선이라고 하면서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는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있습니다. 이는 멸망의 자식들입니다. 그것이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입니다. 관대한 척 하면서 불교, 유교나 이슬람교, 힌두교 할 것 없이 다 같은데 기독교는 조금 더 고차원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지금까지 모든 전통적 진리를 다 부인하는 후기근대주의(Post-modernism)입니다. 십자가의 구속도 부인하고 부활도 부인합니다. 심지어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끌어내리고 너희가 제2, 제3의 예수가 되라”고 합니다. 기독교 복음은 황소개구리와 같아서 이미 있는 토속종교를 다 잡아먹고 심지어 복음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도구로 쓰여진다고 하면서, 황소개구리를 때려잡듯이 때려잡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수, 신학자도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어떤 교회는 복음의 확신이 없고 성령의 능력도 못 받고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자꾸 시대를 따라 변화를 시도합니다. 체질개선을 하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면서 별별 것을 다 도입해 시도합니다. “열린 음악회”를 하듯이 “열린 예배”도 시도합니다. 예배가 언제 닫힌 적이 있습니까? 기독교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진리와 복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복음의 확신도 없고 성령의 능력도 받아본 일이 없으니까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허둥대는 것입니다. 21C가 아니라 31C가 되어도 그 하나님, 그 복음, 그 성령이십니다. 도리어 성경 진리보다 앞서가지 말고 복음으로 돌아와야 되고 초대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진리의 말씀만 바로 전하면 예나 지금이나 부흥됩니다.
요사이 진보주의, 자유주의자들은 자꾸 변화를 시도합니다. 동성연애도 찬성하고 안락사도 찬성하고 음주, 흡연도 찬성합니다. 일찍이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 신이 있다면 바로 내가 그 신이 되어야 한다”고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미쳐 죽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성경으로 돌아와야 한다”(Back to the Bible)라고 했듯이 탈선해 나아가지 말고 성경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형식을 좀 바꾸는 것까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요사이는 기술정보시대이기 때문에 세상 기업과 사업은 뒤떨어지지 말고 변해야 합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놓고 다 바꾸라”고 했다는데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진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사이는 질서를 파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처녀들도 젖가슴을 다 내놓고 배꼽, 허벅다리 다 내놓습니다. 성한 옷도 갈기갈기 찢어서 입습니다. 가정주부들도 따분하게 어떻게 한 남편만 바라보고 사느냐고 하면서 적당히 간식도하고 양식도 해야 된다고 합니다. 바꾸면 안 될 것까지 바꿉니다.
애국가는 안창호 씨가 작사한 것이 아니라 윤치호 씨가 작사했다고 합니다. 1888년 테네시에 있을 때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지었는데, 일본 총독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6년 징역 형도 받은 사람인데 후에 일본의 압제에 못 이겨 총독부의 귀족원의 원이 되었다고 해서 애국가를 바꿔야 하겠습니까? 춘원 이광수가 일제의 압박에 못 이겨 잠깐 친일파가 되었다고 해서 이광수 소설책을 다 불태워야 하겠습니까? 육당 최남선이 잠깐 친일파 노릇했다고 해서 “기미독립선언문”을 폐기처분 해야 되겠습니까?
요사이 전교조 선생들은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가르치고, 김현희가 KAL 858기를 폭파하여 죽인 사실을 김정일도 시인했는데 김현희도 가짜요, 군사독재가 꾸며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공산주의자들은 말장난을 하고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잘 만들어 냅니다. “공산주의혁명”을 “개혁”이라고 합니다. 적화통일에 걸림돌이 미군이기 때문에 패권주의니 뭐니 해서 반미감정을 확산시키느라고 여러 달 동안 촛불시위도 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은 골고루 나눠 가지고 살자는 것인데 요사이 공공연히 “있는 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갖도록 한다”는 미명 하에 “경제개혁”이니 “재벌해체”니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북한처럼 거지의 나라가 되고 맙니다. 민총련, 한총련 등이 폭력 데모를 하면서 북한을 돕고 있습니다. “민족공조”니 “민족통일”이니 하는 것을 미군을 철수시키고 공산화 통일을 하자는 것인데 요사이 젊은이들이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설명하기를 386세대는 3.1절도 모르고 8.15도 모르고 6.25도 모르는 세대라고 했는데 적당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잘 믿든 못 믿든 이 나라에 5만 교회, 1200만 성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눈물과 땀으로 기도하면 결코 공산화되지 않고 축복받아 선교하는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나라를 위한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하여 공산화를 막아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2004년 1월 4일 주일 낮 설교 말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