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과 북한체제는 왜 이렇게 비슷한가?

오웰이, 喀血해가면서 쓴 이 소설은 공산전체주의 체제의 악마성을 알게 된 지식인이 몸과 정신을 불살라 만든 작품이다. ‘1984년’은 한 위대한 문학가가 韓民族에게 선물한 ‘진실의 눈’인 셈이다.
영국작가 조지 오웰이 쓴 ‘1984년’은 북한처럼 암울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일종의 북한체험이다.

<1950년대에 일어난 核전쟁으로 1984년 현재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의 세 초강대국으로 분할된 상태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영국, 미국 등 영어권 나라를 통합)는 지금의 북한처럼 사상, 언어, 결혼 등 모든 생활이 통제되는 체제이다. 물자는 부족하고, 국민들은 屋內外(옥내외)의 도처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일종의 CCTV)의 감시하에 놓여 있다.

런던에 사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眞理省(진리성:선전부)에 근무하면서 역사기록을 개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세아니아 성립 당시의 기록은 계속 고쳐지므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조차 알 수 없다. 윈스턴은 작업 중 정부의 선전과 배치되는 옛 자료를 접한 뒤부터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일기도 쓰고 연애도 하는데 이는 모두 금지된 행위이다. 그는‘憎惡(증오)주간’에 만난 줄리아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벗어난 방을 발견하여 밀회를 즐긴다.

윈스턴은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던 黨內局(당내국) 간부 오브라이언을 만나 현체제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고백한다. 오브라이언은 동지적 共感(공감)을 보이면서 反체제 지도자 골드스타인이 쓴, 금지된 책을 준다. 이 책을 통하여 체제의 내막을 알게 된다. 오브라이언은 사상경찰 간부인데, 윈스턴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함께 체포되어 愛情省(애정성:검찰)의 101호실에서 혹독한 신문을 받는다. 오브라이언으로부터 고문과 설득을 당한 윈스턴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고 사상적으로 개조되면서 연인인 줄리아를 배신한다. 윈스턴은 일단 석방된다. 그는 마음이 순화된 뒤 처형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드디어 大兄(대형)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1984년’을 읽어내려 가면 북한체제와 너무나 비슷한 데 놀라게 된다. 權力(권력)구조와 생리, 그리고 인민들의 삶이 흡사하다. 오웰이 이 소설을 완성한 1948년엔 북한정권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출범한 해이다. 오웰은 스탈린이 다스리던 소련 전체주의 체제를 참고로 하여 소설을 썼지만 결과적으론 북한체제를 모델로 한 셈이 되었다. 소련체제는 1953년 스탈린의 사망과 3년 뒤 흐루시초프 서기장에 의한 스탈린 格下(격하) 연설을 계기로 변하게 된다. 강제수용소와 피의 숙청이 사라지고 反체제 운동이 일어난다. 1984년의 오세아니아와는 다른 모습이 된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이란 大兄이 모든 인민들의 公的, 私的 활동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북한만이 ‘1984년’에 부합된다. 체제의 작동 원리가 같다.

*大兄과 김일성: 오세아니아 全域(전역)에 붙어 있는 ‘大兄이 당신을 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는 포스터와 북한의 도처에 서 있는 김일성 동상은 우상이 다스리는 체제를 상징한다. 大兄과 김일성은 무서운 복종의 대상일 뿐 아니라 자애로운 지도자로서 모든 사람들은 그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 복종을 넘어서 사랑까지 강요하는 체제는 무섭다.
*항구적 戰時(전시)체제:‘1984년’의 오세아니아는 늘 戰時상태를 유지한다. 실제론 다른 두 강대국을 상대로 싸우는 척할 뿐, 긴장상태를 유지,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함이다. 북한정권이 미국과 한국의 위협을 과장, 영구적 戰時상태를 조성,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憎惡(증오)의 과학:오세아니아 주민들은 매일 2분씩 미워하기 시간을 갖는다. 텔레스크린 앞에 모여 앉아 敵(적)을 향하여 집단 히스테리를 발산시킨다.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암약한다는 ‘인민의 敵’이 증오의 主대상인데, 실재하는지조차 애매하다. 북한정권이 미국과 한국, 그리고 있지도 않는 계급의 敵을 향하여 증오를 부추김으로써 주민들을 통제하는 수법이다.

*常時(상시) 감시망: 오세아니아의 모든 시민들은 텔레스크린이란 일종의 CCTV 감시망 속에 놓여 있다. 思想(사상)경찰의 눈이 도처에서 번득인다. 북한엔 CCTV보다 더 강력한 신고망이 깔려 있다.
*역사의 조작: 오세아니아에서 과거의 기록은 현재의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고쳐진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면 과거를 지배한다’는 게 黨의 방침이다. 세계 어느 독재국가도 북한처럼 역사를 뒤집는 나라가 없다. 그들은 역사를 통제하면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고, 그리하여 權力과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2중의 단절: 오세아니아와 북한은 외부세계와 단절될 뿐 아니라 역사 조작에 의하여 자신들의 역사로부터도 단절되었다. 주민들은 방향감각과 비교대상과 비판의식을 잃는다. 일종의 無重力(무중력) 상태에 빠진 것처럼 살아간다.
*언어 조작에 의한 진실의 말살:오세아니아 정권의 구호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無知(무지)는 힘이다’. 북한도 민족을 말하면서 반역을 하고,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하고, 화해를 말하면서 분열시키고, 민주의 이름으로 독재를 하고, 진보한다면서 퇴보한다. 오세아니아에선 ‘뉴스피크’라는 新語를 만들어 비판적 사고의 씨앗을 말살한다. 북한도 용어혼란 전술로 그렇게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노예화:오세아니아는 사회주의 체제의 주인이어야 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짐승처럼 사는 곳이다. 북한에서도 노동자 농민계층이 가장 심한 억압을 당한다. 대기근 때는 이 계층 사람들이 주로 굶어죽었다. 오세아니아와 북한은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사회주의를 배신한 점에서도 같다.

조지 오웰이 이처럼 정확하게 북한체제를 예언한 능력은, 그의 문학적 천재성이라기보다는 知的(지적) 성실성으로 설명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사회주의자인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스페인 內戰에 참전, 좌파 편에서 싸웠다. 그는 바르셀로나를 차지한 좌파세력 안에서 일어난 권력투쟁을 목도하였다.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親蘇(친소)분자들이 동료 사회주의자들을 상대로 일으킨 무자비한 숙청과 학살을 체험하였다. 그 자신도 희생될 뻔하였다.

공산전체주의의 악마성과 僞善(위선)을 발견한 그는 죽을 때까지 13년간 수많은 기사, 논평, 著作(저작)을 통하여 이 진실을 알리는 데 全力을 다하였다. 그는 폐결핵에 걸려 치료를 받으면서, 喀血(객혈)을 해가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태워가면서 ‘1984년’을 완성하였고 1년 뒤 죽었다. 46세였다. 죽어가면서 쓴 것이 이 소설이다. 진실을 본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殉死(순사)였다. 그런 점에서 ‘1984년’은 한 위대한 문학가가 韓民族(한민족)에게 선물한 ‘진실의 눈’인 셈이다. '1984년'이 아직도 有效(유효)한 곳은 한반도뿐이다.

*김일성이 죽어도 눈물이 나지 않던 청년

로스 앤젤레스 타임스의 북경 특파원(前 서울 특파원) 바바라 데믹 기자가 쓴 '부러운 게 없어요-북한의 보통 삶'(NOTHING TO ENVY. ORDINARY LIVES IN NORTH KOREA)이란 책이 話題(화제)이다.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겪은 삶을 오랜 인터뷰를 통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月刊朝鮮이 1991년 신년호 부록으로 내어놓은 책('북한, 그 충격의 실상: 가 본 사람과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과 비슷한 접근법이다. 모든 對北정책은 북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파악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진실에 기초한, 뿌리가 든든한 정책이 된다.

이 책에는 준상이란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1961년에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在日동포를 부모로 둔 청년이 1994년 7월9일 김일성 사망 발표일에 겪었던 일이 재미 있게 그려져 있다.

평양의 한 대학 재학생이던 준상은 토요일 오전 기숙사에서 책을 읽다가 "중대 발표가 있으니 운동장으로 집합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그는 核위기가 드디어 전쟁으로 악화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정오 무렵 운동장엔 약 3000명이 도열하였다. 정오가 되자 확성기를 통하여 여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햇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을 울리면서 터져나왔다. 김일성이 죽었다는 발표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신음과 흐느낌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한 학생은 쓰러졌다. 학생들은 무엇을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한 사람씩 머리를 감싸안고 주저앉기 시작하였다.

준상은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진 젊은이였다. 그도 따라서 주저앉았다. 다른 학생들에게 그의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땅 바닥만 내려다 보았다. 그는, 주변에서 나는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면서 다른 동급생들의 슬퍼하는 표정을 훔쳐보았다.

그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는 자주 울어 아버지로부터 "계집아이처럼 약하다"고 꾸지람을 듣는 그였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눈가를 만져봐도 눈물이 없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뭔가 잘못된 것인가? 김일성이 죽었는데도 왜 슬퍼지지 않는가? 김일성을 사랑하지 않았단 말인가?

준상은 갑자기 무서워졌다. 고독감을 느꼈다. 위대한 수령의 突然死(돌연사)에 모든 학생들이 슬퍼하는데, 자신만 無心(무심)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는 여기서 울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장래, 노동당 입당 문제, 그의 생존이 걸려 있다.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준상은 겁이 났다.

그는 해를 향하여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 눈물이 솟아날 것이라는 계산을 하였다. 눈을 오래 뜨고 노려보았다. 그리고 소리지르면서 울기 시작하였다. 기계적 동작을 되풀이하였다. 갑자기 진짜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꿇어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진짜로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부러운 게 없어요'라는 책의 著者 바바라 데믹 기자는 脫北하여 한국에 온 준상씨에게 조지 오웰의 '1984년' 번역본을 주었다고 한다. 준상씨는 이 책을 다 읽고는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를 정확하게 묘사한 것 같아 놀랐다는 평을 하더라고 한다.

'부러운 게 없어요'라는 책의 著者 바바라 데믹 기자는 脫北하여 한국에 온 준상씨에게 조지 오웰의 '1984년' 번역본을 주었다고 한다. 준상씨는 이 책을 다 읽고는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를 정확하게 묘사한 것 같아 놀랐다는 평을 하더라고 한다.
바바라 데믹 기자도 북한을 여행한 뒤 풍경에서 '1984년'의 회색과 비슷한 色調를 느꼈다고 했다. 이 소설에선 선전 포스터만 천연색이라고 했는데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오웰의 소설에는 ‘2분간 미워하기’ 시간이 있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자아비판 시간을 연상시킨다. 이 시간엔 전국의 직장 가정에 달려 있는 텔레스크린의 지시에 따라 敵을 규탄하는 행사가 벌어진다. 反혁명 분자의 얼굴이 등장하면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괴성을 지른다. 이때 성의 없이 행동하는 자는 사상경찰에 끌려간다.

<두려움, 복수심에서 나오는 쾌감, 殺意, 敵을 고문하고 얼굴을 햄머로 때리고 싶은 욕망이 모든 사람들 사이로 電流처럼 흘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마음에도 없는 發狂과 발작을 하게 만들었다>

‘미워하기 시간’에 조작되는 집단 히스테리는 순간적으로 미움의 대상이 변한다.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그 미움을 大兄에게 발산하였다가 금방 大兄에 대한 존경심으로 바꾸기도 한다. 준상이 김일성 사망 발표일에 경험하였듯이 '1984년'의 사람들도 살기 위하여 감정을 스스로 조작할 수 있다. 1984년의 무대인 오세아니아 사람들은 大兄에 복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大兄을 사랑해야 한다.

바바라 데믹 기자는 김일성도 복종에 만족하지 않고 사랑을 받기를 원했다고 했다. 스탈린이 아니라 산타 클로스나 '자애로운 어버이'가 되고싶어 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칼 마르크스가 상상하였던 그 어떤 존재보다는 일본의 천황과 더 비슷하다고 했다.

'1984년'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다.
인간성 말살의 전체주의 체제에서 살면서도 일말의 양심과 의문을 지녔던 윈스턴은 사상경찰에 붙들려가서 온갖 고문과 설득을 당하고 석방된다. 사상경찰은 윈스턴의 머리에서 문제의식, 비판의식을 지워버린다. 그는 사람이 달라졌다. 그렇게 증오하던 大兄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에 비친 大兄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는 후회한다. 40년 동안 大兄을 오해한 데 대하여 뉘우친다. 검은 콧수염 뒤에 숨어 있는 그 은은한 미소를 제대로 보지 못한 데 대하여 반성한다. 大兄의 포근한 품을 멀리 하고 그를 완강히 거부하였던 데 대하여 自責한다. 이 유명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진 냄새가 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콧가를 흘러내렸다. 그런 건 괜찮아, 모든 게 괜찮아. 싸움은 끝났어.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그는 大兄을 사랑하였다>

복종을 강요하는 체제와 사랑을 강요하는 체제는 질적으로 다르다. '1984년'의 오세아니아에선 연애도 금지된다. 사람들은 오로지 대형만 사랑해야 한다. '1984년'에서 주인공인 윈스턴은 사상경찰의 고문과 설득을 이기지 못하고 두 가지를 포기한다. 줄리아라는 戀人에 대한 사랑과 '2+2=4'라는 진실이다.

윈스턴을 신문하는 사상경찰관은 '2+2=5'를 진실로 받아들이라고 집요하게 압박한다. "진실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黨이 인정하는 것"이다. 윈스턴은 결국 '2+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는 희망이 있다'는 명제를 포기하고 '2+2는 5이다'고 한다. 진실을 포기하는 순간 연인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도 사라진다.

'부러운 게 없어요'에서 준상은 연인을 먼저 탈북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다. 한국에서 재회해 보니 연인은 결혼한 뒤였다. 준상은 두만강을 넘을 때 읊었던 헝가리 詩人 산도르 페토피가 쓴 詩의 한 귀절을 생각했다고 한다.

자유와 사랑
이 둘을 나는 가져야 한다.
내 사랑을 위하여 나는 내 생명을
희생시킬 것이다.
자유를 위하여 나는
내 사랑을 희생시킬 것이다.

*人民 사냥이란 새로운 전쟁

영국 作家 조지 오웰의 '1984년'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로 3分된 세계를 무대로 한 것이다. 이 세 나라는 전쟁상태이다. 하지만 서로 결정타를 날리지 않는다. 싸우는 척하는 것이 國內통치에 아주 유리하다고 암묵적 합의를 한 것이다.

세 나라가 모두 전쟁상태를 유지하되 의미 있는 實戰(실전)을 피하는 것은 세 나라의 지배층에 모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전쟁을 승리나 패배로 끝내는 것보다는 전쟁상태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정권 유지에 편리하다. 오웰은 "이 전쟁은 속임수인데 싸우는 두 동물의 뿔이 상대를 해치지 않도록 각도를 맞춘 것과 같다"고 했다.

오세아니아를 다스리는 黨(당)은 전쟁상태임을 국민들에게 끊임 없이 선전하면서 독재체제를 강화해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은 내부문제화된다. 세 나라 지배층은 서로는 싸우지 않는 대신 자기 주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한다. 오웰은 이런 요지의 설명을 했다.

<이 전쟁의 목적은 영토를 확보하는 게 아니라 사회구조를 수호하는 것이다. 전쟁이 지속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전쟁은 없어졌다. 세 나라는 詐欺的(사기적) 전쟁상태를 지속함으로써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그래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한 영구적인 평화는 영구적인 전쟁과 같은 의미가 된다. 黨의 구호인 '전쟁은 평화다'는 그런 의미이다. 전쟁상태를 유지하여야 지배층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黃長燁 선생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무장한 김정일 정권은 비무장 상태의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끊임 없이 전쟁의 공포를 확산시킴으로써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식량이 부족하면 지배층끼리 나눠 가지고 주민들에겐 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300만 명이 평화시에 굶어죽었다. 이들은 黨이 주민들을 상대로 벌인 전쟁의 戰死者(전사자)이다. 그래서 북한의 평화는 '공동묘지의 평화'라는 것이다.

북한이나 오세아니아나 戰時(전시) 상태를 유지하여야 주민 통제가 가능하고 영구 집권이 가능하다. 조지 오웰은 이 소설을 1948년에 섰다. 그해 공식 출범한 북한정권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것이다. 오웰은 사회주의자로서 스페인 內戰에 좌파 편에서 참전, 스탈린주의자들의 악마적 本性을 간파한 사람이다. 그가 1936년 바르셀로나에서 본 지옥이 한반도의 북쪽에서 훨씬 더 악마적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과거와 단절되면 비판의식이 사라진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를 想定(상정)하고 쓴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문제작 '1984년'엔 이런 대목이 있다.

<黨員(당원)들이 프롤레타리아처럼 현재의 생활 상태를 견디는 것은 비교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黨員들은 외국과는 접촉을 해서는 안되듯이 과거로부터도 단절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선조들보다 자신들이 잘 살고 있으며, 물질적 풍요가 점점 향상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黨의 무오류성을 지키기 위하여는 과거를 재조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역사 기록은 끊임 없이 수정된다. 眞實省(진실성)에서 오늘의 필요에 맞추어 과거를 조작하는 것은 愛情省(애정성)에서 하는 주민감시나 억압만큼 정권의 안정을 위하여 필요하다. 과거는 기록 및 기억과 부합해야 한다. 黨이 모든 역사기록과 주민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통제하므로 과거는 黨이 선택하는 방향에 맞추어진다.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 그런데 오늘을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

북한주민들은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도 단절되어 있다. 그들이 제대로 배우는 역사는 조작된 김일성 父子의 역사뿐이다. 한글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史實(사실)도 배우지 않는다. 주민들이, 김일성보다 더 위대한 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비교 대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북한주민들은 공간적 단절과 시간적(역사적) 단절이란 2중의 폐쇄 상태속에서 살아왔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상태에서 비교대상과 비교기준을 갖지 못하니 노동당정권과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정보화가 深化된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젊은 세대를 건전한 국민으로 키우는 데 가장 필요한 韓國史와 國語 교육이 質(질)과 量的으로 매우 낮다. 정부와 언론이 漢字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과거, 즉 漢字문화에 기반을 둔 전통문화와 역사로부터 단절되고 있다. 좌경세력은 한국사의 내용을 조작, 왜곡하여 가르친다. 과거를 조작하는 세력은 현존하는 권력이다. 과거를 조작하는 이유는 그런 조작으로 좌경화된 국민들을 量産(양산)하여 미래의 권력을 계속 잡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이런 과거 조작이 개방된 민주사회에서, 정보화 시대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白晝(백주)의 암흑'이라 할 만하다.

오웰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바깥 세상 및 과거와 단절된 오세아니아 사람들은 별과 별 사이의 공간에 사는 사람처럼 어느 쪽이 아래이고 어느 쪽이 위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나라의 지도자들은 절대적 존재가 된다>

*마음을 지배하여 물질을 지배한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60여년 전에 쓴 '1984'는 스탈린 治下(치하)의 소련을 모델로 하여 전체주의의 미래상을 그린 소설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소련이 아니라 지금의 북한에 딱 들어맞는 소설임을 알게 된다. 소련은 1953년 스탈린의 사망 이후 전체주의가 서서히 약화되었다. 특히 흐루시초프가 1956년에 스탈린 格下(격하) 연설을 한 이후엔 강제수용소가 사라지고 암살과 처형이 금지되었다. 1984식으로 인간을 로보트로 改造(개조)한 곳은 북한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1984'는 북한정권과 남한의 從北(종북)세력을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유효한 안내서이다. 문학의 天才(천재)는 그 어떤 학자나 정치인보다도 인간과 역사에 대하여 先見力(선견력)이 있다는 사례가 오웰의 경우이다.

이 책의 名言들을 소개한다.

"오늘의 기준으로 본다면 中世의 천주교는 너그러운 편이었다. 그 한 이유는 과거엔 정부가 시민들을 항상 감시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판이 시작되면서 여론을 조작하기가 쉬워졌다. 영화와 라디오는 이런 경향을 강화시켰다. 텔레비전 기술의 발전으로, 즉 한 기계로써 동시에 정보를 주고 받게 되면서 私생활은 없어졌다."

언론의 발달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고만 알려져 왔다. 오웰은 言論을 공산주의자가 장악할 경우, 사상통제의 兇器(흉기)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오웰이 예로 든 출판,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에 지금은 인터넷이 더해졌다. 이 매체들이 좌경화되면 중세 암흑시대보다 더한 암흑상이 벌어질 수 있다. 문명의 利器(이기)에 의하여 연출되는 이런 사태는 '白晝(백주)의 암흑'이다.

'1984'가 그리는 私생활 없는 나라의 구호는 '大兄(대형)이 너를 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이다. 북한 사람들의 집집마다 벽에 붙어 있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바로 그 大兄이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內戰 때 공산주의의 실상을 체험한 사회민주주의자이므로 그들의 전술과 전략, 그리고 이들의 한계를 본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모든 공산당이 집권하면 역사관부터 조작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웰은 이렇게 말한다.

"黨의 슬로건은 '과거를 통제하는 사람이 미래를 통제한다. 미래를 통제하는 사람이 과거를 통제한다'였다."

공산주의자들은, 權力(권력)을 잡으면 과거사를 조작함으로써 미래를 장악하는 일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역사관을 조작할 수 있는 세력은 정권을 빼앗기지 않는다.

"의식화되기 전에는 그들이 절대로 반란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 후가 아니면 의식화될 수가 없다."
("Until they become conscious they will never rebel, and until after they have rebelled they cannot become conscious.")

이 말은 북한주민들의 딜레머를 지적하는 느낌이다. 북한주민들이 의식화되어야 수령독재체제를 반대하는 행동을 할 터인데, 그런 의식화는 행동을 통하여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악순환의 구조를 깨려면 외부에서 정보가 들어가야 한다. 對北(대북)풍선날리기나 휴전선의 對北방송이 그런 역할을 한다.

"자유란 2 더하기 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그렇게 하는 게 허용된다면 다른 모든 것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Freedom is the freedom to say that two plus two make four. If that is granted, all else follows.")

'2 더하기 2는 4'라는 것은 증명된 진실을 상징한다. '6·25는 南侵(남침)이다' '천안함 爆沈(폭침)은 북한 소행이다' '김정일은 나쁜 놈이다' '李承晩과 朴正熙는 위대하다'는 것도 증명된 진실이다. 이런 진실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사회, 즉 언론자유가 보장된 사회는 공산화나 독재화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6·25는 南侵이다' '천안함 爆沈은 북한 소행이다' '김정일은 나쁜 놈이다'는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면 그런 사회는 위험해진다. 한국 사회는 그 단계에 進入(진입)하였다. 오웰의 이 名言과 비슷한 것으로 '언론자유는 모든 자유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을 통제함으로써 물질을 통제한다. 현실은 머리 속에 있다."
("We control matter because we control the mind. Reality is inside the skull.")

思想(사상)을 바꾸면 현실을 改造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오웰은 사상을 바꾸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언어 조작임을 간파하였다.

'1984'의 大兄이 다스리는 나라 오세아니아엔 이런 구호가 도처에 붙어 있다.

"전쟁은 평화이고, 자유는 예속이며, 無識(무식)은 힘이다."
("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

이 나라의 거짓말 전문 선전부서의 이름은 眞理省(진리성)이다. 침략 전쟁을 좋아하는 국방부의 이름은 平和省(평화성)이다. 양심수들을 고문, 처형하는 법무부의 이름은 愛情省(애정성)이다. 물자 부족으로 시달리는 나라의 경제부처는 풍부省이다.

지금 한반도의 김정일 세력이 쓰는 國語사전도 의미가 거꾸로 되어 있다.

"퇴보는 진보이고, 살인마는 위원장이며, 화해는 도발이고, 통일은 분열이다."

1984의 나라 오세아니아에선 '뉴스피크'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보급함으로써 비판적 思考(사고) 자체의 씨를 말리려 한다. '뉴스피크' 사전의 특징은 단어수가 점점 줄어들고 略語(약어)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뉴스피크'가 정착되면 사람들은 黨의 오류를 비판하려고 하여도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할 수가 없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다.

한글專用의 확산이 한국인을 그렇게 만들지 모른다.

'뉴스피크'라는 新言語(신언어)의 문법엔 '二重사고'(Doublethink)가 있다. 두 가지 모순되는 의미를 모순을 느끼지 않고 容認(용인)하는 사고방식이다. 'blackwhite'라는 단어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먼저 敵에게 적용될 때는 '검은 것을 희다고 우기는 억지'란 의미이다. 이 단어가 黨員(당원)에게 적용될 때는 '黨이 원하면,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할 정도의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의미한다.

천안함 爆沈이 북한 소행임을 부정하는 자들속에서 이런 二重사고를 볼 수 있다. '천안함 폭침'이란 단어가 이들에겐 '천안함이 북한에 의하여 폭침되었다고 우기는 억지'라는 의미를 갖는 동시에 '필요하다면 천안함이 북한에 의하여 폭침된 것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는 신념'이란 의미도 띤다. 이런 자들에겐 거짓과 진실이 의미가 없다. 이들은 자신의 신념에 맞추어 언어의 의미를 자유자재로 변환시킨다. 신념이 사실을 改造하는 것이다.

*카탈로니아 讚歌

스페인 內戰(내전)을 다룬 유명한 소설과 實錄(실록)이 있다. 미국 작가 헤밍웨이가 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쓴 넌 픽션 ‘카탈로니아 讚歌(찬가)’가 그것이다. 관점은 다르다. 헤밍웨이는 좌파에 동정적이고, 오웰은 좌파 편에서 싸웠지만 반대파를 숙청하고 헤게모니를 잡은 親蘇派(친소파)를 파쇼와 같은 집단이라고 비판한다. 역사적 관점에선 오웰의 知性이 헤밍웨이의 낭만주의를 압도한다.

‘카탈로니아 찬가’의 무대는 이 지방의 중심 도시인 바르셀로나이다. 이 도시를 여행할 때 이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으면 80년 전의 역사적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람블라스 거리는 바르셀로나 한 가운데에 난 번화가이다. 카페와 식당이 즐비한 곳이고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붐빈다. 이 바르셀로나를 무대로 하여 벌어졌던 ‘內戰 속의 內戰’이 ‘카탈로니아 찬가’의 主題(주제)이다.

오웰은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고발하는 두 편의 소설- ‘동물농장’과 ‘1984’- 때문에 反共(반공)자유민주주의자로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다. 1936년 프랑코 장군이 좌파정권을 타도하기 위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內戰으로 치닫자 오웰은 바르셀로나로 가서 좌파 민병대에 자원, 입대한다.

‘카탈로니아 찬가’의 도입부는 노동자 계급이 정권을 잡은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당은 파괴되고, 팁은 없어지고, 상류층의 사치스런 옷차림은 사라지고, 하층민들은 당당해졌다. 오웰은 프랑코 군대와 대치한 戰線(전선)에 투입되어 지루한 참호전을 하게 된다. 敵(적)과의 實戰(실전)보다는 이와 쥐를 상대로 한 싸움이 더 처절하다. 그는 바르셀로나로 휴가를 나왔다가 ‘內戰 중의 內戰’에 휘말린다. 바르셀로나의 좌파정권 안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세력이 다른 사회주의자들을 숙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웰은 자신의 계보와 신념에 따라 反蘇 사회주의 진영에 서게 된다. 親蘇派(친소파)가 시가전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고 오웰은 전선에 복귀한다. 여기서 목을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후송되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바르셀로나에 돌아와 除隊(제대)와 출국을 꾀하게 되는데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反蘇분자’로 지목되어 언제 끌려가 총살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스페인에 동행하였던 부인은 호텔에 연금되고, 오웰은 露宿(노숙)을 해가면서 거리를 방황한다.

경찰은 밤에만 설치고 낮은 자유롭다. 오웰이 안전한 낮 시간에 여기저기 들르는 카페와 음식점 이야기는 바르셀로나 관광 가이드이다. 목숨이 오고 가는 살벌한 분위기이지만 독일이나 소련과는 다르다. 오웰은 스페인 사람들은 절대로 파쇼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스페인 사람들은 긴장된 가운데서도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오웰은 ‘스페인에 대하여는 나쁜 기억이 많지만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다’고 말한다.

親蘇派 형사들이 오웰의 부인이 묵던 호텔 방을 급습, 두 시간 동안 수색을 하는데 부인이 누워 있는 침대는 건드리지 않는다. 사실은 이 침대 밑에 불온문서와 무기가 숨겨져 있는데도 그들은 남자의 명예심을 지킨다.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오웰은 親蘇派가 스탈린의 꼭두각시가 되어 노동자 계급을 탄압함으로써 계급해방이란 사회주의 혁명을 배신하였다고 개탄한다. 바르셀로나에서 親蘇派가 정권을 독점한 뒤엔 노동자들이 다시 탄압을 받고 자본가들이 回生한다. 형사들은 노동자풍의 사람들을 검문하여 잡아들이고 부유층 같아 보이는 이들은 검문도 하지 않는다.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얻은 교훈은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은 똑같은 巨惡(거악)이란 깨달음이었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는 독자들은 오웰 부부가 기차 편으로 스페인을 벗어나 프랑스로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시가전, 암살, 투옥, 처형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스페인을 떠나 7개월 만에 영국으로 돌아온 오웰은 평온하기 짝이 없는 조국의 모습을 보고 걱정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깊게 잠들어 있는 영국을 보면서 두려워지는 것은,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놀라 잠자리에서 튀어나오기 전엔 잠에서 결코 깨어나지 않을 것이란 예감 때문이다>

오웰의 이런 예감은 곧 적중하였다. 1939년 8월 스탈린은 히틀러와 손잡고 獨蘇(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음으로써 유럽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배신하고 독일이 전쟁으로 달려가는 길을 열어준다. 9월 독일이 폴란드로 쳐들어가자 영국은 비로소 평화지상주의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1938년에 출판된 ‘카탈로니아 찬가’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전담 출판사가 스탈린 비판 내용 때문에 출판을 거부, 다른 회사를 찾아서 낸 책인데, 1951년 再版(재판)이 나올 때까지 초판 1500부가 다 팔리지 않았다. 오웰은 1950년 47세로 죽었는데, 그때까지 번역판은 이탈리아어뿐이었다. 오웰은 죽기 직전까지 초판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신경을 썼다.

그 뒤 바르셀로나도 많이 바뀌었다. 프랑코 시절에 핍박을 많이 받았던 카탈로니아 사람들은 2002년 월드 컵 8강전에서 스페인 팀이 승부차기로 한국 팀에 지자 환호했다. 지난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 팀이 우승하자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처음으로 ‘스페인 만세’와 ‘카탈로니아 만세’를 같이 외쳤다. 바르셀로나 출신 선수들이 대표팀의 主力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이 떠오른다. 6·25 남침을 前後(전후)하여 박헌영의 남로당이 김일성에게 배신당하고 숙청당하는 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남로당 후손들 중에서 오웰 같은 양심가가 나와서 김일성주의를 비판하는 名作(명작)을 남길 때도 된 것 같다.

*머리를 써야 공산주의에 이긴다

영국 作家 조지 오웰의 語錄(어록)을 검색하니 그도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詐欺(사기)가 판을 치는 시절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혁명이다."
(During times of universal deceit, telling the truth becomes a revolutionary act.)

조지 오웰은 공산주의와 파쇼를 同類(동류)로 보고 이를 知的으로 無力化시키는 일에 몰두해온 사람이다. 그는 親知(친지)한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공산주의 및 파시즘과 싸우려면 우리도 같은 정도의 狂信(광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는 同意(동의)할 수 없다. 狂信者들을 이기려면 우리는 狂信者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머리를 써야 이길 수 있다>

그는 '동물농장'을 위한 서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출판인들과 편집자들이 어떤 기사들을 싣지 않기로 한다면 이는 고발을 당할까 봐 겁이 나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여론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이러한 知的(지적)인 비겁성은 작가나 언론인들이 직면해야 하는 最惡(최악)의 敵이다>(이 문장은 공개되지 않은 서문에 실린 것)

<자유란, 사람들에게 듣고싶어하지 않는 것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조지 오웰의 一生을 다룬 영화에는 그가 자신의 글을 거부하는 편집자에게 이렇게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네는 신념을 사실보다 더 重視(중시)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이기도 할 것이다. 50을 채우지도 못하고 죽은 조지 오웰의 가치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것은, 그리하여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知性으로 평가되는 것은, 자신이 발견해간 사실을 자신의 신념보다 늘 우선시키면서 자신의 생각을 고쳐간 知的 성실성 덕분일 것이다.

그는 1946년 트리뷴에 기고한 글에선 이렇게 주장하였다.
<우리는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사실이 아님이 증명되어도 사실을 왜곡하여 우리가 옳다는 주장을 한다. 知的으론 이런 과정을 무한대로 끌고 갈 수 있다. 이런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가짜 확신이 확고한 현실과 충돌할 때인데, 보통 戰場에서 그렇게 된다>

그렇다면 말장난과 僞善의 곡예를 펼치는 한국의 좌경적 지식인들이 꿈에서 깨어날 때는 그들이 불러일으킨 전쟁의 피비린내를 맡으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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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상주의의 허상

George Orwell(조지 오웰. 본명은 Eric Arthur Blair)의 '동물농장'은 전체주의 국가의 絶對權力者(절대권력자)와 절대 권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寓話(우화:allegory)이다. 東西古今(동서고금)을 통해 민중은 언제나 지도자와 지도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적인 제도로부터 압제를 당하게 마련이라는 것이 오웰의 持論(지론)이다.

특히 전체주의 국가의 권력자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자신의 絶對權力(절대권력)을 무자비하게 행사할 때 민중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폭정에 시달리는 민중에게 해방을 약속하며 권력을 장악하는 '혁명지도자'나 '이상주의자'도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오웰은 “기존의 폭군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폭군은 항상 있다. 새 폭군은 전임자만큼은 나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폭군임에는 틀림없다” 라며 정치적 이상주의자들을 경계하였다.

그는 “도덕주의자(moralist)들이 급진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혁명가들은 도덕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의 모습(the shape of society)을 변경시키면 모든 일이 바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를 變革(변혁)함으로써 모든 惡(악)을 제거하고 사회를 완벽하게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인간의 현실적 生存條件(생존조건)에 바탕을 두지 않는 觀念的(관념적) 사회혁명의 無望(무망)함을 예리하게 지적하였다.

비현실적인 사상을 거부하라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사상은 그 것이 아무리 고상하고 이상적일지라도 거부하여야한다는 것이 오웰의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저항 독립운동가로서 聖人(성인)으로 칭송받고 있는 Gandhi(간디)도 오웰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오웰은 간디의 聖者(성자)의 이상을 (성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인간이 되고픈 유혹을 결코 느껴보지 못한다면서)비인간적이라며 비판하였다.

간디의 無抵抗主義(무저항주의)도 영국같은 민주주의 정권하에서나 가능한 방법이며 나치스 독일이나 소련같은 전체주의국가에서는 전혀 효력이 없을뿐더러 항의시위에 참여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처형당할 것이다. 그러나 오웰은 증오와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정치투쟁의 理想(이상)을 실천한 간디의 숭고한 인격은 높이 평가하였다.

사기당하는 민중

간디처럼 증오와 권력의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간디 같은 인물은 인류역사상 예외적인 인물이다. 어떠한 인간도 증오와 권력욕을 超越(초월)할 수는 없다.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거나 경쟁자가 되는 삶의 투기장에서는 증오와 권력의지는 생존본능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조직을 이루어서 투쟁할 때에 생존의 가능성이 보다 더 확실하게 보장된다. 조직에는 어떤 형태로든 지도자가 있어야 조직이 유지된다. 대중은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지도자는 대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이들 지도자는 언제나 대중을 지배하거나 조작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래서 오웰은 “역사는 일련의 詐欺(사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詐欺劇(사기극)속에서 민중은 유토피아(Utopia)의 약속에 따라 蜂起(봉기)하도록 誘引(유인)되지만 일이 끝나면 새로운 주인에 의해 또 다시 노예가 된다.”라며 정치지도자와 민중의 지배-종속적인 관계를 지적하고 있다.

인간은 계급적 동물이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당대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처럼 현실과 유리된 관념적인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서점점원, 농장 일군, 식당종업원, 교사, 가정교사, 방송요원, 군인, 영화평론가, 장기입원한자, 특파원, 작가 등으로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관념이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파리에서 浮浪者(부랑자)의 생활을 하면서 貧民(빈민)들의 고통을 체험적으로 관찰하였다. 그가 발견한 것은 빈민들의 세계에도 精巧(정교)하고 엄격한 계급이 제도화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호텔종사원의 경우 위로는 호텔 총지배인으로부터 최하층의 화장실당번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업원이 계급화 되어 있었다. 요리파트에는 요리장, 요리사 인사관리자, 요리사의 계급이 있고 접대부분에는 급사장(headwaiter), 웨이터, 견습웨이터의 계급이 있었으며 객실정리담당과 화장실담당도 계급화 되어 있었다. 심지어 런던의 거지들 상호간에도 평등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계급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오웰은 체험을 통해서 인식하게 되었다. 계급은 인간의 생존조건이며 계급이 없으면 인간사회는 유지될 수가 없고 사회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환상이며 이러한 환상에 사로잡히는 민중은 혁명가나 정치인들의 권력획득이나 유지의 도구로 악용 당하기 마련이다.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

오웰은 또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좌익의 편에서 우익 파시스트와 싸웠다. 그는 국제노동당 分遣隊(분견대)원으로서 스페인 동북부 Aragon(아라곤)전선에서 싸우다가 목에 관통상을 당하는 重傷(중상)을 입었다.

관념적이기보다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인간으로 살아온 오웰에게는 부상으로 인해 實戰(실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커다란 타격이 되었다. 그는 스페인 공산당의 대숙청을 피해 프랑스군 전선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는 공산주의자나 파시스트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무수한 시체를 보고 “역사는 친구와 친족이 無意味(무의미)한 內戰(내전)에서 파멸되고 투옥되고 잔혹하게 살해되는 정치적 분노의 이야기에 불과”하며 특정 이념으로 무장한 인간이 그 이념을 전체주의적으로 강행할 때 무참한 殺戮(살육)을 당연시하는 可恐(가공)할 참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오웰은 사회주의자였지만 사회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사회주의가 전체주의로 타락할 때는 가차없이 비판하게 되었다.

위선적인 유럽의 지식인과 좌익작가들

뿐만 아니라 오웰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정권이나 독재자를 용인하거나 이들에 대해서 비판을 유보하는 西歐(서구)의 지식인이나 좌익작가들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자유와 인권이 완전히 보장된 나라에서 성장하여 독재의 慘狀(참상)을 경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국의 대다수 지식인과 좌익작가들은 肅淸(숙청)과 비밀경찰의 공포를 인식하거나 體感(체감)하지 못하고 단지 소련이 파시스트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소련의 實狀(실상)을 바로 보기를 거부하였다.

*오웰의 개탄

오웰은 ‘동물농장’ 序文(서문)에서 소련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영국의 지식인 및 당시(1930년대와 1940년대)의 사회분위기를 개탄하고 있다:

<현재 영국의 정통 주류사회는 소련을 비판 없이 찬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있고 이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소련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소련정부가 掩蔽(엄폐)하기를 원하는 어떤 사실의 폭로도 출판되는 일이 거의 없다. 소련에 아첨하는 이러한 전국적인 음모에 대해서 기이하게도 지식인들이 관용과 침묵으로 대하고 있다.

소련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이 자유롭기 때문에 더욱더 기이하다. 스탈린을 공격하는 글은 거의 누구도 발표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Churchill(처칠)에 대해서는 신문이든 잡지든 책이든 어디에서나 마음 놓고 공격하는 것이다. (중략) 소련의 위신만 다치지 않는 한 언론의 자유는 잘 유지된다.

1941년 이후 소련의 선전을 그대로 삼키고 되풀이하는 대부분의 영국 지식인들의 비굴함은 그들의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보아 놀라울 것도 못된다.
모든 이슈에 있어서 소련의 관점은 아무런 검증도 없이 수용되고 역사적 사실이나 지적인 품위도 없이 그대로 발표된다. (중략) 영국의 대부분의 지식인은 소련에 대해서 민족적인 충성을 바치고 스탈린의 지혜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은 일종의 不敬(불경)이라고 가슴속 깊이 느끼고 있다.

소련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은 각기 다른 기준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일생동안 사형제도폐지 운동을 한 사람들이 1936년에서 1938년 사이에 일어난 소련의 대숙청은 찬양한다. 그리고 인도의 大饑饉(대기근)은 당연히 보도해야 되지만 소련의 우크라이나의 대기근은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戰前(전전)에도 사실이지만 지금의 지적 분위기도 조금도 나아진 바 없다. (중략) “아무리 인기가 없고 아무리 어리석은 의견도 발표할 자격이 있는가?” 라고 물으면 영국의 거의 모든 지식인이 “Yes(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을 공격하는 말은?” 라고 물으면 대답은 “No" 일 것이다.>

자유가 완전히 보장된 나라에서 성장한 영국의 작가들 특히 좌익 작가들은 전체주의국가의 가공할 독재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소련정권이 恣行(자행)한 대학살을 묵인하게 된 것이다. 전체주의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영국 좌익작가들에게는 소련의 恐怖(공포:horrors)는 觀念(관념)이지 實在(실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廣野(광야)의 외로운 先知者(선지자)

우리가 오웰을 높이 평가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사회주의국가 소련을 용인하고 찬양하는 시대의 主流(주류)에 沒入(몰입)되지 않고 소련의 독재와 蠻行(만행)을 바로 인식하고 비판할 수 있는 叡智(예지)와 勇氣(용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스페인에서의 경험은 이념의 이름으로 인간이 자행하는 악마적 폭력에 대한 오웰의 警覺心(경각심)을 심화시켰을 것이다. 그는 전체주의적 이념이 초래할 미래의 지옥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는 先知者(선지자)였다.

그러나 그는 廣野(광야)의 외로운 선지자였다. 그가 진리를 아무리 외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1930년대 및 40년대 초의 영국 및 서구는 오웰의 경고가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荒蕪地(황무지)같았다. 20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며 비평가인 T.S. Eliot(엘리엇)조차도 스탈린의 잔혹한 독재에 침묵하였으며 오웰을 외면하였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스탈린의 대학살을 외면하는 것은 물론 소련의 공산독재를 庇護(비호)하고 찬양까지 하게 되는 현상에서 인간 이성이나 인간 양심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웰은 노동자계급은 인류가 생존의 과정에서 당하는 苦痛(고통: suffering)의 化身(화신)이며 노동자의 해방에 인류의 구원이 있다고 간주하였다. 그는 지식인은 노동자의 고통을 공유함으로써 자신을 구원 할 수 있으며 노동자를 위한 지식인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나는 압제받는 사람들 속으로 내려가서, 압제자들과 싸우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기를 원하였고(중략)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인 부랑자, 거지, 범죄자들, 매춘부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직접 보았고 일시적으로 나도 그들의 일부라고 느꼈었다.

내가 그들 중의 하나가 되고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나는 사회의 최하층 바닥에 닿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그 때도 비이성적이라고 의식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함으로써-나의 죄의 일부를 떨쳐 버릴 수 있다-라고 느꼈었다.

그리고 나는 더러운 빈민굴속에서 그리고 무섭도록 지겨운 부랑자들의 하층세계에서 해방감과 모험심을 느꼈으며 지금 되돌아보면 그런 느낌은 부조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생기발랄한 느낌이었다.” 라고 고백하였듯이 하층계급의 사람들에 대해서 병적일 만큼 깊은 동정과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배신

오웰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로서 유럽 지식인들의 동경의 대상이며 압제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서 세운 나라로 자부하는 소련이 사회주의이념의 실천과정에서 전체주의국가로 변모함으로써 인류의 소망을 배신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가난과 억압과 착취가 없으며 지배와 피지배가 없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약속으로 권력을 잡은 소련공산주의자들은 인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변신하였다. 새로운 지배계급은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선전선동을 통한 대중조작과 대숙청이나 인민재판 같은 공포정치를 恣行(자행)하여 인민을 ‘자유의지와 생각이 없는 순한 대중’으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소련은 소수의 관리자와 비인간화된 다수의 노예들이 한 명의 카리스마적 독재자를 우상숭배하도록 세뇌되고 강요당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폭력이 일상화된 집단수용소 같은 나라가 되었다. 이념이 권력의 도구가 되고 독재자가 그러한 권력을 남용하여 인민을 공포로 지배하게 되는 나라는 마왕이 다스리는 地獄(지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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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 약력 : 朴承用
1941년 일본 히로시마 출생.
부산교육대 졸업. 호주 시드니大 대학원 수학. 부산대 문학박사(영어영문학).
초ㆍ중ㆍ고교 교사. 장학사 역임. 2003년 부산중학교장 퇴임.

George Orwell
Why I Write
[d]

From a very early age, perhaps the age of five or six, I knew that when I grew up I should be a writer. Between the ages of about seventeen and twenty-four I tried to abandon this idea, but I did so with the consciousness that I was outraging my true nature and that sooner or later I should have to settle down and write books.

I was the middle child of three, but there was a gap of five years on either side, and I barely saw my father before I was eight. For this and other reasons I was somewhat lonely, and I soon developed disagreeable mannerisms which made me unpopular throughout my schooldays. I had the lonely child's habit of making up stories and holding conversations with imaginary persons, and I think from the very start my literary ambitions were mixed up with the feeling of being isolated and undervalued. I knew that I had a facility with words and a power of facing unpleasant facts, and I felt that this created a sort of private world in which I could get my own back for my failure in everyday life. Nevertheless the volume of serious — i.e. seriously intended — writing which I produced all through my childhood and boyhood would not amount to half a dozen pages. I wrote my first poem at the age of four or five, my mother taking it down to dictation. I cannot remember anything about it except that it was about a tiger and the tiger had ‘chair-like teeth’ — a good enough phrase, but I fancy the poem was a plagiarism of Blake's ‘Tiger, Tiger’. At eleven, when the war or 1914-18 broke out, I wrote a patriotic poem which was printed in the local newspaper, as was another, two years later, on the death of Kitchener. From time to time, when I was a bit older, I wrote bad and usually unfinished ‘nature poems’ in the Georgian style. I also attempted a short story which was a ghastly failure. That was the total of the would-be serious work that I actually set down on paper during all those years.

However, throughout this time I did in a sense engage in literary activities. To begin with there was the made-to-order stuff which I produced quickly, easily and without much pleasure to myself. Apart from school work, I wrote vers d'occasion, semi-comic poems which I could turn out at what now seems to me astonishing speed — at fourteen I wrote a whole rhyming play, in imitation of Aristophanes, in about a week — and helped to edit a school magazines, both printed and in manuscript. These magazines were the most pitiful burlesque stuff that you could imagine, and I took far less trouble with them than I now would with the cheapest journalism. But side by side with all this, for fifteen years or more, I was carrying out a literary exercise of a quite different kind: this was the making up of a continuous ‘story’ about myself, a sort of diary existing only in the mind. I believe this is a common habit of children and adolescents. As a very small child I used to imagine that I was, say, Robin Hood, and picture myself as the hero of thrilling adventures, but quite soon my ‘story’ ceased to be narcissistic in a crude way and became more and more a mere description of what I was doing and the things I saw. For minutes at a time this kind of thing would be running through my head: ‘He pushed the door open and entered the room. A yellow beam of sunlight, filtering through the muslin curtains, slanted on to the table, where a match-box, half-open, lay beside the inkpot. With his right hand in his pocket he moved across to the window. Down in the street a tortoiseshell cat was chasing a dead leaf’, etc. etc. This habit continued until I was about twenty-five, right through my non-literary years. Although I had to search, and did search, for the right words, I seemed to be making this descriptive effort almost against my will, under a kind of compulsion from outside. The ‘story’ must, I suppose, have reflected the styles of the various writers I admired at different ages, but so far as I remember it always had the same meticulous descriptive quality.

When I was about sixteen I suddenly discovered the joy of mere words, i.e. the sounds and associations of words. The lines from Paradise Lost —

So hee with difficulty and labour hard
Moved on: with difficulty and labour hee.


which do not now seem to me so very wonderful, sent shivers down my backbone and the spelling ‘hee’ for ‘he’ was an added pleasure. As for the need to describe things, I knew all about it already. So it is clear what kind of books I wanted to write, in so far as I could be said to want to write books at that time. I wanted to write enormous naturalistic novels with unhappy endings, full of detailed descriptions and arresting similes, and also full of purple passages in which words were used partly for the sake of their own sound. And in fact my first completed novel, Burmese Days, which I wrote when I was thirty but projected much earlier, is rather that kind of book.

I give all this background information because I do not think one can assess a writer's motives without knowing something of his early development. His subject matter will be determined by the age he lives in — at least this is true in tumultuous, revolutionary ages like our own — but before he ever begins to write he will have acquired an emotional attitude from which he will never completely escape. It is his job, no doubt, to discipline his temperament and avoid getting stuck at some immature stage, in some perverse mood but if he escapes from his early influences altogether, he will have killed his impulse to write. Putting aside the need to earn a living, I think there are four great motives for writing, at any rate for writing prose. They exist in different degrees in every writer, and in any one writer the proportions will vary from time to time, according to the atmosphere in which he is living. They are:

(i) Sheer egoism. Desire to seem clever, to be talked about, to be remembered after death, to get your own back on the grown-ups who snubbed you in childhood, etc., etc. It is humbug to pretend this is not a motive, and a strong one. Writers share this characteristic with scientists, artists, politicians, lawyers, soldiers, successful businessmen — in short, with the whole top crust of humanity. The great mass of human beings are not acutely selfish. After the age of about thirty they almost abandon the sense of being individuals at all — and live chiefly for others, or are simply smothered under drudgery. But there is also the minority of gifted, willful people who are determined to live their own lives to the end, and writers belong in this class. Serious writers, I should say, are on the whole more vain and self-centered than journalists, though less interested in money.

(ii) Aesthetic enthusiasm. Perception of beauty in the external world, or, on the other hand, in words and their right arrangement. Pleasure in the impact of one sound on another, in the firmness of good prose or the rhythm of a good story. Desire to share an experience which one feels is valuable and ought not to be missed. The aesthetic motive is very feeble in a lot of writers, but even a pamphleteer or writer of textbooks will have pet words and phrases which appeal to him for non-utilitarian reasons or he may feel strongly about typography, width of margins, etc. Above the level of a railway guide, no book is quite free from aesthetic considerations.

(iii) Historical impulse. Desire to see things as they are, to find out true facts and store them up for the use of posterity.

(iv) Political purpose. — Using the word ‘political’ in the widest possible sense. Desire to push the world in a certain direction, to alter other peoples’ idea of the kind of society that they should strive after. Once again, no book is genuinely free from political bias. The opinion that art should have nothing to do with politics is itself a political attitude.

It can be seen how these various impulses must war against one another, and how they must fluctuate from person to person and from time to time. By nature — taking your ‘nature’ to be the state you have attained when you are first adult — I am a person in whom the first three motives would outweigh the fourth. In a peaceful age I might have written ornate or merely descriptive books, and might have remained almost unaware of my political loyalties. As it is I have been forced into becoming a sort of pamphleteer. First I spent five years in an unsuitable profession (the Indian Imperial Police, in Burma), and then I underwent poverty and the sense of failure. This increased my natural hatred of authority and made me for the first time fully aware of the existence of the working classes, and the job in Burma had given me some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imperialism: but these experiences were not enough to give me an accurate political orientation. Then came Hitler, the Spanish Civil War, etc. By the end of 1935 I had still failed to reach a firm decision. I remember a little poem that I wrote at that date, expressing my dilemma:

A happy vicar I might have been
Two hundred years ago
To preach upon eternal doom
And watch my walnuts grow


But born, alas, in an evil time,
I missed that pleasant haven,
For the hair has grown on my upper lip
And the clergy are all clean-shaven.


And later still the times were good,
We were so easy to please,
We rocked our troubled thoughts to sleep
On the bosoms of the trees.


All ignorant we dared to own
The joys we now dissemble
The greenfinch on the apple bough
Could make my enemies tremble.


But girl's bellies and apricots,
Roach in a shaded stream,
Horses, ducks in flight at dawn,
All these are a dream.


It is forbidden to dream again
We maim our joys or hide them:
Horses are made of chromium steel
And little fat men shall ride them.


I am the worm who never turned,
The eunuch without a harem
Between the priest and the commissar
I walk like Eugene Aram


And the commissar is telling my fortune
While the radio plays,
But the priest has promised an Austin Seven,
For Duggie always pays.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
And woke to find it true
I wasn't born for an age like this
Was Smith? Was Jones? Were you?


The Spanish war and other events in 1936-37 turned the scale and thereafter I knew where I stood. Every line of serious work that I have written since 1936 has been written, directly or indirectly, against totalitarianism and for democratic socialism, as I understand it. It seems to me nonsense, in a period like our own, to think that one can avoid writing of such subjects. Everyone writes of them in one guise or another. It is simply a question of which side one takes and what approach one follows. And the more one is conscious of one's political bias, the more chance one has of acting politically without sacrificing one's aesthetic and intellectual integrity.

What I have most wanted to do throughout the past ten years is to make political writing into an art. My starting point is always a feeling of partisanship, a sense of injustice. When I sit down to write a book, I do not say to myself, ‘I am going to produce a work of art’. I write it because there is some lie that I want to expose, some fact to which I want to draw attention, and my initial concern is to get a hearing. But I could not do the work of writing a book, or even a long magazine article, if it were not also an aesthetic experience. Anyone who cares to examine my work will see that even when it is downright propaganda it contains much that a full-time politician would consider irrelevant. I am not able, and do not want, completely to abandon the world view that I acquired in childhood. So long as I remain alive and well I shall continue to feel strongly about prose style, to love the surface of the earth, and to take a pleasure in solid objects and scraps of useless information. It is no use trying to suppress that side of myself. The job is to reconcile my ingrained likes and dislikes with the essentially public, non-individual activities that this age forces on all of us.

It is not easy. It raises problems of construction and of language, and it raises in a new way the problem of truthfulness. Let me give just one example of the cruder kind of difficulty that arises. My book about the Spanish civil war, Homage to Catalonia, is of course a frankly political book, but in the main it is written with a certain detachment and regard for form. I did try very hard in it to tell the whole truth without violating my literary instincts. But among other things it contains a long chapter, full of newspaper quotations and the like, defending the Trotskyists who were accused of plotting with Franco. Clearly such a chapter, which after a year or two would lose its interest for any ordinary reader, must ruin the book. A critic whom I respect read me a lecture about it. ‘Why did you put in all that stuff?’ he said. ‘You've turned what might have been a good book into journalism.’ What he said was true, but I could not have done otherwise. I happened to know, what very few people in England had been allowed to know, that innocent men were being falsely accused. If I had not been angry about that I should never have written the book.

In one form or another this problem comes up again. The problem of language is subtler and would take too long to discuss. I will only say that of late years I have tried to write less picturesquely and more exactly. In any case I find that by the time you have perfected any style of writing, you have always outgrown it. Animal Farm was the first book in which I tried, with full consciousness of what I was doing, to fuse political purpose and artistic purpose into one whole. I have not written a novel for seven years, but I hope to write another fairly soon. It is bound to be a failure, every book is a failure, but I do know with some clarity what kind of book I want to write.

Looking back through the last page or two, I see that I have made it appear as though my motives in writing were wholly public-spirited. I don't want to leave that as the final impression. All writers are vain, selfish, and lazy, and at the very bottom of their motives there lies a mystery. Writing a book is a horrible, exhausting struggle, like a long bout of some painful illness. One would never undertake such a thing if one were not driven on by some demon whom one can neither resist nor understand. For all one knows that demon is simply the same instinct that makes a baby squall for attention. And yet it is also true that one can write nothing readable unless one constantly struggles to efface one's own personality. Good prose is like a windowpane. I cannot say with certainty which of my motives are the strongest, but I know which of them deserve to be followed. And looking back through my work, I see that it is invariably where I lacked a political purpose that I wrote lifeless books and was betrayed into purple passages, sentences without meaning, decorative adjectives and humbug generally.

1946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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