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晩(이승만), 朴正熙(박정희), 全斗煥(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통점은? 한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功績(공적)이 가장 뚜렷하고, 국민들이 직접 선거로 뽑지 않은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李承晩은 1948년 7월, 제헌국회에서 국회의원들에 의해 건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2년 재임. 朴正熙는 1961년 5월 군사혁명을 일으켜 지도자가 되었다. 18년 집권. 全斗煥은 1980년 5월 무력으로 實權(실권)을 잡아 8년간 권좌에 있었다.
李承晩은 미국의 조지 워싱턴大에서 학사, 하버드大에서 석사, 프린스턴大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고의 엘리트로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친 애국자였다. 73세의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고, 金日成(김일성)의 6 · 25 奇襲南侵(기습남침)을 맞아 성공적으로 국가를 지켜냈다. 농지개혁을 완성했고, 전쟁 중에도 민주주의식 선거와 교육을 중단하지 않았다. 언론의 자유도 상당히 보장했다.
朴正熙도 만주, 일본, 한국의 3개 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사엘리트로서, 경제개발에 매진해 低개발국가였던 한국을 세계 10위권 富國(부국)의 班列(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全斗煥은 해방이후 처음으로 物價(물가)를 한자리 수자로 안정시켰다. 88올림픽을 유치했고, 6 · 29선언을 주도했으며, 單任(단임)을 실천했다.
내각책임제 하의 尹潽善(윤보선), 유신체제 연장선상의 崔圭夏(최규하) 전 대통령은 논외로 하고, 국민들이 직접 뽑은 盧泰愚(노태우), 金泳三(김영삼), 金大中(김대중), 盧武鉉(노무현) 전 대통령과 李明博(이명박) 현 대통령의 功過(공과)는 아직 평가하기 이른 감이 있지만, 성공적인 지도자라고 보기엔 異論(이론)이 많다. 그나마 全斗煥의 지원을 받아 지도자가 된 盧泰愚 전 대통령은 「秘資金(비자금)」이라는 原罪(원죄) 때문에 저평가되고 있으나, 5년이라는 짧은 재임기간 중 볼만한 업적이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도자를 국민들이 직접 뽑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는 反證(반증) 아닐까. 『선거로 뽑히는 지도자는 국민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국민 수준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인물이 지도자로 선출될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물론 민주주의가 高度(고도)로 발달돼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국민들이 확고한 민주의식을 갖춘 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압축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 개발도상국, 초기 선진국의 경우, 西歐式(서구식) 선거제도만이 만능(萬能)이라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中國의 지도자 선발방식은 좋은 참고대상이다. 가장 뛰어난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그 지도자가 가장 뛰어난 후배 가운데 후계를 고르는 방식이다. 일을 시켜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꾼다. 鄧小平(등소평)이 胡曜邦(호요방), 趙紫陽(조자양)을 후계로 내세웠다가 실각시키고 최종 江澤民(강택민)을 후계로 내세운 것이 그 예다. 鄧은 生前(생전)에 江의 후임으로 胡錦燾(호금도) 현 주석까지 지명해 놓았다. 胡다음 지도자로 누가 경합중인지 알려져 있고,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는 시기도 정해져 있다.
中國이 年 10% 이상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발전 잠재력이 큰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이라는 특징과 함께 장래가 예측가능한 정치의 안정에 힘입은 바 크다. 만일 13억 인구를 가진 中國이 직접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다면 어마어마한 경제적 비용과 함께 정치적 부담도 엄청날 것이다. 「天下大亂(천하대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中國의 예측가능한 리더십, 長點 많다
- 趙南俊 전 월간조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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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8-11, 15: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