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駐韓美軍 계속 주둔 환영"이란 거짓말

김대중이, 金正日에게 속은 것인가, 국민을 속인 것인가, 두 사람이 짠 것인가?
*아래 글은 2001년 11월호 月刊朝鮮 '편집장의 편지'의 일부이다.





2001냔 8월2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 위원회에서 당시 林東源 통일부 장관은 洪思德 의원(한나라당)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洪의원은 지난해 평양 頂上회담에서 金正日이 주한미군이 통일 이후에도 계 속해서 주둔해도 좋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경위를 물었습니다. 林 당시 장 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국회속기록에서 인용).

『(金正日은 주한미군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한 뒤)그 러면서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적대관계에 있는 미군이 있으라는 것 은 물론 아니지요. 미국과 북한 간에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주한미군이 북 한에 대한 적군으로서가 아니라 남과 북 사이에서, 또는 주변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주고…」, 그러니까 밸런싱 롤을 말하는 것 같아요.

또 안정의 역할, 스테이버라이징 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 는 군대로 남아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중략). 그리고 金正日은 역할변 경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변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군인데 무조건 남아 있으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林 당시 장관의 말을 요약하면, 金正日은 주한미군이 북한을 敵으로 보지 않고 남북간에 중립을 취하는 일종의 평화유지군으로 성격을 바꾼다면 계속 해서 주둔해도 된다고 金大中 대통령에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증언은 金大中 대통령의 정직성과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金大中 대통령은 金正日의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 마디로 무시해버렸어 야 했습니다. 주한미군의 유일무이한 주둔 목적은 북한의 再南侵을 저지하 겠다는 것인데, 남침의 원흉이 자신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군 이 주둔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金大中 대통령은 서울로 귀환한 뒤 『6·15 남북 頂上회담에서 얻은 뜻깊고 의미 있는 결과 중 하나는 金正日 위원장과 주한미군이 통일 후에도 필요 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 것이다』 『(金正日이 주한미군은 필요하다고 말 했다는 점을 강조한 뒤)이 말을 듣고 나는 크게 안도했다. 이는 이번 頂上 회담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국민들은 현재 상태의 주한미군이 지금은 물론이고 통일 이후 에도 그대로 주둔해야 한다고 金正日이 말한 것으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林東源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金大中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허위보고를 한 것입 니다. 많은 사람들은 金正日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믿었는데 말입니다. 林 장관의 말을 들으니 우리 대통령이 핵심사항을 뺀 채 金正日의 말을 전달함 으로써 가장 중요한 안보 조건에 대해 국민들로 하여금 일대 오해를 야기시 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李東馥의 관련 글 130p 참조) 강도가 자신이 털려고 점찍어둔 집의 주인에게 『너희 경비원이 무장을 해 제하고 나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는 경비원을 두어도 좋다』 고 이야기했는데 이 주인은 『그분이 우리 경비원은 있어도 좋다고 했으니 이제 안심이다』라고 가족한테 이야기한 셈입니다.

가장 큰 거짓말은 없는 것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造作은 들 통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능적인 거짓말은 핵심을 빼버리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나는 옥스포드 대학을 나왔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 람이 그 대학에 물어 보니 옥스포드를 다닌 적도 없다고 합니다. 『왜 당신 은 거짓말을 했는가』란 추궁에 그 어떤 사람은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언제 옥스포드를 졸업했다고 했나. 나왔다고 했지. 앞문으로 들어가 서 구경한 뒤 뒷문으로 나왔다는 말이야. 내가 뭐 거짓말을 했나』 이 사람은 「앞문으로 들어가서 뒷문으로」란 말을 빼먹고 「나왔다」는 말 만 하여 사람을 속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속이지 않았다고 억지를 부 릴 수 있는 알리바이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林東源씨의 증언대로라면 金大中 대통령은 『「남북간에 중립화된 非적대적 」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까지 주둔해도 괜찮다』는 취지의 金正日 발언 중 「남북간에 중립화된 非적대적」이란 대목을 빼버림으로써 국민들에게 정 반대의 의미, 金正日이 갑자기 평화의 사도나 된 것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 셈입니다.

金正日의 그런 「헛소리」를 金大中 대통령은 「가장 큰 성과」라고 했습니 다. 金大中 대통령은 金正日의 이 헛소리에 동의한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 즉, 두 사람이 주한미군을 북한에 적대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남북 간 에 중립화시키는 성격 변화에 합의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겁니다 .

미국은 그렇게 중립화된, 무력화된 미군의 위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 성격변화를 한국 정부가 추진하면 미군을 뺄 것입니다. 이것은 북한 정권을 고무하여 對南 군사 도발을 유도할 것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입 니다.

믿기지 않는 이런 일은 金大中 - 金正日의 공모 또는 內通이란 의심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심을 면하려면 金大中 대통령은 당장 해명해야 합 니다. 지금은 권력의 갑옷을 믿고서 이런 의혹을 피해갈 수 있겠지만 갑옷 이 얇아지고 벗게 될 때 이 중대 의혹은 金대통령을 옥죄게 될 것이 분명합 니다.

왜 金正日의 말을 정직하게, 정확하게 국민들 앞에서 보고하지 않았나, 왜 金正日의 妄言을 무시하지 않고 수용한 것인가. 金正日에게 속은 것인가, 국민을 속인 것인가, 두 사람이 짠 것인가? 이런 시중의 의문에 대한 성실 한 답변은 대통령의 몫입니다.

지난 10월1일 국군의 날에 金大中 대통령이 한 연설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 습니다.

<이러한 우리 국군의 자세는 1999년 연평해전에서도 분명히 입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건국 이래 우리는 북한의 무력 도발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 러나 오직 국민의 정부 아래서만 무력으로써 북의 군사적 도발을 성공적으 로 좌절시켰습니다> 그렇다면 6·25남침은 통일시도이고 이를 응징한 국군과 유엔군의 작전은 성공적인 무력 사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1968년 1·21 청와대 기 습사건 및 그해 11월의 삼척·울진 공비 침투사건에 대한 朴正熙 정부의 섬 멸작전은 무엇이었는지, 1996년의 북한 잠수함 강릉 침투사건에 대한 金泳三 정부의 대응은 가치가 없는 것이었는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뭅니다.

연평해전이 혁혁한 성공이었음을 자랑하는 것은 좋지만 前 정권들을 몽땅 「武力도발을 당하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無力한 정부」로 卑下(비하 )할 필요까지 있었습니까. 舊官을 떡으로 만들어야 자신이 우월하게 보인다 고 생각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舊官이 되는 법입니다.

上記 연설에서 金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세 번의 통일 시도가 있었습니다. 신라의 통일과 고려의 통일, 이 두 번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의 6·25 사변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번 모두가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였습 니다. 그러나 이제 네 번째의 통일시도는 결코 무력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6·25 남침을 통일 시도라고 보는 金大中 대통령 의 역사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통일은 민족이나 조국처럼 좋은 가치를 담 고 있는 말입니다. 이번 호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원로 역사학자 李基白 선생은 『통일은 민족의 이상, 즉 자유와 평등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통일이란 민족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지칭한다 는 뜻입니다. 6·25를 북한에선 조국통일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남침 전쟁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북한군이 부산까지 석권하여 한 반도를 통일했다고 합시다.

그 통일국가 안에서 과연 민족의 단결과 통합과 共榮이 이뤄졌겠습니까. 아 니면 숙청, 학살, 분열, 대탈출이 이뤄졌겠습니까. 우리는 민족에게 재앙이 된 金日成의 대한민국 점령작전에 통일 시도란 월계관을 씌워 줄 수는 없 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의 국군의 날 연설 하나만 놓고 본다면 단순한 실수로 보아넘 길 수도 있습니다.

최근 일련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金大中 대통령의 언급과 이 연설을 연결시 켜서 전체상을 바라보면 아주 심각한 구도가 드러납니다. 金대통령은 작년 과 올해 6·25 남침 기념식 연설에서 한 번도 金日成이나 북한 정권을 거명 하여 전쟁 책임을 짚고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두 차례 다 金대통령은 전쟁의 책임을 전적으로 스탈린의 야망에 돌렸습니 다. 그는 또 지난 8월23일 한국을 방문한 베트남 국가원수에게 『불행한 전 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으로 사과했습니다.

우리는 월남파병을 통해서 자유를 수호하는 편에 섰고, 그 참전으로 국가발 전에 필요한 돈을 벌고 중동건설 현장에 진출할 人材를 길렀는데, 즉 국민 들이 자랑해온 참전인데 金大中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대한 민국을 대표하여 공산주의자에게 사과를 한 것입니다.

10월10일 對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의 安澤秀 의원은 金대통령이 『6·25 전 쟁은 세 번째 통일시도』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 자신이 친북적인 이념이나 역사인식을 갖고 있거나, 비서진이 써준 연설원고를 이성적으로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없는 경우일 것이다. 前者라 면 즉각 대통령직을 자진사퇴해야 마땅하고, 후자라도 앞으로 국정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대통령직에서 당연히 물러나야 할 것이다> 이 발언에 대해 한 여당 의원은 『당신은 빨갱이 아니면 바보이니 물러나라 는 뜻』이라고 흥분했습니다.

요사이 예비역 장교단이나 야당의원들이 공개적으로 국군통수권자를 향해서 『사상이 의심스럽다』 『主敵 편이 아닌가』란 취지의 공박을 한다는 것 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初有의 사태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불안은 정치권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金大中 대통령 에 대한 이런 의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냉전시대 미국에서 케네디 대통령 을 향해서 언론과 재향군인회와 야당이 『혹시 귀하는 소련과 내통하고 있 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2000만 주민들이 몰려 사는 수도권이 적의 장거리 포 사정권에 들어 사실상 인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이 「우리의 최고사령관은 어느 편 이냐」고 의심하고 있다면 이는 원초적 安保 불안입니다.

金大中 대통령의 이념성향은 행정부, 법원, 입법부 등 공공기관 전체에 크 나큰 영향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이 헌법과 국가에 대한 충성의무를 기준으로 하여 대통령의 부당한 국정운영에 견제를 하거나 반 대하는 현상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대통령의 잘못된 역사관과 국가관과 對北觀을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많은 고위 공직자들은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고민 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직 권력이 그들의 잘못을 덮어 주리라고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해외 공관의 외무부 공무원은 대한민국 국민인 납북어부가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구원을 요청해오는데도 『당신 세금 낸 적 있어요. 왜 괴롭혀요? 』라고 門前축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공무원은 직무유기로 감옥에 보내야 마땅한데 문책당했다는 소식도 없습니다.

▲국정원은 「金正日 위원장께서 한국을 방문하시면…」이란 문구가 들어간 남북합의문을 만들었습니다. 국정원은 자기 나라 대통령한테도 쓰지 않는 극존칭을 민족반역자요 테러지령자한테 붙여 주고도 당당했습니다.

▲작년에 북한으로 귀환한 非전향 공산주의자들 가운데는 일본인을 납치한 辛光洙도 끼여 있었습니다. 문명국가에서 납치범을 돌려보내 주면서 납치 된 희생자의 生死 여부도 물어보지 않는 정부가 존재합니까.

▲아웅산 테러와 대한항공 테러를 지령해 놓고도 안기부의 조작이라고 몰아 붙였던 金正日과 손잡고 反테러 선언을 하겠다는 發想은 피살자의 아들이 반성 없는 殺父犯과 손잡고 『우리는 살인에 반대합니다』라고 선언하는 것 과 같습니다. 죄인은 응징과 참회로써 거듭 태어나는 것이지 선언으로써 버 르장머리가 고쳐집니까.

正義, 헌법, 애국심, 인륜에도 반하는 이런 작태의 시리즈를 列擧하라고 하 면 원고지 100장을 간단하게 메울 수 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 시절 대한민 국호는 크게 왼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다음 정권이 왼쪽 기울기에 제동을 걸 고 復元시킬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현재의 左傾이 조국號의 復元이 불가 능할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關鍵(관건)은 復元의 의지가 차기 정권 엘리트와 한국의 주류층에 있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그 復元 작업은 아마도 金大中 정권하에서 이뤄진 對北 접촉의 진실규명과 犯法 사실에 대한 조사, 범법자에 대한 처벌을 前提로 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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