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틀러는 '나의 투쟁'(Meinkamp)을 썼고, 김정일은 이 책을 젊은 시절부터 탐독해왔다.
2. "김정일과 닮은 인간이 있다면 아마도 히틀러가 담았을 것 같아요. 히틀러가 미술을 즐긴 것처럼 그 역시 미술이라든지 음악이라든지…그런 것들에는 감정이나 감각이 빠른 사람입니다."(황장엽, 김계철, 강명도, 고영환 중언)
3. 히틀러와 김정일은 취미와 생활이 거의 비슷하다. 가정환경을 살펴보면 히틀러나 김정일은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히틀러나 김정일의 아버지는 가정적이지 못했다. 히틀러 아버지는 알콜주정백이로 늘 만취되어 집에 들어와 어머니를 때리기가 일수였고, 김일성 역시 수령이 된 뒤로부터 본처인 김정숙보다 타 여자에 눈독을 들이자 대가 차고 전투적 빨치산 출신인 어머니와 말다툼이 심했다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 히틀러와 김정일의 어머니들은 남편으로부터 받지 못하는 사랑과 관심을 자식에 쏟게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자식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유착 심리가 형성이 된 것이다.
4. 히틀러나 김정일은 어머니와 유사한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삼았는데 그것이 바로 연상의 여인을 사모하게 된 것이다. 히틀러는 61세 과부인 카롤라 호프만(Carola Hofman)을 대리모를 삼았다. 히틀러는 Stasser의 무릎에 않아 머리를 그녀의 가슴에다 기대곤 했으며 그녀는 히틀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우리 강아지’라 라고 속삭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빅토리아 폰 다르크젠(Victoria von Dirksen) 부인, 괴벨스 부인을 비롯한 많은 연상의 여인들이 그의 어머니 역할을 해주었다.
김정일 역시 연상의 여인을 좋아했다. 총각 시절에 동거한 성혜림도 김정일보다 4~5년 연상의 여인이며, 그의 현재의 부인 김혜숙도 2년 연상이다. 또한 그가 영화를 보고 황홀감을 느껴 납치를 했던 최은희도 약 10여 년의 연상임을 볼 때, 김정일은 무의식중에 모성애를 갈구한 나머지, 현실에 있어서도 연상의 여인들을 성적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가 있다.
5. 히틀러는 일시적으로 영화배우나 무대배우들, 예쁜 여자들 주변에 싸여있기를 좋아했고, 총통관저에서 파티가 있을 때마다 영화사에 많은 여배우들을 보내도록 요구하곤 했다. 김정일 역시 영화 배우, 가수를 비롯한 기쁨조를 만들어 그의 성적만족 및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활용하였던 것이다.
6. 보통사람 남자들이 자기 아버지를 동일시하는 데, 히틀러의 필체를 심리학자 융(Jung)에게 보여주었더니 융은 즉각 전형적인 여성의 필체라고 했다. 그가 예술을 선택한 것도 기본적인 여성동일시이며, 4년 동안 군복무 기간 중에 상관들에게 지나친 복종을 한 것도, 총통이 된 뒤에도 극단적인 감수성, 연약함, 눈물 등은 여성적인 발현이라고 말한다.
김정일이 예술적 감각이 발달된 것도, 본능과 감각위주로 성격이 형성된 것도 모자유착 심리의 동일시 현상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희 희힌한 현상은 김정일의 필체가 김일성의 필체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자간 필체동일시는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7. 히틀러는 스트립쇼와 나체춤 등 도벽성 영화를 즐겨 관람했다고 한다. 그의 집 벽에는 아무 것도 가리지 않은 나체사진이 많이 걸려 있었고, 사진작가 호프만은 그를 위하여 만든 포르노 사진첩을 보면서 즐겼다고 한다.
김정일도 도색영화를 즐겨보며, 난잡한 놀음 등을 눈으로 쳐다보면서 감상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8. 히틀러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은 뒤 4년후 18세 때 유방암으로 죽었고, 김정일은 동생이 죽은 뒤 2년후 8세 때 해산하다가 과다출혈로 급사했다.
9. 히틀러는 어머니가 죽은 뒤 그는 묘지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10개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 행적을 알 수 없다. 김정일 역시 김일성이 죽은 뒤 3년 동안 국가최고지도자이면서 공개석상이나 언론에 나타내본 적이 없는 것이 은둔과 침묵이 특이한 유사점이다.
10. 히틀러의 아버지는 말다툼이 끝에 길가에 급사했다. 묘하게 김일성도 급사했다. 김일성이 그 전날까지 현지지도를 다닌 사실이 있어 건강에 대해서 이상이 없었는 데도 급사했다. 북한 당국은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미비>라고 처리를 했다지만 일설에 의하면 김일성과 김정일 결렬한 의견 충돌 끝에 김일성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사망을 했다는 것이다.
11. 독일사람들은 독일을 보통 ‘아버지의 나라’ 라고 말하는데 히틀러는 ‘나의 어머니 나라’ 라고 했다. 김정일에게도 모성애가 강력하게 나타나 어머니 김정숙을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로 격상을 시켜 놓은 것이다.
12. 히틀러는 자기가 정권을 장악한 날, 어머니 생일, 자신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했다.
김정일은 아버지 생일(4.15), 자신의 생일(21.6)을 대명절로 정하고 이틀간 휴식을 한다. 히틀러 보다 1일 더 휴무를 하는 것이다.
13. 히틀러는 무의식중에 어머니는 독일로 섭입(攝入)하고 술취한 아버지를 오스트리아로 투사하여 제일 먼저 합병을 시켜버렸다. 김정일은 어머니는 조선이 되고 곁가지 무리인 계모와 김평일은 남한과 미국으로 투사하여 증오의 대상으로 내뿜고 있다. 김정일은 후계자가 되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이 곁가지치기 작업이다.
14. 히틀러가 다섯 살 때 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의 출생으로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이 그에게서 동생에게로 옮겨갔다. 그는 동생에게 적의를 품게 되었고 제거하려는 환상까지도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 11살 때 동생 에드문트(Edmund)가 사망한 것이다.
김정일도 동생이 8세 때 연못에서 익사했다. 어린이에게 죽음이란 공포감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며, 어린 마음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른 애들 다 죽었는데 왜 나만 살아남아 특별한 편익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 어린이는 동생의 죽음에 대해 나는 어떤 ‘선택된 사람’, 신의 보호를 받고 자라고 있을 거라는 메시아 콤플렉스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다.
메시아 콤플렉스와 같은 종류의 믿음은 소아기에 흔히 나타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없어지거나 변형되는 것이 보통이나 히틀러의 경우에는 반대로 나이가 들면서 더욱 강렬히 나타났다. 히틀러는 20세부터 독특한 콧수염을 길렀고, 1차전이 끝난 직후에도 그리스도처럼 턱수염을 길렀다는 것은 메사아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예술학교에 떨어지고 빈에서 일자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빈들빈들 놀면서 신문이나 보는 것은 메시아 콤플렉스의 잠재기의 현상으로 철저한 신부나 승려의 사고를 그를 통치해왔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 역시 태어날 때부터 빨치산 막사에서 수호지의 양산박처럼 혁명적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인물로 동생의 죽음으로 인하여 무의식 중에 ‘나는 수령의 아들로 태어난 선택된 사람’, ‘백두산에 태어난 사람’,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기환상의 실현을 위해 불타는 야망으로 권력을 쟁취하게 되는 메시아적 콤플렉스가 그 내면에 잠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5.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종교의 부활이나 영생을 통하여 또, 자식을 통하여 계속 살고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히틀러에게는 이 두 가지 통로가 다 막혀있다. 따라서 히틀러는 최소한 천년동안 독일 국민 속에 살아야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경쟁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자리를 빼앗아 그 자리를 히틀러가 차지한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은 히틀러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강하다. 그는 천년이 아니라 인류역사사상 가장 강력한 메시아가 되기 위하여 주체사상 창시, 전설조작, 역사날조, 김정일 우상화, 평양시를 현대화, 단군릉 개축, 김일성 묘를 세계역사사상 가장 호화롭게 꾸민 것은 영생을 하기 위한 메시아적 콤플렉스에서 나온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16. 히틀러는 피학증세가 있어 애인으로부터 발로 차이고 네발로 기어다니면서 얻어터짐으로 성적흥분을 느꼈다고 한다. 히틀러는 여자에게 키스를 하거나 옆에 앉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메시아적 콤플렉스가 있어 "나는 신이다! 신은 성교를 할 수 없고, 자식을 낳을 수 없다! 성이 생각나면 매를 맞아야 한다. 더 강력히 매를 맞을 수록 신이 될 수 있다" 는 메사아적 콤플렉스에 의하여 매를 맞는 피확증 현상이 나온 것이다.
김정일은 도색영화를 50~60편 소장하고 수시로 관람한다. 최은희, 신상옥도 김정일이 도색영화나 도색비디오를 좋아한다고 했다. 무용수들을 발가벗겨 파티에 참석한 부부장급 이상의 간부에게 집단적으로 애무시킨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지켜보면서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상대를 학대하거나 잔혹한 행위를 함으로써 성적욕구를 충족시키는 새디즘과 같은 변태적 음란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7. 히틀러와 관계를 했던 르네밀러는 자살, 유니티 밋포드(Unity Mitford)는 자살, 에바 부라운은 두 번 자살 시도를 했다. 히틀러는 자기의 의붓누이의 안겔라의 딸 겔리와 아파트에서 단둘이 살았으나 겔리가 아파트에서 죽은 체로 발견되었다. 히틀러와 관계된 6명의 여성들은 대부분이 자살로 이어졌다. 여자관계가 적었던 남자치고 참으로 이상한 기록이다.
김정일과 관계된 여성은 대부분 이혼이나 비극으로 이어졌다. 성혜림은 남편과 강제 이혼시켰다. 러시아 대사 손성필 여동생을 건들어 딸 둘을 낳았으나 김정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인 홍연희는 김정일의 시중을 들다가 김정일이 지정해준 사람과 결혼했다. 재일 교포의 딸인 만수대예술단원 고정희는 김정일에 발탁되어 딸 하나를 낳았다. 인민 배우 우인희는 유부녀로 김정일과 관계를 유지하다가 부화방탕 이유로 김정일이 공개 총살하도록 했다. 김정일의 현재 김영숙(일명 김혜숙)과 같이 살고 있다.
18. 히틀러는 초등학교 때 여러 번 전학을 했고 김정일도 편?입학을 4번이나 했다.
19.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연대장 당번병이 되어 충성을 다했으나 동성연애자로 재판을 진급을 하지 못했다. 그는 법정에서 공산당을 고발한 것을 시작으로 최초로 정치에 발을 딛었고,향토 예비군 교육장교로 임명되어 대중 앞에서 연설을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잠재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하여 정치가로 등장했다. 32세 때는 나치당 최고지도자가 되었으며, 44세 때는 수상에 취임하였다.
김정일은 수상 아들로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현지사찰을 다녔으며, 고등학교 때는 해외시찰,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노동당 핵심 조직부지도원, 당선전부지도원, 32세 때 정치위정회원, 38세에 제2인자, 52세에 김일성 사후에 북한통치자가 되었다.
히틀러는 순전히 자기의 노력과 웅변으로 진출을 했고, 김정일은 부모의 후광에다 남다른 노력으로 정권을 거머쥔 것이 다르다.
20. 히틀러는 양가감정과 편집증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기르던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울음에 흠뻑 젖었던 그가 공개법정에서는 "공산당을 머리를 돌로 쳐죽여라!"고 전적으로 다른 두 가지 성격인 정상적이면서 잔인한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김정일 역시 성격과 인품은, 괴팍하다는 말도 있지만 효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21. 히틀러의 “내 피를 빨아먹는 것이 기생충이고 내가 위대해 질려면 이 기생충을 제거해야 한다”고 유태인에게 투사되었다. 김정일에게 기생충은 “반주체와 남한, 미국“을 향해 투사되고 있다.
22. 히틀러는 외모로 보통보다 작은 키로 별명은 ‘늑대’, ‘늑대선생’이다.
김정일은 165㎝의 키에 별명은 ‘독사’, ‘난쟁이 똥자루’라고 한다.
23. 히틀러는 20세부터 늘 독특한 콧수염을 길렀고, 1차대전 직후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턱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이는 메사아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일 역시 태어날 때부터 빨치산 막사에서 수호지의 양산박처럼 혁명을 꿈꾼 인물로 백두산 탄생설을 조작하는 것 역시 메시아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4. 히틀러는 대단히 대중 연설을 잘 한다. 신비한 웅변을 토해 낼 때에는 여자들은 실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히틀러의 눈에는 광채가 났고 그의 웅변을 들으면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강력한 전류가 충전되어 대중들은 광란의 상태가 된다. 그의 연설과 몸짓은 볼만한 것이었다고 하며 그의 연설을 들으면 비판력을 상실하고 신비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김정일은 말도 잘 하지만 대중연설을 하지 않는다. 그의 측근 라인을 통해 신비를 조작한다.
이 점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히틀러는 스스로 신비를 조작하고, 김정일은 숨어서 그 측근이 신비를 조작을 한다. 김정일이 히틀러보다 고단수 카리스마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5. 히틀러는 고기를 먹지 않고 알코올을 마시지 않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수도사처럼 자제한다.
특히, 히틀러는 질녀 겔리의 죽음 이후 진정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사랑하는 대상이 죽고 난 후에 강박적인 사람은 채식주의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김정일의 식생활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섭취하는 다식성이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에는 담배도 끊고 알콜도 절제하는 것을 봐서 그는 분명히 강박관념을 가진 채식주의자 임을 알 수 있다.
26. 히틀러는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지도자로 묘사된다. 나치 간행물들은 어린 꼬마들과 같이 있는 것으로 보여주는 사진들이 가득하다. 아이들에게 사탕, 아이스크림을 대접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중년의 노총각은 없었다고 자랑한다. 올가 공주가 히틀러를 방문했을 때 아이들의 문제가 나오자 히틀러는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한다.
김정일은 아이 보다 여성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그의 사진을 분석하면 여성 방향으로 눈동자가 쏠려 있음을 볼 수 있다.
27. 히틀러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 그가 총애하는 개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촤대의 영광스러운 일이였다고 한다. 히틀러에게 울프는 진정한 친구이며 동지이다. 자살하기 직전에 히틀러는 충견인 울프를 독살시켰다. 울프가 하늘나라 동지가 된 샘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김정일이 개를 좋아한다는 정보는 입수되지 않고 있다.
28. 히트로는 가족이 없거나 가족을 잃어버린 모든 독일인에게 위대한 위안자이며 남편, 형제, 아이들이라고 덧붙인다.
김정일 역시 가족이 없는 혁명유자녀의 대부노릇을 하며, 북한정권의 주요 부서에 배치시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친 투사의 가족은 김정일을 아버지라 부르고 김정이은 내자녀라고 부른다. 고아원 출신들이 단결이 잘되듯이 이들을 김정일이 보호하며 당과 국가보위부, 정치장교로 임명하여 충성을 다하도록 하는데 그 누가 그 아성을 허물 것인가!
29. 히틀러는 결코 왕관을 차지 않았으며, 화려한 제복도 입지 않고 성대한 파티도 하지 않았다. 그는 권좌에 오른 뒤에도 계속 낡은 트란치 코트를 입고, 소프트를 모자를 썼으며, 늘 단순한 돌격대원들의 제복을 입었다는 것이다.
김정일 역시 계급장을 달지 않고 인민복도 아니고 양복도 아닌 잠바착용이다. 구두는 뒷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머리는 배추머리를 한다. 그도 히틀러의 콧수염처럼 복장과 구두, 머리형으로 상징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30. 히틀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16~18시간 동안 일했다. 그는 지칠 줄 모르고 일하면서 사명이 완수하기까지는 어떠한 개인적인 쾌락도 용납하지 않았다.
귀순자 김명철의 증언에 의하여 김정일은 새벽까지 집무실에서 일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저녁 7~8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새벽 4~5시까지 마시다가 갑자기 생각나면 영화촬영소나 다른 일터를 기습 방문하다가 집에 가서 잠을 잔 후, 오후 4~5시에 출근한다고 한다.
31. 히틀러는 한번 결심한 일이라면 아무리 험한 일이라도 그는 확고한 결심으로 밀고 나간다, 어떤 종류의 난관과 장애에 직면해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김정일은 어머니 사후부터 그 고집을 꺾을 사람이 없었고 한다. 한번 결심하면 바로 추진하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굴종하지 않고, 미국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벼랑외교로 46억불을 얻어낸 사람이다.
32. 히틀러는 검소, 순결, 복종의 세 매듭을 가진 현대판 승려다. 급료를 받지 않고 다만 저서「나의 투쟁」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산다고 한다. 일생에 여자는 네 명의 대리모가 있었는데 이들로부터 히틀러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으며, 남은 돈은 구세군에게 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일은 외화벌이, 군부대 군수공장 운용, 금강산 관광사업 등으로 들어오는 돈을 모조리 독점하여 주민들에게 선물을 한다고 한다. 아마 인류역사상 가장 선물을 많이 한 사람이 김정일이 될 것이다.
33. 히틀러는 바그너와 독일가곡에 대한 강의를 했는데 이 강연에서 음악비평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김정일 역시 음악, 영화, 문학 등 전문가가 혀를 칠 정도로 조예가 깊으며, 기분이 좋으면 연주단 지휘봉을 잡고 지휘를 할 정도라고 한다. 만약 김정일이 대한민국에 와서 교향악단을 지휘한다면 대한민국 음악도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34. 히틀러는 모든 저술들에 대하여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늘 모든 독일 선전물들을 이끌었으며 따라야 할 방침들을 계획했으므로 신화적 성격을 개발한 책임자이다.
김정일은 일만 권 이상 책을 읽은 독서광으로 조직, 인사뿐만 아니라 언론 통제, 선전선동을 구사하고, 예술론을 저술하여 그의 방침대로 집행시켜 자신을 신격화시킨 인물이다.
35. 히틀러의 초상화도 그리스도의 후광처럼 둘러 쌓여 있다.
김정일 사진 역시 눈에 광채가 나도록 디자인하였다.
36. 히틀러는 신부나 목사가 필요 없이 신과 직접 소통한다.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김정일이 판단하면 그것이 바로 법이요 신의 명령이다. 북한은 헌법 위에 당이 있고 당위에 교시가 있다. 교시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오직 김정일 뿐이다.
37. 히틀러는 판단이 빠르고 일이 빨리 처리되도록 재촉하고, 모두들 자신과 비슷한 정도로 속도성을 가질 것을 기대한다.
김정일은 속도성을 매우 중요시한다.'천라마운동', ‘평양속도(68.8)’, 속도전(74.2)‘, ’충성의 속도(74.3)‘ 등의 구호를 보더라도 그는 속도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알 수 있다.
동작이 느리면 북한땅에서는 살아날 수 없다.
38. 히틀러는 식사를 할 때 식판을 가장 낮은 비서관에게 넘겨준 일도 있으며 주위 사람에게 농담도 던져 준다. 친절하고 관대하고 세밀한 면이 있다. 그는 어떤 종류의 장비의 성능, 중량, 수량, 속도, 등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귀신처럼 알고 있다.
김정일 역시 자기하고 이익이 되는 부분에는 무척 자상하다고 한다. 어머니처럼 생일선물까지 잊지 않고 챙겨주는 등 세심하고 자상한 배려를 한다고 한다.
39. 히틀러는 양심에 구애받지 말고 임무를 수행하도록 한다. 괴링은 나는 양심이 없다. 나의 양심의 히틀러다 할 정도였다.
김정일은 양심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달성만 강조한다.성과주의다.
40. 히틀러의 시간은 불규칙했다. 자정에서 아침 7시까지 잠자리에 들고, 아침 9시나 오후 2시에 일어나는 야행성이다. 한밤중에 비서관을 불러 임무를 시키기고 한다.
김정일 역시 저녁부터 일을 시작하여 오전에는 잠을 자는 야행성이다. 김정일은 남쪽 주요 인사를 만날 때 반드시 야밤 1-3시 경에 만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41. 히틀러는 조언자들에게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안았다. 그는 전문가들을 청 정도로 여길 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그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는다. 주체사상이나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그 앞에서 입을 벌리지 못한다고 한다.
42. 히틀러는 농담도 잘하며, 자기가 모두를 웃기는 동안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김정일도 농담도 잘 하지만 대화를 할 때에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혼자 지껄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말 잘하는 김대중도 김정일 앞에서 말을 아끼고 들어주어야만 했다.
43. 히틀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즐겨한다.
얼마나 빨리 옷을 입을 수 있는지 경쟁을 시킨 후 보면서 즐기는 것이다.
최은희 증언에 의하면 김정일은 오진우 생일날 고위 관료 40여명을 초청하여 축하파티를 하던 중 절정에 이르자 참석자들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육군복, 해군복을 갈아입고 나왔으며, 김정일이 직접 지휘봉을 잡고 연주단을 지휘했다고 한다.
44. 히틀러는 그가 주변에 무섭게 보이도록 의식적으로 화를 낸다고 한다. 적절한 시기에 분노와 발작을 일으켜 그들을 무섭게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히틀러가 가장 즐겨 쓰는 무기라고 한다.
김정일 역시 회식 중에 장군들에게 술을 먹여 노래를 부르게 하고 안 부르면 그 즉석에서 장군의 별을 떼어버리는 등 공포적 행동을 벌리므로 그 측근들이 사시나무 떨듯 떤다고 한다. 김대중과 대화시 인민위원장(국회의장)이 질문에 답변을 못하자 상상할 수 없는 대노를 하므로 김대중이 무안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김대중에게 김정일의 위력을 보라는 일종의 쇼겠지만!
45. 히틀러는 상황이 위급하면 자살하겠다는 위협을 하여 보상효과를 자주 얻어냈다.
김정일도 벼랑 끝 전술로 상대방을 유도하여 46억불 경수로를 얻어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열을 못해먹겠다." 는 말은 보상효과 논리는 정치술이다.
46. 히틀러는 나치주의자였다. 그가 세운 정치체계는 궁극적으로 인물의 힘, 카리스마의 효과에 의존했다. 그는 최종 결정자로 그만이 당의 결정을 합법화 할 수 있었고, 공공정책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의 개인적인 기분이 나라의 법이 된다. 그의 의지가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수 있다. 예수 이래로 서구 문명의 역사가 한 사람에 의해 그렇게 많이 좌우된 역사는 없을 것이다.
김정일은 주체사상주의자이다. 그가 세운 정치체계는 유일사상과 수령론이다. 그는 당정군을 장악하고 사상권,주체권(종교권), 예술권까지 가진 세계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한 사람에 의해 지배통제의 체제를 확립했다. 히틀러 보다 상상을 초월한 주석, 인민위원장, 국방위원장, 예술원장, 학술원장은 물론 생사여탈권까지 한 손에 거머쥔 인류역사상 최대의 권력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7. 히틀러는 하이켄크로스(卍) 표시를 상징화시키고, 김정일은 김정일 배지로 상징화시키고 있다.
48. 히틀러는 권력에 대한 끝없는 탐욕, 무자비함, 잔인성, 정서결핍, 기존제도에 대한 경멸, 도덕적 무절제가 있다면, 김정일 역시 정적제거, 무자비한 숙청, 테러, 측근자리도 사생활 비밀누설자는 처단하고 총살현장을 직접 참관하는 등 잔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49. 히틀러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하나하나 놀랄 성과를 거두자 그에 대한 평가가 흥미에서 의혹으로 바뀌었다.
김정일 역시 김일성 사후에 ‘빠르면 3개월 늦으면 3년’이라고 대부분 한국 측에서는 평가를 내렸으나 그는 3년이 지나도 오히려 그는 건제하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리자 그에 대한평가는 180도로 전화되기 시작했으며, 아직도 한반도를 좌지우지하는 1인자로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50. 독일의 광기가 히틀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북한은 김정일의 주체사상 확신범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51. 히틀러는 빈에서 예술학교 입학이 좌절되어 일자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년 동안 빈둥빈둥 놀면서 사회질서에 대한 증오와 복수를 꿈꾸었다.
김정일은 6.25가 일어나자 미군이 폭격하는 모습과 귀국 후 평양 시가지가 잿더미가 되어 있는 현상을 목도하고 미국과 남한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칼을 갈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52. 히틀러의 아버지는 주로 술집에서 만취되도록 시간을 보냈으며, 어머니는 온화하고 가정에 충실하였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충실한 관리였고, 어머니는 가족을 보살피는 데 헌신적이고 언제나 변함 없는 사랑과 관심으로 자식들을 보살폈다는 인상을 만들어 내려고 했었다.
김정일은 이 보다 몇 술 떠서 조상 대대로 김응우, 깁보현, 김혁직, 김형권, 김형록, 강반석을 위대한 인물로 묘사하고, 김일성과 김정숙을 ‘조선의 위대한 인물’로 묘사를 하는 등 김일성 일가친적 족보를 모조리 우산화 해버렸다.
53. 히틀러에게는 단 한 명도 친구가 없다는 것이 특징인데 김정일 역시 단 한 명의 친구가 없다는 것이 특이한 특징이다.
54. 히틀러에게는 처칠도 스탈린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다만 루스벨트만이 맛서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김정일가 무서워하는 인물은 한국 내에는 없을 것 같다. 중국의 주석도, 러시아의 푸진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55. 히틀러는 비행기 여행을 그만 두고 자동차 여행을 즐겼다고 한다.
김정일 역시 고소공포증 때믄에 비행기를 타지 않고 바쁜 와중에서도 모스크바까지 열차여행을 한다.
56. 히틀러는 자기 자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심어주기 위해 거대한 빌딩, 경기장, 다리, 도로를 건설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열정과 자신감을 보상받기 위해 가장 위대하고 가장 큰 것을 세우려는 경향이 있었으며 적어도 1,000년이 넘도록 고안되었다.
김정일은 이 보다 더 큰 광폭심리를 가지고 김일성 동상 3만 5천 개, 전 주민에게 의무적으로 배지 착용, 주체연구실, 혁명박물관, 혁명전적비, 산과 바위에도 찬양 글을 새기고, 평양학생 소년궁전, 파리의 개선문 보다 높은 60m 개선문, 주체사상탑, 단군릉, 5.1경기장, 103층 류경호텔, 세계최대의 호화판 김일성 묘를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103층 유경호텔은 1사람도 살지 못하고 있다.
56. 히틀러는 평생 동안 자신이 유태계 혈통이 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평생 동안 감추고 있는 내면의 괴로움은 백두산 탄생설과 여자관계, 대중연설울 하고 싶어도 시원스럽게 하지 못한 것이다. 흘음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사는 세계에는 아무도 없고 한국에만 있을 뿐이다.
57.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최후에 애견 울프를 독살하고, 베를린에 있는 관저의 방공호 속 자신의 방으로 평생 그가 의지할 수 있었던 단 하나 에바 브라운과 같이 들어갔다. 그는 사이나를 마셨고 이어 에바 브라운이 그의 관자놀이에 6.35 월터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녀 역시 독을 마셨다. 김정일의 죽음은 아무도 모른다. 자연사? 급사? 망명? 암살? 미칠 것? 체포? 자살? …여러 가지 안이 있으나 히틀러와 성격이 거의 비슷하여 자살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순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58. 히틀러와 김정일은 너무나 유사하다.(2010년 8월21일)
히틀러와 김정일의 '58가지 공통점'
- 千葉武士(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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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18, 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