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센추리온>을 보고

전우애나 조국애 대신 '배신'만이 크게 보여, 헐리우드 영화라면 어땠을까?

AD 117년,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브리타니아(영국)에서 브리간테스족이 봉기했다. 이들과의 전투에 나섰던 로마군 9군단은 전멸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5년 후 브리타니아를 방문한 하드리아누스황제는  영국 서부의 솔웨이만에서 동부의 타인강 하구에 이르는 117킬로미터에 걸쳐 석벽과 망루와 요새로 형성된 하드리아누스장벽을 구축했다.

영화 <센추리온>(감독 닐 마샬, 주연 마이클 패스벤더)은 바로 로마군 9군단의 궤멸사건을 소재로 한 역사액션물이다.


"나는 로마의 군인이다"에서 "나는 로마의 도망자다"로

 

<영화는 웃통을 벗고 손이 묶인 한 사내가 눈덮인 산야를 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로마의 군인이다"라고 독백하는 그는 로마군 백부장(센추리온)인 퀸투스. 국경지대의 요새에 근무하던 그는 픽트족(브리간테스족-'브리간테스'는 로마어로 산적이라는 의미)의 포로가 됐다가 탈출하는 길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비릴루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 9군단에 구조된 퀸투스는 픽트족 토벌을 위해 북진하던 9군단에 합류해 전투에 나선다. 하지만 9군단은 픽트족의 매복에 걸려 전멸하고, 부하들의 존경을 받던 비릴루스 군단장은 적의 포로가 된다.

 

퀸투스는 살아남은 7명의 병사들과 함께 비릴루스를 구출하려 픽트족 마을로 들어가지만, 비릴루스를 구출하는데 실패한다.
이들 때문에 족장의 아들을 잃은 픽트족은 여전사 에테인이 이끄는 추적대를 보내 이들을 추적한다.어려서 로마인에게 가족을 잃고 혀를 뽑힌 여전사 에테인은 악착같이 퀸투스 일행을 추적하고, 퀸투스 일행은 하나 둘 목숨을 잃는다.

 

살아남은 퀸투스 일행은 간신히 로마군 최전방 요새를 찾아오지만, 이미 그곳의 로마군은 하드리아누스 장벽 이남으로 철수한 뒤였다. 퀸투스 일행은 텅빈 요새에서 망연자실해 하면서 "그럼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싸워온 것이냐?"고 절규한다.

 

이 요새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에테인의 추적대를  물리친 퀸투스 일행은 다시 남으로 향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세 명. 하지만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건설 중인 로마군을 발견하고 신이 나서 장벽을 향해 말을 달리던 병사는 그를 픽트족으로 오인한 로마군의 화살에 맞아 죽는다. 다른 동료는 작전 실패의 책임을 추궁당할 것이 두려워 퀸투스를 해치려다가 퀸투스의 손에 죽는다.

 

9군단의 유일한 생존자인 퀸투스를 맞은 총독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의 공로를 치하하지만, 뒤로는 책임추궁을 두려워해 그를 모살하려 든다. 암살자들을 물리친 퀸투스는 "이것이 로마제국이 영웅을 대접하는 방식이냐?"며 분노한다.


결국 퀸투스는 픽트족의 추적을 피해 도주하는 도중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여인이 살고 있는 숲속으로 숨어들어간다.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여인에게 몸을 맡기며 퀸투스는 "나는 로마의 도망자다"라고 되뇌인다.>

 

국가로부터 배신당한 군인들

 

<센추리온>은 뒷맛이 개운치 못한 영화였다. 영화에서 볼만한 것은 웅장한 스코틀랜드의 대자연뿐이었다.눈덮인 활량한 산맥, 울창한 밀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눈이 시원해졌고, 불현듯 '저기에 꼭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좋은 건 그뿐이었다.

 

목과 팔 다리가 고기덩어리처럼 잘려나가고 피가 튀기는 전투장면은 역겨웠다. 그보다 더 역겨웠던 것은 '배신'으로 점철되는 영화의 줄거리였다. 3000명의 군단병 가운데 겨우 살아남은 7명의 병사들, 적에게 쫒기는 그들에게서는 끈끈한 '전우애'보다는 '동료를 미끼로 삼아서라도 살아남겠다'는 이기심이 더 크게 느껴졌다 (물론 전우애를 느끼게 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기심이 느껴지는 장면이 더 기억에 남았다는 의미다).

 

병사들간의 배신보다 더 큰 배신은 살아돌아온 병사들에 대한 '국가'의 배신이었다. 버려진 최전방 요새에서 퀸투스 일행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싸운 것이냐"고 절규한다.
군인에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싸운 것이냐"고 허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보다 더 큰 배신이 있을까? 이 대목에서  얼핏 "이 감독이 혹시 이라크나 아프간에 영국군대가 파병된 것은 헛된 일"이라고 은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의 결정판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총독이 퀸투스를 모살하려 하는 장면이다. 결국 "나는 로마의 군인이다"라고 자부했고, 에테인에게 쫒기면서도 '의무와 책임, 명예'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던 군인 퀸투스는 결국 "나는 로마의 도망자"라고 자조하면서 숲속으로 숨어든다.

 

헐리우드였다면...

 

<센추리온>은 군인들의 이야기지만, 거기에는 조국애도, 전우애도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쓸쓸함, 허전함만 남았다.


문득 '헐리우드였다면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헐리우드였다면, 살아서 고향으로 향하는 군인들의 전우애를 강조했을 것이고, 살아 돌아온 최후의 1인인 퀸투스는 영웅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헐리우드는 이런 류의 영화에서 영웅을 만들어 내고, '성조기 휘날리며'로 영화를 끝맺곤 한다. 헐리우드는 리버럴들의 온상이기도 하지만, 애국주의의 온상이기도 하다.

 

헐리우드와 닐 마샬의 <센추리온>의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헐리우드의 애국주의는 미국이 아직도 세계제국이기 때문이고, <센추리온>의 쓸쓸한 결말은 이미 해가 진 지 오래인 대영제국의 쓸쓸함의 반영이라면, 지나친 얘기일까?

 

국가로부터 배신당한 우리나라의 군인들

 

영화 <센추리온>을 보면서, 국가로부터 배신당했던 우리나라의 군인들을 생각했다. 김대중 정권 시절 제1차연평해전에서 승리한 후 좌천당했다가 군복을 벗어야 했던 박정성 제독,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잊혀지고 버림받았던 제2차 연평해전(서해교전)의 전사자들,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국군포로들, 팔 다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던 6-25 상이군인들.....

 

46분의 천안함 전사자들 역시 천안함 사태에 딴지를 거는 종북(從北) 세력과 민주당의 망언-망동을 보면서, 한나라당과 정부 일각에서 나오는 대북 쌀지원 재개논의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죽었느냐?"고 통곡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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