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독일에 보복하지 않아서 당한 프랑스의 운명을 따를 것인가?
“1936년 히틀러가 비무장지대였던 라인란트 지역에 병력을 투입했음에도 반격하지 않았던 프랑스의 상황과, 금년 3월26일 김정일의 천안함 폭침에도 반격하지 않은 한국군의 상황은 동일하다. 라인란트의 교훈을 잊지 말자. 한국의 라인란트는 주한미군이다. 주한미군이 북한의 기습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145회 趙甲濟 기자의 ‘현대사 강좌’에서 趙 대표(조갑제 닷컴 대표)는 “라인란트의 교훈을 한국에 적용해야 한다”며, 韓美동맹의 강화를 강조했다.
趙 대표는 “징기스칸은 유럽을 정복할 때 최후통첩으로 항복을 권유해 항복하면 살려주고 항복하지 않는 사람들만 학살했지만, 히틀러는 반항의지가 없는 유태인을 죽이기 위해 공장을 만들어 과학적으로 많게는 하루에 몇 만명씩 죽였다”며,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유태인 탄압이 비교적 약했던 독일이 히틀러의 선동으로 인해 오늘날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죄인취급 받으며 오명을 남기게 된 이유를 히틀러에 두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나쁜 놈이고 히틀러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나쁜 놈이다. 김정일은 히틀러를 존경한다. 그러므로 김정일은 나쁜 놈이고 김정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 나쁜 놈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김정일을 존경하고 편드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며 독재와 민족반역자를 두둔하는 일부 세력들을 겨냥해 쓴소리를 뱉었다.
調 대표는 어제 한국에 있는 미국의 군사전문가를 만났는데 그가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북한군은 한국군이 보복할 것에 대비한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한국군이 보복했더라면 북한의 잠수한 기지 정도는 폭격할 수 있었는데, 북한측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으로 밝혀지더라도 한국군이 절대 보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趙 대표는 “김정일은 이명박 대통령과 남한 사회의 취약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군사 전문가가 워싱턴에 가서 만난 미국의 한 안보전문가의 첫 마디가 “왜 한국은 武力공격을 당하고도 보복을 하지 않았는가”라고 의아해 하더란 것이다. 이 전문가가 “한국정부는, 유엔 및 미국과 공조하기 위해 신중하게 대응했었다”고 변명하니 미국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격당한 것은 한국인데 왜 미국에 물어보나?”
趙 기자는 “천안함 폭침을 통해 김정일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1936년 독일 군대가 라인강 동서 양변의 비무장지대인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투입해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의 첫걸음을 뗀 사례를 들었다.
라인란트 비무장지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프랑스가 베르사이유조약의 의거, 독일 영토인 라인강 동서 양변에 50km 이상의 완충지대를 설치한 것을 말한다.
히틀러는 징병제와 해군 창설, 병력 증강 등으로 독일을 재무장하고 1936년 3월7일 새벽 자신감있게 독일군을 라인라트에 투입했다. 이때 독일군 국방장관과 참모총장 등 군부에서는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가 즉각적으로 대응할 경우 당시 재무장한 지 2년밖에 안된 독일군의 병력으로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프랑스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3개 대대를 라인강 전방에 배치했다. 국방장관이 병력 철수를 주장했지만 히틀러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趙 대표는 “프랑스가 라이란트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대응하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당시 프랑스의 국내 상황으로 설명했다.
조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1930년대의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극우·극좌의 대립과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풍조, 1차대전에서 20대 젊은이 40%가 사망하는 극심한 피해를 입어 염전사상과 ‘굴욕적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는 평화지상주의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애국심이 실종되고 국가적 단결력이 무너진 상태였다.
또 1차대전의 진지전에서 고전한 이후 난공불락의 요새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마지노선을 구축했는데, 이 마지노선은 수비선으로 군대가 수비에 집중하면 사기와 야성이 떨어지므로 승리를 위해서는 선제공격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히틀러가 ‘내 생애 가장 초조한 시간은 라인란트 병력투입 이후 48시간이었다. 내가 만약 프랑스 정부에 있었다면 독일군이 투입했을때 프랑스 군대를 투입해 공격했고 그러면 독일군이 도망갔을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군대가 반격하면 싸우지 말고 무조건 철수하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 대표는 “그때 프랑스가 공격했다면 히틀러가 실각했을 가능성이 있고 2차 세계대전은 발발하지 않았겠지만, 프랑스 군부가 먼저 ‘반격하면 전쟁이 터진다’며 반격을 반대하고 대신 총동원령을 내릴 것을 건의했는데, 당시 프랑스는 과도정부가 들어서 몇 달 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총동원령을 내리면 부도 직전의 상황에서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것도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독일군의 병력 진출을 두고 영국에 대해 ‘같이 싸울 마음이 있으면 반격하겠다’고 의견을 물었는데, 바다 건너 영국은 싸울 마음이 없었고, 지금의 UN과 같은 국제연합에도 문제를 제기했으나 독일제제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천안함 당시 우리가 취했던 행동과 동일한 과정을 설명했다.
때문에 조 대표는 “천안함 폭침시 우리가 반격을 안한 것으로 인해 10년 뒤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이 멸망하는 시나리오를 써야 될지도 모른다.”고 프랑스의 교훈을 들었다.
더욱이 “프랑스는 독일군의 라인란트 진주 허용으로 인해 휴유증을 겪게 되는데, 당시 프랑스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던 벨기에가 독일군 진출에 대한 프랑스의 반응을 보고 군사동맹을 폐기하고 중립을 선언했기 때문에 후에 독일군이 벨기에 지역의 아르덴느 숲을 통해 대규모 기갑군단을 투입할 수 있었다.”고 趙 대표는 전했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동맹이 유지됐다면 아르덴느 숲에 마지노선 구축이 가능했을 것이나, 1938년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체코를 침략했으며, 폴란드를 침략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趙 대표는 이 라인란트의 교훈을 한국에 적용해 “히틀러가 프랑스를 정확히 간파했듯이 김정일은 남한을 정확히 간파하고 천안함 폭침을 지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 천안함 폭침에 인민군이 반대했을지도 모르나 김정일은 남한의 TV를 보면서 연애, 불륜, 고부갈등이 유행하는 한국은 싸울 수 없는 나라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趙대표는 “악마를 쫓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성경을 읽어줘도 굴복을 하지 않으면 야유하고 조롱하라. 악마는 경멸을 견디지 못한다.”는 마틴 루터의 말을 인용해, “종북좌익들을 소탕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헌법을 갖다 대어도 승복하지 않을 때는 야유하고 조롱하라. 그들은 경멸을 견디지 못한다.”라며 종북세력에 대한 대응방법을 언급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1936년 히틀러가 비무장지대였던 라인란트 지역에 병력을 투입했음에도 반격하지 않았던 프랑스의 상황과, 금년 3월26일 김정일의 천안함 폭침에도 반격하지 않은 한국군의 상황은 동일하다. 라인란트의 교훈을 잊지 말자. 한국의 라인란트는 주한미군이다. 주한미군이 북한의 기습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145회 趙甲濟 기자의 ‘현대사 강좌’에서 趙 대표(조갑제 닷컴 대표)는 “라인란트의 교훈을 한국에 적용해야 한다”며, 韓美동맹의 강화를 강조했다.
趙 대표는 “징기스칸은 유럽을 정복할 때 최후통첩으로 항복을 권유해 항복하면 살려주고 항복하지 않는 사람들만 학살했지만, 히틀러는 반항의지가 없는 유태인을 죽이기 위해 공장을 만들어 과학적으로 많게는 하루에 몇 만명씩 죽였다”며,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유태인 탄압이 비교적 약했던 독일이 히틀러의 선동으로 인해 오늘날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죄인취급 받으며 오명을 남기게 된 이유를 히틀러에 두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나쁜 놈이고 히틀러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나쁜 놈이다. 김정일은 히틀러를 존경한다. 그러므로 김정일은 나쁜 놈이고 김정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 나쁜 놈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김정일을 존경하고 편드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며 독재와 민족반역자를 두둔하는 일부 세력들을 겨냥해 쓴소리를 뱉었다.
調 대표는 어제 한국에 있는 미국의 군사전문가를 만났는데 그가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북한군은 한국군이 보복할 것에 대비한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한국군이 보복했더라면 북한의 잠수한 기지 정도는 폭격할 수 있었는데, 북한측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으로 밝혀지더라도 한국군이 절대 보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趙 대표는 “김정일은 이명박 대통령과 남한 사회의 취약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군사 전문가가 워싱턴에 가서 만난 미국의 한 안보전문가의 첫 마디가 “왜 한국은 武力공격을 당하고도 보복을 하지 않았는가”라고 의아해 하더란 것이다. 이 전문가가 “한국정부는, 유엔 및 미국과 공조하기 위해 신중하게 대응했었다”고 변명하니 미국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격당한 것은 한국인데 왜 미국에 물어보나?”
趙 기자는 “천안함 폭침을 통해 김정일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1936년 독일 군대가 라인강 동서 양변의 비무장지대인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투입해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의 첫걸음을 뗀 사례를 들었다.
라인란트 비무장지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프랑스가 베르사이유조약의 의거, 독일 영토인 라인강 동서 양변에 50km 이상의 완충지대를 설치한 것을 말한다.
히틀러는 징병제와 해군 창설, 병력 증강 등으로 독일을 재무장하고 1936년 3월7일 새벽 자신감있게 독일군을 라인라트에 투입했다. 이때 독일군 국방장관과 참모총장 등 군부에서는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가 즉각적으로 대응할 경우 당시 재무장한 지 2년밖에 안된 독일군의 병력으로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프랑스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3개 대대를 라인강 전방에 배치했다. 국방장관이 병력 철수를 주장했지만 히틀러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趙 대표는 “프랑스가 라이란트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대응하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당시 프랑스의 국내 상황으로 설명했다.
조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1930년대의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극우·극좌의 대립과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풍조, 1차대전에서 20대 젊은이 40%가 사망하는 극심한 피해를 입어 염전사상과 ‘굴욕적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는 평화지상주의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애국심이 실종되고 국가적 단결력이 무너진 상태였다.
또 1차대전의 진지전에서 고전한 이후 난공불락의 요새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마지노선을 구축했는데, 이 마지노선은 수비선으로 군대가 수비에 집중하면 사기와 야성이 떨어지므로 승리를 위해서는 선제공격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히틀러가 ‘내 생애 가장 초조한 시간은 라인란트 병력투입 이후 48시간이었다. 내가 만약 프랑스 정부에 있었다면 독일군이 투입했을때 프랑스 군대를 투입해 공격했고 그러면 독일군이 도망갔을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군대가 반격하면 싸우지 말고 무조건 철수하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 대표는 “그때 프랑스가 공격했다면 히틀러가 실각했을 가능성이 있고 2차 세계대전은 발발하지 않았겠지만, 프랑스 군부가 먼저 ‘반격하면 전쟁이 터진다’며 반격을 반대하고 대신 총동원령을 내릴 것을 건의했는데, 당시 프랑스는 과도정부가 들어서 몇 달 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총동원령을 내리면 부도 직전의 상황에서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것도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독일군의 병력 진출을 두고 영국에 대해 ‘같이 싸울 마음이 있으면 반격하겠다’고 의견을 물었는데, 바다 건너 영국은 싸울 마음이 없었고, 지금의 UN과 같은 국제연합에도 문제를 제기했으나 독일제제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천안함 당시 우리가 취했던 행동과 동일한 과정을 설명했다.
때문에 조 대표는 “천안함 폭침시 우리가 반격을 안한 것으로 인해 10년 뒤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이 멸망하는 시나리오를 써야 될지도 모른다.”고 프랑스의 교훈을 들었다.
더욱이 “프랑스는 독일군의 라인란트 진주 허용으로 인해 휴유증을 겪게 되는데, 당시 프랑스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던 벨기에가 독일군 진출에 대한 프랑스의 반응을 보고 군사동맹을 폐기하고 중립을 선언했기 때문에 후에 독일군이 벨기에 지역의 아르덴느 숲을 통해 대규모 기갑군단을 투입할 수 있었다.”고 趙 대표는 전했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동맹이 유지됐다면 아르덴느 숲에 마지노선 구축이 가능했을 것이나, 1938년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체코를 침략했으며, 폴란드를 침략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趙 대표는 이 라인란트의 교훈을 한국에 적용해 “히틀러가 프랑스를 정확히 간파했듯이 김정일은 남한을 정확히 간파하고 천안함 폭침을 지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 천안함 폭침에 인민군이 반대했을지도 모르나 김정일은 남한의 TV를 보면서 연애, 불륜, 고부갈등이 유행하는 한국은 싸울 수 없는 나라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趙대표는 “악마를 쫓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성경을 읽어줘도 굴복을 하지 않으면 야유하고 조롱하라. 악마는 경멸을 견디지 못한다.”는 마틴 루터의 말을 인용해, “종북좌익들을 소탕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헌법을 갖다 대어도 승복하지 않을 때는 야유하고 조롱하라. 그들은 경멸을 견디지 못한다.”라며 종북세력에 대한 대응방법을 언급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