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의 전술 비교

*이 글은 토론방에서 퍼온 것이다.

이 름 최성재(50, 남, .)

우회기습형의 김대중과 정면돌파형의 노무현




1970년 9월 40대의 김대중이 만인의 예측을 깨고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다. 40대 기수의 선두 주자 김영삼은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결선 투표에서 이철승의 표를 고스란히 가져간 김대중에게 어이없이 패배하고 만다. 이 때 쓴 김대중의 작전이 바로 우회기습이다. 한밤중에 동향인 호남 출신이자 역시 40대인 이철승을 찾아가 읍소와 협박을 곁들어 기어코 그를 한 패로 만들어 한낮에 당당히 승리한다. 단순무식형의 김영삼이 우회기습형의 김대중에게 최초로 쓴잔을 마신다. 그러나 역시 단순무식한 김영삼은, 특이한 서울대 출신의 김영삼은 패배를 깨끗이 받아들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사자후를 터뜨린다.

김대중은 그 후에도 계속 우회기습 작전을 쓴다. 그가 공격의 발톱을 드러내기 전에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 눈치채면 이미 그 때는 상황이 끝난다. 그는 적의 급소를 기습하기 전에 우회의 수단으로 명분의 미끼를 던진다. 명분에 깜빡 죽는 한국인의 속성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서 민주, 자유, 반공, 통일, 평화, 민족화해, 평등, 분배, 복지, 개혁, 진보 등 시대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명분을 누구보다 빨리 선점하여 우군을 다독거리고 적군을 안심시킨다. 처음에는 미심쩍어 하다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아름다운 명분을 시종일관 내세우기 때문에 이윽고 적 가운데서도 하나 둘 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거나 아예 그의 수하로 들어간다. 이러한 김대중도 주도면밀형의 박정희에겐 꼼짝 못한다. 그러나 김대중은 우회기습형의 인물답게 인동초처럼 끈질기게 기다린다.

이른바 80년의 봄에 김대중은 우회기습 작전을 한번 더 써 보지만, 이번에는 삼십육계형의 최규하를 뒤이은 임기응변형의 전두환에게 잡혀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 사전에 준비가 전혀 없었더라도 일단 유사시엔 아랫사람의 말을 허심탄회하게 잘 새겨듣고 즉시 그에 맞는 작전을 쓰는 임기응변형의 전두환에게 그는 꼼짝 못한다. 이럴 때는 무조건 항복하는 것이 최고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보이면 그에 매달려야 한다.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가랑이 사이로 못 기어갈 게 없다. '나는 빨갱이요', 라고 고백하고, '한번만 살려 주세요', 라고 애걸한다. 무슨 말을 하든 나중에 생명의 위협 때문에 강제 자백한 것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그러면 우군은 더욱더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 오히려 어이없어 하다가 적이 지리멸렬한다.

김대중은 1987년 다시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다. 단순무식형의 김영삼과 우회기습형의 김대중은 서로가 승리를 '학신'하고 '장담'했지만, 포위섬멸형의 노태우에게 나란히 패배한다. 곧 이은 총선에서 야당을 완전 포위하여 섬멸하려던 노태우가 자만심에 공천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다가 스스로 포위망에 구멍을 뚫는 결과가 되어 그만 김대중의 우회 작전에 말려 기습당한다. 김대중은 제1 야당으로 기고만장한다. 이 때 단순무식형의 김영삼이 일평생 처음으로 머리를 쓴다. 그래서 노태우와 손을 잡는다. 우유부단형의 김종필도 가세시켜 노태우는 또 다시 특유의 포위섬멸 작전을 펼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때 노태우는 북방정책이란 이름으로 김일성을 포위하여 섬멸하는 작전을 동시에 펼친다. 구소련과 중공을 돈으로 유혹하여 한 패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에 구밀복검(口蜜腹劍)형의 김일성이 오금이 저려서 즉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손을 내민다. 남북을 오가며 노태우의 사자(使者)와 김일성의 사자가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주고받으며 마침내 남북이 함께 잘 먹고 잘 살자는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맺는다. 그러나 김일성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지만, 그 배 안에는 예리하기 그지없는 비수가 들어 있다. 단순무식한 김영삼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순간 그는 바로 기본합의서를 잠수정에 실어 동해에 수장시켜 버리고 핵 폭탄을 개발하겠다는 말로 어리버리한 김영삼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한편 국내에선 노태우가 여전히 포위섬멸 작전을 펼친다. 머리 좋은 박철언과 경영 잘하는 박태준을 내세워 단순무식한 김영삼과 우유부단한 김종필을 압박한다. 그러나 이 때 김영삼의 장기가 여지없이 발휘된다. 단순무식하게 박철언의 결정적 폭로를 짓뭉개고 박태준의 합리적 경영을 짓밟는다. 우유부단한 김종필은 슬슬 눈치를 본다. 노태우의 포위섬멸 작전은 호랑이 굴에 들어선 김영삼이 단순무식하게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가자 그물이 여기저기 사정없이 숭숭 뚫린다.

단순무식형의 김영삼이 일평생 머리를 딱 한 번 쓴 결과로 우회기습형의 김대중에 앞서 대통령이 된다. 우회기습형의 김대중도 이에 크게 뉘우치고 평생 걸어온 명분의 길에서 처음으로 내려선다. 실리의 길로 올라가서, 철천지원수 박정희의 부하였던 우유부단형의 김종필을 끌어들인다. 극좌가 극우와 동침한 것이다. 이를 번히 보고서도 김영삼은 단순무식한 지도자답게 자식이 돈을 밝히다가 구속되자 세상이 귀찮아져서 자신을 어른으로 안 모시는 대쪽이 마음이 안 들기도 하던 차, 될 대로 되라는 심정에 팔짱을 끼고 멀찌감치 지켜본다. 뒷수습을 못하는 쾌도난마형의 군필자(軍畢者) 이회창이 두 아들의 병역 의혹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군미필자(軍未畢者) 김대중의 우회기습 작전에 말려 어디로 칼을 휘두를지 몰라 안절부절하던 중 투덜거리는 아군에게 칼을 뽑는 시늉을 하다가 그만 내부분열을 겪는다. 그 사이 김대중은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음으로써 야금야금 표를 잠식하여 꿈에도 그리던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다.

노무현은 정면돌파형이다. 필요하면 계란으로 서슴없이 바위를 치고 맨땅에 헤딩한다. 떨어질 게 뻔한데도 번번이 나서서 국회의원에도 떨어지고 시장에도 떨어진다. 떨어져도 비참하게 떨어진다. 숫제 상대도 안 된다. 피투성이가 된다. 그러나 이게 기가 막히게 성공한다. 그는 한국인이 강자에겐 뻣뻣하고 약자에겐 너그럽다는 것을, 약자에겐 무한한 동정심을 발휘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무모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색깔론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도 이 동정심을 유발하여 멋지게 탈출한다.
'그러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마침내 그는 맹주 김대중의 낙점을 받는다. 이 때도 그는 정면돌파의 작전으로 성공한다. 햇볕정책이 대북송금 의혹으로 너덜너덜해졌을 때 그는 공개적으로 그것을 계승하겠다고 한다. 이에 누구도 낙점하지 못해 뒷짐을 지고 우울해 하던 김대중이 두 눈을 번쩍 뜬다. 그 날로 화갑이를 불러 사퇴시킨다. 호남의 '선상님 팬'들은 즉시 알아차리고 정면돌파형의 노무현에게 95%가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 '선상님의 깃발'을 부여잡고 장렬하게 고향에서 국회의원에도 떨어지고 시장에도 떨어지던 그가 새삼 생각나서 애처로워 어쩔 줄 모른다. 유세 한 번 할 것 없이 95%가 지지한다. 대선의 날이 오기를 60년대의 국민학생이 소풍을 기다리듯이 손꼽아 기다리다가 새벽같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끝없이 이어지는 뱀 꼬리처럼 길게 늘어서서 '공개'투표를 한다.

정면돌파형의 노무현도 딱 한 번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이 있었다. 대통령 후보로서의 지지율 급락! 이에 쾌도난마형의 이회창을 귀족으로 치켜세우고 스스로는 서민의 서민으로 낮추던 그가 서슴없이 재벌2세 정몽준과 손을 잡는다. 평생 걸어오던 명분의 길을 저버리고 실리의 길을 택한다. 민주투사 김대중이 유신본당 김종필과 동침하던 것을 흉내낸 것이다. 그는 김대중의 우회기습 작전도 그대로 전수 받아 쉴새없이 쾌도난마형의 이회창을 우회공격한다. 수감 중인 사기전과범 김대업을 내세워 예전에 김대중이 써먹은 병역 비리 건을 다시 끄집어내어 살살 약을 올린다. 그러자 이회창은 쾌도로 허공을 베면서 얼굴이 파리하게 변한다. 그걸로 상황 끝!

측근의 비리가 터져도, 자신에 대한 의혹이 불거져도, 대통령 취임 1년도 안 되어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쳐도, 노무현은 특유의 정면돌파의 작전을 펼친다. 그로써 허를 찌른다.

'그렇다 어쩔래, 그러나 나보다 열 배 더한 도둑도 있다, 상대가 반칙을 써서 떡밥을 왕창 뿌리길래 나도 좀 뿌렸다, 나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에 처하여 닭 한 마리 서리했지만 개기름이 줄줄 흐르는 상대는 작심하고 소를 훔쳐갔다.'
오히려 거대 야당이 자중지란으로 지리멸렬한다.

우회기습형의 김대중과 정면돌파형의 노무현도 꼼짝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김정일이다. 김정일은 구밀복검형의 그 아버지보다 한 수 더 뜬다. 그는 우회기습형과 정면돌파형을 함께 갖춘 능수능란형의 인물이다. 그러니 김대중과 노무현이 무슨 수를 써도 김정일의 손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김대중이 우회기습하면 정면돌파하고 노무현이 정면돌파하면 우회기습한다. 그는 한편으로 조울증형이다. 엄청나게 통이 큰 것 같지만, 사실은 극도로 소심하다. 그를 이기는 방법은 노태우의 포위섬멸 작전이 최고다. '반칙왕' 송강호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 헤드 락(head lock)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도면밀형의 박정희한테도 이런 자는 꼼짝 못한다. 임기응변형의 전두환에게도 꼼짝 못한다. 그러나 쾌도난마형의 이회창은 상대가 안 된다. 우회기습형의 김대중과 정면돌파형의 노무현에게 꼼짝 못한 그가 이 둘을 아울러 갖춘 김정일에게 상대가 될 리 없다.

한국의 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정면돌파형의 노무현에 이어 주도면밀형에 임기응변형에 포위섬멸형을 아울러 갖춘 지도자가 나올 것이다. 그러면 김정일은 그 날로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진다. 최악의 상황은 허장성세형의 이승만 같은 지도자가 노무현의 뒤를 잇는 것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도리어 역사의 먼먼 뒤안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200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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