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從軍 여기자 히긴스 가족의 訪韓을 환영하며

권재찬 기자

'히긴스'는 누구?..한국군 해병에게 '귀신 잡는 해병(Ghost catching Marines)'이란 애칭을 붙여 준 장본인

  60년 전 6.25전쟁의 참상과 이면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사회에 한국의 지원을 요청했던 전설적인 미국 여성 종군기자 고(故) 마거릿 히긴스의 딸과 외손자가 한국에 온다.

국가보훈처(처장 김양) 주관 6.25 참전 재방한 사업의 일환으로 초청되어 31일 방한하는 히긴스의 딸 '린다 밴더블릭'(51) 박사와 그의 아들 '오스틴'(20)이 바로 그들이다.

5박 6일간의 일정으로 방한하는 이들은 남북 분단의 현장인 비무장지대(DMZ)와 어머니, 할머니가 누볐던 6.25전쟁 당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진 낙동강 전투 재현 행사에도 참석한다.

'히긴스'는 누구인가? 그는 60년 전 6·25 전쟁터를 종횡무진으로 누볐던 전설 같은 여성 종군기자다. 한국전쟁에서 낚은 수많은 특종과 현장기사로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퓰리처상 국제부문상(1951년)을 탔던, 미 언론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기자 중 한 사람이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할 당시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도쿄 특파원이었던 히긴스 여기자는 전쟁 당시 6개월 동안 생사를 넘나들며 각종 전투지를 누비면서 경험하고 들은 내용을 전쟁이 한창 치열하게 치뤄지고 있던 시기인 1951년 'War In Korea(한국에서의 전쟁)'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이책이 바로 그녀를 기자 최고 영예인 퓰리처상을 받게했다. 

 ▲ 한국전 종군기자 시절의 마거릿 히긴스. 마거릿 히긴스가 1951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에서의 전쟁’ 책 표지.<자료사진 konas.net>

  그녀는 저서에서 "한국에서 우리는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지 못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승리는 많은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패배의 대가보다 훨씬 쌀 것이다."라는 명문을 남기도 했다.

히긴스는 "동북아 군사방위선에서 한국을 빼는 '애치슨 라인'을 그은 미국이 한반도 안보를 경시한 탓에 엄청난 피를 흘리고 있지만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그런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지킬 가치가 있다"는 기사를 써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50년 6월 수원 비행장으로 간 그는 활주로에 앉아 한강 인도교 폭파 기사를 쓰던 중 더글러스 맥아더 태평양 사령관과 조우했다. 맥아더는 "여기선 기사를 송고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도쿄로 가자고 했다. 동행 길에 그를 인터뷰한 히긴스는 "미국이 곧 지상군을 파견할 것"이라는 특종을 낚았다. 이튿날 다시 한국 전장으로 복귀한 히긴스는 미군과 한국군을 따라다니며 전쟁의 참상, 한국인의 고난을 상세히 보도하는데 열정을 솓았다.

 ▲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수원비행장에서 마거릿 히긴스 종군기자가 맥아더 장군과 조우하고 있는 모습. 맥아더와의 동행 길에 그를 인터뷰한 히긴스는 "미국이 곧 지상군을 파견할 것"이라는 특종을 낚았다.<자료사진 konas.net>

50년 8월 17일 한국 해병대 1개 중대가 북한군 대대 병력을 섬멸하고 경남 통영(진동만 상륙작전)을 탈환하자 그는 한국군 해병을 일컬어 '귀신 잡는 해병(Ghost catching Marines)'이라고 기사를 썼다. 우리 해병대의 '귀신잡는 해병'이란 애칭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같은 해 9월 15일 한.미 연합군이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했을 때 히긴스는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현장을 뛰어다니며 생생한 르포 기사를 썼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총대신 펜으로 자유를 위해 그녀는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싸웠다.

1920년 홍콩에서 태어났던 히긴스 기자는 24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한국전 외에도 베트남과 콩고내전 등 늘 전장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베트남에서 얻은 열대풍토병으로 1966년 1월 사망했다. 그때가 46세.

그녀는 미국의 베트남 내전개입에 대해서는 앞장서 반대했지만, “한국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하고 그럴 값어치가 있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폈다. 그 만큼 그녀는 한국의 자유수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히긴스는 '수만명의 미국 젊은이를 희생하면서도 한국을, 한국의 자유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의미에서 히긴스는 한·미 혈맹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를 그녀를 우리 한국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국 정부는 군인도 아닌 그녀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해 예우하고 있다. 

한군인들은 이제 그녀의 딸과 손자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비록 그녀는 갔지만 그녀의 혈육인 딸과 손자를 따뜻하게 예우하고 존경하자. 60년전 한국전의 실상이 그녀를 통해 세계에 타전되어 국제적 지원을 받은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 쓴 한줄한줄의 기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에 선명히 새겨진 글귀처럼 우리들은 그녀의 후손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총대신 펜으로 한국의 자유를 지켜 낸 히긴스의 영웅적 활동으로 오늘의 한국이 있다"라고.(konas)

권재찬(코나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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