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肉聲토로: "南은 대학생, 우리는 유치원"

"이게 사회주의제도 좋다고 하지만은 내부모순에서는 해결할 문제가 많지 않느냐 이겁니다. 예, 그러니까 사업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단 말입니다."
김정일의 육성테이프 - 반동분자 같은 놀라운 고백 60분(2)


金正日 : 아니 아니 왜 이러세요. 내가 내가 뒤에서 뒤에서 인제 방패를 가지고 이렇게 막아주겠다니까 그러니까 이걸 과도적인 현상이지만 이걸 극복해야 됩니다. 이걸 극복해야 이 사람들이 창작방향을 어떻게 가져가야 되겠는가 하는 이걸 눈이 트이지 지금, 지금 가지고는 이걸 솔직히 말하면 곤란해. 내가 그런데 인제 내 딱 두 분한테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오늘 만나자구 한 거는 사업에 착수하기 전에 꼭 만나 말씀드리자고 한 거는 왜 내 이 말을 강조하는가, 내 의도가 두 갠데 인제 이걸 알려주고 그러나 표현은 앞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제삼자들한테는 우리 걸 너무 허무적으로 이렇게 하지 마시고 그야말로 내 의도만 내 꼭대기에서 의도는 이건데 당신네들이 그저 창작을 통해서 잘 모범을 하나 보여주고 그 다음에 자연히 따라오게 자연히 따라오게 만들구 에- 에, 그래서 만약 선각자 인제부터 말하자면 선각자 역할을 해야지 뭐. 그래서 내 의도는 내 왜 두 분이 필요했는가. 그래서 내 그렇게 하자구. 앞으로도 그래요. 앞으로두 이제 앞으로 일본 사람들을 만나자면 어떻게 만나구, 앞으로는 그래요, 그저 남조선 아이들은 그 민주주의가 없지 않은가. 자유가 없다구, 민주주의 없구. 그 다음에 창작에 너무 간섭이 많다, 에 그 간섭이라는 게 뭐이냐, 반공법 에- 딱 반공만 하라니까 요런데도 반공요소, 요쪽에도 반공요소 그러니까 자유가 없다. 그건 윤이상(尹伊桑) 선생도 그건 강조하신 게고.

申相玉 : 저는 하여튼 미국생활 당시 쫓겨 나왔으니까 그건 뭐 다….

金正日 : 그러기 때문에 자유가 없기 때문에 그저 외피적으로는 그저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 내가 여기 왔다는 거고. 그리고 작품 내용을 가지고는 인제 우리도 시작해서 꼭 선진국을 따라 간다, 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앞서간다, 앞선다, 이런 인제 우리 구호를 부르고 간다, 인제 이렇게 해놓으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뭐 강제로 왔다 어쨌다 하는 것보다 에-. 지금 어, 옛날에 내가 [내가 찾은 길]이란 영화 내가 하나 실례를 들지요.

[내가 찾은 길] 영화 우리가 한 번 그런 쓰라린 경험이 있습니다. [내가 찾은 길]이란 영화를 그 시아누크 캄보디아에서 영화祝展 했습니다. 캄보디아 가니 시아누크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요.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불란서 등에 업고 내가 캄보디아 축전에 갔었는데 그런데 캄보디아 하고 우리하고 관계가 좋았지요. 그 때 시아누크가 집권하고 있을 때인데 그래 우리 영화를 자꾸 내래서 [내가 찾은 길] 가지고 갔지요. 그 때 우리 주관주의가 얼마나 심했던가 하면(웃음).

그 때 바루 영화를 돌려놓고 보니까 캄보디아 정부가 무어라고 그러고 이것은 캄보디아 국내에 있는 反(정부) 게릴라 부대들에게 고무를 주고 現정권을 갖다 반대하고 그걸 찬양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가져오지 않았나. 이게 하, 하…. 그래서 그걸 사정하고 손이야 발이야 빌면서 그런 거, 그런 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왔다는 것 그것 사죄했어요. 참가했다고 하는 그 등록이나 하고 왔단 말입니다. 거 양핼 구해가지구…. 거 이게 하나도 떳떳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 내가 갔다 와서 그 다음부터 영화축전에 가지고 가는 것은 절대 가지고 가지 마라, 黨에 보고하고 꼭-. 시아누크가 노발대발하구 시아누크는 그 때 反정부 게릴라가 있었단 말입니다. 그 빨치산들한테 고무를 주는 게구 자기네들의 王國을 갖다 뒤집어 엎는, 이건 쿠데타 고무를 주는 게 되니 이게 날 반대하는 영화 아니고 뭐이냐. 이거 그거 노발대발해가지구. 그 사람들 가서 거 갔다 올 때까지 빌다 왔지 어-. 우린 에, 이거 하나 놓고 보아도 우리가 떳떳하게 이거 지금 예술제에 나갈 만한 작품이 없단 말입니다.(중략)

이거 기쁨과 만족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여보, 기쁨과 만족은- 지금 당신네들 걸음마 떼는 유치원 아이들인데 에- 南에는 지금 南에는 다 지금 지금 중등기술 다 소유해 가지고 지금 대학생들인데, 대학수준인데 우린 이제 유치원인데 뭐가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이 뭐라 허면 새것을 받아들이지 안하고 완고합니다. 지금 이거. 그러니까 이것도 역시 내적으로 보면 우리 한 개 혁명인데 혁명적으로 이거 뒤집어 놓고 이거 새롭게 이제 말하자면 큰 목표를 놓고 지향 지향시키지 않고서는 꼭 이제 앞으로 이제 10년 어간 내에 우리가 못쫒아 가면은 인제 솔직히 말하면 세계적인 분포에서 보게 되면 우리 영화예술이 낙후한데서 아마 제일 낙후한데서 일위가 되지 않겠는가 에- 낙후한 데서 꼬랑지에서 삐리(꼴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申相玉 : 여하간에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영화를 아시니 얼마나 일하기 좋겠습니까.

崔銀姬 : 정말 얼마나 행복합니까.

金正日 : 글쎄 그 사람들이 내 등을 엎고래도 하자 해야 되겠는데….

申相玉 : 하나 하면 열을 아시는데 이거 얼마나 행복합니까.

*金正日, 교과서같은 북한 영화 경멸

다음 대화에서 金正日은 이데올로기의 규제에 묶여 영화를 예술로서가 아니라 교과서같이 딱딱하게 만들고 있는 북한 영화인들을 경멸합니다.

金正日 : [조선의 별]은 내가 말했어요. 이미 그 자들이 그 챙피스러운 말을 다른 데 가면 말 못할 겝니다. 내가 말한 겝니다. 이건 역사다, 책보기 힘든 사람들이 그걸로 봐라. 이건 예술이 아니다, 역사다. 그걸 솔직히 말하면 그걸 고리끼(러시아의 소설가)의 [어머니](고리끼 소설을 원작으로 한 러시아의 사회주의 영화)와 같이 그 어머니가 사망하는 장면 있지 않습니까? 돌아가시는 부분이나 이런 거는 그걸 예술적으로 더 잘 처리할 수 얼마든지….

崔銀姬 : 아, 거기 참 아깝습니다. 그 장면….

金正日 : 좋은 걸 놓친 게 많지요. 굉장히 많다 말입니다.

申相玉 : 어머니가 그 장면 찍으려면 한 보름 굶어야 합니다.(웃음)

金正日 : 살은 데룩데룩 쪄가지고 나와서…. 아,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이건 역사니까, 역사니까, 그런데 이거 앞으로 어느 때 가서는 다 改作해라. 언젠가 한 번 崔선생이 나하고 한 번 만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거 [지대장에 대한 이야기](영화제목) 그 이야기거리 얼마나 좋은가, 그 이야기거리가 좋은 거 그 배우들이 자 잡쳐 가지고 편집 다 잡쳐 가지구 에….


*"개방, 하기는 해야겠는데 자체모순에 빠져 있다"


金正日은 [유일사상 10대 원칙]이 10계명처럼 지배하는 이 북한을 개방시켜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공감하고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는 딜레머를 이렇게 털어놓고 있습니다.

金正日 : 그 모스크바에 가봤을 때도 그렇고 동부 독일에도 한 번 가보시면 이제 유고슬라비아가 사회주의 진영 치고는 유고슬라비아가 제일 개방된 사회주의, 사회주의 아닙니까. 개방시킨 나라인데 역시 중국도 요새 이번에 가 보니까 중국이 요새 역시 우리보고 나보고 그래요. 호요방이가. 자 이거, 어, 毛주석이 毛주석 모택동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자 이거 딱 문 닫아 놓으니까 우리 사람들한테 본 게 없어, 에-. 남의 것 보게 되면 남의 것 덮어놓고 좋다고 그래, 자기 것 자꾸 나쁘다 그래 어, 하하 하(웃음).

그래 실지 자기가 나쁜 건 아는데 그럼 이걸 다 자기네 살구는 방법으로 해서 남의 것을 앞서야 되는데 아 이건 살구지도 않고 자꾸 남의 것만 좋다 하고 자기네 건 나쁘다고 하니까 이거 야단 아닌가. 그래 자기네들이 조금 개방해 놓으니까 뭐부터 배우는가, 개방 기술부터 배우는 게 아니라 청년들이 수염 기르고 머리 기르고(웃음) 아, 기술 배우라니 진탕 그저 외적인 것만 하니까 아직도 속에 들은 게 없어 그런 게 아닌가. 그 자기네 교육체계부터 좀 보편적으로 개혁해야 되겠다. 그렇게 나보고 솔직하게 얘기하더라구,

호요방이. 역시 우리도 마찬가지라 말입니다. 우리도 그 외국영화 자꾸 돌린다고 하자, 에, 테레비에다 대고 막- 공개적으로 돌린다면 또 역시 허무사상이 나온단 말입니다. 에, 그러하면 우리가 지금 兩斷돼 있는데 지금 어떻게 자기 민족적 자부심하고 그 다음에 애국투쟁 뭐 이런 게 있어야 민족심, 민족심이 강한 것도 키워야 되갔는데 아 덮어놓고 외국 것 외국 것 좋다고 숭배만 하게 맨들구. 그래 우리 기술이 그만큼 빨리 올라가게끔 만들어 놓은 다음에 외국 것을 개방해야 되갔는데 이것도 또 우리가 지금 자체모순에 빠져 있는 문제의 하납니다. 에, 그러기 때문에 나는 그러기 때문에 말하자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걸 권한을 주자, 내 의도가 그겁니다.

*"사회주의 제도 자체에 문제 있다"

다음에 나오는 육성에서 金正日은 중요한 고백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처럼 물질적인 보상을 통해서 일할 의욕을 북돋워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사회주의란 이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인정합니다.

金正日 : 그게 지금 쓰네 마네 하는 게 있습니다. 게다 지금 좀 과제를 팍 주면 조건 타발 나옵니다. 그게 봐서 무엇인가 하면 이 하두 우리가 지금 이게 해방 직후부터 이게 지금 말하자면 물질적인 이런 측면에서 그 말하자면 에- 의욕을 가지게끔 이제 이런 걸 우리가 하지 않고 다른 이제 저, 제도하고 관계있다고 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저 일년에 한 작품 나와도 생활비는 생활비대로 주고 작품 하나 썼댔자 그저 원고료 나오는데 그 원고료라는 건 어떻게나 하면 그게 主業이 돼야 되겠는데 그게 副業으로 됐단 말입니다(하략).

에, 자기 실지 실지 써야 될 거는 부업이 되었고 이거 안 해도 생활비는 생활비대로 국가에서 먹여 살리고 돈은 돈대로 주니까 그러니 이 사람들이 의욕이 없단,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과제를 1년에 세 개 써라 이렇게 되게 되면 무슨 타발을 하는가 하면, 그러니까 이게 너무 배부른 게 돼버렸지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그럼 자기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쓰지 못하고 저기 어디 휴양소 보내 달라, 휴양소 가야 쓰겠다. 사람들이 거의 다 이렇게 됐단 말입니다. 그래 내가 전번에 우리 선전 일꾼들을 모다 놓고 얘기했는데 이게 사회주의제도 좋다고 하지만은 내부모순에서는 해결할 문제가 많지 않느냐 이겁니다. 예, 그러니까 사업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단 말입니다.

申相玉 : 그래서 저도 그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보았는데 영화가 부흥되려면 우선 국내에서도 우수한 작품에는 시상하는 그런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가지고 서로 경쟁하고 자극을 받습니다.

金正日 : 네 그렇지요. 그래서 이제 우리 앞으로 이렇게 창작단에다가 따로 우리가 시범적으로 하나 해보자는 것도 있습니다. 그게 왜냐면 이렇게 놓고 그래 지금 보면 전부 다 국가예산이니까 국가예산젭니다. 그러니까 지금 솔직히 말하면 배우들 영화촬영하는데 컷, 컷트, 컷트 분할하는 걸 분할하면서도 한 로루(roll) 찍는 것도 말입니다, 어떡하냐면 우선 옛날에 과거 초기에는 에- 3대1이요. 5대1, 6대1 이렇게까지 나갔는데 지금은 거저 마감일 통과될 때까지 찍으니까 배우 하나 놓고 배우 하나 놓고 거저 한 컷트도 거저 예를 들어서 한 백미터 냅다 누른다 말입니다. (웃음)

네, 지금 실태는 이렇단 말입니다. 에, 그게 망하면 보상은 국가가 보상하니까 영화가 우린 그저 저 이거 사상예술적으로 괜찮다 하면 그저 우선 그저 이렇게 교과서나 될 수 있다 해서 내보내면 문화예술부라는 것은 행정적으로 그저 도장 꾹 누르면 통과돼, 통과됩니다. 그럼 그 다 적자나는 것도 다 그저 보상해준단 말입니다. (하략)

*허무주의자 폭군, 고민 많은 독재자

金正日의 이런 토로를 듣고 있으면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을 멀쩡하게 파악하고 있는 金正日, 그리하여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영화 기술자를 납치까지 하여 북한 영화의 낙후성을 해결해보겠다고 달려들었던 그 金正日이 왜 아직도 문을 꼭꼭 닫아 건 채 북한을 自滅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가. 金正日은 개방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개방할 수 없는 제반조건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회주의와 주체사상 이 두 가지 장애물과 우상을 걷어치우지 않고서는 개혁과 개방을 할 수 없는 金正日. 즉 아버지 金日成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북한을 구제할 수 없고 그 金日成을 부정하면 필연적으로 자기 부정이 되어버리는, 이 헤어날 수 없는 수렁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 金正日이 아닌가 합니다.

이 녹음 테이프를 계속 들어보시면 아마도 두 가지 이미지가 떠오를 것입니다. 네로 같은 허무주의적인 暴君, 그리고 햄릿 같이 고독하고 고민 많은 독재자. 문제는 金正日이 네로나 햄릿처럼 비극적인 최후로 나아갈 때 남북한 7000만 주민들의 安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불안인 것입니다.

2·金正日―申相玉 전화 (1984·7월 하순)

*저짝 사람들 배아파하도록}

金正日의 특명에 의해 신상옥(申相玉)·최은희(崔銀姬)씨는 평양에 [신필림]이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영화사를 설립, [돌아오지 않는 밀사], [춘향전],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등의 영화를 만들어 갑니다. 한편 1984년 4월 2일 국가안전기획부는 申相玉·崔銀姬씨가 서울의 가족들에게 보낸 육성 녹음 테이프를 공개하고 두 사람의 납치 경위와 북한에서의 활동상황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석달 뒤인 7월 하순 평양에 있는 申相玉씨의 사무실로 金正日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 전화는 黨에서 공식으로 설치한 녹음 장치에 의해 녹음되었습니다. 金正日의 모든 육성은 교시이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히 받들기 위해서 녹음을 해둔다는 것입니다. 이 전화에서 金正日은 申相玉씨 부부가 납치되어 왔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 공작원들의 보호하에서 유럽 각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영화제작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합니다.

申相玉 : 여보세요.

金正日 : 이거 안됐습니다.

申相玉 : 접니다. 아 이렇게 전화해주시고 바쁘신데….

金正日 : 아니 일 없습니다. 저 여기 사회주의 나라들에 왔다 갔다 하는 건요, 뭐 우리가 담보하는 거니까 별 것 없을 거구요. 지금 제일 좋기는 그 저 오지리에 말입니다. 거 자본주의, 중립주의 나라들에 좀 나타나야 그게 나타나야지, 이 사람이 순전히 그저 사회주의 나라만 댕기는 거는 우리가 통제하에 댕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자꾸 인상을 주기 때문에요. 말하자면 저 중립주의 나라들 말입니다. 중립국가를 표방한 나라들에 댕겨가지고 우리 사람들 구루빠를 맨들어서 보호하면서 다니면요. 절대 單身, 單身 행동이라는 거는 있을 수 없는 거구요.

그렇게 해서 항시 구라파에 댕기면서도 이제 이름을 날려야지. 그래 나 아까 崔부부장 보고도 얘기를 했는데요, 그러니까 이 나라들에는 다 저 그 남조선 公安들이 있으니까요. 거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도 손은 못대게 하고 그렇게 하고 우린 또 떳떳하게 댕기면서도 사방에서 우리가 보호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야 이거 저 그놈들 저, 저짝, 저, 저짝 사람들이 좀 더 배아파하고 말입니다. 그, 그야말로 자유의 몸이지요.

申相玉 : 그래야 우리가 말입니다. 떳떳하게….

金正日 : 고럼.

申相玉 : 공세로 나갈 수 있습니다.

金正日 : 고럼, 그래 우리가 가만 내가 생각해보니까 그저 뭐 인터뷰나 해가지고 앉아서는 말입니다. 헤헤헤(웃음). 그래서 아까도 토론이 있었는데요. 그저 어떻게든지 우리가 이젠 이왕 이렇게 된 바 치고는 저 공세를 취하자, 공세를 취하고 그 뭐야 申감독이나 그 崔선생이나 다 뭐 그 뭐 그, 그 결심이 보통이 아닌 게고. 또 자기 여기 또 촬영소 다 꾸려, 또 차려 놓고 앉아 있는데 이제는 그 정치 무대를 저 범위를(약간 더듬는다) 좀 넓혀서 그래서 활약하면서 또 이 마음이 없어도 행동과 그 제스추어를 가지고 그놈들이 부러워도 하면서도 가능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렇게 나가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 그래서 참 여기에 저 윤이상(尹伊桑)이가 또 왔어요.

申相玉 : 또 왔어요. 네.

金正日 : 네, 그래서 한 번 어느 때 한 번 만나지 않겠어요?

申相玉 : 만나게 해 주십시오.

金正日 : 두 분께서 만나시구요. 거 만나는 것도 저 역시 저쪽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같은 입장에서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申相玉 : 그렇지요. 그런 거 많이 느꼈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무장 안된 사람이 더 많아요.

金正日 : 하하… 그래서요 여기 적을 둔 게 아니고 저쪽에 두었다 하구 그렇게 尹伊桑이게도 이야기하고 필요하면 둘이서 西獨인가 西백림(서베를린)에 넘어가서 사업할 수도 있는데 좀더 방조해 달라. 그건 합법적으로도 그렇게 해야지요.

申相玉 : 네, 좋겠습니다. 국적이 저쪽이니까요. 여하간에 저는 지도자 동지한테 반한 사람이니까요. 필생의 大作들이 여기서 끝내기 전에는 가라고 해도 잘 안 갈 겁니다.
金正日 : 그러면 인사 전해 주십시요.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