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하여 敵對的 자세를 버리면 평화유지군 형태로 한반도에 계속 주둔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북한정권이 주한미군의 無力化와 韓美동맹 해체를 위하여 1990년대 초반부터 써 먹기 시작한 전술이다. 2000년 6월 평양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정권의 韓美동맹 해체 전술인 '주한미군 지위변경'에 동조하게 되는데, 사실은 그 1년 전부터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다. 국회속기록을 찾아보니 이런 논란이 발견된다.
● 제203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1차 회의록(1999. 4.19) 중 주한미군 지위 변경 논란 부분 발췌
金命潤(김명윤) 위원: 康(강)장관, 일전에 駐韓미군에 대한 지위문제에 대해서 평화유지군으로 남아도 좋다는 청와대 발표가 있었다가 곧 다시 정정하는 듯한 해명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러한 경솔한 발표를 하게 한 경위를 통일부 康장관은 알고 계십니까?
統一部長官 康仁德(통일부장관 강인덕): 구체적으로 현장에 제가 없었습니다마는 나중에 청와대 당국으로부터 대체로 들었습니다. 그것은 대통령께서 무슨 보고를 들으시고 얘기한 것이 아니고 그날 신문에 그러한 기사가 나와 있었기 때문에 장성급 진급자들의 신고를 받으시고 대화하는 속에서 안전보장에 대한 얘기를 말씀하시면서 이 사실은 확인된 것도 아니지만 이런 방면으로 북쪽도 변화될 수 있는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서라고 그럴까, 그런 문제에 대해서 말씀이 계셨다는 말씀을 저는 간접적으로 들었을 뿐입니다.
金命潤: 아니, 북쪽에서 그런 얘기한 적 전혀 없다고 이렇게 또 확인까지 됐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무슨 신문을 어디서 봤어요? 이것이 대단히 예민한 문제입니다. 이 미군주둔 문제를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生死에 관한 문제에요. 이런 예민하고 중차대한 문제를 대통령이 어디 신문을 보다니, 우리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앉은 데서 난데없이 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남을 수 있게 한다는, 남아도 좋다 하는 쪽으로…
康仁德: 그런 얘기가 전혀 아니고 대통령께서 생각하시는 것이나 저희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金命潤: 어떻게요?
康仁德: 명백합니다. 주한미군이라는 것은 상호방위조약에 의해서 여기에 주둔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이것은 韓․美간에 문제가 되는 것이지 누가 여기에 개입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지위를 바꿔야 할 그런 시기에 와 있는 것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金命潤: 대통령께서 미군 지위문제에 대해서 평화유지군으로 남아도 좋다 이런 식으로 담화가 나왔지 않습니까?
康仁德: 저는 구체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는 전해 듣고 있지를 않습니다.
金命潤: 듣고 있지 않다니, 그것이 처음 신문에 나온 것이요. 대통령이 어떤 신문을 보고 그렇게 얘기한 것이 아니고…
委員長 柳興洙(위원장 류흥수): 金命潤 위원님 양해를 해주신다면 물론 통일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전혀 관계가 없는 바는 아닙니다마는 다음에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한 질의에서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어줘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서…
金命潤: 그래도 이것 통일부에서… 아까도 김수한 의장이 얘기했지만 청와대가, 청와대뿐만 아니라 각 부처도 그래요. 이 南北문제에 대해서 통일부를 제쳐놓고 이러한 얘기가 불쑥불쑥 청와대에서도 나오고 해양수산부에서도 나오고 韓電에서도 나오고 이래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좀 들어야 되겠어요. 길게 얘기 안하겠어요. 간단간단하게 한두 마디로…
康仁德: 예, 알겠습니다. 그날 4월6일자 세계일보에 나왔던 얘기입니다. 세계일보에 이달 말로 예정된 4차 회담, 5차 본회담, 긴장완화분과위원회에서 주한미군 지위변경문제를 의제로 올려서 협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는 이러한 보도가 나온 것을 보시고 그런 얘기를… 여기에 대해서 대통령께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무슨 정보가 있다거나 이것을 믿는다든가 이런 말씀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는 4차, 5차 회담에서도 논의할 계획이 전혀 없다 하는 것으로 저는 확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보도가 나온 후 여러 가지 얘기가 있었습니다마는 안보회의에서도 그 다음날 즉각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을 정리했기 때문에…
金命潤: 정부가 다시 해명 발표하는 해프닝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사실이 없으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해명하는 발표를 해요?
康仁德: 신문에 그런 것이 보도가 되었기 때문에 저희들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국민에게 알릴 것은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4월8일…
金命潤: 그러면 청와대에서 이런 얘기가 전혀 없었다 이 말이에요? 주한미군 지위문제에 대해서 아무 얘기도 없었다는 이 말입니까? 자꾸 청와대를 너무 비호해도 안됩니다.
康仁德: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항은 모릅니다마는 4월6일자 세계일보에 주한미군 지위변경 문제를 議題로 올려놓고 협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이런 기사가 나왔는데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이런 문제가 나오니까 이것을 보시면서 그런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 무슨 대통령께서 주한미군의 위치라든가 주한 미군의 역할이라든가 이것에 대해서 잘못 인식하시고 또는 거기에 대한 수정을 가할 의사가 계셔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결코 아니다…
金命潤: 아니, 그러면 세계일보의 그 기사를 보고 대통령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다는 말이에요? 그 일방적인 신문보도에 대해서 대통령이 무엇 때문에 해명하는 식의 발표를 해요?
康仁德: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그런 것이 나왔다는 것을 인용하시면서 정부는 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을 튼튼한 국방을 기초로 해서만이 펼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고 북한의 침략을 막는 것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세력균형과 현상유지를 위해서도 통일 후까지 미군이 주둔해야 된다는 이 사실을 말씀하셨고 셋째로 최근 북한이 평화유지군이라면 미군이 주둔해도 좋다고 미군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 같은데, 이 신문에 그렇게 써있는데 이것은 확인되지도 않은 것이다 라고 인용하신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저는 혼선이 있다고는 생각을 안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으로서는 확고부동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추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金命潤: 그런데 康장관은 그렇게 확신을 갖고 얘기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그 하루이틀사이에 굉장한 혼선을 가져왔습니다. 저도 물론이지만 일반 국민들은 그 하루이틀 사이에 굉장한 혼선을 가져왔습니다. 저도 물론이지만 일반 국민들은 주한미군 지위문제 이것이 평화유지군으로 남아도 좋다 이런 얘기가 어디서 난데없이 나왔느냐 이것입니다.
康장관이 그렇게 끝끝내 해명한다면 더 이상 내가 싸울 수도 없는 얘기지만 나는 적어도 일반 정책 문제같은 것은 조금 춥고 배고프고 이런 정도의 차이 나고 이것이 급한 문제냐 천천히 할 문제냐 이런 차이 정도 가지고 왔다갔다 하는 것은 좋아요. 그러나 이 南北문제에 대해 가지고는 이것이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일반 정책하고 전혀 다릅니다.
대통령의 그런 경솔한 담화가 앞으로 절대 나와서는 안된다, 적어도 康장관을 위시해서 남북안보문제에 대한 보좌를 하고 있는 분들은 앞으로 더욱 신중을 기해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에요. 나는 이것이 어떤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을 비방하는 그런 목적 아닙니다. 이것이 정말 生死가 달려있는 남북문제에 대해서 최소한도 대통령을 보좌하는 여러분들께서 앞으로 신중을 기해 가지고 일반 국민들이 혼동되지 않게끔 해 달라 하는 것을 내가 마지막으로 당부하겠어요. 감사합니다.
康仁德: 알겠습니다.
,,,,,,,,,,,,,,,,,,,,,,,,,,,,,,,,,,,,,,,,,,,,,,,,,,,,,,,,,,,,
1999년 4월6일자 세계일보는 1면 머리 기사에서 ‘주한미군 지위 변경 議題 상정정부, 4자회담에 ‘對北 적대’서 중립적 위치로’라는 제목으로 김대중 정부의 입장 변화를 다루었다. 이 신문은‘정부 당국자는 4월5일 이 달 말로 예상되는 4자 회담 5차 본회담 긴장완화 분과위에서 駐韓미군 지위 변경 문제를 議題로 올려 협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라고 밝혔다’라고 전했다.
이날 오후 육군과 공군 장성 진급자 신고를 받는 자리에서 金 대통령이 “최근 북한이 주한미군이 평화군이라면 주둔해도 좋다는 말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파악하고 있지 않지만 북한이 처음으로 이런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다음날 거의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대통령 발언의 중점은 ‘북한이 미군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것이었다.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 또한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통령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 조선일보(4월7일자)는 ‘북의 또 다른 트로이의 목마’라는 제목의 社說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성격상 4者회담의 議題가 될 수 없다고 못박고, 도대체 이 정부가 어디까지 후퇴할 것인지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개탄했다.
김정일의 주한美軍 무력화 술책인 '주한美軍의 평화유지군化'에 대한 김대중의 이런 긍정적 발언은 김정일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
집주인과 강도가 경비원 철수 문제를 논의한 꼴!
김대중이 김정일과 만나 주한미군 中立化를 密約한 것은 한민족 사상 최악의 逆謀(역모)이다.
趙甲濟
駐韓미군, 즉 韓美동맹 문제를 남북간에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게 대한민국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주한미군이 존재하게 된 것은 김일성의 6.25 南侵(남침)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1949년 6월에 철수하였다. 김일성의 南侵은 주한미군 철수가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나간 주한미군을 불러들인 게 김일성이다. 북한정권이 주한미군을 몰아내려는 책동을 60년간 하고 있는 것은 미군이 나가면 再남침으로 통일하려는 속셈이다. 강도가 경비원을 몰아내고 부자집을 털려고 하는 것과 같다.
북한정권을 상대로 駐韓미군의 철수나 駐韓미군의 역할 변경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강도 피해자가 그 강도를 만나 자택 경비원의 철수 문제를 의논하는 것과 같다.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있어야 한다. 주한미군과 韓美동맹은 남북한 평화협정이 맺어지는 과정에서도 논의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주한미군과 韓美동맹은 韓美간에 결정할 문제이다.
한국의 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 원칙을 깬 것은 김대중이었다. 그는 2000년 6월 평양회담에서 김정일과 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하였다. 더구나 주한미군의 역할을 평화유지군 형태로 바꿔 주둔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하기로 밀약하였다. 즉, 주한미군의 기능중 對北억지력을 제거하여 無力化시키기로 합의한 셈이다. 한국의 安保에 치명적 구멍을 낸, 조국 번영의 생명줄을 敵과 같이 자르기로 한 逆謀(역모)였다.
더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김대중이 김정일과 이런 음모를 꾸며놓고는 對外的으로 이렇게 거짓말한 점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주한미군이 통일 후에도 있어도 좋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는 남북정상회담의 최대 성과이다."
김정일이 있어도 좋다고 한 것은 남북간에 중립적 기능을 하는 일종의 평화유지군화된 美軍이었지 우리가 보는 그런 주한미군이 아니었다. 강도가 집 주인에게 "경비원을 무장해제시키고 우리한테 덤벼들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면 둬도 좋다"고 한 것인데, 주인이 가족에게 "강도께서 지금 경비원들은 그냥 두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고 속인 셈이다.
이 결정적 사실을 變造(변조)한 김대중의 발언은 刑事(형사)사건으로 다뤄야 할 對국민 사기였다. 회담에 배석하였던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의 국회증언으로 이런 사실이 김대중 재임중 밝혀졌는데도 言論과 野黨은 스쳐지나가고 말았다.
중요한 것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사소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나라는 반드시 위기를 맞는다. 국가반역으로 다뤄야 할 음모가 드러났는데도 응징은커녕 거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는 정상적인 방법으론 체제를 지킬 수 없다. 이런 나라는 전쟁을 自招하고 피를 본 다음에 비로소 정신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중립화시킨다는 김정일-김대중 密約(밀약) 자체가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하는 짓이다. 미국은 평화유지군으로 전락한 주한미군을 주둔시켜 분쟁에 휘말려 들 생각이 추호도 없다. 평화유지군이 된 주한미군은 남북한 어느 한쪽이 철수를 요구하면 나가야 한다. 김대중이 김정일과 주한미군 역할 변경 문제를 논의하기 이전에 이 문제를 가지고 미국측과 의논한 흔적이 없다. 동맹국 몰래 敵과 내통한 셈이다.
김대중이 對국민사기극으로 달성하고자 하였던 최종 목적은 주한미군 철수와 韓美동맹 해체였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韓美동맹 해체와 미군 철수는 南侵의 초대장이다. 북한정권은 주한미군이 나가고 韓美동맹이 해체되면 南侵하여 武力통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의 愛國세력은 韓美동맹 해체로 힘이 빠질 것이고, 從北세력은 강성해질 것이며, 국군은 전쟁의지를 잃을 것이다. 이러한 때 核무기를 가진 북한군이 남침하면 從北세력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협공당한 한국군은 전쟁을 하지도 않고 항복하든지, 휴전을 제의할 것이다.
저항을 하더라도 북한군이 서울을 포위한 상태에서 휴전을 제의하면 한국은 美軍의 도움이 끊어진 상황에서 손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 자신하는 게 북한이다. 김대중이 주한미군 無力化 뒤에 벌어질 이런 상황을 모르고 김정일과 그런 합의를 하였다면 바보이고 알면서 하였다면 만고 逆賊(역적)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
주한미군 無力化에 합의해놓고 좋아한 김대중, 김정일
대한민국 대통령이, 韓美동맹을 사실상 해체하려는, 敵將의 주한미군 중립화-무력화 제안에 감동하여 '탁월한 식견'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지난번 김 위원장을 만나고 온 임동원 특사로부터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에 대한 견해를 전해 듣고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민족문제에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실 줄 몰랐거든요."
趙甲濟
1977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東獨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에게 김일성은 이런 말을 하였다. 독일 통일 후 입수한 회담록에서 옮긴다.
"남한에서 朴正熙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지 않고 정당한 민주인사가 정권을 잡는다면 그 사람이 反共주의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면 통일의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에서 어쨌든 민주인사가 권력을 잡으면 조선의 평화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민주적인 상황이 이루어진다면 노동자와 농민이 그들의 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군대는 물러가야 합니다. 남한 민중이 그들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김일성은 남한이 민주화되고 반공주의자가 집권해도, 노동자와 농민들의 활동이 자유로와지므로 對南공작에 유리하고, 특히 남한사람들 손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1980년대 金泳三 같은 민주투사들은 "좌익은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로 생긴 것이므로 민주화만 되면 사라질 것이다"고 했었는데, 김일성의 전략판단이 적중하고, 金泳三의 막연한 낙관론은 빗나갔다.
黃長燁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은 "남한 정권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떼버리면 양쪽의 갓끈이 떨어진 갓 모양으로 되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 버리는 가엾은 신세가 되고 만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주한미군 철수와 韓美동맹 와해를 가장 중요한 對南적화공작 목표로 설정, 끈질기게 추진해온 이유는 한국과 1 대 1로 대결하면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은 통일정책이 아니라 對南적화전략을 위장하기 위한 전술이다. 연방제는 두 개의 체제와 이념을 그냥 두고 중앙정부를 만들어 통일한 것으로 하자는 뻔한 사기이지만, 이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연방제의 뒷면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이기 때문이다. 연방제는 주한미군 철수用이라고 보면 된다.
이 전략을 간파한 韓美 두 나라는 駐韓미군 문제를 남북간에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왔다. 주한미군이 존재하게 된 것은 김일성의 6.25 南侵(남침)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1949년 6월에 철수하였다. 김일성의 南侵은 주한미군 철수가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나간 주한미군을 불러들인 게 김일성이다. 북한정권이 주한미군을 몰아내려는 책동을 60년간 하고 있는 것은 미군이 나가면 再남침으로 통일하려는 속셈이다. 강도가 경비원을 몰아내고 부자집을 털려고 하는 것과 같다. 주한미군 문제를 북한정권과 논의하는 것은, 한번 털린 적이 있는 부자집 주인이 그 강도를 상대로 경비원의 철수를 의논하는 것과 같다.
이런 완강한 벽에 부딪친 북한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주한미군 역할 및 지위 변경'이란 속임수를 꺼낸다. 2002년 7월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가 있다. '남북한 실질적 통합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 연구'란 책(허문영, 조민, 홍관희, 김수암)이다. 여기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관련한 이런 記述(기술)이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을 對南 적화전략목표 달성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로 인식하고 있다. 즉, 북한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한반도의 공산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韓‧美동맹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기본인식을 가지고 있다. 韓美동맹이 기능을 발휘하는 한 북한은 자신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을 도저히 이룩할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이 우리를 제외하고 미국하고만 대화를 하겠
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韓美동맹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 韓美동맹의 억지 기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 주장은 1990년대 들어 약간의 전술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90~92년'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은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을 조건으로 주한미군의 주둔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발언도 간헐적으로 제기해왔다. 평화군축연구소 이삼로는“주한미군은 주둔하되 남북의 통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언급하였고, 아태평화위이종혁은 “미북 양측이 평화조약을 모색하는 동안 미군이 한반도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북한군판문점대표부이찬복은 “주한미군의 역할이 對北억제로부터 한반도 전체의 안정자와 균형자로 변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이 이처럼 공식적으로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일관되게 요구하면서도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을 거론하고 있는 이유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궁극적 목표로 하되, 그 중간 단계로서 미군을 ‘평화유지군’등으로 역할 변경시킴으로써 주한미군의 지위와 성격을 변경시켜 궁극적으로 韓‧美동맹체제를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김일성이 남한에서 정권을 잡아주기를 바랐던 민주인사중 1번은 김대중씨였을 것이다. 남한의 유력한 정치인중 유일하게 북한정권이 내세운 연방제안에 동조한 이가 그였다.
1980년 5.17 계엄확대 조치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김대중씨를 연행, 그가 1973년에 在日북한공작원들과 함께 만든 反국가단체 韓民統 사건을 수사, 재판에서 死刑선고까지 받도록 하였다. 有罪가 선고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자료는 중앙정보부의 '金大中 연방제 판단 보고서'였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
<북괴의 「남북연방제」안은 4·19 직후인 1960년 8월 당시 我國의 불안한 정국과 국내 혁신 정당 및 학생층의 비등한 통일논의에 편승, 최초로 제의한 이래 현재까지도 그들의 핵심적 통일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북괴는 이를 통해 한반도 현상을 인정하는 듯한 공존 인상을 부각시켜 통일문제의 민족 내부화와 주한 미군의 철수를 촉진시키고 한국內 각계 각층 대중과의 광범한 통일 전선을 형성, 聯共 합작 여건을 조성하는 등 對南 폭력 적화혁명 기반을 강화하고자 적극 획책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괴 연방제안과 金大中의 주장을 비교해 보면, 표현상 차이를 제외하고는 同 연방제안의 성격, 활동(기능) 및 기구 구성면 등에서 쌍방이 일치하고 있다.
金大中의 연방제 통일주장은 북괴의 주장과 동일함은 물론 金大中도 이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연방제와 함께 '한반도의 外軍 철수'를 주장함으로써 同 연방제를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하려는 북괴의 전략적 기도에 영합하였다. 북괴는 그의 이같은 태도를 중시, 그를 '민주인사'로 규정하였고, "민주인사 집권時 연방제로 통일을 실현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金大中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면 평화적 통일이 실현되었을 것"(1975년 5월17일 金日成·日 마이니치신문 기자회견)이라고 피력하였다. 1973년 8월28일에는 '金大中 사건'을 들어 남북대화의 일방적 파탄을 선언(남북조절위 북측 공동위원장 김영주 성명)하는 등 그의 활동을 적극 비호한 바 있다.
이로 볼 때 金大中은 북괴가 對南적화 전략 추진의 여건 조성책으로 제시해 온 '남북연방제'안에 사실상 동조함으로써 북괴를 고무시킴은 물론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敵을 이롭게 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대중씨는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 신문에서 "피의자는 한국에서 유엔군 등 外軍의 철수를 주장한 사실이 있나요"라고 묻자 이렇게 진술하였다.
"제가 外軍철수를 주장한 것은 남북간에 전쟁억제협정을 체결하고 미·소·일·중 4大國의 지원협력 결의 후 철수하라는 것이었지, 現시점에서 철수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金大中씨가 일본에서 주도적으로 만든 韓民統의 1973년 8월13일자 발기문에는 "한반도를 중립화하고 남북연방제에 의한 점진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적혀 있다. 1980년 金日成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 발표 연설에서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가지고 있는 북과 남의 두 지역을 하나의 연방국가로 통일하는 조건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 중립국가로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며 또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것입니다"고 밝혔다. 중립국가가 된다는 것은 韓美 동맹 관계를 폐기,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金大中씨는 평민당 총재 시절인 1989년 6월3일 광주 교육대학의 시국 강연회에 참석하여 "장차 이 나라가 통일이 되면 오스트리아식 영세중립국가로 가게 될 것으로 본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보고서는, 북한정권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전술의 하나로 개발한 용어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며 그 내용은 '對北억지력이 아닌 한반도 전체의 안정자와 균형자 역할을 위한 평화유지군으로의 전환'임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평화유지군' '한반도의 안정자와 균형자 역할'이란 용어들이 궁극적으로 韓美동맹을 약화시키려는 북한측의 發想(발상)이라고 규정하였다. 이 보고서가 나온 것이 2002년이고, 김정일과 김대중이 만나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합의한 뒤이다. 國策(국책)연구소가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을 韓美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주한미군이 평화유지군으로 한반도에 주둔한다는 발상은 일방적인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이 문제를 놓고 협의해본 적이 없다. 미국이 그런 방식의 주둔에 동의할 리가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동맹국인 미국에 물어보지도 않고 敵(적)의 수괴와 만나 주한美軍의 역할 변경에 합의하는 것은 동맹정신을 깨는 것이고, 韓美동맹에 안보를 의지하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해치고 敵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을 김대중이 저질렀다.
國情院長(국정원장)이던 임동원씨는 2000년 6월4일 비밀방북하여 김정일을 만났을 때 '남측은 북측의 적화통일과 남침위협에, 그리고 북측은 흡수통일과 북침 위협에 서로 시달리고 있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하여 이런 제안을 하였다고 회고록에서 공개하였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주한미군의 위상에 대해서도 북측이 전향적으로 사고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균형자와 안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주한미군이 현재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다."
대한민국의 안보 책임자가 '북측은 흡수통일과 북침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김정일에게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북한정권이 내부통제용으로 선전하는 '북침위협'을 임동원씨는 사실로 인정한 셈이다. 韓美동맹군이 北侵(북침)을 꾀한 사실이 있는가? 임동원씨의 말대로라면 그런 사실이 있다는 게 된다. 南도 北도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양쪽의 위기감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 같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안보 책임자가 구경꾼의 입장에 선다는 것 자체가 背任(배임)이다. 김대중이 임동원을 통하여 김정일에게 제안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균형자와 안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주한미군'은 현재의 주한미군이 아니고 對北억지력을 포기한 평화유지군이다. 남북한 사이의 중립군이다. 껍데기 군대이다.
위의 통일연구원 보고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런 제의를 김대중이 했다는 것은 그 전의 북한측 요구사항을 전폭 수용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임동원 회고록에 의하면 김정일은 이렇게 和答(화답)하였다.
"김 대통령께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통일 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사실 제 생각에도 미군주둔이 나쁠 건 없습니다. 다만 미군의 지위와 역할이 변경돼야 한다는 겁니다. 주한미군은 공화국에 대한 적대적 군대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서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중략). 미국과 관계정상화가 된다면 미국이 우려하는 모든 안보문제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겁니다."
김정일, 김대중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대하여 의견의 일치를 본 셈이다. 2000년 6월14일 두 사람이 평양에서 만났을 때도 이런 의견의 일치는 재확인된다.
임동원 회고록에 의하면 김정일은 이렇게 말하였다.
"1992년 초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남과 북이 싸움 안하기로 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댔습니다.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것이 남조선 정부로서는 여러 가지 부담이 많겠으나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임동원씨는 (김정일이) 미국측에 전한 말은 "미군의 지위와 역할을 변경하여 북한에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평화유지군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였다고 썼다.
김대중 대통령은 제 정신을 가진 이라면 駐韓미군의 無力化(무력화)를 요구한 김정일의 말을 듣고 화를 내든지 이렇게 말하였어야 했다.
"그런 평화유지군은 1개 대대로 족한데, 1개 대대로 어떻게 남북한 사이 전쟁을 막습니까? 미국 정부가 미쳤다고 그런 제안을 받습니까? 주한미군은 6·25 남침과 같은 재도발을 막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이 문제는 남북간에 논의할 성질이 아니고 한미간에 결정할 문제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그런데 임동원씨에 따르면 김대중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지난번 김 위원장을 만나고 온 임동원 특사로부터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에 대한 견해를 전해 듣고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민족문제에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실 줄 몰랐거든요. 그렇습니다. 미군이 있음으로써 세력균형을 유지하게 되면 우리 민족에게도 안정을 보장할 수 있게 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韓美동맹을 사실상 해체하려는, 敵將의 주한미군 중립화-무력화 제안에 감동하여 '탁월한 식견'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기고만장한 김정일은 "대통령과 제가 본은 다르지만 종씨라서 그런가, 어쩐지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한 것입니다"고 했다. 김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본관이 어디냐'고 묻자 김정일은 '전주 김씨'라고 대답하였다. 김 대통령은 "전주요? 아, 그럼 김 위원장이야말로 진짜 전라도 사람 아니오! 나는 김해 김씨요. 원래 경상도 사람인 셈이지요"라고 했다.
김대중, 김정일은 주한미군을 중립화, 無力化시키는 데 합의해놓고 서로 추켜주면서 좋아하고 있다. 김대중은 이로써, 동맹군에게 알리지도 않고 敵前(적전) 동맹군을 無力化시키는 합의를 敵將(적장)과 몰래 한 我軍(아군)의 사령관이 된 것이다. 주한미군 無力化 합의는, 대한민국의 생명줄인 韓美동맹을 사실상 해체하자는 것이다. 국군통수권자를 겸하고 있는 대통령에 의한 이보다 더한 반역은 人類(인류)역사상 없을 것이다.
,,,,,,,,,,,,,,,,,,,,,,,,,,,,,,,,,,,,,,,,,,,,,,,,,,,,,,,,,,,,,,,,,,,
김정일의 발언을 變造(변조)하여 선전한 김대중
김정일은 현재의 주한미군이 통일 이후에도 있어도 좋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김대중은 통일 후 계속 주둔의 조건을 빼고 발표, 국민을 속였다.
趙甲濟
2001년 8월2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洪思德 의원의 질문에 대하여 林東源 당시 통일부 장관이 한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거짓말장이라 만든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김대중은 제1차 평양회담에서 김정일이 주한미군은 통일 후까지도 계속 주둔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이것이 회담의 가장 큰 성과라고 주장 해왔었다. 임동원 장관은 이날 답변을 통해서 김정일이 계속 주둔해도 좋다고 말한 주한미군은 현재와 같은 미군이 아니라 성격이 완전히 바뀐 미군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북한정권에 敵對的 성격을 버린 일종의 평화유지군 같은 미군이라면 주둔해도 무방하다는 말이었다는 요지였다.
[임동원 장관: 김정일은 그러면서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적대관계에 있는 미군이 있으라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미국과 북한 간에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적군으로서가 아니라 남과 북 사이에서, 또는 주변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고······”, 그러니까 밸런싱 롤을 말하는 것 같아요. 또 안정의 역할, 스테이버라이징 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군대로 남아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지정학적 위치가 어떻고 한참 이야기를 했어요.]
주한미군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북한군의 재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김정일은 그런 목적과 지위의 변경을 요구한 것이다. 북한을 敵對視하지 않는 주한미군은 경찰에 지나지 않는다. 100명이면 족하다. 김정일은 그런 허수아비 상태라면 "있어도 좋다"고 한 것인데(일종이 야유이다), 김대중은 김정일이 획기적인 제안을 한 것처럼 선전하였다. 이 선전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데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대한민국을 김정일이 판 함정에 빠뜨렸다.
임동원 장관의 답변으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變造된 보고를 했음이 드러났다. 그는 김정일이 말한 계속 주둔의 조건을 설명하지도 않았기에 누구나 지금의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도 좋다는 뜻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김정일은 "빨간 불이 켜져도 횡단보도를 건너라. 다만, 조건이 있다. 양쪽으로 자동차가 보이지 않을 경우에 한한다"라고 말한 셈인데, 김대중은 "빨간 불이 들어와도 횡단보도를 건너도 좋다고 말하였다"고 날조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보행자들을 위험에 빠뜨린 경우이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2000년 9월11일자 뉴욕타임스 회견에서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남북이 미군의 한반도 주둔 필요성에 견해를 같이한 것"이라고 밝히고 "평양회담 당시 김위원장이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미군이 계속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했다"고 밝혔었다. 임동원 장관이 전한, 김정일이 진짜로 한 발언의 맥락속에서 김대중의 타임스 회견 발언을 해석하면 주한미군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데 김대중과 김정일이 견해를 같이 했다는 뜻이 된다. 이건 반역共謨이다!
김대중은 이번에 발간된 자서전에서도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였다. 주한미군 문제는 남북한 관계나 대한민국 안보에서 가장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 사안에 대하여 이렇게 큰 거짓말을 해놓고도 여태까지 바로잡음이 없다. 6.15 선언을 낳은 평양회담이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공모였을 뿐 아니라 對국민 사기극이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이유이다.
...............................................................................
*국회속기록
○洪思德委員
제가 이 위원회 오고 첫 번째 회의라서 그동안에 궁금했던 것 한 가지만 마지막으로 좀 물어보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金正日 위원장이 주한미군 문제는 통일 이후에도 양해가 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누누이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金正日 위원장이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가 도시 확인이 되지를 않습니다. 정상회담 때 했는가 하면 배석했던 사람들 누구도 그것을 확인을 안 해주고 장관께서는 그동안에 맡았던 업무의 내용으로 봐서 金正日 위원장이 언제, 어느 기회에 대통령께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그것을 알고 계실 것 같아서 지금 물어보는 것입니다.
(第224回-統一外交通商第2次)
○統一部長官 林東源
예, 제가 답변드리겠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여러 번 열린 남북정상회담 9시간 동안 항상 같이 모시고 있었습니다. 정상회담이 세 번 있었습니다. 6월13일인가, 14일인가 두 번째가 제일 긴 회담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두 분 사이에 흉금을 털어놓고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서도 보고를 드렸습니다마는 전쟁이 왜 일어나느냐 하면 대부분의 경우 잘못된 정보에 의한 오해, 오판에 의해서 일어나고 양 지도자간의 불신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 군비통제이론의 기본 출발점인데 두 정상이 마주 앉아 가지고 많은 미스인포메이션, 잘못된 정보, 오해 이런 것들을 풀었습니다. 아주 두 분이 너무도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논쟁도 많이 벌어졌는데 그 과정 중에 주한미군 문제가 나왔어요. 이것은 대통령께서 먼저 꺼냈습니다.
이것이 왜 나왔는가 하면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문제와 관련해서 토의를 하시다가 “자주적으로 하자고 그러면서 주한미군 철수하는 것과 밤낮 연결해서 북한에서 말하는데……” 하고 말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한미군은 우리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로 말미암아 과거 우리가 1세기 전에도 강대국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러일전쟁, 청일전쟁을 말씀하셨어요. “그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통일된 후의 우리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주한미군은 계속 남아 있는 것이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고 번영․발전하는 길이다” 하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셨어요.
제가 문장 그대로는 기억은 못 하지만 대개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하니까 金正日 위원장이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대통령께서 그런 주장을 하시는 것을 우리가 읽었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는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1991년에 옆에 앉아 있는 용순 동무, 金容淳을 뉴욕에 보내 가지고 미 국무성 누구하고 만났지?” 뭐 이러면서 아놀드 캔터 만나서 최초의 미북 고위급회담 할 때 ‘주한미군은 계속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는 것을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공화당 정부 때인데 이 민주당 정부 때 그대로 인계가 되었을까요?” 이런 말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적대관계에 있는 미군이 있으라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미국과 북한 간에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적군으로서가 아니라 남과 북 사이에서, 또는 주변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고······”, 그러니까 밸런싱 롤을 말하는 것 같아요. 또 안정의 역할, 스테이버라이징 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군대로 남아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지정학적 위치가 어떻고 한참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같이 듣고 그랬습니다마는 제가 참고로 한 마디 더 말씀드리면 저는 60년대부터 쭉 북한학을 연구해 왔습니다. 공부하고 책도 쓰고 했습니다마는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태도가 세 번 변합니다.
1980년대 말까지는 주한미군의 무조건 철수를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남쪽과 대화하는 것을 주한미군이 있는 한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그러다가 88년 盧泰愚 정부 들어서고 7 선언이 나오고 남북총리급회담이 열리게 된 그 전후에 와서 달라졌습니다.
남북정상회담에 제가 쭉 참석했습니다마는 그때 북한의 태도는 공식으로 연설을 통해서 나온 것이 무조건 철수로부터 단계적 감축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단계적 감축인가 하면 남북 군사력의 단계적 감축에 병행해서 주한미군도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으로 변했습니다.
○洪思德委員
혹시 그런 균형을 잡아주고 안정을 담보하는 존재로서 북한을 적대시하지 아니하는 주한미군이 되기 위해서 이런 방법이 있지 아니하냐 하는 언급은 없었습니까? 가령 남북평화협정이라든가 평화선언이라든가……
○統一部長官 林東源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미국과 빨리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다고 하는데 그 평화조약이라는 것은 사실상 무슨 평화조약이냐 하면 국교정상화를 위한 조약을 말합니다. 전쟁관계에 있던 나라들이 국교정상화를 할 때 만드는 것을 평화조약이라고 합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최대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적 봉쇄정책을 풀게 해서 자기들이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도록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려면 한반도에서 미국과 북한과의 군사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기억하시겠습니다마는 4자회담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습니다. 그래서 그때 어떤 용어가 나왔느냐 하면 주한미군의 철수 대신에 주한미군의 지위변경, 지위라는 것은 적군으로부터 다른 지위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金正日은 역할변경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변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군인데 무조건 남아있으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金大中 대통령-林東源 특보에게 보내는 공개 질문서
金正日도 주둔에 동의했다는 駐韓美軍은 同盟戰力으로서의 美軍입니까? 남북한 사이에 中立化된(즉, 無力化된) 美軍입니까?
裵振榮 月刊朝鮮 기자 (ironheel@chosun.com)
金正日, 북한에 대해 非적대적일 것을 조건으로 美軍 주둔에 동의
작년 6·15 南北 공동선언 이후 金大中 대통령은 「南北 정상회담 당시 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통일 이후에도 美軍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하는 데 동의했다」는 주장을 수없이 되풀이해 왔다. 반면 북한은 지난 8월 러시아·북한 공동성명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6·15 南北 공동선언이후에도 일관되게 駐韓美軍 철수를 주장해 왔다.
그런 가운데 林東源(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담당 특별보좌관은 통일부 장관으로 있던 지난 8월2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답변을 통해 金正日이 南北 頂上회담 당시 駐韓美軍이 북한에 대해 非적대적인 존재일 것을 조건으로 駐韓美軍 계속 주둔에 동의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따라 南北 頂上회담에서 金대통령과 金正日은 駐韓美軍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金大中 대통령은 金正日이 일정한 조건 아래서 駐韓美軍의 주둔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왜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가, 혹시 金大中 대통령은 駐韓美軍을 남북한 사이에 중립화된 존재로 그 지위를 변경하는 것을 조건으로 金正日과 駐韓美軍의 계속 주둔에 동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기자는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金大中 대통령이나 林東源 특보의 책임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지난 11월6일 林東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담당 특별보좌관 앞으로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평화정착 후 자연스럽게 駐韓美軍 지위 논의 있을 수 있다는 것』
지난 11월9일 기자는 林東源 특보실의 이상민 비서관과 통화했다. 李비서관은 『질의서를 받아 본 林東源 특보가 「지금은 이런 문제에 대해 답변할 상황이 아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李비서관은 『특보께서는 지난 8월29일 국회 답변시에는 통일부 장관 신분이었지만, 지금은 대통령 특보라는 신분이기 때문에 月刊朝鮮 측에서 제기하는 이런 문제에 답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라고 덧붙였다.
李비서관은 자신의 私見임을 전제로 기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해답은 작년 9월3일 방송의 날 기념 방송 3社 초청 특별대담 당시 金大中 대통령의 대답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金대통령은 한반도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東北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 駐韓美軍은 있어야 한다는 데 대해 金正日도 동의했다고 주장하면서 『南北 간에 평화체제가 확립될 때까지는 駐韓美軍의 지위는 현재와 똑같다. 韓·美 양국의 안보조약에 의해서 駐韓美軍이 현재 있는 것이니까, 북한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다만 南北 간에 평화체제가 완전히 성립되면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는 駐韓美軍의 성격은 많이 변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駐韓美軍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李비서관은 林특보의 국회 답변도 한반도에 평화정착이 이루어져 사실상의 통일상태가 도래했을 경우 駐韓美軍의 지위나 역할에 대해 자연스럽게 논의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지, 현재의 駐韓美軍의 지위에 관해 북한과 논의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했다.
지난 8월29일 林특보의 국회 답변 내용과 작년 방송 3社초청 특별대담 때 金大中 대통령의 발언 사이에는 「플러스, 마이너스 된 것이 없다」는 것이 李비서관의 주장이었다.
『林특보는 국회 답변에서 金正日이 駐韓美軍 관련 발언에 대해 「駐韓美軍이 북한에 대해 非적대적일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그동안 이런 조건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얘기가 없었다.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金대통령은 그동안 마치 韓美동맹 戰力으로서의 美軍이 계속 주둔하는 것에 대해 金正日도 동의했다는 뉘앙스로 말해 왔다. 林장관의 국회 답변으로 그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것 아닌가』라고 물었지만, 李비서관은 앞의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대통령이 金正日과 논의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논란과 오해가 생긴 것 아니겠나?
『논란과 오해가 생겼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인데…. 대통령께서 논란점을 제공했고 논쟁거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작년 방송 3社 초청 특별대담에서 말씀하신 것 외에 어떻게 더 명확할 수 있겠나?』
―우리로서는 그런 얘기를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林특보의 입을 통해 듣고 싶다는 것이다.
『특보께서는 통일부 장관에서 해임되고 나서 외부적 활동을 하거나, 언론과 만나기가 껄끄러우신 것이다. 內·外信에서 서면질문서를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일절 응하질 않고 계시다. 조용히 대통령을 보좌하시려고 하다 보니 꺼리시는 면들이 많으신 것 같다』
1999년 4월6일 DJ발언의 미스터리: 『북한은 미군이 평화군으로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李비서관과의 통화는 여기서 끝났다. 月刊朝鮮은 이 문제에 대해 林東源 특보나 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책임 있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할 예정이다. 月刊朝鮮이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駐韓美軍에 대해 金大中 대통령이나 북한은 어떻게 말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 취임 후 金大中 대통령의 駐韓美軍 관련 발언들은 대통령 취임에서부터 南北 頂上회담 이전(1998년 2월∼2000년 6월), 南北 頂上회담에서 금년 3월 韓美 정상회담(2000년 6월∼2001년 3월), 韓美 정상회담에서 현재까지(2001년 3월∼현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金大中 대통령의 駐韓美軍 관련 발언들은 각 시기별로 일정한 특징을 보인다.
대통령 취임에서부터 南北 頂上회담 이전까지 金大中 대통령의 駐韓美軍 관련 발언들을 보면 전통적인 韓美 동맹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金대통령이 한반도의 안보위협 요인으로 북한을 摘示(적시)하는 경우가 보인다는 점이다 (南北 頂上회담 이후 金대통령은 한동안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북한을 안보위협 요인으로 摘示하지는 않는다) ([표1] 참조).
작년 南北 頂上회담 직후부터 금년 3월 韓美 정상회담 사이 金大中 대통령의 駐韓美軍 관련 발언은 「南北 頂上회담 당시 金正日이 통일 후까지 駐韓美軍이 주둔하는 데 동의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 시기 金대통령의 관련 발언들을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구체적으로 南北 頂上회담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2] 참조).
금년 3월 韓美 정상회담 이후에는 金大中 대통령이 「南北頂上회담 당시 金正日이 통일 후까지 駐韓美軍이 주둔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하는 빈도가 줄어드는 대신 韓美 동맹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늘어난다. 북한이 駐韓美軍철수를 주장하는 횟수가 늘어나자, 金대통령이 나서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9·11 테러사태 이후에는 駐韓美軍의 안전문제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표3] 참조).
南北 頂上회담 이전 駐韓美軍에 대한 金大中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최근 북한이 美軍이 (한반도에) 평화군으로 있으면 좋겠다고 美軍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을 했다』고 한 발언이었다 (1999년 4월6일 陸·空軍 장성진급신고식). 金대통령은 『(북한의 이런 의사표시는) 햇볕정책에 대한 하나의 호응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왜 최근 보고에선 빠졌나?
金대통령이 당시 무엇을 근거로 『최근 북한이 美軍이 (한반도에) 평화군으로 있으면 좋겠다고 美軍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을 했다』고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해 3월 말 당시 林東源 외교안보수석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駐韓美軍 지위 변경에 대해 카라신 러시아 외무차관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대통령께 보고했을 것이라는 추측 보도도 있었지만, 청와대는 이를 부인했었다.
金대통령의 발언은 駐韓美軍의 성격 전환 내지 지위 변경과 관련된 논란을 촉발시켰다. 林東源 당시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駐韓美軍 「철수」를 「지위 변경」으로 수정했다. 북한은 駐韓美軍 철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해 駐韓美軍을, 예컨대 東北亞의 평화유지군 같은 형태의, 敵이 아닌 지위로 바꿔 달라는 것이다. 駐韓美軍의 지위변경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한반도內 모든 군대의 구조와 배치 문제와 관련해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라면서 『이는 이미 4者 회담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파문이 확산될 것 같자 1999년 4월9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는 ▲駐韓美軍은 韓美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하는 것으로서, 이는 전적으로 韓美 간의 문제이며, 南北 간이나 美北 간에 논의될 사안이 아니다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때 한반도의 모든 군대의 구조나 배치 문제의 논의가 가능하며, 이때에는 남북한의 군사력과 駐韓美軍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도 美軍이 東北亞 지역의 안정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林東源 당시 외교안보수석은 4월15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조찬강연에서 『駐韓美軍에 대해 북한의 태도변화 과정 등을 언급한 것이 마치 정부가 駐韓美軍의 지위 변경을 논의하려 하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여져 오해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그후 파문은 일단 가라앉았지만 이때 등장한 정부의 논리들은 南北 頂上회담 이후 다시 나타나게 된다.
작년 6월 南北 頂上 회담 후 金大中 대통령은 金正日이 東北亞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駐韓美軍 주둔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金대통령이 南北 頂上회담 직후부터 그런 주장을 편 것은 아니었다. 金대통령이 서울로 돌아 온 후 발표한 「訪北성과 對국민 보고」에서는 駐韓美軍 문제는 『駐韓美軍 문제도 나왔고 국가보안법 문제도 나왔다』라고 아주 간단하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표2] 참조).
조심스럽게 설명하다가…
6·15 南北 공동선언이 발표되자 同선언 제2조에서「南側의 연합제案과 北側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 것을 두고 적지 않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南北 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논의는 제쳐두고 바로 통일논의로 건너뛰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었다. 南北 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대해 얘기할 때 駐韓美軍문제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사안이다.
만일 金大中 대통령이 나중에 주장하게 되는 것처럼 金正日이 東北亞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駐韓美軍 주둔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고, 그것이 南北 頂上회담의 가장 큰 성과였다면, 그러한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비판자들의 입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金大中 대통령은 이 시기 非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駐韓美軍 문제에 대해 말을 아꼈다.
6월16일 黃源卓(황원탁)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비서관은 빌 클린턴 美 대통령에게 南北 頂上회담 결과를 설명한 후 워싱턴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駐韓美軍에 관해서는 충분하고 피차간 납득할 만한 수준의 얘기가 있었다. 駐韓美軍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는 역할 이외에도 지역안정을 유지하는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시각을 頂上회담에서도 밝혔다. 여기에 대해 북한도 충분히 이해를 하지 않았겠는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귀국 후 黃 당시 수석은 6월21일 기자들과의 一問一答에서 金대통령과 金正日의 회담에서 駐韓美軍의 지위를 평화유지군으로 하자는 얘기는 없었다고 밝혔다.
같은 날 金大中 대통령은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와의 전화 통화 중 『駐韓美軍 문제도 거론됐느냐』는 모리 총리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金대통령은 『그 문제도 충분히 논의됐다. 金위원장은 駐韓美軍이 통일이 되더라도 東北亞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나의 말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보다 자세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 6월19일 朴在圭(박재규) 당시 통일부 장관의 국회 본회의 보고를 통해서였다. 朴 당시 장관은 그 자리에서 『金大中 대통령과 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진지한 대화를 통해 駐韓美軍이 東北亞 평화와 안정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데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고 밝혔던 것이다. 그는 『6·15 南北 공동선언에서 말하는 「자주적 해결」은 북한이 기존에 주장해 왔던 駐韓美軍 철수주장과 연결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는 말도 덧붙였다.
같은 날 저녁 南北 頂上회담의 성과를 설명하기 위한 언론사 사장단 초청 청와대 만찬석상에서 林東源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非보도를 전제로 『金대통령이 「駐韓美軍은 한반도뿐 아니라 東北亞 평화유지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金正日을 설득했으며, 金正日은 「꼭 같은 생각」이라며 공감을 표시했다』고 설명했다.
金大中 대통령이 본인의 입으로 국민들에게 南北 頂上회담에서 駐韓美軍 문제가 거론되었다고 밝힌 것은 그해 6·25기념사를 통해서였다. 여기서 金대통령은 駐韓美軍은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 체제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물론이고 통일된 후에도 東北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자신의 설명에 북한도 상당한 이해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표2] 참조).
『金正日이 「駐韓美軍이 있는 게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南北 頂上회담 당시 駐韓美軍 문제를 거론한데 대해 金大中 대통령이 나중에 주장하는 내용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조심스럽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조심스런 태도는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된다.
2000년 8월26일 獨 「디 벨트」紙와의 기자회견에서 金大中 대통령은 비로소 『나와 金正日 위원장은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駐韓美軍이 이 지역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둔해야 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南北 頂上회담 직후 李會昌 총재나 언론사 사장단을 만나 非공개를 조건으로 駐韓美軍 문제에 대해 언급했던 것을 제외하면, 金대통령이 공개적으로 「金正日이 통일 이후에도 駐韓美軍이 계속 주둔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金大中 대통령은 2000년 8월30일 美 워싱턴 포스트紙와의 기자회견에서는 자신이 駐韓美軍 문제를 거론했을 때 金正日의 반응을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표2] 참조).
2000년 9월3일 「방송의 날」 기념 방송3社 공동초청 특별대담에서 金大中 대통령은 南北 頂上회담時 자신과 金正日 사이에 駐韓美軍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다시 한 번 밝혔다. 이 날 金大中 대통령의 발언은 그때까지 나온 얘기들을 총정리한 것이자, 이후 그가 수없이 되풀이하게 되는 주장의 典型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조금 길지만 관련 부분을 인용하기로 한다.
『▲이남기 SBS 보도본부장:南北 頂上회담 때 두 頂上께서는 駐韓美軍이 통일된 후에도 주둔해야 된다는 필요성에 의견일치를 보셨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駐韓美軍의 역할은 어떻게 변하는 것입니까?
▲대통령:南北 간에 평화체제가 확립될 때까지는 駐韓美軍의 지위는 현재와 똑같습니다. 韓·美 양국의 안보조약에 의해서 駐韓美軍이 현재 있는 것이니까, 북한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南北 간에 평화체제가 완전히 성립되고 미국이나 중국도 이것을 지지하고, 한반도에 냉전이 완전히 끝나고, 이렇게 됐을 때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는 駐韓美軍의 성격은 많이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더라도 駐韓美軍은 있어야 합니다.
내가 金正日 위원장에게 駐韓美軍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설사 통일이 되더라도 駐韓美軍은 있어야 한다. 여기에 駐韓美軍이 있어야 한반도에 세력의 眞空상태가 안 생긴다. 우리는 불행히도 또 어떻게 됐든지 간에 地政學的으로 주위에 4大國을 가지고 있다. … 이런 것을 우리가 볼 때 한반도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東北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 駐韓美軍은 있어야 한다. 美軍이 여기 있음으로써 東北아시아의 강대국들이 서로 다투지 못하게 된다. 유럽에서 나토가 처음에는 소련과 東歐圈 공산국가를 막기 위해서 만들었지만 결국 소련과 東歐圈이 없어진 뒤도 지금 나토가 있고, 美軍이 있는 것도 유럽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美軍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리는 그런 필요성이 더 있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여기 있어야 한다」고 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답변이 깜짝 놀랄 정도였는데 金正日 위원장이 「나도 남쪽신문에서 대통령이 말씀한 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대통령이 나하고 똑같이 민족의 장래를 보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큰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駐韓美軍이 있는게 좋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이번에 북한에 가서 그 문제를 확실히 한 것이 우리 국민의 안정이라든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문제라든가 우리의 국가이익, 東北아시아의 안정 등 큰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러-北 공동선언으로 金대통령 주장에 상처
방송 3社 특별대담 이후 金大中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金正日이 통일 후에도 駐韓美軍이 계속 주둔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金大中 대통령이 주장하는 南北 頂上회담 당시의 대화내용은 大同小異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金대통령이 점점 더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6월15일 평양에서 돌아온 후 발표한 「訪北성과 對국민보고」에서는 駐韓美軍 문제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갔던 金大中 대통령은 이제 「 南北 頂上회담에서 駐韓美軍 문제는 해결되었으며, 이는 南北 頂上회담의 가장 큰 성과」라고 주장하던 끝에, 金正日이 駐韓美軍 주둔을 「공식적」, 「공개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표2] 참조).
南北 頂上회담에서 金正日이 駐韓美軍 주둔에 동의했다는 金大中 대통령의 주장은 금년 1월 부시 美 행정부 출범과 3월의 韓美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한풀 꺾이기 시작해 금년 8월4일 러시아·북한 공동선언이 나오면서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다([표3] 참조). 이 공동선언은 북한이 「남한에 주둔 중인 美軍의 철수가 한반도와 東北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서 미룰 수 없는 초미의 문제」라는 입장을 설명했고, 러시아는 「이러한 입장에 이해를 표명했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이 공동선언은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한나라당은 8월6일 성명을 발표, 『駐韓美軍 철수를 공동선언문에 명기한 것은 對南 赤化전략이라는 北의 기조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이라며 『대통령이 진실을 왜곡, 국민을 속였거나 대통령이 북한에 속았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맹공을 폈다.
金大中 대통령은 8월6일 「사랑의 집짓기」현장에서 러-北 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카터 前 대통령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朴晙塋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
『金대통령은 「자신 있게 얘기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對美 관계에서 원하는 것은 클린턴 행정부와 합의한 내용에서 출발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서로 적대하지 않고 경제적 협력을 하며 국제사회에서 상호협력하고, 그래서 미사일 문제 등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金대통령은 「駐韓美軍에 대해 金正日 위원장이 駐韓美軍이 필요하다는 데 나와 생각이 같다는 얘기를 했었고, 南側 언론사 사장들이 訪北했을 때 똑같은 말을 했으며, 또 올브라이트 美 국무장관의 訪北時에도 같은 말을 했다, 이것은 북한이 미국과 잘 지내자는 의지를 표시한 것이며 그런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金正日, 『적대관계에 있는 美軍이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러·北 공동선언으로 상처받은 金大中 대통령의 주장은 지난 8월29일 林東源 당시 통일부 장관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洪思德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그 신빙성에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林 당시 장관은 『金正日이 「(駐韓美軍 주둔에는)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그냥 적대관계에 있는 美軍이 있으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林 당시 장관은 이에 대해 『미국과 북한 간에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駐韓美軍이 북한에 대한 敵軍으로서가 아니라 南과 北 사이에서, 또는 주변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밸런싱 롤(Balacing Role), 안정의 역할, 스테이버라이징 롤(Stabilizing Role)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 역할을 하는 군대로 남아 있어야 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林 당시 장관은 『북한은 미국과 평화조약을 맺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이며, 그렇게 하려면 한반도에서 미국과 북한과의 군사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林 당시 장관은 駐韓美軍의 지위변경 내지 역할변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4者회담에서 駐韓美軍의 철수 대신 駐韓美軍의 「地位 변경」이라는 용어가 나왔는데, 「地位」라는 것은 敵軍으로부터 다른 地位로 바꾸는 것이다 … 金正日은 「역할 변경」이라는 말을 썼다. 駐韓美軍의 역할이 변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敵軍인데 무조건 남아 있으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林 당시 장관은, 金대통령이 「왜 밤낮 선전문구를 통해서는 駐韓美軍 철수를 주장하느냐」고 하자 金正日이 「그것은 對內用이다. 앞으로도 그것은 계속 그럴 것이다」라고 말하더라는 얘기까지 덧붙이면서 『선전용으로 떠드는 것과 본심과 구별해서 봐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북한의 일관된 주장은 駐韓美軍 철수
金大中 대통령이 「金正日도 駐韓美軍의 계속 주둔에 동의했다」는 주장을 점점 확대 再생산하는 동안, 북한 정권의 대변자인 관영媒體(노동신문·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民民戰 방송 등)들을 통해 나오는 북한의 주장은 단 하나, 「駐韓美軍 철수」뿐이었다.
南北 頂上회담의 흥분이 가시기도 前인 작년 6월16일 북한 평양방송은 『미국은 지금이라도 태도를 바꿔 美軍의 남조선 强占을 끝낼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 그들이 결코 駐韓美軍 철수 주장을 거두어 들이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북한 媒體들은 『南과 北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고 한 6·15 공동선언 제1조를 駐韓美軍 철수 주장의 논거로 활용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표4] 참조). 북한 媒體의 이러한 보도들은 『6·15 南北 공동선언에서 말하는 「자주적 해결」은 북한이 기존에 주장해 왔던 駐韓美軍 철수 주장과 연결되는 개념이 아니다』고 한 작년 6월19일字 朴在圭 前 통일부 장관의 국회보고와도 背馳(배치)되는 것이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6월19일字 논평에서 미국은 冷戰 종식으로 인해 駐韓美軍 주둔 명분이 더는 없게 되자 東아시아지역 안전보장에 기여한다는 등의 구실을 내걸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는 金正日이 駐韓美軍이 東北亞의 세력 균형자로 계속 주둔하는 데 동의했다는 金大中 대통령의 거듭된 주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南北 頂上회담 후에도 계속되는 북한의 駐韓美軍 철수 주장에 대해 金大中 대통령은 2000년 8월22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가지 논의를 통해 북한측이 美軍 철수를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철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적개심을 (美軍으로) 집중시켜서 국민의 단결을 꾀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년에 출범한 부시 美 행정부가 核이나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이외에 북한의 재래식 군비도 문제삼기 시작하자, 북한은 군비축소 문제를 駐韓美軍 문제와 연결시켰다([표4] 참조).
북한 媒體들의 駐韓美軍 철수 주장에 대해 金大中 대통령이나 林東源 특보는 「미국과의 대화가 안 되니까 심술을 부리는 것」이라거나, 북한 내부 선전용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금년 8월4일 金正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頂上회담 후 내놓은 러-北 공동선언은 그러한 주장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북한 媒體들의 駐韓美軍 철수 주장과는 달리 북한 측으로부터 「駐韓美軍 단계적 철수론」과 「駐韓美軍 지위 변경론」 같은 보다 유연해 보이는 제안들이 제기된 적도 있다.
1987년 7월23일 북한 정무원은 駐韓美軍의 단계적 철수와 남북한 군사력의 단계적 감축을 제의, 先駐韓美軍 철수를 주장하던 종전의 입장과는 다소 달라진 듯한 모습을 보여 준 것이 그 시초였다. 駐韓美軍 단계적 감축안은 1988년과 1990년에도 되풀이되었다.
북한의 입장은 「敵이 아닌 駐韓美軍이라면 잠시 주둔해도 좋다」는 것
1992년 1월22일 최초의 美-北 고위급 회담 당시 金容淳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은 아놀드 캔터 美 국무부 정무차관에게 북한이 駐韓美軍 주둔을 용인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캔터 前 차관은 金容淳의 제안에 대해 「통일 이후에도 駐韓美軍이 그대로 주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月刊朝鮮 2000년 8월호).
레온 시걸 美 뉴욕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북한의 주장은 「미국이 북한의 敵이라면 駐韓美軍은 분명 북한에 위협을 제기하므로 철수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敵이 아니라면 駐韓美軍도 위협이 될 수 없으므로 당분간 주둔해도 좋다」는 식』이라고 해석했다.
그후 북한은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모색하는 동안 잠정적으로 駐韓美軍이 주둔하거나, 美軍이 한반도에서 일종의 평화유지자·균형자·조정자로 기능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는 뜻을 수차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5] 참조). 1998년 3월 4者 회담 당시에도 북한 대표들은 駐韓美軍 철수를 논의하기 어렵다면 대신 駐韓美軍의 지위 변경 문제를 논의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작년 6월30일 金正日은 文明子씨와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美軍더러 나가라고 했지만, 그들이 당장 나가겠는가. 미국은 분단에 책임이 있는 만큼 통일에도 책임이 있다. 駐韓美軍 문제는 우선 그들 스스로 우리 민족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에서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19일 朴在圭 당시 통일부 장관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의 답변을 통해 金正日이 작년 南北 頂上회담에서 金大中 대통령의 駐韓美軍 필요론에 동의했다고 거듭 확인하면서 『작년 10월 訪美했던 趙明祿 차수도 駐韓美軍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과 같은 북한의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북한이 駐韓美軍 문제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駐韓美軍을 평화유지군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철기 동국大 교수).
그러나 북한의 주장은 어느 경우에도 韓美 동맹戰力으로서의 駐韓美軍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주장은 駐韓美軍이 그들에게 非적대적인 상태로 성격(지위)이 바뀐다면,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하기 전까지는 잠정적으로 주둔해도 좋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南北 頂上회담 당시 金正日이 『적대관계에 있는 美軍이 있으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林東源 前 통일부 장관의 국회답변과도 일맥상통한다.
金大中 대통령에게 보내는 질문서를 보내는 까닭은?
흥미로운 것은 金大中 대통령이 일찍부터 1992년 아놀드 캔터-金容淳 회담 당시 북한 측 제의에 대해 알고, 관심을 보인 것 같다는 점이다. 1993년 정계은퇴 상태였던 金大中씨는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美軍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미국 측에 대해 「상당 기간 駐韓美軍을 유지해도 좋다」고 통보했다. 미국의 책임 있는 複數의 지도자들로부터 이를 확인했다. 美軍이 철수해 한반도에 군사적 진공상태가 생기면 주변 강대국이 끼어들거나 서로 갈등을 빚을 것이 분명하다. 나토를 보라. 소련의 목적이 소멸했는데 그대로 美軍이 주둔하고 있다. 美軍이 한반도에 그대로 주둔하고 있어야 나토와 같이 美軍이 균형추 또는 조정자 역할을 해낼 것이다』
1995년 金大中 대통령이 이사장, 林東源 특보가 사무총장으로 있던 亞太평화재단에서 펴낸 「金大中의 3단계 통일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駐韓美軍을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되어 있다.
『첫째, 駐韓美軍의 규모와 역할이 조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韓美군사동맹체제를 再정립해야 한다. 방위의 主역할은 한국군이, 보조역할은 駐韓美軍이 담당하는 쪽으로 역할 再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駐韓美軍은 단계적으로 감축되어야 한다.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가 수립된 후에도 駐韓美軍이 주둔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때 가서 東北亞 안보정세와 駐韓美軍의 역할 등을 정밀하게 평가한 후 검토되어야 한다. 남북연합 후반기에 가서 주변 안보환경을 고려한 후 주둔 규모를 조정하되, 「東北亞 안보의 균형자」로서 일정 규모의 駐韓美軍이 계속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로서는 金大中 대통령이 「한반도 및 東北亞 안보의 균형자로서의 駐韓美軍」 역할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북한이 주장하는 駐韓美軍의 지위변경론과 같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金大中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구축 내지 통일時까지 駐韓美軍은 韓美 동맹戰力으로, 그 이후에도 東北亞의 균형자·안정자로 계속 한반도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북한은 駐韓美軍이 美-北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북한에 非적대적인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은 양해할 수 있지만, 그 후에는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駐韓美軍의 한반도 혹은 東北亞에서의 세력 균형자로서의 기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兩者는 묘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논리적으로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우리의 「연합제」案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案 사이에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 남북한의 爲政者들이 駐韓美軍 문제에 있어서 또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 방향에서 논의를 진행시켜 나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벌써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고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金大中 대통령이 그렇게도 높게 평가한 金正日의 발언이 『우리에게 非적대적인(편집자 注: 남북 간에 중립화된, 사실상 무력화된) 것으로 성격이 변화된 주한 미군은 계속 주둔해도 좋다』로 밝혀진 현재, 의문은 의혹으로 된다. 金대통령은 金正日의 駐韓 미군 중립화 주장에 동의한 것인가?
月刊朝鮮이 林東源 특보에게 - 사실상 金大中 대통령에게 - 보낸 서면 질의서는 바로 이 점을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을 기대한다.●
金大中 대통령은 평소 한반도의 안전과 東北亞의 세력균형을 위해서 駐韓美軍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또 韓美 상호방위체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해 왔습니다. 작년 6·15 정상회담 이후 金대통령은 6·15 정상회담 당시 金正日에게 『한반도와 東北아시아의 세력균형과 평화를 위해서는 美軍의 한반도 주둔은 통일 이후에도 필요하다』고 金正日을 설득했고, 이에 대해 金正日은 『나도 金대통령의 그러한 생각이 남측의 신문에 보도된 것을 읽었다. 그리고 내 심중에 金대통령 생각과 내 생각은 같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주변의 열강들을 생각할 때 美軍의 주둔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金대통령과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지난 8월 29일 林특보께서는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金大中 대통령의 위 발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때 林특보께서는 金正日은 당시 「조건이 있다. 그냥 적대관계에 있는 美軍이 있으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미국과 북한 간에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駐韓美軍이 북한에 대한 敵軍으로서가 아니라 南과 北 사이에서, 또는 주변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주고…」라고 말했다면서 『그러니까 밸런싱 롤을 말하는 것 같다. 또 안정의 역할, 스테이버라이징 롤을 말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하고자 합니다.
1. 金大中 대통령이 주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駐韓美軍은 韓美 동맹戰力으로서의 美軍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金正日이 주장하는 것처럼 韓美 동맹 戰力으로서의 성격이 거세된, 즉 북한 정권에 대한 적대적 자세를 포기한, 사실상 남북한 사이에서 中立化된 주한미군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경우 駐韓美軍의 성격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꾸게 되는 것입니까?
2. 金大中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金正日로부터 통일 후까지도 駐韓美軍의 주둔에 대해 동의를 얻어낸 것을 6·15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년 6월15일 대통령 訪北성과 對국민보고 등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또 그후 한 동안 6·15 공동선언에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는 있으면서 평화정착에 대한 논의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을 때에도 金대통령은 駐韓美軍 문제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8월 末에 이르러서야 金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駐韓美軍 문제에 金正日이 동의했다는 표현의 강도도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대한 저의 설명에 북측도 상당한 이해를 보였다』(2000.6.25 6·25 기념사)에서 『金위원장은 우리의 이런 입장에 확답은 하지 않았으나 반대나 불쾌감을 표시하지도 않았다』(2000.7.20 LA타임스 인터뷰)로, 그리고 8월 말 이후에는 『金正日과 駐韓美軍이 주둔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2000.8.26 獨 디 벨트紙 인터뷰), 『金正日과 만난 최대의 성과는 통일 후에도 美軍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얘기를 확실히 하도록 했던 일이다』(2000.9.15 日아사히 신문 인터뷰),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최대 성과는 駐韓美軍이 통일 이후까지도 주둔한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등으로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많은 국민들은 金大中 대통령이 『金正日도 통일 이후까지 駐韓美軍이 주둔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할 때, 지금처럼 韓美동맹 戰力으로서의 美軍을 의미하는 것이지, 북한에 非적대적인, 東北亞의 균형자로서의 美軍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韓美 동맹 戰力으로서의 美軍과 북한에 非적대적으로 탈바꿈한, 東北亞의 균형자로서의 美軍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林특보께서 그러한 사실을 6·15 정상회담이 있은 후 1년 2개월, 金대통령이 駐韓美軍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서야 밝힌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5. 金대통령과 林특보가 駐韓美軍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金正日이 「조건이 있다. 그냥 적대관계에 있는 美軍이 있으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미국과 북한 간에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駐韓美軍이 북한에 대한 敵軍으로서가 아니라 南과 北 사이에서, 또는 주변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주고…」고 말한 사실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던 것은, 金正日이 말한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어떻게든 햇볕정책을 끌고 가기 위해 국민들에게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입니까? 아니면 金大中 대통령 정부가 金正日의 그런 말, 즉 駐韓美軍의 성격 전환에 대해 찬동하고 있는 것입니까?
6. 金大中 대통령은 동유럽에서 공산위협이 사라진 이후에도 유럽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NATO와 美軍이 존속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美軍이 한반도에 있는 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평화유지군은 일반적으로 自衛를 위한 輕무장이 전부인 경찰 성격의 부대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평화유지군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주변 열강들 사이에서 균형자로서 역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7. 미국은 소말리아 등에서의 실패, 작전지휘권의 귀속 문제 등 때문에 평화유지군에 참가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미국이 駐韓美軍을 韓美 동맹 戰力에서 북한에 非적대적인 주변열강 간의 균형자로, 평화유지군으로 성격을 전환하는 데 동의하리라고 보십니까?
8. 金大中 대통령은 작년 9월3일 방송의 날 방송 3社 초청 특별 대담에서 『남북 간에 평화체제가 확립될 때까지는 駐韓美軍의 지위는 현재와 똑같다. 韓·美 양국의 안보조약에 의해서 駐韓美軍이 현재 있는 것이니까, 북한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다만 남북 간에 평화체제가 완전히 성립되고 미국이나 중국도 이것을 지지하고, 한반도에 냉전이 완전히 끝나고,이렇게 됐을 때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는 駐韓美軍의 성격은 많이 변화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더라도 駐韓美軍은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즉 평화체제 확립 전까지 駐韓美軍은 韓美 동맹戰力으로서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도 金正日이 동의했습니까? 아니면 金正日은 평화체제 구축 이전에 駐韓美軍을 북한에 非적대적인 존재, 즉 일종의 평화유지군으로의 성격 전환을 요구했습니까? 이에 대해 金대통령과 金正日이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 있습니까?
9. 金대통령은 금년 4월 국방부 업무보고시 『韓·美 연합방위체제는 통일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어야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 속에 한반도 평화가 지켜진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林특보께서는 金正日이 원하는 駐韓美軍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이지 않은 美軍이라고 하셨습니다. 韓美 연합방위체제를 유지하면서, 북한에 적대적이지 않은, 혹은 평화유지군으로서의 美軍이 존재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10. 金大中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金正日 위원장은 통일 후까지 駐韓美軍이 남아 있어도 좋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2000.12.10 노벨평화상 시상식 인터뷰), 『50년에 걸쳐 한결같이 주장해오던 美軍 철수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2001년 3월9일 미국기업연구소·미국외교협회 초청 오찬 연설)라고 말했는데, 駐韓美軍 관련 金正日의 의사 표시가 과연 공식적·공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11. 북한이 駐韓美軍의 성격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駐韓美軍 철수가 어렵자, 韓美 동맹 戰力으로서의 성격을 희석시키고 중립적인 존재로 만들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韓美 동맹 戰力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駐韓美軍이 존재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표1] 대통령 취임(1998년 2월)∼南北 정상회담 전까지 金大中 대통령의 駐韓美軍 관련 발언
●우리의 安保는 自主的 集團安保가 되어야 합니다. 국민적 단결과 사기 넘치는 强軍을 토대로 自主的 安保態勢를 강화하겠습니다. 동시에 韓美 安保體制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등의 集團安保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韓半島에서의 평화구축을 위해 4者 會談을 반드시 성공시키는 데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1998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사>
●韓美 연합군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와 東北亞의 안보를 위협하는 그 어떤 도전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1998년 5월25일 美 현충일 메시지>
●한반도의 정세는 冷戰 시대의 긴장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군사 위주의 對內外 정책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계속 위협하고 있을 뿐 아니라, 폐쇄적이고 대결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血盟의 전우인 韓美 양국군이 聯合司를 중심으로 긴밀히 협력하여 전쟁을 억제하고,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확고한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데 대해 마음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1998년 11월7일 韓美聯合司 창설 20주년 축하 메시지>
●자세한 내용은 파악할 수 없지만, 최근 북한이 美軍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을 했다. … (북한의 이런 의사표시는) 햇볕정책에 대한 하나의 호응이라고 생각한다. <1999년 4월6일 陸·空軍 장성진급식>
[표2] 南北 頂上회담(2000년 6월)부터 韓美 정상회담(2001년 3월)까지 金大中 대통령의 駐韓美軍 관련 발언
●저는 이번에 북측에 대해서 서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하자고 했고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를 문서로 만들어서 전달해 주었습니다. 核 이야기도 했고 미사일 이야기도 했습니다. 駐韓美軍 문제도 나왔고 국가보안법 문제도 나왔습니다. 얘기한 가운데 그 대화가 매우 유익했으며 그 중에는 아주 좋은 전망을 확인할 수 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2000년 6월15일 訪北성과 對국민 보고>
●駐韓美軍의 필요성에 대한 저의 설명에 北側도 상당한 이해를 보였다는 것을 저는 여러분에게 보고하면서 이것이 이번 평양방문의 큰 성과 중 하나라고 말씀드립니다. <2000년 6월25일 6·25 기념사>
●南北 頂上회담 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舊소련의 붕괴 이후에도 계속 유럽 안보를 보장해 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 후에도 東北亞의 안정과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美軍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金위원장은 우리의 이런 입장에 확답은 하지 않았으나, 반대나 불쾌감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2000년 7월20일 美 LA타임스紙와의 인터뷰>
●일부에서 駐韓美軍 문제에 대해 성급한 주장을 하는 사례가 있는데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미국이 있기 때문에 안보가 튼튼하고, 방위비가 절약되고, 한반도가 안정되어 있으며 南北대화의 진행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미국의 정책을 비판할 수 있으나 反美로 가는 것은 잘못이다. <2000년 8월1일 국무회의>
●나와 金正日 위원장은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駐韓美軍이 이 지역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둔해야 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2000년 8월26일 獨 디벨트紙와의 인터뷰>
●나는 통일 후에도 東北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美軍이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해 나갔다. … 그의 반응에 나는 놀랐다. 그는 『나는 한국의 신문을 읽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한 귀하의 입장을 알고 있다. 나는 어떻게 이 문제에 관한 견해가 나와 같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말들은 그의 말 그대로이다. <2000년 8월 30일 美 워싱턴 포스트紙와의 인터뷰>
●南北 간에 평화체제가 확립될 때까지는 駐韓美軍의 지위는 현재와 똑같다. 韓·美 양국의 안보조약에 의해서 駐韓美軍이 현재 있는 것이니까, 북한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다만 南北 간에 평화체제가 완전히 성립되고 미국이나 중국도 이것을 지지하고, 한반도에 냉전이 완전히 끝나고, 이렇게 됐을 때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는 駐韓美軍의 성격은 많이 변화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더라도 駐韓美軍은 있어야 한다. <2000년 9월3일 방송 3社 초청 특별대담>
●美軍문제는 북한과의 이번 대화에서 해결되었다. 頂上회담을 통해 金正日 위원장과 美軍 문제에 대해서는 통일된 후까지도 한반도에 美軍이 주둔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金위원장은 언론사 사장들에게도 駐韓美軍 문제는 미국이 알아서 결정해야 될 문제라고 얘기했다. <2000년 9월8일 美 경제계 인사들과 오찬>
●이번 頂上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한반도에서 세력 진공을 방지하기 위해 美軍이 앞으로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데 남북한이 견해를 같이한 것이다. … 나는 북한이 미국과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 그것이 그들의 기본 목표다. 그렇지 않고서는 북한이 駐韓美軍에 대한 입장을 바꿀 이유가 없다. <2000년 9월11일 美 뉴욕타임스紙 인터뷰>
●南北 頂上회담에서의 최대 성과는 駐韓美軍이 통일 이후까지도 동의한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美軍이 한반도에 있는 한 전쟁이 다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0년 9월29일 아시아 투자자 포럼 참석자 오찬>
●북한이 최대 쟁점으로 주장하던 駐韓美軍에 대해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였는데 왜 끌려다닌다고 하는가. <2000년 11월8일 광주지역 인사 오찬>
●북한은 과거 美軍 철수를 주장했었는데 南北 頂上회담에서 金正日 위원장은 통일 후까지 駐韓美軍이 남아 있어도 좋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2000년12월 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에서 CNN 인터뷰>
●지난해 6월 제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金正日 위원장은 駐韓美軍의 계속 주둔이 필요하다는 저의 주장에 동의했습니다. 50년에 걸쳐 한결같이 주장해 오던 美軍 철수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2001년 3월9일 美 기업연구소·美 외교협회 초청 오찬연설>
[표3] 韓美 정상회담(2001년 3월)부터 현재까지 金大中 대통령의 駐韓美軍 관련 발언
●먼저 우리의 對北정책은 남북한 간 화해협력을 통해 평화공존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韓美동맹에 입각한 튼튼한 연합방위태세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인식임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 이번 頂上회담에서도 북한의 안보 위협문제가 거론된 바 있으나, 우리는 결코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4700만 한국민과 3만7000 駐韓美軍의 안전을 최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을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2001년 3월8일 美 上·下院 외교위원장 주최 간담회>
●북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확고한 안보태세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있어야 한다.… 요새 간혹 북한 방송에서 美軍철수 주장이 나오는데 그건 협상을 위한 것이다.<2001년 6월 26일 해양경찰 및 해양수산 관계자 오찬>
●최근 북한이 美軍 나가라고 하는 것은 미국과의 대화가 안 되니까 심술을 부리는 것이다. <2001년 7월19일 민족통일협의회 임원 초청 다과회>
[표5] 駐韓美軍 단계적 철수 내지 지위 변경과 관련된 북한 인사의 발언
●駐韓美軍은 주둔하되, 南北의 통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는 입장을 수행해야 한다. 駐韓美軍이 지금 당장 한꺼번에 나가는 것이 좀 불가능하다면 단계적으로 연방제 형식의 통일이 실현될 때까지 美軍이 철수할 수 있다. <이삼로 북한 군축평화연구소 고문, 1992년 6월24일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에 관한 6개국 전문가회의」>
●南北이 무력을 10만명으로 축소한 후 자체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 때까지 美軍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 <1994년 4월 金日成. 在美 언론인 文明子와의 인터뷰>
●駐韓美軍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궁극적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미국의 東아시아 전략상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1995년, 북한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대표 이찬복 중장>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모색하는 동안,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駐韓美軍이 평화유지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美軍 주둔 자체가 아니라 군사훈련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이다. <1996년 4월 美조지아大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던 이종혁 노동당 부부장>
●駐韓美軍의 역할은 對北 억제에서 한반도 전체의 안정자와 균형자로 변형되어야 한다. <1996년 5월 이찬복>
,,,,,,,,,,,,,,,,,,,,,,,,,,,,,,,,,,,,,,,,,,,,,,,,,,,
전라도 위원장과 경상도 대통령
회담이 재개되자 김 위원장이 다시 통일방안에 대해 김 대통령에게 몇가지 질문을 했다.
“통일방안에 대한 야당의 입장은 뭡니까? 한나라당은 왜 남북관계의 개선 문제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마찰을 일으키는 겁니까? 그리고 이번 평양방문에는 왜 한 사람도 보내지 않은 겁니까?”
이번에는 김 대통령이 직접 설명했다.
“우리의 통일방안은 89년 현 야당이 집권할 때 여야합의로 마련된 것으로 야당이 근본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아요. 다만 한나라당은 남북관계 개선으로 대한민국의 주체성과 안보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물론 그건 기우이지요. 그리고 대북지원에 대해서는 ‘엄격한 상호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 하고 있어요. 사실 이번 평양방문에 개인적으로는 동행하고 싶어하는 야당의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따님인 박근혜 의원도 동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허가하지 않아 아쉽게 된 셈이지요.”
“우리가 지금 아무리 좋은 합의를 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해나간다 해도 만약 그런 한나라당이 차기에 다시 집권하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께서는 가령 한나라당이 차기에 집권한다면 대북정책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한나라당이 지금 야당이다 보니 정략적으로 그러는 거지 만약 집권한다면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남북연합은 그들도 주장한 것이고 남북이 평화공존하자는 데도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구체적인 정책 이행방법상에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이어서 김 위원장이 매우 흥미로운 발언을 했다.
“제가 대통령께 비밀사항을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군 주둔문제입니다만…. 92년 초 미국 공화당정부 시기에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남과 북이 싸움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댔습니다. 역사적으로 주변강국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가치를 탐내어 수많은 침략을 자행한 사례를 들면서 ‘동북아시아의 역학관계로 보아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해줬어요. 제가 알기로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것이 남조선 정부로서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많겠으나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김 위원장의 말은, 1991년 12월에 남북화해협력과 불가침에 관한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것을 미국에 전하며 “북미 관계개선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뜻이었다. 또한 미군이 계속 주둔하되 ‘미군의 지위와 역할을 변경하여 북한에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평화유지군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언론매체를 통해 계속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건가”고 김 대통령이 질문한데 대해 김 위원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열망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이 거듭 제기하고 있는 핵개발 문제나 미사일 문제는 모두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된다면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는 김 대통령도 누누히 강조하고 바라던 바였다.
“지난번 김 위원장을 만나고 온 임동원 특사로부터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에 대한 견해를 전해듣고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민족문제에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실 줄 몰랐거든요. 그렇습니다. 주변강국들이 패권싸움을 하면 우리 민족에게 고통을 주게 되지만, 미군이 있음으로써 세력균형을 유지하게 되면 우리 민족에게도 안정을 보장할 수 있게 됩니다.”
“대통령과 제가 본은 다르지만 종씨라서 그런가, 어쩐지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 한 것입니다.”
참석자들은 김 위원장의 조크에 모처럼 긴장을 풀고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김 대통령이 본관이 어디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전주 김씨’라고 대답했다.
“전주요? 아, 그럼 김 위원장이야말로 진짜 전라도 사람 아니오! 나는 김해 김씨요. 원래 경상도 사람인 셈이지요.” 좌중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이처럼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 중에도 김 위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문제는 결코 외세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우리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대통령도 “그러한 견해에 근본적으로 동의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도 다른 나라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둘이 결정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거 아닙니까. 말씀대로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힘을 합쳐 주도하되 주변국의 지지와 협력을 얻어나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배타적 자주’가 아니라 ‘열린 자주’가 되어야 합니다. 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고, 한 자리에 영원히 앉아 있는 사람도 없는 법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책임지고 있을 때 힘을 합쳐 함께 잘 해나갑시다.”
정상회담이 마무리단계로 들어가자 ‘공동선언 채택의 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선언문의 서명은 누구 명의로 할 것인가’의 문제로 양측은 다시 격돌했다. 김 위원장은 “이만하면 충분히 토론하고 대부분 조정되었으니 내일 아침에 각기 공동선언 초안을 제시하여 최종 합의하고 정오 12시에 발표하도록 하자”고 먼저 제의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내일 조간신문에 보도될 수 있도록 오늘 저녁에 합의하되, 합의 날짜는 내일 날짜인 6월 15일로 하자”고 주장했다.
“내일 12시에 발표하면 모레 조간신문에야 나오기 때문에 너무 늦어 안 됩니다. 내일 아침 신문에 바로 보도될 수 있도록 오늘 저녁에 합의해야 합니다.”
“그럼, 수표(서명) 문제는 상부의 뜻을 받들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용순과 대한민국 국정원장 임동원이 하는 걸로 합시다.” 김 위원장의 다소 엉뚱한 말에 김 대통령은 정색을 하며 반대했다.
“김 위원장하고 나하고 두 사람 이름으로 서명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게 안 하면 용 그려놓고 눈 안 그린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뭐, 합의의 격을 낮추자는 뜻은 아니고… 북쪽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있으니 제가 수표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수표는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하고 합의 내용은 제가 보증하는 식으로 하면 되겠습니다.”
김 위원장의 대안제시에도 김 대통령은 펄쩍 뛰었다. 발표시간의 문제는 그럭저럭 합의가 되었지만, ‘수표(서명)’의 문제에서는 도무지 합의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김용순 비서가 “두 분의 존함만 표기하는 방안은 어떻겠습니까?”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으나, 김 대통령은 “직함을 안 쓰고 이름만 쓰면 여러 가지 오해가 생긴다”며 이 역시 거부했다. 이에 김 위원장이 말했다.
“과거 7.4공동성명도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과 김영주, 이런 식으로 한 예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대표해서 임동원, 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표해서 김용순, 이렇게 합시다.”
“그때는 이후락 씨가 왔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인 내가 직접 와서 정상회담을 하는 거 아니오. 좀 시원하게 해주셔야지 않겠소?”
김 대통령은 섭섭한 마음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이때 내가 다시 개입했다.
“위원장님.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양측이 합의한 바 있습니다. 굳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서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공동선언에는 직접 만나서 합의한 두 분의 서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직함은 국방위원장도 좋고 노동당 총비서도 좋습니다만 ‘김정일’이라는 존함은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이 선언문은 우리 민족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념비적인 문건입니다. 이것을 마련하신 두 분이 직접 서명하여 역사에 길이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이 얼마나 역사적이고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그리고 두 정상이 직접 서명하셔야 합의사항의 실천도 확실하게 보장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
역시 절묘한 순간에 터져나온 김 위원장의 조크였다. 김 대통령이 지지 않고 “김 위원장도 전라도 전주 김씨 아니오. 그렇게 합의합시다” 하며 다그치자 좌중에서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개선장군 좀 시켜주시면 어떻습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
그제야 김 위원장이 미소와 함께 양보할 뜻을 내비치며 “수표는 언제 하게 되는 겁니까?” 하고 내게 묻길래 “공동선언문의 우리 측 초안은 이 회담이 끝나는 대로 즉각 제시하겠으며, 김용순 비서와 문안 조정을 거쳐 만찬이 끝나는 대로 서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김용순 비서도 “두 분께서 합의하셨으니 될수록 빨리 하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저녁 7시경,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이렇게 종료되었다.
'朴정권의 살인음모'(트럭사고)를 슬그머니 접은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씨측은, 지금까지의 주장이 잘못된 점을 사과하고 트럭운전사에겐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趙甲濟
내가 며칠 전 '김대중 자서전'을 구해 맨 먼저 찾아본 대목은 1971년 5월 목포-광주간 國道상에서 일어났던 교통사고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줄곧 이 사고가 박정희 정권이 자신을 죽이려 한 살인음모였다고 주장해왔다. 月刊朝鮮을 제외한 수많은 언론도 이런 주장을 검증 없이 그대로 옮기더니 작년 김 전 대통령이 사망하였을 때는 아예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였다.
심지어 작년 그의 喪中(상중)에 유족측이 공개한 김대중씨 日記(2009년 6월2일자)에도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자서전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 김씨는 자신 있게 교통사고가 트럭을 이용한 박정권의 살인음모라고 주장해왔는데, 이번 자서전에선 그 대목이 빠졌다. 자신이 탄 승용차를 들이받은 트럭운전사가 의문의 죽음을 하였다는 주장(이는 사실이 아니다)도 보이지 않았다. 간단하게 의문점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
<(사고를 낸) 대형트럭의 소유자는 공화당원인 변호사였다. 검찰은 운전기사를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돌연 사건을 담당하였던 검사가 좌천을 당하고 바뀐 검사는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해버렸다.>
과거의 자세한 묘사와는 너무 달라졌다. '살인음모' 주장을 사실상 철회한 셈이다. 그가 자서전에서 제기한 의문점도 모조리 사실이 아니다. 대형트럭의 소유자는 공화당원이 아니고 그의 아버지가 공화당원이었다. 검찰은 사고 운전사를 살인혐의로 기소한 적이 없었다. 담당검사가 바뀐 적도 없다. 좌천되지도 않았다. 수사 검사는 수사중 어떤 압력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더구나 그 검사는 김대중 정부 시절 全南道知事를 지낸 許京萬씨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서전 집필과정에서 이처럼 태도를 바꾼 것은 필자와 전 月刊朝鮮 禹鍾昌 기자가 세 차례의 수사식 보도를 통하여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사실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박정희 정권이 트럭을 이용, 김대중씨를 죽이려 하였고, 김씨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그때의 부상으로 평생 고생하였다는 이야기는 김대중 神話(신화)의 중요한 요소였다. 김씨측에서 하도 그런 주장을 끈질기게 하니 많은 국민과 기자들이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김대중씨는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도 '다섯 번이나 독재자들로부터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고 말함으로써 트럭사고를 포함시켰다. 이 바람에 트럭운전사는 살인음모의 하수인이 되어 큰 心的 고통을 겪었다.
그렇다면 김대중씨측은 자서전에서 슬그머니 '살인음모설'을 취하하는 데 그쳐선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주장이 잘못된 점을 사과하고 트럭운전사에겐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진실에 굴복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
한 운전기사를 암살기도범으로 모는 데 평생을 바친 노벨평화상 수상자
트럭사고를 박정희 정권의 암살기도라고 주장한 김대중 日記를 공개한 유족들의 책임도 크다.
趙甲濟
오늘 유족들이 공개한 김대중 日記 6월2일자에는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김대중씨는 이미 단순교통사고로 밝혀진 사건을 타계하기 직전까지도 살인음모라고 주장하였다. 유족들이 이 부분을 삭제하지 않고 공개함으로써 트럭운전사를 살인미수자로 모는 중대한 명예훼손을 저지른 셈이다. 김대중씨가, 박정희를 惡黨으로,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하여 한 무고한 시민을 살인미수범으로 조작하였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85년 4월15일 저녁 필자는 月刊朝鮮 기자로 근무중이던 吳効鎭씨와 함께 김대중씨를 만나러 갔다. 그가 동교동 자택을 개축하기 위하여 비우고 길 건너 창천동에서 집을 전세 내어 입주한 직후였다. 2층 서재에서 김씨는 밤이 늦도록 김대중 납치사건과 트럭사고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生(생)과 死(사)를 오고간 장면에다가 권력자의 음모가 등장하고 미국 CIA 이야기까지 나오니 흥미진진하였다. 박 정권이 트럭을 동원하여 자신의 승용차를 밀어 죽이려 하였다는 술회 끝에 김씨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은 내가 다 알아요. 누가 시켰다는 걸."
― 누가 시켰습니까?
"당시 대통령 측근들이예요. 그 트럭의 소유자가 그 당시 공화당 전국구 후보로 등록된 모 변호사예요. 그 운전사 사건을 처음 담당한 검사는 갈려버리고 운전사는 교통사고를 냈다고 1년 징역을 받았는데 다 살지 않고 나왔고 나중에 의문의 죽음을 했어요. 저는 다섯 번의 죽을 위기에서 다 살아나왔는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의 도구로써, 당신의 목적에 쓰시려고 그렇게 구해주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박정희가 트럭으로 政敵(정적)을 죽이려 하였고, 실패하자 증거인멸을 위하여 운전자를 없애버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1987년 大選(대선) 운동기간중 김대중씨는 연설을 통해서 이 트럭사고를 자주 언급하고 다녔다. 나는 월간조선 그해 11월용 기사로 ‘1盧3金의 약점’이란 주제의 글을 준비하다가 이 트럭사고를 취재하게 되었다.
필자가 알아보니 사고 트럭은 범한화물(주) 소속이었다. 사장은 洪國泰(홍국태)씨. 그의 아버지가 사고 당시 공화당 전국구의원 후보였던 洪承萬(홍승만·작고·당시 대한변협회장). 洪사장은 기자에게 『그 사고는 단순 교통사고였다』면서 『신민당원들이 사고 운전사 집에 몰려가 괴롭혔다. 수사와 재판은 공정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金大中씨로부터 『운전사가 의문의 죽음을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운전사와 접촉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알아보았더니 그는 부산시 동래구 연산 6동에서 살고 있었다.
權重億(권중억·당시 51세)씨는 아직도 회사 출퇴근 버스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와 통화를 해서 15년 전의 사고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렇게 반문하는 것이었다.
『그 사고가 문제가 되어 있습니까』
權씨는 이렇게 사고를 설명했다.
『그때 비가 좀 내리고 있었습니다. 경기 영 7-4755호 트럭을 몰고 목포로 가는데 무안군에서 마주 오던 차량 행렬을 보았습니다. 택시가 맨 앞에 있었고, 그 뒤를 따라 오던 세단차―여기에 金大中씨가 타고 있었다는 것을 사고 뒤에 알았습니다―가 중앙선을 넘어 택시를 앞지르려고 하는 것을 제가 보고 당황했습니다. 급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비탈길에 비가 내려 그런지 왼쪽으로 미끄러지면서 세단을 약간 스치고 뒤따라오던 택시를 정면으로 들이받아 그 안에 타고 있던 두 명이 죽었습니다. 저는 뛰어내려 택시 승객부터 끌어냈고, 지나가는 차들한테도 구원을 청했습니다. 세단차는 길 아래로 처박혔는데 그 차에 탔던 사람들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겠어요』
―현장에서 달아났습니까.
『아뇨. 거기에 있다가 경찰차가 조사하러 와서 경찰로 끌려가 구속되었지요. 금고 10개월의 형을 받았습니다. 형을 다 살고나와 보니 살림이 엉망이 되고, 결국 아내와 헤어진 뒤 두 딸을 키우며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세단차에도 사고의 책임이 있다는 말씀 같은데?
『법률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사고를 유발시킨 것은 세단차의 중앙선 침범이었어요. 그래도 저의 잘못이 크지요』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 고의성 있는 사고라는 쪽으로 추궁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없었습니다. 지금 선생님한테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1997년 11월15일 도서출판 산하에서 출간된 당시 대통령 후보 金大中씨의 自傳的 에세이 「나의 삶 나의 길」에도 트럭사고의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암살음모설을 유지했다. 金大中 당시 국민회의 총재는 이 에세이에서 「나는 그(사고) 때문에 반년 이상을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고 다리와 허리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서 진찰해 보니 股關節(고관절)에 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야만적인 독재정권이 선물한 교통사고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고 썼다.
1998년 7월 하순 月刊朝鮮 禹鍾昌 기자는 부산으로 내려가 權重億씨를 찾아갔다. 62세인 그는 여전히 부산시 연산동 달동네에서 재혼한 부인과 어렵게 살고 있었다. 모 회사의 야간 경비 근무로써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權씨는 트럭 사고의 피해자가 대통령이 되어 상당히 불안한 모습이었다. 그는 『동네에서도 직장에서도 모르고 있는 일』이라면서 『제가 이 사실이 알려져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세 식구가 굶어죽게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당시 수사 검사:『외압은 없었다』
1992년 대통령 선거 전에 그는 광주 경찰서에 불려가 트럭 사고와 관련하여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權重億씨는 사고 상황에 대해서는 1987년에 趙甲濟 기자에게 이야기했던 것을 되풀이하였다.
『사고가 난 날은 비가 왔습니다. 왕복 2차선 도로이고, 커브를 지나자마자 맞은 편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달려오는 차를 보았습니다. 급 브레이크를 밟았지요. 빗길에 차가 밀리는데 아무리 핸들을 틀어도 틀려야 말이지요. 차가 90도 각도로 10m쯤 미끄러졌는데 스키드 마크 자국이 선명히 났습니다. 조사한 사람들이 그것을 다 보았고, 조사 기록에도 다 나와 있습니다』
禹鍾昌 기자는 1998년 月刊朝鮮 9월호에 실린 「대통령님, 오해를 푸십시오」란 題下의 기사를 취재 중 金大中 대통령의 둘째 아들 金弘業씨의 아내 申仙蓮씨의 아버지 申鉉守씨(前 감사위원)가 사고를 낸 트럭회사의 사장이던 洪國泰씨와 인척 간임을 밝혀냈다. 洪國泰씨의 할머니가 申鉉守씨의 고모가 된다는 것이었다. 申씨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洪國泰씨가 소유하고 있는 한국 컴퓨터의 상임고문에 취임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禹鍾昌 기자는 또 이 트럭 사고를 수사한 검사가 국민회의 소속 許京萬(허경만) 전남지사임도 알아냈다. 許지사는 당시 목포 검찰 지청 소속 검사였다. 그는 『상당히 고의적으로 난 사고일 가능성이 있고, 金대통령도 그렇게 주장했었다』면서 『金대통령에게 「그런 의심은 가지만 운전사가 졸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본인이 자백해 주지 않으면 살인 예비혐의로 기소하기에는 참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고 그렇게 처리했던 사건이다』는 요지로 말했다.
許京萬 지사는 金大中씨의 주장과는 달리 자신이 이 사건을 끝까지 맡아 기소했고 그 뒤에 인사발령에 따라 인천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수사할 때 외부로부터의 압력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급제동을 걸 때 생기는 스키드 마크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禹鍾昌 기자는 『그 트럭 운전사가 요즘 뭘하고 있는지 압니까』 하고 물었다.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현지에서 무슨 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그 후 金대통령 측근으로부터 들었습니다』
2000년 12월10일 밤 金大中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다. 필자는 金大中 대통령이 수상 연설에서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서 충격을 받았다. 2001년 1월호 月刊朝鮮 「편집장의 편지」에서 기자는 「金大中 대통령이 오해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운전사) 權씨를 살인미수범으로 몰고 있다면 노벨평화상의 수상 자격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1985년 김대중씨가 나에게 말하였던 음모설은 전부가 근거 없는 것임이 밝혀졌다. 의문의 죽음을 했다는 운전사는 살아 있었다. 더구나 수사검사는 아무런 압력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김대중씨는 단순 교통사고자를 살임미수범으로 몬 데 대하여 한 마디 사과는커녕 오늘 공개된 일기를 통하여 또 다시 權씨를 괴롭혔다. 이젠 김대중씨 유족들이 수십년간 계속해온 허위의 주장에 대하여 도덕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한 시민의 人權을 이렇게 짓밟아놓고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저승으로 갔다.
..................................
金日成은 생전에 미국과 일본의 지원만 없으면 남한은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하면서 미국과 일본을 남한 정권이 쓰고 있는 갓의 양쪽에 달려 있는 갓끈과 같다고 풍자하였다. 남한 정권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떼버리면 양쪽의 갓끈이 떨어진 갓 모양으로 되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 버리는 가엾은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통치자들은 남한과 미국, 일본과의 친선의 유대를 끊어버리는 것을 중요한 對南전략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 통치자들은 現시기 주된 외세를 미국으로 보고 있지만 일본이 남한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남한에 대한 일본의 지원도 중요시하고 韓日관계를 이간시키는 데 큰 관심을 돌리고 있다
북한의 외세반대, 자주통일전략은 북한 공산통치자들의 가장 교활한 기만 술책이다.
,,,,,,,,,,,,,,,,,,,,,,,,,,,,,,,,,,,,,,,,,,,,,,,,,,,,,,,,,,,,,,,,,,,,,,
1977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東獨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에게 김일성은 이런 말을 하였다. 독일 통일 후 입수한 회담록에서 옮긴다.
"남한에서 朴正熙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지 않고 정당한 민주인사가 정권을 잡는다면 그 사람이 反共주의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면 통일의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에서 어쨌든 민주인사가 권력을 잡으면 조선의 평화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민주적인 상황이 이루어진다면 노동자와 농민이 그들의 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군대는 물러가야 합니다. 남한 민중이 그들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김일성은 남한이 민주화되고 반공주의자가 집권해도, 노동자와 농민들의 활동이 자유로와지므로 對南공작에 유리하고, 특히 남한사람들 손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1980년대 金泳三 같은 민주투사들은 "좌익은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로 생긴 것이므로 민주화만 되면 사라질 것이다"고 했었는데, 김일성의 전략판단이 적중하고, 金泳三의 막연한 낙관론은 빗나갔다.
黃長燁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은 "남한 정권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떼버리면 양쪽의 갓끈이 떨어진 갓 모양으로 되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 버리는 가엾은 신세가 되고 만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주한미군 철수와 韓美동맹 와해를 가장 중요한 對南적화공작 목표로 설정, 끈질기게 추진해온 이유는 한국과 1 대 1로 대결하면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은 통일정책이 아니라 對南적화전략을 위장하기 위한 전술이다. 연방제는 두 개의 체제와 이념을 그냥 두고 중앙정부를 만들어 통일한 것으로 하자는 뻔한 사기이지만, 이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연방제의 뒷면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이기 때문이다. 연방제는 주한미군 철수用이라고 보면 된다.
<조선의 통일은 사회주의 진영에도 이익이 되고 일본 내에서 혁명을 자극하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정책은 조선의 분할에 있습니다. 두 개의 조선을 존속시키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으며 우리와 평화협상도 안하고 그들의 군대를 남한에서 철수시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남한의 애국자들이 권력을 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내를 갖고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한에서 朴正熙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지 않고 정당한 민주인사가 정권을 잡는다면 그 사람이 反共주의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면 통일의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朴正熙를 고립시키고 남한의 민주화 투쟁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인내심을 갖고 투쟁해야 합니다. 남한에서 어쨌든 민주인사가 권력을 잡으면 조선의 평화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군사력을 감축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한을 공산주의로 만들고자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언했기 때문에 그들도 우리의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노력해서는 안됩니다. 외국군대는 물러가야 합니다. 남한 민중이 그들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한반도 통일의 문제를 해결할 때 우선 두 개의 한국을 만들려는 것에 반대해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남한의 애국세력이 민주화 투쟁을 더 많이 펼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朴正熙 괴뢰정부를 완전히 고립시켜야 합니다. 며칠 전 정부의 억압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朴正熙가 무너졌을 때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민주적인 상황이 이루어진다면 노동자와 농민이 그들의 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년 전부터 있었던 김대중의 수상한 言動
- 趙甲濟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10-09-07, 2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