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를 한 로마황제들의 최후

카라칼라
마크리누스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필리푸스 아라부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비명횡사한 3세기 로마황제들 가운데 일부다. 이 시기 비명횡사한 황제는 이들 말고도 많다.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211년부터 284년까지 재임했던 로마 황제 22명 가운데, 14명이 암살됐고, 2명이 자살, 2명이 전사했으며, 한 명은 적의 포로가 되어 옥사했다. 그 중 위에 거명된 황제들은 적에게 유화정책 내지 '퍼주기'를 시도하다가 비명횡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폭군으로 악명 높은 카라칼라 황제(211~217)는 파르티아와의 전쟁에 나섰다가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파르티아 왕녀와의 결혼을 조건으로 講和를 제안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전황이 불리한 상황에서는 적과 강화하지 않으며, 로마의 황제는 외국 여자와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었다. 카라칼라의 제안이 알려지자 원로원을 중심으로 反카라칼라 분위기가 확산됐다. 결국 카라칼라는 그의 제안에 분개한 경호대장에게 암살당했다.

카라칼라의 뒤를 이은 것은 카라칼라 암살을 사주한 근위대장 마크리누스(217~218)였다. 그는 戰時에 최고사령관이기도 한 황제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고 생각한 장병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됐다.
마크리누스의 지휘 아래 로마군은 첫 번째 싸움에서는 파르티아군에게 밀렸지만, 2차전에서는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겨울이 와서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마크리누스는 파르티아와의 강화를 서둘렀다. 빨리 전쟁을 끝내고 로마로 돌아가 권력기반을 굳히기 위해서였다. 그는 전리품 반환, 배상금 지급,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의 완전 철수 등 파르티아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는 '마크리누스가 진행한 것은 외교가 아니었다. 외교는 되도록 '적게' 주고 되도록 '많이' 받는 기술이지만, 마크리누스는 상대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더라도 빨리 교섭을 매듭짓자는 자세였기 때문이다'라면서 '권력자는 설령 미움을 받더라도 경멸당하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그런데 파르티아와의 저자세 외교로 그가 얻은 것은 경멸뿐이었다'고 평했다.
결국 로마군 장병들은 자신들이 피흘려 달성한 전과들을 모두 포기한 황제에게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마크리누스는 병사로 변장해 달아나다가 병사들의 불심검문에 걸려 살해됐다.

알렉산데르 세베루스(222~235) 황제는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라 나름대로 성심을 다해 나라를 이끌었다.
그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라인 강변으로 출정했으나, 막상 전선에 당도해서는 은밀히 게르만족과의 강화를 추진했다. 그는 게르만족들에게 경제적 이득을 제공해 로마化,농경민족화했던 先帝들의 전례를 답습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로마제국을 위협했던 게르만족은 로마제국의 막강한 군사력에 눌리고, 내심 로마제국의 선진문물을 부러워하고 있던 전 시대의 게르만족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로마化나 농경민족화보다는 한때의 약탈을 선호하는 글자 그대로 '야만인'들이었다. 게르만족들과 오랫동안 대치하면서 자신들이 상대하는 게르만족의 실체를 잘 이해하고 있던 병사들이 볼 때,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의 강화 교섭은 말도 안 되는 행위였다.
결국 235년 3월 병사들이 봉기했다. 황제의 막사로 난입한 병사들은 황제에게 칼질을 하면서 '언제까지나 젖내 나는 놈!'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필리푸스 아라부스(244~249)는 고르디아누스3세의 근위대장 출신으로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 병사들을 사주해 고르디아누스3세를 살해하고 제위에 올랐다. 그는 아랍 출신으로 '아라부스'는 아랍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빨리 로마로 돌아가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로마군이 점령했던 북부 메소포타미아와 전통적으로 로마의 영향력 아래 있던 아르메니아 왕국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서둘러 사산조 페르시아와 강화조약을 맺었다.
248년 게르만족이 도나우강 방면으로 침공했다. 국민들과 병사들은 그가 친히 전선으로 나가 게르만족을 토벌하기를 희망했지만, 아라부스는 로마시장 데키우스를 전선으로 파견했다.
아라부스가 제위에 오를 때, 사산조 페르시아에 과도한 양보를 했던 것을 잊지 않고 있던 병사들은 반란을 일으켜 데키우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병사들과 원로원으로부터 버림받은 아라부스는 자살했다. 원로원은 아라부스를 제국의 모든 공식기록에서 그의 이름과 업적을 말살하는 '기록말살형'에 처했다.

데키우스 황제는 도나우 강변으로 쳐들어온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병사들은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먼 모이시아 속주' 총독 트레보니아누스(251~253)를 황제로 추대했다.
그러나 트레보니아누스는 게르만족과의 싸움 대신 강화를 택했다. 그는 고트족에게 로마 영토 내에서 철수할 것을 애원했다. 그는 그 댓가로 고트족이 약탈한 재물과 포로로 잡은 로마인들을 모두 가져가는 것을 허용했고, 해마다 年貢을 바치기로 약속했다.
고트족은 만족해서 철수했지만, 이번에는 병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고트족과 싸우라고 황제로 추대했더니, 오히려 굴욕적인 강화를 맺은 황제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도나우강 방면의 로마군과 라인강변의 로마군들은 반란을 일으켜 각각 자기들의 사령관을 황제로 추대했다. 트레보니아누스는 도나우 강변의 반란군을 진압하러 나갔다가, 휘하 병사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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