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9월21일) 추석 연휴 첫날을 맞아 경기도 양주에 있는 처가에 다녀왔다. 7호선 지하철을 타고 내방역(서초구 방배동)에서 내려 역사(驛舍) 밖으로 나오려는데, 비가 쏟아지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천둥 번개도 심심찮게 쳐 댔다.
 
한동안 역사 안에 있다가 비가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아 역사 밖으로 나왔더니, 세상에, 도로를 누런 흙탕물이 뒤덮고 있었다. 곳곳에서 하수구 물이 1m는 넘을 것 같은 높이로 치솟아 올랐다. 승용차들은 타이어 절반 정도가 물에 잠길 정도였다.
 
버스를 타기 위해 차도(車道)로 내려섰는데, 종아리까지 물에 찼다. 고(高)지대로 가면 좀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부순환도로 아래쪽 도로에 있는 정거장에서 내렸는데, 침수 정도가 훨씬 더했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순간, 거센 물살에 다리가 휘청할 정도였다. 주택가 이면도로도 흙탕물로 넘쳐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네 떡집 주인은 불어나는 물을 보면서 "이러다가 가게까지 물에 잠기는 것 아니냐?"면서 마음을 졸였다.
 
어이가 없었다.  이 동네에 사는 10년 동안 사는 동안, 아니 내 평생에 이런 물난리는 겪은 적이 없었다 (물론 이보다 훨씬 심한 물난리를 겪은 분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추석 연휴 첫날의 기습 폭우로 난리가 난 곳은 우리 동네만이 아니었다. 홍대역 등 지하철역,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도 침수됐다. 강남역 인근 삼성타워에 입주해 있는 은행에서 근무하는 동생도 은행이 침수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나갔다고 한다.
 
展示행정에만 신경쓰더니...
 
언론에서는 추석연휴로 인해 공무원들이 쉬는 바람에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고 비난을 해댔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무원들이 추석 연휴를 맞아 쉰 것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인들 이런 상황을 예견이나 했겠는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공무원들이 비난을 받아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평소에 그들이 충분한 수해대책을 세우고, 비상대비태세를 갖추었으냐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 서울시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평소 '디자인 서울'을 시정(市政)의 1순위로 삼아왔다. 서울 거리를 아름답게, 보기 좋고, 걷기 좋은 거리로 꾸미자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덕분인지 서울거리의 간판이나 각종 안내판이 예뻐진 것은 사실이다.
 
지방자치제 하의 구청장들도 아름다운 육교를 놓고, 보도블록을 다시 깔고, 구민체육회관이나 문화회관을 만드는 등 눈에 보이는 치적을 쌓는 데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서울시장, 구청장 할 것 없이, 하수시설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는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의문이다. 그 결과가 바로 이번 추석 물난리였다. 오세훈 시장이 공들여 닦아놓은 광화문광장이 가장 먼저 물에 잠긴 것은 무척이나 상징적인 얘기다. '디자인 서울'이 속절없이 당한 것이다.
 
구멍난 안보
 
문제는 이런 전시(展示)행정이 곳곳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안보 분야도 마찬가지다.
해군의 경우 '대양(大洋)해군' 의 기치 아래 세종대왕함 등 이지스함을 건조하고, 해적 소탕을 위해 한국형 구축함을 소말리아 해역으로 파견했다. 물론 필요한 일들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수도권 앞바다가 적(敵)에게 뚫렸고, 천안함이 공격받아 46명의 병사들이 생명을 잃었다. 해군이 자랑하는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은 무기고(武器庫)가 비어 있는 '무늬만 이지스함'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그뿐이 아니다. 해외 수출까지 꿈꾸는 '명품 국산무기'라는 K1전차는 사격 도중 포신이 터져 바나나 껍질처럼  되어 버렸다. K21장갑차는 침수사고로 차내에 있던 병사가 익사했다. K9 자주포와 이를 지원하는 궤도차량들은 1년 내내 정비창에 들어가 있다. 웅자(雄姿)를 뽐내는 공군전투기들도 부품부족으로 추락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이 역시 '안보전시행정'의 결과다. 우리 군(軍)은 그동안 새로운 무기, 첨단 무기를 들여오고, 자리를 만들어주는 새로운 부대를 만드는 데는 열심이면서, 겉으로 보이지 않는 전비(戰備)태세를 확립하고, 무기의 부품을 확보하는 일, 병사들을 첨단 무기 체제에 걸맞게 숙달시키는 일에는 게을리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적의 기습공격에 당하고,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有備無患
 
서울시는 말한다.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9월에 이런 폭우가 쏟아진 것은 처음이라고....
천안함 사태 후 군 당국은 말했다. 수심이 얕은 서해로 적 잠수정이 들어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변명일 뿐이다. 바로 그런 사태에 대비하라고, 그런 사태를 당했을 때 허둥대지 말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라고, 국민들은 세금을 내서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군대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태에 대비하지 못했다면, 그 공무원, 그 군인은 월급값을 못한 것이다. 문제는 월급값 못하는 공무원과 군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일이 터지면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을 너무 태연하게 늘어놓는 그들의 행태야말로 그들이 얼마나 공직부적격자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도로가 침수되고, 집이나 사무실에 물이 들어오는 것은 그나마 견딜만한 일이다. 어제 그토록 흙탕물이 넘쳐나던 도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소의 모습을 회복했다.
하지만 안보는 다르다. 아차 잘못하면 나라가 망하고, 국민들은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잃고 노예가 될 수 있다.
 
서울시정(市政)이건, 안보건, '전시행정'으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근본부터 튼튼히 하는 행정이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되새길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