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化의 종범(從犯)이 된 인도적 지원론자들

對北인도적 지원의 한반도 평화 파괴 프로세스(4)
어쩌면 정부의 책임이 가장 컸는지 모른다.‘겁먹은’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언론의 거짓선동, 북한과 종북(從北)세력의 의도를 국민에 알리지 않았다. 비겁한 대통령은 2008년 6월19일 “국민들을 편안히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며 항복선언을 발표했다. 좌파 미디어의 거짓선동과 북한 + 종북(從北)세력이 주도한 불법폭동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도 없었다.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며 거짓선동, 불법폭동에 면죄부를 부여해 버렸다.
사본 -집단농장으로 가는 북한 주민들
[앞에 이어]
<미국이 북한공격, 자위용?>

독재자 편에 선 궤변은 끝이 없다. 인도적 지원이 무기 지원이라는 진실을 반박키 위해 북한의 군비(軍備) 증강은 “자위용(自慰用)”이라는 반론을 제기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주장은 대통령 입에서도 나왔다. 노무현 前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주장이 일리 있다(2004년 11월12일 미국 LA)”,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2006년 5월29일 향군지도부초청환담 中)”이라고 주장했었다.

노무현 식 대북관(對北觀)은 북한과 종북(從北)주의자들의 통상적 시각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한국과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북한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抑制手段)”, “방어용(防禦用)” 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6·25사변 이래 남북 간 10만 번 이상의 도발을 모두 북한이 일으켰다. 북한은 결코 수동적(受動的)·소극적(消極的)으로 군사력을 운용하지 않는다. “남조선 혁명”을 위한 능동적(能動的)·적극적(積極的) 수단이 군사력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일 뿐 아니라 그들의 체제가 목표로 한 ‘주체사상’의 태생적 결론이기도 한다. 美제국주의세력의 식민지 상태인 남조선 해방을 위해선 군사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황당한 것은 대한민국의 멀쩡한 지식인조차 북한의 “자위적 군비증장” 주장에 미혹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의 대남(對南)노선에 대한 무지 탓이다. 북한체제가 존재하는 한 한반도 적화(赤化)를 포기하지 않고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소위 가진 자에 대한 미움, 증오, 저주, 상처로 인해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對南인식 : 남한은 미제(美帝)의 식민지?>

2000년 6·15선언 이후 북한이 변할 줄 알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며 북한의 변화를 바랬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노선은 요지부동이다.

북한은 우선 ▲남한을 미국에 군사적 지배를 당하는 식민지(植民地)로 본다. 이에 따라 ▲소위 한국을 강점(强占)한 주한미군(駐韓美軍)을 철수(撤收)시켜 남한을 해방한 뒤 ▲연방제(聯邦制) 방식으로 통일해야 하는데 ▲이를 막는 대표적 악법(惡法)이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이므로 철폐(撤廢)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대남(對南)노선, 즉 미군철수·보안법철폐·연방제통일로 요약되는 소위 ‘자주·민주·통일’선동은 현재도 바뀌지 않았다. 다만 2000년 6월15일 6·15선언 이후 연방제(聯邦制)를 6·15선언 실천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연방제, 북한식 용어로 고려민주연방제는 적화통일(赤化統一)이다. ▲북한은 헌법보다 상위규범인 조선로동당 규약에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건설에 있다”고 하여 적화통일(赤化統一)을 최종적 목표로 삼고 있다. 또 ▲“민족 내에 있는 공산주의적 요소가 민족사회를 지배할 수 있도록 통일된 세력이 되기까지의 과도적인 정치조직으로 연방제가 필요하다(북한의 ‘정치사전’)”며 연방제(聯邦制)를 공산화(共産化)를 위한 중간단계로 본다.

특히 ▲“미국은 북조선을 외교 승인하고 평화조약(平和條約)도 체결…그 후 1년 안에 한국은 자연붕괴(自然崩壞)하고 1년 안에 북조선과 연방통일(聯邦統一)을 이룰 것(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 김명철의 ‘김정일의 통일전략’ 201쪽)”이라 하여 한국의 붕괴를 연방제 전제조건으로 파악한다. 결국 연방제(聯邦制)는 적화통일(赤化統一)이고 이를 위해 미군철수·보안법철폐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6·15와 10·4선언 이행도 적화통일(赤化統一)>

연방제(聯邦制) 뿐 아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6·15와 10·4선언 이행 역시 적화통일(赤化統一)이다.

6·15선언 제2항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어 이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한다”에 나오는 “연방제”라는 단어를 근거로 “6·15선언의 연합·연방제를 통해 ‘고려연방제’로 통일해야 한다”(북한 로동신문 2007년 1월17일자 外)고 주장한다.

또 “고려민주연방 창안방안은 무엇보다도 주체사상(主體思想)의 원리로부터 출발하고 그것으로 일관 되게 관통되어 있다. 고려연방제는 주체사상(主體思想)과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에 기초하고 있는 가장 정당한 통일 강령이며, 통일구국 대헌장이다(당 기관지 ‘근로자’, 1980년 제11호 54면)”고 주장한다.

기타 북한의 문건에 나오는 주장도 일관돼 있다. 김일성의 고려연방제가 김정일에 “발전(發展)·구현(具顯)”된 것이 6·15와 10·4선언이며 이것이 각각 “조국통일의 이정표(里程標)”이자 “실천강령(實踐綱領)”이라는 것이다. 또 6·15와 10·4선언을 이행할 때 김일성의 조국통일 노선과 방침이 “관철(貫徹)”될 것이라 주장한다.

<온 사회의 공산주의 사회 건설 = 고려연방제 = 6·15와 10·4선언>

남한 이적단체(利敵團體)들의 표현도 같은 맥락이다. 예컨대 범민련남측본부가 펴 낸 ‘6·15선언해설’이라는 문건은 ▲“6·15선언 2항은 남측이 사실상 북측의 연방제통일방안에 동의한 것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범청학련남측본부의 2007년 10월10일 성명은 ▲“우리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며 “6.15선언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방안은 낮든, 높든 연방제일 수밖에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고 주장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북한과 남한 내 이적단체들까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 건설 = 고려연방제(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 = 6·15와 10·4선언”이라는 것이다.

<북한 내부 위기가 심해질수록 격화되는 선동>

연방제(聯邦制)를 향한 북한의 좌표는 바뀌지 않았다. 적화통일(赤化統一)이 가능하건 가능하지 않건 조선로동당 공산당 독재가 지속되는 한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른바 남북화해협력 속에서도 “북한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는 반국가단체”라는 법원판결이 유지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어이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철부지들은 “인도적”이라는 화려한 복면(覆面)을 뒤집어 씌워 적화하겠다는 북한을 도왔고 북한은 내부의 위기가 심해질수록‘군비증강’과 ‘대남공작’을 더욱 강화시켰다. 소녀적 감성에 사로잡힌 수많은 인도주의자들은 북한의 정권을 해체(解體)하고 주민을 해방(解放)하라는 헌법적 명령을 거슬러 “평화(平和)”의 논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북한의 ‘군비증강’과 ‘대남공작’이었다. 적화(赤化)의 위협이었다. 이기적 선택은 도덕적 결과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6·15선언은 조국통일의 법등명?”>

소위 종북(從北)주의자들은 일부는 모르고, 일부는 알면서 북한의 대남적화(赤化)노선을 추종한다. 그 숫자는 일정한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사법부는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폐지·연방제통일’과 같은 북한의 대남적화(赤化)노선 추종에 대해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폐지·연방제통일은 反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선전하여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2003고합997)”고 판시해왔다.

그러나 2000년 6월15일 연방제 통일이 6·15선언에 수용되면서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폐지·연방제통일 또는 6·15선언 실천’ 주장은 일부 종북(從北)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남한 시민사회단체 통상적 주장이 돼 버렸다. 예컨대 6·15선언 실천을 목표로 한 6·15공동선언실천 남·북·해외공동위원회 중 남측위원회에는 무려 132개 단체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참가해있다.

6·15남측위원회에는 범민련남측본부, 실천연대 등 이적단체 대표 뿐 아니라 조계종 총무원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문화연대 공동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성균관민족통일중앙협의회 회장, 환경재단 상임이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등 소위 시민사회 진영이 망라돼 있다.

6·15선언 실천에는 조계종과 기독교계 NCCK(舊 KNCC) 등 종교계도 앞장서왔다. 예컨대 조계종·태고종·천태종·원효종·법왕종·염불종·미륵종·진각종 등 국내 주요 불교종단이 참여한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는 2007년 5월24일 소위 ‘조국통일 기원 남북불교도 동시법회 공동발원문’을 발표했다. 당시 발원문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으로 6·15공동선언을 철저히 실천(···)6·15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변함없는 법등명(法燈明)으로 삼고 그 실천행에 적극 떨쳐나서겠습니다”라고 염원했다.

법등명(法燈明)은 석가모니의 유언같은 것으로서 진리(眞理)를 상징한다. “변함없는 법등명(法燈明” 운운한 것은 6·15선언이 그만큼 절대성을 갖는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정권교체 이후인 2009년 4월23일 부처님오신날에도 조계종 등 41개 종단이 참여한 사단법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지관스님, 조계종 총무원장)는 남북공동발원문을 발표, “(···)통일의 환희를 안겨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변함없이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불교도들은 앞으로도 한마음으로 통일의 염원을 안고 민족 앞에 조성된 엄중한 난국을 헤치며 공동선언(共同宣言) 실천행(行)을 변함없이 이어가겠습니다.”라고 결의했다.

기독교계의 NCCK(회장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는 2009년 12월 북한 조그련과 ‘평화통일 공동기도문’을 작성해 예배에 사용했다. 기도문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와 통일의 세상을 주시고자 6.15와 10.4선언이라는 소중한 결실을 주셨다”며 “남과 북의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평화와 통일을 향해 약속한 역사적 결단들이 하나하나씩 성취되어 통일과 평화의 밑거름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미군철수·보안법폐지·연방제 모두 주장하는 자칭 진보·좌파들>

6·15와 10·4선언은 물론 미군철수·보안법폐지·연방제 실천을 직접(直接) 주장하는 단체들도 적지 않다. 자칭 진보·좌파세력 연합체인 한국진보연대(2007년 출범) 및 민노당, 민노총, 전교조 등이 모두 여기 해당된다.

예컨대 한국진보연대는 강령을 통해 “불평등한 한미동맹 청산과 주한미군 완전 철수(···)국가보안법과 헌법의 영토조항 등 반통일적 법, 제도 철폐(···)6·15 공동선언을 이행하여 외세의 간섭과 개입을 배격하고, 상대방의 제도와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기초위에서 통일을 실현(···)反민주, 反민족적 부정축재자 재산몰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韓美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SOFA) 폐지(···)일제의 식민지지배에 따른 사죄와 배상,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과 사죄배상(···)국가정보원, 보안수사대, 기무사 등 억압적 국가기구 등 반민주악법, 제도를 완전 철폐(···)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대대적인 군축(···)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범민련, 한총련 등 진보적 단체들에 대한 이적(利敵)규정” 등 북한과 판박이 주장을 하고 있다.

최근 이적단체로 판시된 실천연대는 강령에서 “6.15 선언을 실천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을 실현한다(···)반미(反美)민족자주운동으로 주한미군을 하루 빨리 철거하고, 미국의 지배양식을 완전히 제거한다(···)민족공조로 가까운 장래에 6.15 공동선언이 지향하는 연합, 연방제 통일을 달성한다(···)민중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에 앞장선다.”고 밝히고 있다.

이적단체인 한총련은 “북한의 주체사상(主體思想)을 한총련 지도사상으로 설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며(···)궁극적으로 북한 공산집단의 주장과 같은 자주·민주·통일투쟁을 달성하자고 선전·선동하는 내용(2004도3212 제10기 한총련 정기대의원 대회 자료집 이적성 관련)”한다고 판시돼 있다.

이밖에도 “이제 우리의 당면목표는 연방통일조국 건설이다. 모든 것을 3~4년 안에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는 목표에 복무시켜야 한다(···)반미투쟁의 기본방향을 주한미군 철수투쟁으로 맞추고 가야하며...(2006년 3월14일 14기 한총련 총노선 최종안)”는 등 한총련의 미군철수·연방제 주장은 흔하게 찾을 수 있다.

범청학련남측본부는 “南과 北, 海外의 모든 통일애국세력들과 온 민족은 연방제통일을 민족공동의 목표로 합의했다.(···)남측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과 맞물려 성취될 때 전체 민족단위의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하게 될 것(2005년 3월 제작 일꾼교양지 청춘)”는 등 연방제 뿐 아니라 해마다 통일선봉대라는 대학생조직을 만들어 미군철수 선동을 계속해왔다.

범민련남측본부는 “北의 선군(先軍)역량에만 기대서는 미군을 철수시킬 수 없다. 남측에서 선군(先軍)정치에 호응하는 미군철수 투쟁이 강력히 전개되어야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고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범민련남측본부 2006년 2월4~5일간 경기도 여주 ‘통일일꾼수련회’)”고 주장한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규정한 민노당>

종북(從北)정당이라 불리는 민노당은 강령에서 “북한을 적(敵)으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 등 냉전제도, 북한 낙인론과 같은 냉전의식, 북한을 적대화(敵對化)하는 냉전문화를 청산할 것.(···)국가보안법, 국가정보원과 기무사 따위를 폐지.(···)불평등한 한미(韓美)군사조약과 한미(韓美)행정협정을 폐기하고, 미군(美軍)을 철수시킬 것”등을 규정한다.

또 “우리민족의 통일을 방해하고 자주권을 억압하는 미국(美國)을 포함한 모든 외세와의 불평등조약 및 협정을 무효화(無效化)할 것(···)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撤收)시키는 냉전구조의 청산(···)최소한 국가연합(國家聯合)이나 연방제(聯邦制) 방식의 통일이라도 이뤄 국제적으로 우리의 민족통일을 기정사실화.(···)국가연합(國家聯合)·연방제(聯邦制) 통일 이룰 것”등을 규정한다.

민노당은 2007년 대선공약에도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발음도 비슷한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을 국가비전으로 하여 ▲주한미군철수, ▲한미동맹해체, ▲국가보안법철폐 등 북한의 대남(對南)노선을 그대로 수용했다.

민노당이 내건 코리아연방공화국은 ▲노동자·농민 등 서민이 주인이 되며, ▲소위 남측과 북측이 지방정부(地方政府)가 되어, ▲남측의 자본주의경제와 북측의 사회주의경제가 상생·협력하는 ▲1국가2체제 연방국가로서 사실상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명칭은 물론 내용 면에서도 동일했다.

이밖에도 ‘제17대 대통령 선거민주노동당 정책공약’등에 수록된 민노당 공약사항은 ▲국군을 60만 명에서 20만 명 수준으로 감군(減軍)하고, ▲무기체계를 축소(縮小)·폐기(廢棄)하며, ▲예비군제도를 철폐(撤廢)하고, ▲모병제를 실시하자는 등 안보기능의 전면적 해체를 내걸었다.

민노당은 6.2선거를 통해 인천 남동구청장과 동구청장, 울산 북구청장 등 총 142곳에서 당선자를 배출, 그 세력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연방통일조국 건설!” 민노총의 표어>

노조조직으로 알려진 민노총 역시 미군철수·보안법 폐지·연방제 통일을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예컨대 민노총은 2007년 8월31일~9월1일 대전 동구청소년수련관에서 가진 소위 ‘통일일꾼 전진대회’에서 “노동자가 앞장서서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고 결의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악질 매판자본의 노동자 착취(搾取)와 미제(美帝)의 살인적 압제(壓制)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조국통일의 운명이 우리 노동대오의 어깨에 달려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자랑찬 민노총 통일일꾼으로서 미군(美軍) 없는 한반도 평화와 연방제(聯邦制) 통일조국 건설의 책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을 굳게 결의한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주한미군(駐韓美軍)과 한반도 평화,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과 통일조국이 나란히 설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자주적 평화 통일에 결정적 걸림돌인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기 위해 투쟁의 전면에 나설 것을 굳게 결의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대회는 ‘노동자가 앞장서서 남북정상회담(북남수뇌상봉) 환영! 우리민족끼리 연방통일조국 건설!’이라는 표어로 마무리됐다.

<높은 단계의 연방제(聯邦制)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민노총 산하의 교사노동조합인 전교조의 미군철수·보안법 철폐·연방제 등 주장은 방대하다. 민노총의 브레인으로 불릴만하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전교조 통일위원회는 2009년 6월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한 ‘6.15공동선언 9주년 6.15자주통일투쟁 실천지침’이라는 문건을 통해 “주한미군을 물리적 기반으로, 대북(對北)적대 反민주악법인 국가보안법을 탄압수단으로 하는(···)분단기득권 세력들은 끊임없이 6.15공동선언 이행을 지연‧방해‧훼손해왔다”며 “반인권적인 Two Korea 정책과 주한미군 주둔은 뿌리째 동요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실천사항’으로 “6월1∼15일을 6.15집중실천기간으로 선포”한 뒤 “범민련 탄압중단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내보내는 평화협정 실현 선언 서명운동 병행”을 제시하고 ‘실천구호’로는 ▲“6.15공동선언 10.4선언 고수이행! 우리민족끼리 6.15자주통일!”, ▲ “무건리 훈련장 확장반대! 주한미군기지 철거!”, ▲“주한미군 내보내는 평화협정 실현하자!”, ▲“범민련 공안탄압 중단하고, 국가보안법 철폐하라!”등을 주장했다.

2004년 5월20일 전교조 통일위원회의 ‘전국 통일교육 일꾼 교양자료집’은 “反통일수구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보안법, 범민련, 한총련, 이적(利敵)규정 등 민족대단결을 가로막는 反통일적 법·제도를 폐지해가는 것이다(···)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는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낮은 단계 연방제가 높은 단계의 연방제(聯邦制)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연방 중앙정부를 세우기 위해서는 남측사회가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성격으로 전변(轉變)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철수와 연방제를 주장하는 전교조 세력은 6·2선거에서 교육감 권력의 3분의 2를 장악했다. 야간집회가 허용된 마당에 전교조 성향의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초중고교생 집회도 허용할 방침이다. 2008년 촛불난동은 더 합법적이고 더 파괴적인 형태로 재현될 것이다.

<2005년 맥아더동상파괴 난동 당시 북한의 주장과 자칭 진보·좌파의 추종>

북한의 군사력(軍事力)과 대남적화(赤化)공작, 이로 인한 종북(從北)세력이라는 실체를 무시해 버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북한은 위협이 안 되고 주민이건 정권이건 쌀과 비료, 달러를 줘도 나쁠 게 없다는 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지원(支援)이 북한의 군사력, 대남적화(赤化)능력의 제고(提高)로 정확히 귀결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선(善)한 뜻으로 행한 지원도 김정일 정권을 지지, 지원, 강화시켜 북한동포의 고통만 연장시킨 선(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분별해 ‘쌀’이 아니라 ‘자유’를 주려는 이들이 나와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구체적인 사례 몇 가지를 들어보자.

2005년 9월 맥아더동상파괴 기도 사건은 자칭 진보·좌파의 종북적(從北的) 실체를 확인케 한 대표적 사건이다. 북한의 선동(煽動)을 통해 국내의 자칭 진보·좌파가 그 해 9월11일 대대적인 동상 파괴 난동을 벌였다. 그러나 최근 공안당국의 수사결과는 당시 북한이 구체적 지령(指令)과 사주(使嗾)를 내려온 것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2010년 8월 검거된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 수사결과에 따르면, 2004년 9월 초 북한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등 명의로 남한의 6·15실천연대, 한총련 등 9개 단체에 ‘북측단체들이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 ‘주한미군철수 남북공동대책위원회(미군철수공대위)’구성을 제안했다. 이는 미군 진주(進駐) 60년인 2005년을 앞두고 시작된 집요한 주한미군 철수와 맥아더동상 파괴 공작의 시작이었다.

해가 바뀌며 북한의 선동은 더욱 노골화됐다. 2005년 1월1일 대남(對南)선전매체 ‘구국전선’의 ‘전(全)국민에게 드리는 신년 메시지’를 통해서도 “올해 민족민주운동은 미군강점 60년을 더 이상 넘기지 말자”며 “각 계층을 총망라한 대중적이고 전국적인 반미항전, 주한미군철수투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 올려 이 땅에서 침략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고 미국의 지배와 간섭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북한의 대남(對南)선전매체들도 맥아더동상 파괴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예컨대 ▲2005년 5월 ‘반제민전’은 “광복 60주년(2005년)인 올해는 남조선의 주한미군철수원년이며 이는 맥아더동상철거로부터 시작된다”고 선포했고, ▲2005년 6월16일 ‘민주조선’은 “맥아더동상은 꺼꾸러지고야 말 것이다.” 고 선동했다.

미군이 한국에 발을 디딘 9월을 전후해 북한의 선동은 격해졌다. 예컨대 2005년 7월29일, 7월30일, 9월11일, 9월16일, 10월6일 ‘반제민전’은 맥아더를 가리켜 “침략과 학살의 원흉”,“극악한 살인마”,“전쟁광신자”,“민족의 철천지원수”로 비난하며 주한미군은 “침략”,“전쟁”,“살육”,“약탈”을 벌여 온 “만악의 근원”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맥아더동상철거투쟁은 단순히 동상을 철거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군사적 강점(强占)과 식민지 통치를 끝장내고 민족의 자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므로 “미군의 남조선강점 60년이 되는 올해 맥아더동상을 까부수고 미제침략자들을 이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라”고 선동했다.

<“맥아더는 학살의 원흉”, 북한의 주장과 완벽히 같은 주장들>

남한 내 자칭 진보·좌파는 북한의 선동과 지령을 충실히 실천해갔다. 련방통추 수사결과에 따르면, ‘범민련’· ‘한총련’· ‘6·15실천연대’· ‘6·15청학연대’ 및 ‘련방통추’등 단체 실무자들은 북한의 ‘미군철수공대위’ 제안에 2차례 연석회의를 갖고 협의했다. 실제 2005년 1월28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에서 ‘미군철수남북공동대책위’ 남측추진기구 결성을 위한 각계 시국회의가 개최됐었다.

2005년 5월10일. 드디어 북한의 ‘미군철수공대위’ 제안은 ‘양키추방공동대책위원회(양키추방委)’라는 이름으로 현실화됐다. 양키추방委는 위원장에는 ‘련방통추’ 1기 상임의장 강희남, 사무총장에 ‘련방통추’ 2기 상임의장 김수남이 선임됐고, 특히 양키추방委 산하에는 ‘맥아더동상타도특별위원회’가 구성되기에 이른다.

‘련방통추’ 강희남, 김수남 등은 북한의 지령을 직접 이행해갔다. ‘련방통추’ 수사결과는 ▲“2003~2005년간 당시 1기 상임의장 강○○은 ‘련방통추’의 강령․규약과 심의위원명단 등 결성과정과 맥아더동상 철거 투쟁사항 등을 해외 북한공작원 강○○에게 보고하고 투쟁방향에 대하여 지령을 받아왔다”, ▲“2기 상임의장 김○○은 2003~2010년 까지 중국심양으로 10여회 출국해 북한과 연계된 ‘재중 조선인총연합회’회장 양○○을 만나 단체 결성사실 및 주한미군 철수 투쟁 내용, 향후계획 등을 협의하고”라고 돼 있다. 경찰 수사결과에 나오는 강○○, 김○○은 각각 강희남, 김수남을 가리킨다.

이후 ‘련방통추’는 북한의 지령을 받으며 2005년 5월에서 9월까지 맥아더동상이 있는 인천 자유공원 등지에서 69일간 맥아더동상 파괴를 목적한 폭력시위 및 철거농성을 주도해갔다.

남한의 자칭 진보·좌파는 북한의 구호(口號)를 사실상 그대로 받아들인다. 예컨대 9월11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파괴 난동 당시 이를 주최한 통일연대, 민중연대는 맥아더를 “학살의 원흉”, “전쟁미치광이(광신자)”로 표현하고 미군을 “만악의 근원”, “전쟁의 불씨(원흉)”등으로 부르는 등 북한의 주장과 완벽히 같았다. 맥아더동상 파괴가 단순한 동상이 문제가 아니라 “주한미군을 몰아내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맥아더동상파괴, “효과만점의 반미(反美)투쟁”>

2005년 9월11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파괴 집회는 죽창을 동원한 폭동으로 전개됐다. 경찰이 실명(失明)하기도 했다.

당시 집회는 통일연대, 민중연대가 주최하고 민노총이 조직적으로 참가했다. 민노총 대외협력분과가 2005년 8월13일 올린 ‘해설글 : 미군주둔 60년 청산투쟁’은 맥아더동상을 파괴할 이유로 “9·11 인천투쟁은 제때에, 송곳 같은 예리함으로 미국의 심장을 파고드는 효과만점의 반미(反美)투쟁···점령의 첫 군화발이 찍힌 바로 그 자리에서 터져 나온 60년만의 강력한 주한미군철수 투쟁은 우리민족운동사에 찬란히 빛나는 거사” 등의 이유를 들었다.

또 “맥아더 동상 철거를 정치적 상징으로 내세우는 이유”에 대해 “맥아더는 미군주둔의 본질, 현재 주한미군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가장 훌륭한 상징···맥아더 동상철거투쟁은 주한미군문제를 이슈화하는 효과만점의 방법”이라며 “미군강점 60년을 미군철수 원년으로! 가자 인천으로 맥아더 동상 철거하자!”는 구호로 끝을 맺었다.

민노총 소속인 전교조 역시 당시 난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2005년 전교조서울지부 통일위원회 사업평가서’에 따르면, 2005년 자신들은 “국가보안법철폐운동과 주한미군철군운동 등 자주통일운동 참여해왔다”며 “▲9월11(일) 인천 맥아더동상 철거투쟁 참석 - 서울지부 10명”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자칭 진보·좌파는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파괴 난동을 벌이며 민족의 “자주(自主)”와 “주체(主體)” 또는 “자존심”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난동은 북한의 구체적 선동과 지령을 골수 종북(從北)단체들이 실천하고 남한의 범(汎)좌파가 여기에 동조해 벌어진 사건이다.

종북(從北)단체들과 범좌파는 북한인권이나 탈북자 구출, 지하교회 지원과 같은 절박한 이슈 앞에서 “한반도 평화”를 들먹이며 외면해 버린다. 북한의 가련한 과부와 고아의 사진을 내밀며 달러를 주라고 목청만 높인다. 그리고 뒤편에선 북한의 대남적화(赤化)노선에 힘을 실어 대한민국의 안보와 법치를 파괴해왔다.

<2008년 촛불난동...이기·탐욕으로 분별 잃은 한국인, 거짓·선동이 파고 들다>

북한의 대남(對南)적화전략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체제를 뒤집는 폭동(暴動)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았다. 2008년 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는 대표적이다. 이른바 진보매체의 광우병 거짓·선동에 격앙된 국민은 북한과 종북(從北)세력에 또 다시 속아 반정부 폭동의 현장에 몰려나왔다.

북한의 선동은 국내에서 촛불시위가 본격화된 2008년5월2일 이전부터 격렬히 진행됐다. 대남(對南)선전매체인 반제민전은 2008년4월 초부터 촛불시위에 대한 소위 ‘투쟁지침’을 하달하기 시작한다. 이후 반제민전을 비롯해 로동신문·중앙방송·평양방송·우리민족끼리 등 북한의 모든 대남매체는 반미(反美)·反이명박 투쟁을 독려해갔다.

<“단순한 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 생존권 투쟁이 아니다!”>

북한은 촛불시위가 “단순한 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를 위한 생존권 투쟁이 아니”라며 “4·19와 5·18, 6월 민중항쟁을 이은 반미·반파쇼투쟁의 전민(全民)항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6월10일 반제민전 시국선언 등)’고 강조했다. 촛불시위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자 ‘투쟁의 촛불을 더 높이 치켜들자(6월26일 반제민전 논설)’며 촛불시위 재점화를 촉구했다.

예를 들어보자. 6월10일 반제민전의 시국선언 촛불시위에 대해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정의의 애국투쟁” 운운하며 ▲“1. 이명박 정권의 최후의 항복을 받아낼 때 까지 투쟁의 촛불을 더욱 높이 치켜들자.(···)이 땅을 활화산과 같은 투쟁의 광장으로 전변시키자”, ▲“2. 反이명박 투쟁을 반미자주화투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 ▲“3. 反이명박 투쟁을 조국통일운동과 결부시켜 나가자”는 구체적 지령을 내렸다.

또 “미국의 지배(支配)와 간섭(干涉)을 끝장내지 않고서는 이명박 패당과 같은 친미역적들이 활개 치며 민족, 민중을 팔아먹는 비극적 현실을 끝장낼 수 없다.(···)미국의 식민지지배와 군사적 강점을 끝장내고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자”, “反이명박 투쟁을 조국통일운동과 결부시켜 나가자”며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해 나선 이명박 패당의 비열한 배신행위를 준열히 단죄규탄하자. 이 땅 전역에서 타오르는 촛불을 역적패당의 반통일 범죄를 징벌하는 정의의 횃불로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하자”고 했다.

<“이명박을 제때에 매장(埋葬)하라”>

당시 북한의 주장은 대동소이하다. “이명박의 친미·사대, 매국·배족, 반북·대결행위를 반대하여 더욱 과감한 투쟁을 벌임으로써 이명박을 제때에 매장(埋葬)하라(4월26일 반제민전)”, “극악한 친미사대매국노, 반통일 파쇼광, 민중의 원수인 이명박 패당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말고 최후의 항복(降伏)을 받아낼 때까지 줄기찬 투쟁을 벌이라(6월11일 반제민전)”는 것이다.

촛불시위 당시 북한의 선동은 말 그대로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2008년 4월에서 7월까지 북한의 주요 대남메시지 목차만 적으면 이렇다.

▲ 미국산 쇠고기수입과 관련하여(2008.4.26. 반제민전 논설)
▲ 미친 쇠고기에 미친《외교》(2008.4.27. 우리민족끼리 논평)
▲ 남조선단체들, 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투쟁을 선언(2008.5.4. 조선중앙통신)
▲ 반제민전대변인 논평(2008.5.12)
▲ 제2의 6월 인민항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자(2008.5.30. 노동신문)
▲ 반제민전 시국선언(2008.6.10)
▲ 확산되는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투쟁과 관련하여(2008.6.10. 노동신문)
▲ 인민의리익을팔아먹는사대매국정권에대한폭발(2008.6.22. 노동신문
▲ 반역정치가《정권》타도를 부른다(2008.6.15. 노동신문)
▲ 극악한 친미매국노 주체(2008.6.22. 노동신문)
▲ 민심을 우롱하는 사기협잡극(2008.6.23. 우리민족끼리 논평)
▲ 투쟁의 촛불을 더 높이 치켜들자(2008.6.26. 반제민전 논설)
▲ 파쇼적 탄압 분쇄하고 이명박 패당의 최후항복을 받아내자(2008.7.17. 반제민전)

<“진정한 목표는 이명박 정부를 주저앉히는 것…”>

촛불집회를 통한 북한의 대한민국 뒤집기 선동은 남한의 종북(從北)세력에 그대로 흡수된다. 맥아더동상파괴 난동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총궐기했다. 예컨대 이적단체 실천연대는 5월 초 작성한 ‘6.15 민족통일대축전 성사를 위한 자주통일 평화번영 촉진 운동 기간’ 사업계획서를 통해 “이명박 정부를 쓸어버리자”고 나섰다.

실천연대는 “국가적 재앙이 될 사망률 100%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아야 한다”며 “反이명박 촛불문화제를 통해 대중의 투쟁에 서서히 불을 붙이다(···)서울을 비롯 각지에서 反이명박 투쟁을 폭발시켜 이명박 정부를 쓸어버리고”,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민주노동당과 진보연대, 6·15공동위를 강화, 2012년 자주적 민주정부(自主的 民主政府), 통일조국 건설로 힘차게 달려갈 것”을 계획했다.

촛불집회를 단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투쟁이 아니라 미군철수·보안법철폐·연방제(6·15, 10·4선언) 실천이라는 적화의 도구로 만들라는 북한의 주장과 정확히 같다. 반미(反美)·反이명박 투쟁을 통해 미국의 한반도 지배구도를 파탄내고 소위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시대를 열어나가자는 선동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6·15청학연대)’라는 대학생 운동권 단체는 2008년 5월2일 호소문을 통해 “광우병에 노출된 미국쇠고기가 전면수입 개방된다면 우리 서민들은 다 죽게 된다. 미국의 요구에 머리를 조아리고 국민의 생명을 미국에 갖다 바치는 이명박은 친미(親美)·사대(事大)매국노”라고 선동했다.

또 “청년학생들은 4.19 그날처럼 87년6월 항쟁의 선구자로 나섰던 그때처럼 그리고 2002년 반미(反美)촛불항쟁의 선도적 투쟁을 전개했던 그때의 기세로 촛불을 들고 민중의 투쟁 진출로를 활짝 열어제껴야한다”며 “반미(反美)·反이명박의 촛불항쟁을 일구어나가자”고 덧붙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후에 공안당국이 밝혀낸 실천연대 수사결과에 따르면, 이 단체는 “밤에는 국민이 촛불을 들고 낮에는 운동역량이 촛불을 들든가 해 사회를 마비(痲痺)시켜야…”, “진정한 목표는 이명박 정부를 주저앉히는 것…”, “종교계선언, 유모차 행진, 도심 점거전술을 펴라”, “2012자주적 민주정부, 통일조국 건설로 달려가자” 는 등의 구체적 지침을 개별 종북(從北)단체에 하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이 모든 지침은 촛불시위 현장에서 거의 모두 실천됐다.

<종북(從北)세력이 주도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더욱 황당한 사실은 2008년 촛불집회를 주도한 단체 자체가 종북(從北)세력이었다는 데 있다.

당시 촛불집회는 표면상 ‘광우병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긴급대책회의(광우병대책회의)’라는 단체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5월6일 출범한 광우병대책회의는 “16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집했다”며 촛불집회는 소위 순수한 시민궐기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단체를 실제로 이끈 단체는 자칭 진보·좌파연합체로 알려진 ‘한국진보연대’였다.

광우병대책회의 대표 급으로 활동을 벌여 온 강기갑·천영세·오종렬·이석행·한상렬 등은 모두 한국진보연대 관련자들이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공식대표는 없었다. 좌파 연합체의 경우,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공식대표를 세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오종렬·한상렬은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였고, 강기갑·천영세 의원은 진보연대 참가단체인 민노당 소속이고, 이석행 역시 한국진보연대 참관단체 민노총 대표였다. 5월6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에서 열린 광우병대책회의 출범식장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당시 행사의 사회를 맡아 분위기를 이끌었던 박석운은 한국진보연대 운영위원장이었다. 기자회견장 맨 앞자리에는 강기갑·천영세·오종렬·이석행·한상렬이 배석했었다.

실무진도 마찬가지였다. 5월15일 광우병대책회의가 작성한 내부 회의문건에 따르면, 상황실 상근자 12명 중 운영위원장, 사무처장, 대변인 등 6명이 모두 한국진보연대 간부였다. 나머지는 참여연대가 4명, 다함께 1명(半상근), 나눔문화 1명(半상근)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밖에도 한국진보연대는 행사물품 등을 대량제작, 현장에서 배포하는 등 촛불집회를 주도해왔던 것으로 검찰과 경찰의 수사결과 확인됐었다.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광우병대책회의, 이를 다시 주도하는 한국진보연대 역시 당시 촛불집회를 소위 변혁(變革)의 기회로 여겼다. 진보연대는 연일 광우병의 위험성을 부각하고, 촛불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온·오프라인 상의 선전을 벌이며 촛불집회를 주도해갔다. 촛불집회는 5월 말 중순 이후 폭동으로 번졌고 이로 인해 500명 넘는 경찰이 다치고 177대의 경찰버스가 불에 타거나 부서졌다.

<미국산쇠고기 먹고 광우병 환자는 없었지만...>

2008년 전국적으로 2,398회에 걸쳐 벌어진 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는 “국민 건강”이 명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촛불집회는 4월28일 MBC PD수첩 등 언론의 광우병 왜곡(歪曲) 보도가 원인이었다. 검찰의 PD수첩 수사결과에 따르면, 1시간 남짓 방송에 30여 군데 넘게 오역·날조·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산쇠고기를 먹고 단 한 명의 인간광우병 환자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한국인이 즐겨먹던 LA갈비마저 독극물처럼 각인시킨 것이다.

소위 광우병 괴담(怪談)은 이명박 정권에 적대적인 좌파(左派)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됐다. 북한과 종북(從北)세력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북한은 “이명박을 매장시켜버리라”고 미친 듯이 선동했고 한국진보연대 같은 단체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만들어 촛불시위를 주도해갔다.

당시 촛불시위를 선동을 주도한 세력은 거의 예외 없이 ‘미군철수·보안법철폐·연방제통일(6·15와 10·4선언 실천)’이라는 북한의 대남노선에 동조해 온 이들이었다. 노골적으로 “사회를 마비시켜라”고 선동하며 “진정한 목표는 2012년 자주적 민주정부, 통일조국 건설”에 있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말하는 자주적 민주정부란 공산주의 활동을 용인한 친북·용공 정권이다.

북한과 종북세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조차 체제변혁, 즉 한반도 적화(赤化)의 기회로 활용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쇠고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그 자체였다. 촛불집회는 대한민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무장한 운동가들에 선동돼 자정 무렵부터 새벽녘까지 폭동(暴動)으로 번져갔고 100일 넘게 서울 도심 한복판은 무정부 상태로 변했다.

광우병 난동의 또 다른 주범(主犯)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달가워하지 않던 자칭 진보단체, 진보인사들이었다. 보수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진실의 편에 서는 대신 거짓과 선동에 가세해 버렸다. 사태는 단순한 미국산 쇠고기 문제 이전의 남남갈등의 현장이 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갔다.

정부의 책임도 컸다. 어쩌면 정부의 책임이 가장 컸는지 모른다. ‘겁먹은’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언론의 거짓선동, 북한과 종북(從北)세력의 의도를 국민에 알리지 않았다.

비겁한 대통령은 2008년 6월19일 “국민들을 편안히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며 항복선언을 발표했다. 좌파 미디어의 거짓선동과 북한 + 종북(從北)세력이 주도한 불법폭동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도 없었다.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며 거짓선동, 불법폭동에 면죄부를 부여해 버렸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국가를 지키겠다는 약간의 용기(勇氣)도 찾을 수 없었다. 진실(眞實)을 알리는 對국민 홍보기능이 마비된 정권 아래서 촛불난동은 통제 불능 상태가 돼 100일 넘게 연쇄적 폭발을 일으켜간다.

2008년 촛불난동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언론의 거짓선동과 북한 + 종북(從北)세력의 소위 변혁(變革), 즉 체제전복 의도 그리고 신생 정부의 무책임·무기력·비겁함이 결합해 일어난 대한민국 파괴 기도. 이 어이없는 국가자살 배경에는 수많은 동족이 맞아죽고 얼어 죽고 굶어죽고 있을 때조차 ‘평화’ ‘사랑’ ‘용서’ 온갖 화려한 어휘를 써가며 침묵한 한국인의 이기(利己)와 탐욕(貪慾)이 있었다.

<평화협정 맺어 미군은 나가라는 선동에 속는 한국인들>

자칭 북한전문가들은 중국에서 짐승처럼 팔리는 탈북여성을 구해야 한다는 외침에 대해 ‘근본적 해법은 탈북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대북 퍼주기’를 부르짖는다. 주민은 버리고 정권만 살리는 이 놀라운 궤변은 언제나 달콤한 “평화”의 사술을 부린다. “김정일과 잘 지내라”는 것이다.

“김정일과 잘 지내기” 위해선 남북한 사이에 ‘연방제 통일’을 하라는 것 외에도 미국과 북한 사이에 이른바 ‘평화협정(平和協定)’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 있다. 즉 정전협정(停戰協定)을 평화협정(平和協定)으로 전환해야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정전협정(停戰協定) → 평화협정(平和協定) 전환으로 요약되는 북한의 평화(平和) 공세는 미국이 북한을 침공(侵攻)하려 한다는 것이 전제된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틈만 나면 전쟁을 벌이려 하는데 이 음모를 막으려면 미·북(美·北) 간 평화협정(平和協定)을 체결해 정전(停戰)상태를 영구적 평화(平和)상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쟁세력인 주한미군은 철수시키고 ‘우리민족끼리’ 6·15와 10·4선언의 연방제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정전협정(停戰協定) → 평화협정(平和協定) 전환이 곧 주한미군 철수이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통일에 가장 큰 장애물로 되고 있는 남조선 강점 미군(美軍)을 지체 없이 철수(撤收)해야 한다(2005년 8월13~14, 평양 인민문화궁전 결의서한)”,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고, 미군(美軍)을 철거하여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성취하자(2005년 8월19일 반제민전)”는 식의 표현은 북한의 상투적 주장들이다. 문제는 “평화”를 내세워 미군철수·연방제로 적화하겠다는 북한의 뻔한 선동에 기만당하는 한국인들이다.

<“무자비한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던 北, 열흘 뒤 천안함 폭침>

천안함 폭침(爆沈) 당시 북한의 위장(僞裝)평화 공세에 한국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속아 넘어갔다. 상황의 전반적 이해를 위해선 2010년 벽두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북한 외무성은 1월11일 성명을 통해 “조선전쟁(6·25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올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주장했다. 6·25 60주년을 맞은 소위 평화협정을 맺자는 선동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韓美 양군(兩軍)은 3월8일부터 18일까지 ‘키리졸브 연습’에 들어갔다. 위장(僞裝)평화 공세에 혈안이 된 북한 앞에 펼쳐진 상황은 ‘주한미군 철수’가 아니라 ‘韓美동맹 강화’였다. 북한은 흥분(?)했다. 키리졸브 연습이 소위 북침(北侵)전쟁 연습이라며 극렬한 비방에 나섰다.

예컨대 북한은 3월16일 로동신문 등을 통해 “무자비(無慈悲)한 징벌(懲罰)을 면치 못할 것” ,“강력한 군사적 대응(軍事的 對應)으로 맞받아 나갈 것”, “모든 공격(攻擊) 및 방어(防禦)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공갈 쳤다.

북한의 엄포는 엄포로 끝나지 않았다. 열흘 만에 현실화됐다. 3월26일 천안함을 폭침(爆沈)시켜 버린 것이다. 북한의 요구대로 韓美동맹을 끝내고 주한미군을 내보낸 뒤 6·15와 10·4선언의 연방제로 적화통일하지 않는다면 무력(武力)을 사용할 수 있다는 공갈이 또 다시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십 수 년 간 북한정권에 돈과 쌀과 비료를 퍼다 준 ‘한반도 평화’의 허구성이 또 다시 폭로된 순간이기도 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5월20일 우리 측 민군합동조사단에 의해 북한의 도발 사실이 발표되자 완강한 부인(否認)에 나섰다. 韓美연합군이 전쟁세력이고 평화의 파괴자라고 주장해 온 북한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예컨대 6월25일 로동신문의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북침전쟁도발책동을 짓부시고 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기사는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고 조국통일을 바라는 해내외의 온 겨레는 함선침몰사건을 조작(造作)하여 조선반도에 북침핵전쟁의 검은 구름을 몰아오는 미제(美帝)와 괴뢰패당의 호전적 망동을 준렬히 폭로단죄하고 걸음마다 짓부셔 버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조선반도에 조성되고 있는 전쟁위험을 가시고 자주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근본방도는 민족최고의 통일강령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고수 리행하는데 있다”며 “북남공동선언들을 부정하며 짓밟는 반통일 세력들을 추호도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징벌”할 것을 주장했다.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며 소위 미제(美帝)와 괴뢰패당 이명박 정부를 짓부순 후 6·15와 10·4선언을 이행하라는 요지였다.

<국가는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는가?>

2010년 북한의 위장(僞裝)평화공세와 천안함 선동은 남한의 자칭 진보·좌파에 의해 전면 수용된다. 국가(國家)는 아무리 욕하고, 침 뱉고, 부셔도 영원할 것이란 착각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진정 적화(赤化)된 한반도를 꿈꾸는 것이진 알 수 없다.

2010년 1월11일 북한이 미국과 정전협정(停戰協定)을 평화협정(平和協定)으로 바꿔야한다고 부추기자 야권(野圈)은 일제히 찬성하고 나섰다. 북한이 말하는 평화협정이 ‘주한미군 철수’와 ‘고려연방제’라는 적화통일의 전제임에도 놀라운 반응이었다.

예컨대 1월12일 민주당은 “북한의 평화협정 회담 제의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며, 북한의 이번 제의가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민노당 역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문제이므로 북한의 이러한 제안을 환영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3월8일 이후 韓美연합군의 키리졸브 훈련 당시에도 자칭 진보·좌파단체들은 “전쟁연습”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예컨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상임대표: 문규현·배종열·홍근수)’ 등은 3월9일 서울 美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 키리졸브 훈련이 “북한 정권 제거를 목적으로 한 침략연습”이라며 “한반도 평화협정(平和協定) 정세에 맞춰 한미당국이 전략적 유연성 전면화를 중단하고 주한미군(駐韓美軍)이 전면 철수(撤收)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 평화체제 제안에 일제히 호응한 야권>

3월26일 북한의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도 마찬가지다. 자칭 진보·좌파의 대응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제1야당인 민주당조차 북한의 개입설을 극구 배제(排除)하고 국군에 대해 비난을 가하는 데 집중했다. 사건 이후 6월2일 지방선거 시점까지 천안함 관련 민주당의 공식적 논평과 당직자 발언을 검토해 보면 북한에 대한 공식적 비판은 찾을 수 없었다. 지방선거 이후에는 천안함 문제에 대한 논평 자체가 사실상 나오지 않고 있다.

재야(在野)단체는 더욱 심했다. 대한민국의 자위적 대응을 촉구하기는커녕 북한의 도발 사실을 부정하는 한편 심지어 美·北 간 평화협정(平和協定) 체결과 南·北 간 6·15선언 실천 및 韓美동맹 폐기와 미군철수를 들고 나왔다.

예컨대 민노당, 민노총, 한국진보연대, 다함께 등 소위 진보단체들은 5월3일 서울 美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개막에 부쳐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들의 적극적인 군축을 요구한다”며 특히 “군사적인 긴장을 높이는 미국의 핵 전략과 군사동맹(軍事同盟) 역시 폐기(廢棄)할 것”을 주장했다.

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對北핵공격 위협과 그 근원이 되는 한미동맹(韓美同盟)을 폐기(廢棄)하고, 북한과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 간의 평화체제(平和體制)를 구축(構築)함으로써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수영 민노총 통일위원장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해서는 핵무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미국이 핵을 폐기해야한다”면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통한 남과 북의 평화가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민노당, 민노총, 한국진보연대, 평통사 등 소위 진보단체들은 이후 ‘천안함 공동행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직적 활동에 나섰다. 예컨대 이들은 7월25일 미 대사관 앞 집회 등을 통해 소위 천안함 진실규명과 韓美군사훈련 중단, 평화협정(平和協定) 체결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한미 양국이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한미군사훈련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갈등과 긴장을 증폭시킨다”며 “천안함 사건 국정조사 즉각 수용하라”, “평화협정(平和協定) 체결하고 주한미군(駐韓美軍) 철수하라” 등을 주장했다. 국가가 반(反)국가단체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부터 공격받은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주한미군 철수” 구호는 마치 혁명의 구호를 연상시킨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진보·좌파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들 주장은 북한의 인식과 정확히 같다. 즉 미국의 對北핵공격 위험이 평화의 적(敵)이므로 미국이 먼저 핵을 포기하고 한미동맹을 폐기한 뒤 미국과 북한은 평화체제(平和體制)를 구축해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하며, 남한과 북한은 6·15선언의 연방제(聯邦制) 통일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평화를 원하는 북한정권은 절대로 천안함을 폭침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가) 46명의 꽃다운 청춘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水葬)시키고 치욕의 패전을 자랑인양 당당하게 말하면서 선거를 관권선거로, 선거방해로 꽃다운 청춘의 목숨을 이용하고 있다.(2010년 5월29일, 6.2지방선거 광화문 선거유세 중 한명숙 발언)는 식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 죽인 북한정권이 잘못이 아니라 얻어맞은 대한민국이 잘못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46명의 꽃다운 청춘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水葬)시켰다니...”>

천안함 폭침 후 북한과 진보·좌파의 주장을 살펴보면 불변의 논리가 나온다. 이명박 정권의 對北적대(敵對) 정책과 불안정한 정전상태(停戰狀態)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과 평화협정(平和協定)을 맺고 남한은 북한과 6·15와 10·4선언의 연방제(聯邦制) 에 나서면 “서해가 평화의 바다가 되고”,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 불안도 안 생긴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천안함 폭침을 집요하게 부정해왔다. 그는 4월9일 임시국회 비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북한의 연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책임 회피일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말한 뒤 그러나 “10.4선언의 이행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4선언에서 밝힌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을 하루빨리 실현해야합니다...지금이라도 정부는 10.4선언을 이행해 서해를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평화(平和)의 바다로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4월20일에도 “10·4선언만 제대로 이행했다면 천안함의 비극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거나 그 피해(被害)를 최소화(最小化)했을 것이고 지금 같은 국민불안(國民不安)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갑 의원의 발언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요구인 10·4선언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 천안함 사고의 원인이라니? 북한의 요구인 10·4선언을 이행하면 제2의 천안함 사고가 안 터진다니? 그런데도 북한이 천안함 사고를 일으킨 건 아니라니? 무슨 말인가? 북한과 무관한 ‘해난(海難)사고’가 터졌는데 대체 왜 북한의 요구를 듣지 않은 게 원인이고, 북한의 요구를 들어줘야 평화가 온다는 말인가? 김정일이 바다 속 포세이돈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북한이 안 했지만 북한의 요구를 안 들어줘 사고가 났다?>

평통사라는 단체는 2010년 4월26일 서울 국방부 앞 기자회견을 통하여 “이번 사건은 서해 5도 지역에서 한미연합 독수리연습이 진행된 기간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對北)적대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며 ‘분단’· ‘전쟁’· ‘불안정한 정전상태’· ‘대북(對北)적대정책’ 등을 천안함 침몰사건의 근본원인으로 지목하며 ‘평화협정(平和協定)을 통한 한반도 적대관계의 법적 청산’을 촉구했다.

유사한 억지와 궤변이다. 북한을 적대(敵對)해 사고가 났는데 북한이 한 건 아니라니? 북한을 적대해 천안함이 자폭했다는 것인가? 이 거짓말을 믿으란 말인가?

북한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6월3일 UN 군축회의(CD)에 참석한 북한 측 대표는 천안함 조사결과는 남한 정권의 날조(捏造)이며 언제라도 전쟁이 날 수 있는 현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평화협정(平和協定) 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군축회의에 참석한 북한 리장곤 공사는 “남한 정권에 의해 이뤄진 (천안함) 조사 결과는 추측과 상상에 기초한 완전한 날조(捏造)”라며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휴전협정(休戰協定)을 평화협정(平和協定)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한 소위 진보·좌파의 주장은 공통돼 있다. 천안함 폭침을 북한이 했건 안 했건, 북한을 욕하진 말라는 말이다. 황당한 것은 이 뻔뻔한 거짓과 거짓의 연대(連帶)에 국민의 엄청난 숫자가 아직도 속고 있는 점이다. 47명의 죽음에 대한 응징은커녕 엄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이 모든 살인과 전쟁의 주범인 김정일 정권을 도우면 평화가 온다는 한국인의 이기(利己)와 탐욕(貪慾)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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