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仁德政治야말로 김일성 카리스마의 표상”

역사를 위한 기록 : 소위 진보인사 문제발언록 (67)
성균관대학교 정외과 졸, 세종연구소 수석위원(2002),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2003~2006), 통일부 장관(2006)


“우리 사회는 경제 중심적이고 경제 제일주의 길로 걸어 왔다. 물질적 성공을 거두면서 그런 것이 신화가 됐다. 우리 사회에 이기주의와 물질 중심적인 사고가 팽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회가 발전하는데 있어 공동체의 힘이나 이타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우리 삶에서 그런 공동의 선이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알려 주는 계기가 됐다.”(2010년 5월25일, 위클리경향 876호. 노무현 前대통령 자살 1주기 관련 인터뷰)

“앞으로는 병사들을 교육할 때 북한에 敵愾心(적개심)을 갖도록 하는 것보다는 시민정신과 국가에 대한 자존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2004년 6월19일 육사에서 개최된 ‘2004 무궁화회의’ 강연)

※ ‘2004무궁화회의’에서 李 내정자를 비판한 김광현(육본 정훈공보실장)준장은 2005년 1월, 계급정년 3년을 앞두고 早期(조기) 전역 했다.

“남북이 GP(전방경계초소. Guard Post)를 철수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2006년 2월16일. 외교통상부 청사 재외 공관장 대상 강연)

※ GP는 휴전선 남방한계선에 설치돼 북한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전략적 군사판단을 좌우하는 현장 정보를 확인·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곳이다. GP철수는 對北방어를 포기하겠다는 안보포기행위에 해당한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평화협정을 추진해야 하며 원활한 회담 추진을 위한 사전 정비작업으로 金正日 답방 시 謝過(사과)요구론의 제어가 필요하다”(2001년 7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방안’ 세종연구소刊)

“김일성의 지난 반세기 동안의 북한 통치는 베버의 표현대로라면 ‘지배자의 인격과 그가 지닌 천부의 자질’을 ‘인민’이 ‘헌신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2000년 판‘새로 쓴 현대 북한의 이해’)

“북한의 미사일 개발문제의 해결은 미사일 주권을 포기해야 하는 북한에 경제적 보상을 하는 것밖에 달리 代案(대안)이 없다”(2000년 2월 ‘통일경제’, ‘대북포용정책 2년의 평가와 과제’)고도 주장했다.

“김일성은 독재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유능한 협상가였음에도 틀림없다.…휴전 이후 41년간 계속되는 긴장과 대립, 그리고 사건의 연속 속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한국 정부나 미국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 해답의 반은 김일성과 북한 사회가 가지고 있다. 즉 그는 우리에게 항상 무모하리만치 음모적이고 저돌적이며 강경해 보이지만 실은 전쟁을 두려워하며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1995년 판 ‘현대 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

“최근 핵사찰 위기 국면을 전격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돌파하려 한 것도 위기 때마다 나타나는 그의 실용주의적 전략 구사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金주석에게는 상당한 외교적 수완과 역량이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관찰자들이 전하는 천부적인 사교력과 판단력은 그가 상당한 수준의 외교가였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上同)

“김일성은 ‘천재성’이나 ‘영웅성’ 선전을 통해서 카리스마를 구축한 다른 공산지도자들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카리스마를 절대화한 사회질서와 윤리를 새로이 ‘창출’했다”(上同)

“수령은 대중으로부터 충성과 효성을 맹세 받는 대신에 以民爲天(이민위천)의 정신으로 인민을 대하고 ‘인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정치’, 즉 仁德(인덕)정치를 공언한다. ‘인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여기고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모든 정치를 해나가는 것’으로 정의되는 이 仁德政治야말로 현대와 봉건의 착종으로 특징지어지는 김일성 카리스마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의 카리스마는 현대 사회주의와 봉건적 가족국가관이 결합되어 만들어 낸 독특한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다”(上同)

“김일성은 우리에게 숱한 부정의 이미지로 얼룩져 있는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현대사에서 최초로 대외적으로 自主性(자주성)을 선언하고 主體(주체)확립의 기치를 내건 지도자였다.…주체사상은 명백히 소련과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주성을 획득하기 위한 김일성 지도부의 노력과 자력갱생적 삶의 추구 그리고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려는 시도들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주체사상의 기치를 내걸면서 김일성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주시대의 개척자로서 그리고 자신들에게 자주적 삶을 안겨 준 은인으로 각인되었다”(上同)

“광폭정치는 인민을 위한 정치는 그릇이 커야 하며 그릇이 크지 못하면 대중을 다 담아내지 못하며 대중이 정치를 외면하게 된다거나 로동계급의 당의 정치는 전체 인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되게 하여야 하는 것인 만큼 어디까지나 정치의 폭이 넓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오늘날 金正日의 광폭정치는 대내적으로 주민 단결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경제위기 속에서 북한이 남한 기업인들은 물론 교포실업가들과 종교인 등을 북한으로 불러들이는 논리적 발판이 되고 있다”(上同)

“金正日이 조직관리의 핵심인 최고 지도부 인사에서 보여 준 모습은 의외로 안정적이다. 아마 이러한 안정성은 그의 조직관리 능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上同)

“金正日의 실용주의적 경제관으로의 선회 조짐은 최근에 그가 발표한 논문들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金正日의 경제관점은 경제 低(저)발전에 직면하여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변화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 변화는 북한 경제정책이 김일성 주석 사망과 관계없이 개방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케 해준다”(上同)


“당시 김일성은 북한개혁의 주체였던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改革(개혁)을 ‘성공적으로’ 주도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외형상의 정치연합에도 불구하고 북로당 창립 시점에 이미 김일성은 당 내에서 상당한 정도로 배타적 지위를 확보해가고 있었다”(1994년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의 북조선로동당으로의 합동에 관한 연구’)

“오늘날 통일운동을 주도해 가는 민족민주 운동진영에 있어 진정한 통일은 한국 사회를 강점해 분단함으로써 한국 민중을 고통의 늪에 빠뜨리면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는 帝國主義(제국주의) 세력을 이 땅에서 축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1988년 9월호 ‘남한의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김일성과 그 동료들의 對日(대일)항전은 거대한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해서 소수의 인원과 열등한 무기를 가지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싸운 투쟁이었다. 이 싸움에서 그들이 日帝(일제)보다 우수하다고 자부했던 것은 그들 자신의 혁명적 열의뿐이었다. 물질의 궁핍과 환경의 열악함 속에서 그들을 견디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祖國解放(조국해방)과 革命(혁명)에 대한 열의였다”(1993년 박사논문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

“김일성 지도부의 경험은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공식이 자신들에게 제대로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중국공산당에서처럼 자신의 생존전략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創造的(창조적) 적용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렇게 해서 사람과 사람의 사상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주체사상이라는 하나의 사상체계를 낳게까지 한 것으로 볼 수 있다”(上同)

“주체사상은 무엇보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인습으로 이어져 내려왔던 事大主義(사대주의)적 인습에 대한 분명한 안티테제로 제시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주체사상 역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대주의는 김일성과 그의 동료들이 일제하에서 抗日무장투쟁을 전개할 때부터 괴롭히던 숙명적인 내부의 敵(적)이었다.”(上同)

“김일성이 집중적으로 비판한 것은 사회주의 선진국이나 대국의 경험을 無비판적으로, 추종적으로 받아들이는 교조주의였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사대주의 비판이었던 것이다. 특히 1950년대 이래 계속되어 온 사회주의 대국들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 시도는 김일성 지도부로 하여금 외세 개입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게 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反사대주의·反교조주의의 고창과 함께 主體확립의 기치를 높이 들게 하였다”(上同)

“김일성은 군사지도자로서의 탁월성을 보여 준다...동만(東만주) 일대를 배경으로 抗日(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공산주의자들 중 최고 지도자”(1989년 ‘북한지도집단의 抗日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硏究’)

“당시 김일성은 일반 민중에게 ‘공산당의 영웅’이 아니라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되어 있었다.… 요컨대 조국광복회에서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실천적 경험자였던 김일성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抗日무장투쟁의 聲價(성가)로 담보된 정통성을 기반으로 해방 후 혼란했던 북한 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김일성의 명망성이야말로 당시 북한 전역에서 자율적으로 분출하고 있던 지방 인민정권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지도자로 김일성을 선택하게 하는 제일의 요인이었다고 할 것이다”

“소련이 左派(좌파)의 다른 政派(정파)들을 제치고 계획적으로 김일성을 지원하고 조종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김일성은 抗日무장투쟁에서 얻은 그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해방 직후 북한 사회에서 통일전선의 모색과 군중노선의 추구 그리고 현지 지도 등을 실천했다”(1988년 9월 ‘역사비평’에 기고한 ‘북한사회주의 정권의 성립과정’)

※ 이종석氏의 주장을 관통하는 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史實(사실)과 다른 치우친 이념의 산물이다.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 3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근현대사 연구의 大家(대가) 성신여대 李炫熙(이현희) 명예교수는 “김일성의 일제시대 抗日(항일투쟁은 1937년 보천보전투와 1939년 무산전투 정도였다”며 보천보전투와 무산전투에 대해 각각 “보천보라는 里(리)단위 마을을 야습해서 하루 동안 분탕질한 것”,“무산의 일본 주재소를 습격했던 유사한 사건”이라며 이렇게 정의한다.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은 중국 공산군 소속으로 한국의 독립운동단체도 아니었습니다.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에서 중국인과 조선인이 섞여 있는 30여 명을 이끄는 소대장급 신분으로 인근 보천보와 무산을 하룻밤 야습해서 분탕질한 데 불과하죠. 얕은 압록강을 넘어 잠깐 왔다 간 것입니다. 우리 측 자료는 물론 중국·일본 측 자료를 종합해 볼 때, 김일성이 抗日(항일)의식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독립운동을 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李교수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북한의 역사학계에 의해 확대·과장·왜곡됐고, 이러한 북한식 평가는 남한의 소위 민중사관론자들에게 無(무)비판적으로 수용됐다고 지적했다.

“남한의 민중사관론자들은 보수세력에 대한 반발로 史料(사료)에 대한 취사선택이나 비판 없이 북한식 평가를 받아들였습니다. ‘김일성 장군의 항일투쟁이 냉전논리로 폄하됐다’는 것이죠”

이종석類(류)의 김일성 인식의 치명적 문제는 또 있다. 李씨의 석사논문은 물론 이후 그의 저술에 나타나는 김일성에 대한 평가에는 抗日(항일)빨치산 활동에 대한 영웅적 묘사가 있을 뿐, 6·25전쟁 당시 수백만의 동족 학살과 1990년대 300만 명에 달하는 북한 주민들의 집단 餓死(아사) 등 김일성의 反민족적 죄악에 대한 문제 제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종석氏는 盧武鉉 정권 출범 이후 NSC사무차장으로서 외교·통일·안보정책의 立案(입안) 및 執行(집행) 전 과정에 참여해 왔다. NSC는 2003년 2월‘동북아중심국가론’을 필두로‘전시작전통제권 환수(2003년 8월 등)’,‘자주국방론(2003년 10월 등)’,‘작계5029추진 중단(2005년 4월 등)’,‘동북아균형자론(2005년 3월 등) 등 한미동맹 파열을 자초하는 정책들을 연발해왔다.

盧정권은 2004년 6월15일 휴전선 인근의 대북‘자유의 소리’방송을 중단했는데 이 역시 이종석氏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월간조선(2004년 7월호)은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종석氏가 남북장성급회담에서 서해상 우발충돌을 방지하는 합의를 도출키 위해 북측이 주장하는 대북방송 중단과 군사분계선 선전물 철거에 응하라고 했다. 조영길 국방장관은 여러 차례 軍 작전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청와대의 의지가 강력해 뜻을 펴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