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의 '군사독재 시절' 표현은 自虐的 역사관이다!

朴正熙, 全斗煥을 '군사독재자'라고 모는 사람이라면 김정일 정권을 '학살정권'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만만한 前 정권을 욕하는 것은 비뚤어진 역사관과 비굴한 心性의 반영일 것이다.
李明博 대통령은 오늘 국무회의에서 "국회의원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면책특권을 이용해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군사 독재 시절에는 정치적 탄압으로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없어 보호를 받기 위해 부득이하게 국회에서 발언을 해야 했지만 민주화된 지금은 그런 식으로 하면 국민에게 큰 피해만 줄 뿐"이라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한 시기를 '군사 독재 시절'이라 표현했다. 그는 취임 이후 한번도 북한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 敵(적)에겐 조심하고 我(아)엔 가혹하다. 사실과도 맞지 않다. '군사독재 시절'이 언제인가? 1961년 5월16일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朴正熙 장군은 1963년 10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그해 12월 민간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가, 계엄령을 펴고 국회를 해산시킨 1972년 10월17일의 유신선포까지는 '군사독재 시절'이 아니었다. 국회도 기능하고 언론도 정부를 거의 자유롭게 비판하였으며 여야간에 선거도 치열하게 치러졌다. 사유재산권도 존중되었다. 군인출신 장관은 있었지만 現役(현역)은 아니었다.

1972년 10월17일부터 朴 대통령이 피살되는 1979년 10월26일까지는 언론자유와 정치자유가 많이 제약되었다. 하지만 언론, 국회, 야당의 정부 비판 기능은 살아 있었다. 이 시기를 독재라고 표현하기보다는 '권위정부 시절'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일부 학자들은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약하지 않은 점에서 '자유지향적 권위주의 정부'라고도 한다. 이 시기도 '군사독재 시절'이 아니다. 現役 군인들이 정치나 행정에 개입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80년 5월17일 계엄확대 조치 이후 全斗煥의 신군부가 實權(실권)을 장악, 근 1년간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제5공화국을 탄생시키는 전 단계의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李明博 대통령이 말한 '군사독재 시절'은 1961년 5월16일부터 63년12월 民政이양까지의 軍政 시절과 5·17 직후를 가리킨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기간엔 국회가 기능하지 않았다. "군사 독재 시절에는 정치적 탄압으로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없어 보호를 받기 위해 부득이하게 국회에서 발언을 해야 했지만 민주화된 지금은 그런 식으로 하면 국민에게 큰 피해만 줄 뿐"이란 李 대통령의 말은 가혹할 뿐 아니라 부정확하다.

보수층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보수층과는 매우 다르고, 오히려 좌익들과 닮은 역사관을 피력하였다. 전교조 교사들은 오늘 신이 났을지 모른다. "드디어 대통령이 박정희를 군사독재자라고 단정했다"고 가르쳐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公正(공정)은 균형이다. 朴正熙, 全斗煥을 '군사독재자'라고 모는 사람이라면 김정일 정권을 '학살정권' '민족반역집단'이라고 표현해야 공평하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만만한 前 정권을 욕하는 것은 비뚤어진 역사관과 비굴한 心性(심성)의 반영일 뿐이다.


李 대통령이 군사독재 시절이라고 매도한 그 시기에 '그들'은 욕을 먹어가면서, 청년 李明博을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꿈과 야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초를 놓기 시작하였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商人 출신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시기와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은 국가正體性(정체성)과 정통성의 수호자이다. 대통령의 自虐的(자학적) 역사관은 국가정체성과 정통성을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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