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무장한 북한이 남한내의 從北세력을 友軍으로 여기고 천안함 격침과 같은 局地的 도발을 계속하거나 全面 남침을 할 때 재래식 무기만 가진 한국은 韓美동맹만 믿고는 효과적인 對應을 할 수 없다는 여론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국가 생존 차원에서 합법적이고 공개적으로 自衛的 차원의 對應핵개발을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정권이 제3차 핵실험을 하여 핵폭탄을 소형화, 實戰배치한다면 남북의 군사력 균형은 돌이킬 수 없이 깨어진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평화至上論者들의 천국이 되어 북한정권에 종속되고, 뜯어먹히는 살찐 돼지로 전락할 것이다. 朴槿 전 유엔대사는 적극적으로 핵무장을 주장하는 이다. 4년 전 북한이 核실험을 하였을 때 월간조선과 한 인터뷰를 소개한다.
[인터뷰] 朴槿 前 駐유엔대사(월간조선 2006년 12월호)
*朴槿 前 駐유엔대사/1927년 경남 고성 출생. 서울大 문리대 철학과 졸업, 美 펜실베이니아大 대학원 정치학 박사. 미국 공사, 벨기에·EC·룩셈부르크 대사 겸임, 제12대 외교안보연구원 원장, GATT이사회 의장, 제11대 駐 유엔 대사 역임. 現 한미우호협회 제5대 회장, 한양大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金成昱 자유기고가
미국의 核우산은「찢어진 우산」
「북한의 核무장에 대응해 對應核(대응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朴槿(박근·79) 前 駐유엔대사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북한의 核무장에 맞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도는 대응核 개발』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核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북한의 核독점을 절대 허용할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북한의 核을 제거하든지, 그것이 불가능하면 대한민국도 核무기 보유국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속적인 지원을 해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내면, 북한이 결국 核을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북한의 核개발은 북한 체제를 지키고 남한을 赤化(적화)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돈과 쌀을 아무리 퍼줘도 金正日은 결코 核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북한이 核을 獨占(독점)함으로써 얻어지는 가치는 무한대입니다. 그러나 한국도 核을 가지면 그 가치는 零(영·0)이 되죠. 여기에 核무기를 포기하면 그 代價로 돈과 쌀을 가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 그때는 金正日도 核을 버리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북한의 核무기는 미국의 核우산으로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북한은 워싱턴·뉴욕·LA를 核공격하겠다고 공갈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도발을 일으킬 때 미국이 核무기를 사용할 수 있겠어요? 서울이나 東京이 불바다가 되는 걸 각오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의 核우산은 북한이 核을 가지기 전까지 기능한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核을 가진 이상 核우산은 이제 「찢어진 우산」입니다.
과거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미국이 프랑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소련의 核공격을 각오하면서까지 核우산을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 核개발을 했습니다』
『한국의 NPT 탈퇴는 국제법적으로 정당』
―한국의 核개발이 주변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한국이 核을 가지면 일본과 대만도 核보유를 추진하는 核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것입니다. 金正日 정권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중국은 그런 상황보다는 金正日을 버리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한국의 核무장은 북한의 核무기에 대응하는 「최고의 전략적 외교수단」입니다』
―우리가 核을 개발하려면, 核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까요.
『논리적으로 국제사회가 책임지고 金正日의 核무장을 막지 못한 이상, 核위협에 노출된 한국은 국가생존 차원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논리적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국제법적으로 한국의 NPT 탈퇴가 가능하겠습니까.
『NPT 조약상으로 가능합니다. NPT 조약 제10조에서는 「각 조약 당사국은 自國(자국)의 主權(주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본 조약의 주제와 관련된 비상사건이 自國의 最高(최고) 이익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판단한다면,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다. 그 당사국은 탈퇴 3개월 전에 모든 조약 당사국과 유엔안보리에 그 탈퇴를 통고해야 한다. 그 통고문에는 自國의 最高 이익을 위태롭게 했다고 간주하는 비상사건에 대한 설명을 포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NPT 조약을 탈퇴한 명분이 바로 그 제10조 아니었나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最高 이익을 위협하는 상황도 없었고, 탈퇴 이전 이미 불법적으로 우라늄 농축 방식에 의한 비밀 核개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과 달리 한국의 最高 이익이 위태로워졌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아직 交戰상대인 북한정권이 核무기를 보유하고, 침략당했던 한국은 核무기를 갖지 못한 상황이죠. 북한정권은 테러지원 국가입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核무장을 저지하지 못했고, 대한민국은 核무장한 金正日 정권 앞에 벌거벗은 채 노출된 상태입니다. 이 이상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NPT 탈퇴는 국제법적으로도 정당한 것입니다. 이런 논리로 조약에서 탈퇴한다면 탈퇴에 따른 국제제재나 불이익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核무장 위한 汎국민운동 벌여야』
―미국이 그런 상황을 용납할까요.
『미국은 내심 한국의 核무장 움직임을 반길지 모릅니다. 중국에 대한 압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을 설득하려는 우리의 의지입니다. 「한국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고 미국을 강하게 설득해야 합니다』
―核무기 개발을 위한 수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韓中정상회담을 열고 「1년 내에 北核이 제거되지 않으면 한국도 核무기 제조에 착수하겠다」고 경고해야 합니다. 이어 러시아·일본에도 같은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對北(대북) 유화정책으로 일관해 온 이 정부에 과연 그럴 의지가 있을까요.
『북한 核실험은 우리나라의 最高 이익인 생존권을 위태롭게 하는 사건입니다. 이 소름 끼치는 사건에 대한민국이 소름끼치는 결심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대한민국도 背水陣(배수진)을 쳐야 합니다.
1990년대 중반 제1차 北核위기 이래, 美·北 兩者회담과 제네바 협정, 重油(중유) 및 경수로 제공, 햇볕정책 이래 북한에 제공된 달러와 물자, 電力(전력)공급 약속 등 수많은 「당근」이 제공됐습니다. 지난 7월 미사일 발사 이후에는 安保理(안보리) 집단경고와 제재 등의 「채찍」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核실험이었습니다.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움직이질 않고 있죠. 이제 남은 건 국민의 힘입니다. 「金正日이 核을 포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核을 만들자」고 汎국민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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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태는 한국의 核무장을 촉구한다!
북한이 核과 局地的 對南도발을 결합시킬 경우 對應 핵무장을 하지 않고는 국가로 기능할 수 없다.
趙甲濟
미국의 권위 있는 정책잡지, 포린 어페어誌 2009년 11-12월호에 아주 주목할 만한 논문이 실렸다. ‘우리가 필요한 核’이란 제목의 기사를 쓴 사람은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 부교수 커 A. 리버와 다트머스 대학의 부교수 다릴 G. 프레스이다. 이 논문은 북한처럼 核무기를 가진 나라가 미국과 재래식 전쟁을 시작하여도 결국엔 核무기를 쓰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였다.
미군이 재래식 전쟁에서 우세해지면 핵무장한 상대방(예컨대 북한)은 休戰을 유도하기 위해서 핵위협을 하거나 핵무기를 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과 같은 핵무기를 가진 나라의 지도자들은 비록 재래식 전쟁에 져도 자신의 운명이 비참하게 될 것임을 잘 알 것이다. 敗戰 후 처형된 후세인의 운명, 미군에 잡혀 와서 마이아미의 감옥에 쳐 박힌 파나마의 노리에가, 재판을 기다리던 중 옥사한 밀로세비치를 보면 이들의 걱정이 이유가 있다. 미국의 입장에선 제한적 전쟁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선 死活을 건 전쟁이다. 독재자들은, 절박한 심리의 포로가 되면 核무기를 쓰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의 새로운 전쟁개념이 敵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이라크 전쟁에서 實證된 신개념의 전쟁은 開戰 즉시 상대방의 사령탑에 同時多發的인 공격을 퍼부어 전쟁지도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김정일이 이렇게 정신 없이 얻어맞으면 최후의 수단으로서 核무기를 쓰고 싶어질 것이다. 얻어맞는 쪽에선 제한전이란 생각이나, 재래식 전쟁이니 核무기를 써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필자는 재래식 전쟁에서 압도적인 優位를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전술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核무기를 사용하도록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1991년에 이라크를 치기 전에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은 이라크의 타리크 아지즈 외무장관에게 “만약 이라크가 화학, 생물학 무기를 쓰지 않는다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약속은 전투에선 지켜지지 않았다. 미군은 후세인을 겨냥한 공격을 하였는데, 한번은 거의 죽일 뻔하였다.
그렇다면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와 전쟁을 할 때, 敵이 핵을 쓴다든지 핵을 쓰겠다고 위협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두 필자는 소규모 핵무기를 정밀하게 사용하여 敵의 核미사일을 파괴할 수 있는 보복수단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我軍의 군사시설에 대한 敵의 핵공격에 보복한다고 核무기를 사용하여 敵의 도시를 파괴하는 것은 사람만 많이 죽이고 전략적으론 비효율적이다. 核미사일 기지를 대규모 핵폭탄으로 공격하는 것도 수백만의 민간인들을 죽게 할 뿐 아니라 미사일 파괴율이 그리 높지 않다. 두 필자는 중국의 대륙간 미사일 기지를 대형 핵폭탄으로 보복 공격하면 민간인들이 3~4백만 명이나 죽을 것이라는 실험 결과를 소개하면서 이런 보복은 무리라고 지적하였다.
미국은 핵폭탄으로 얻어맞고도 방사능을 최소화하는 정밀한 소규모 핵폭탄을 사용하여 보복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중국에 적용할 경우, 700명의 사망자만 내면 모든 核미사일 기지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필자는 미국이 이런 보복능력을 보유하여야 敵의 核사용이나 核위협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앞으로는 기술발전에 의하여 B-2 폭격기를 이용한 재래식 방법의 보복폭격도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敵으로부터 核무기로 얻어맞고도 미군은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여 敵의 核미사일 기지를 다 파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재래식 무기와 소규모 정밀 핵폭탄을 결합시켜놓으면 敵이 감히 핵위협이나 核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다.
두 필자는 북한과 같은 핵무장 집단이 核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그들이 핵을 썼을 경우, 이런 보복을 당할 것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보복능력을 실제로 갖추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정권이 核폭탄에다가 운반수단을 갖추게 되면, 한국군은 천안함 폭침 사건 같은 도발을 당하고도 과감한 보복공격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대규모 보복을 하려고 하면 북한군은 核을 쓰겠다는 위협을 할 것이다(최근 북한군은 이와 비슷한 위협을 하였다). 이를 무시하고 보복공격을 명령할 국가 지도부가 있을까? 더구나 美軍의 지원 여부가 불투명하다면 과연 한국은 一戰不辭의 결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핵무기를 쥔 북한정권은 한국을 치고 싶은 유혹에 빠질 것이다. 재래식 군사력으로 기습을 하여 서울을 포위하고, 수백만의 從北세력이 들고 일어나도록 한다. 10만에 이르는 경보병 여단 병력은 글라이드를 타고 후방에 침투하여 일대 혼란을 일으킨다. 북한은 이렇게 해놓고 “현위치에서 휴전하자. 만약 불응하면 핵폭탄을 쓰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그때 한국 대통령이 李承晩이나 朴正熙 같으면 “決死抗戰”을 선택할 것이지만 李明博 대통령 같은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만약 서울이 포위된 상태에서 현위치 휴전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대한민국에 弔鐘이 울리고 공산화된다.
김정일은 남한을 기습하더라도 核무기를 갖고만 있으면 반격을 당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다. 이 자신감은 對南도발의 의욕을 북돋울 것이다. 이래저래 북한의 핵무장은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란 점을 포린 어페어誌의 논문이 想起시킨다.
김정일은 핵폭탄과 남한내 從北세력이란 두 가지 전략적 무기를 갖고 있다. 우리는 북한내에 親韓세력도 없고 核도 없다. 韓美동맹이 유일한 방파제이다. 韓美연합사 해체는 이 방파제에 금을 가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물이 새기 시작할 때 김정일이 두 가지 神器를 믿고 남침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敵의 核폭탄과 남한내 반역세력에 대한 우리의 전략은 간단하다. 對應핵무장, 從北세력 숙청, 韓美연합사 해체 중단이 그것이다.
최근 천안함 사태는 북한정권이 核무기와 局地的 도발을 결합시킬 경우 한국이 무슨 대응책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번 천안함 사태는 한국인에게 "北核과 통일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한국의 核무장에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군사적으로는 결코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는 북한, 중국, 러시아가 核무장을 한 상태에서 우리를 싸고 있는데, 우리 안에선 '국가생존 차원에서 核무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리 부유해도 노예로 살다가 망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 2010-05-04, 2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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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렵더라도 核무장의 길을 가야 한다!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自尊 自立的 여지를 준비하지 않으면 北核문제와 우리의 내부갈등에 대한 해답을 얻기 힘들 것이다.(
金哲
북핵문제의 아주 오래 된 의혹
20년이 다 되어가는 北核협상은 진전이라곤 없다.
그러나 北核은 진전이 있다. 北은 核을 만들었다. 그것이 美國이란 나라의 協商力이다.
빌 로저스가『미국은 전쟁에 패배한 적도 없지만 협상에 승리한 적도 없다』라고 한 말 그대로이다. 또한 그것이 무기의 本態다.
오바마는「核무기 없는 세상」을 주장한다. 물론 형식적인 감축은 있겠지만 다 허망한 꿈이다.
인류는 한번 만든 무기를 폐기한 적이 없었다. 용도가 다한 무기를 제외하곤 말이다.
어떻게 보면 核은 인류에겐 재앙이지만 약소국에게는「축복」이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강대국도 약소국을 함부로 다룰 수가 없다. 드골 정권의 核개발과 전략을 수립한 삐에르 갈로와의 理論이 그것이다. 마치 칼라하리 사막의 오소리처럼『나를 해치면 너도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나오는 것이다. 金正日이 核에 집착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더구나 그것은 정밀첨단무기보다 값이 싸다.
北核문제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北核문제에 대한 미국 그리고 한국의 접근법은 근본부터가 잘못되었었다. 두 나라는 한국전쟁의 停戰當事者이다. 상대의 核개발은 엄중한 軍事문제이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당초에 군사문제로 직격 처리하는 것이 타당했다.
北核문제는 이란核문제와 다르다.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정치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온당하다. 그런데 미국은 거꾸로 하고 있다. 이란에 대해서 끊임없이 군사적 위협을 시사하고 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협상하는 데 소비했다.
극단적으로 가정한다면 미국은 이란核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나설 것이다.
마이크 치노이(前 CNN 기자)는 저서(Meltdown: The Inside Story of The Korean Nuclear Crisis)에서 北核과정을 年代記적으로 서술해 놓고 있다.
미국도 北核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클린턴 집권기인 1994년 미국은 군사공격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영원히 무산됐다. 한국정부가 최악의 상황에 대해 겁을 집어 먹은 데다 카터의「얼치기 중재」가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미국의 계획이 실행됐더라면 최악의 상황에 이르기 전에 북한의 굴복이 있었으리라고 본다. 왜냐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당시 미국과 대결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先富정책과 올림픽 구상 때문에 산업중심인 東岸(서해)의 안정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전략적 이해지역인 발칸에서도 뒷짐을 지고 있을 만큼 國內사정이 엉망이었다. 따라서 북한은 막판에 치킨 게임을 피하고 손을 들었을 것이다. 마치 과거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때처럼.
미국의 갈팡질팡에 비해 북한의 포지션은 지극히 戰略的인 일관성을 견지했다.
북한은 核이 그들의 生存과 그 生存의 外延확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이용해 저지력(Deterrence)을 확보하고, 2단계로 이를 상대에 대한 강제력(Enforcing) 단계로 발전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美國과의 정치협상(美北평화조약)에 도달한다는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미국 등은 북한의 이 전략을 Dual-Track 전략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즉 북한의 속셈은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戰略관계를 수립하고, 또 한편으로는 核과 미사일을 계속 개발하는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전략은 아직 완전치는 않아도 상당히 성공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같은 북한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을 전술이랍시고 줄곧 구사해왔고 지금도 그 實效性을 믿고 있다.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북한에게 있어 核은 생존전략의 문제인 이상 당근과 채찍을 일시 이용할지언정 결코 동요하지 않게 되어 있다.
6자회담은 그 점을 가장 극명하게 설명하는 事例이다. 미국과 한국은 6자회담體制가 국제적인 對北제재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저 口頭禪처럼 외고 있는 것이 6자회담이다. 그러나 북한에 있어 6자회담은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배제하고, 회담 참가국을 이간시키면서 핵과 미사일 무장을 계속 진척시키는 長征장치이다.
사실 미국이 과거 한 때 군사적 조치를 고려한 적은 있지만 결국 전체적인 흐름은 협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無骨협상이었다. 無骨협상의 시작은 지금 크게 기억되고 있는 94년의 제네바 美北회담이 아니라 그전에 뉴욕에서 일어난 美北접촉이었다. 당시의 상황은 92년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85년 NPT(핵비확산조약)에 가입한 북한이 그동안 제출한 보고자료가 미심쩍다고 해서 특별사찰을 요구하고 북한이 이를 거부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북한은 이를 기화로 NPT탈퇴를 위협했다.
停戰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이 군사채널인 판문점이 아닌 뉴욕에서 만나는 것은 특히 한국으로선 주의를 요하는 대목이었다. 이 접촉은 일차적으론 당연히 군사적으로 대응해야할 핵문제를 정치협상으로 접근하는 단초를 열었다. 이러한 미국의 접근방식은 북한이 의도한, 그리고 뒤에 북한의 의도대로 실현되어 가는 Dual-Track 전략의 성공가능성을 시사한 중대한 고비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동맹국이 한국을 제쳐놓고 적대국과 접촉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도 어차피 정치협상의 시작 가능성이 농후했는데도 그렇게 했다. 실로 非主體的外交였다. 마치 주문을 외듯이 美北對話는 무조건 찬성하는 이상한 한국외교는 사실상 이때에 시작된 것이다.
정치협상의 가능성이 시야에 들어오자 북한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美北접촉과 그 뒤의 제네바 美北회담을 전후하여 停戰體制를 조직적으로 와해시키기 시작했다. 판문점의 기능반감이 그것이다. 정치협상의 가능성이 보이는 마당에 停戰體制는 북한에겐 거추장스런 것이었다. 그리고 通美封南이라는 노골적 한국무시 전략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通美封南은 한국정부의 자발적 主權포기로 인한 自業自得적 측면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 필자(조선일보 국제담당데스크)는 이 접촉에 대해「뮌헨의 再版」(히틀러에게 체코를 양보한 유화정책의 상징)이라고 지적했고 일부 외신들이 이를 인용했다.
그 뒤에 군사공격소동이 일단락 되고나서 94년 美北은 제네바 회담을 열었다. 제네바회담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취재記者들의 입장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저 미국으로부터 얻어듣는 것이 전부였다. 그해 10월12일 로버트 갈루치와 강석주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라는 것에 합의했다. 내용은 영변 원자로 가동 동결, 신설계획의 원자로 건설 중단, 그리고 IAEA의 사찰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북한의 단순약속이었다. 과거 추출 플로토늄은 묻혀버렸다.
북한이 破約할 경우의 대가나 응징조치도 응징의 主體도 없었다. 한국정부는 제네바기본합의 발표전날 그 내용을 통고 받았다. 그날 오후 관계부처회의가 당시 담당인 김○○대사의 주재하에 종합청사에서 열렸다. 당시 대통령정무비서관(YS정부)이던 필자는 소관은 아니지만 그 회의에 참석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았다.
합의문이 공개되자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그냥 넘어갈 판이었다.
관계자도 아닌 필자는 이의를 제기했다.『이 합의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 보십니까. 이런 엉성한 합의문을 발표했을 때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할 자신이 있습니까. 나는 아니라고 봐요. 지금이라도 예상 질문을 想定해서 답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좌중이 조용했다. 그때에 엄익준(故人: 당시 안기부 간부)이 나의 의견에 찬성하면서 회견대비 Task Force를 만들자고 제의했다. 그래서 그날 밤에 Task Force가 준비를 했을 것이다.
이같은 美國式의 난맥상에 대해 헨리 키신저는 그의 저서『외교(Diplomacy)』에서 적절한 지적을 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전통적으로 外交와 戰略을 별개의 것으로 간주해 왔다. … 制限戰에 있어서 軍事목표와 政治목표를 처음부터 일치시켜 놓지 않으면 도가 지나치거나 반대로 미흡해질 가능성이 상존하기 마련이다. 軍部가 주도권을 잡으면 全面전쟁과의 경계가 애매해진다. 반대로 군사행동이 미흡한 가운데 外交가 주도권을 쥐면 교섭기술에 의존하거나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는 가운데 전쟁목적은 매몰될 위험성이 있다.』
미국식은 종종 그래왔다. 6.25때도 마찬가지였다.
화제를 모은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The Coldest Winter는 미국적 전쟁평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反맥아더的인 저자는 전쟁실패에 대한 책임을 맥아더에게 돌렸다. 그러나 이 관점은 잘못된 것이다. 전쟁의 政治목표를 설정한 책임은 엄연히 대통령인 트루먼의 몫이다. 그 책임을 軍人인 맥아더에게 지우는 것은 조리에 맞지 않다.
오히려 만주의 중공군 병참기지를 폭격하고 대만군을 본토에 상륙시키자는(당시 본토에는 國府軍이 수백만 남아 있었다) 맥아더의 주장이 통했더라면 적어도 휴전은 현재의 휴전선 선상보다 훨씬 북쪽에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당시 스탈린은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자신도 실력도 없었다. 中共은 극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유럽이 위험하다는 英國등의 우려는 그야말로 우려였다고 본다.
越南戰도 마찬가지였다. 그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미국이 승리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중요한 분기점은 있었다. 68년 越盟은 舊正전면공세를 벌였다. 게릴라戰의 원칙에서 보면 이것은 말도 안되는 원칙위배였다. 왜냐하면 게릴라戰의 요체인 병참선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越盟은 여론국가 미국의 취약점을 노렸다. 舊正공세가 일단락되면서 웨스트 모어랜드 장군 등 美軍지휘부는「이제 이 전쟁은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CBS의 월터 크롱카이트가 폐허가 된 후에에서 생방송을 하면서 미국의 여론은 급격히 反戰化했다. 군사과학은 실종되고 포퓰리즘이 승리하는 중대고비였다.
1943년 4월 처칠은 통합군사령관 아이젠하워에게『연합군은 반드시 베를린, 프라하, 비엔나를 확보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45년 3월 스탈린에게 보낸 서신에서『우리는 베를린으로 진격하지 않을 것이며 드레스덴에서 美蘇軍이 합류하자』고 제의했다. 냉전시대의 중심문제가 줄곧 베를린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의 정치적 短見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70년대말 카터는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엉뚱한 정책방향을 잡았다. 포퓰리즘이 한반도의 군사적균형을 붕괴시킬 뻔했던「怪事件」이었다.
北核문제는 뉴욕접촉, 제네바회담을 거치고 6자회담에 진입함으로써 협상의 場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미국은 상당기간(부시행정부 중반)까지도 이것이 협상이 아니라고 했고 지금도 선뜻 협상이라고 말하기를 꺼리고 있다. 실로「눈가리고 아웅」이다.
미국의 목표가 상대가 가진 核의 폐기라면 停戰當事者답게 모종의 군사적결단이나 정치적 결단을 내렸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北核폐기의 條件을 중심으로 회담을 하면서 협상이 아니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북한편도 참가하는 6자회담을 하면서 말이다. 협상은 안한다면서 얼마 전부터는 美北평화협정까지 반대급부로 “想定”할 수 있다고까지 말하면서 말이다. 제목을 협상이 아니라고 아무리 달더라도 내용이 협상이면 이는 북한의 Dual-Track에 乘車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Dual-Track은 성공적이고 미국의「눈가리고 아웅」은 時限體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키신저가 말한대로 戰略과 外交의 각개약진은 내부적으로나 對北회담에 있어 많은 혼란을 불가피하게 했다. 美정부내의 강·온파 대립, 관계부처간 쟁투가 그것이다. 이러한 갈등에 대해 首長역시 認識論的 혼란의 포로인 이상 리더십에 의한 해결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부시가 북한을「깡패국가」로 일도양단으로 분리하다 결국은 깡패와 협상에 들어선 것은 키신저가 지적한 미국의 맹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갈등을 처음에는 순전히 요령에 의해 성공적으로 극복한 듯 보였다가 결국 북한의 핵실험 후폭풍으로 좌초한 인물이 크리스토퍼 힐이다. 그는 미국식 혼란의 불가피한 부산물이었다.
그 다음 미국은 북한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키신저가 지적한 미국식 혼란에서 비롯되었지만, 文化的 문제도 있었다. 美國은 우선 북한을 회담의 국제적 규칙을 지키는 상대로 착각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한마디로 緣木求魚이다. 북한에게 있어 核은 生存문제이자 자존심의 문제이다. 북한은 세계최강의 미국과의 전쟁(6.25)에서 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적어도 그들의 생각에는).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북한외교의 本質문제이다.
이는 미국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마치「러시아건 미국이건 외국 놈은 다 싫다」는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이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북한지역은 朝鮮史에 있어서도 소외지역이었다. 그들의 장사법이나 사고방식은 중앙지대 내지는 남쪽과는 달랐다. 그러한 토착적 기질에 공산당수법까지 더해졌다. 때문에 西歐式의 회담규칙에 대해 북한은 아무 관심도 없다. 벼랑끝 전술이니 살라미 전술이니 하지만 모두 서구적 관점이지 북한과는 무관하다. 朴正熙 대통령이 남북접촉에 북한출신을 종종 기용한 것은 기질적으로 이해가 깊은 같은 지역출신에게 기대했기 때문이다.
北核문제에 있어 한국의 접근법은 非좌파정권이나 좌파정권을 막론하고 전혀 停戰當事者답지 않았다. 다만 양자의 특성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非좌파정권은 對美추종외교를 기본으로 하되 극한적 사태를 감수할 용기가 없었다. 즉 미국의 공격적 결단에 대해서는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소극성을 보였다. 카터도 카터지만 동맹의 한 축이 이렇게 소극적이면 미국의 北爆계획은 성사될 수가 없었다.
반면 좌파정권은 오히려 미국에 딴죽을 거는 행태를 보였다.「민족환상주의」,「對話至上主義」에 빠진 좌파정권은 미국의 對北봉쇄환경조성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2000년 6.15공동선언 뒤에 金大中대통령은 이제 전쟁걱정은 없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金正日은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6.15는 그 뒤에 좌파정권의 對北對美관계의 토대이자 근간이 되었다. 2001년 DJ는 서울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反탄도조약(ABM)조약을「전략적 안정의 초석이자 핵무장해제 및 비확산을 위한 국제노력의 중대한 토대」라며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를 편든 것이다. 따라서 ABM이 더 이상 용도가 없다고 보고 NMD(국가미사일방어망)를 구축하려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부시행정부의 PSI(확산방지구상)에 중국과 더불어 불참했다.
이 구상은 미사일, 화학-생물학 무기, 핵 등 불법적인 물질의 국제거래를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공해상에서 수상한 선박을 검색하는 체제였다. 좌파정권은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는 조치는 절대로 피했다. 2005년 가을 韓美연례 국방장관회담에서 한국측의 실력자는 북한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한국이 美핵우산의 아래 놓여 있다』는 언급을 삭제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은 줄곧「한반도에서 미국의 핵우산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이 핵무장으로 치닫고 있는 마당에 한국측은 북한의 心氣나 걱정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은 전시작전통제권(OPCON)을 이양할 것을 미국에 요구했다. 盧정권은 방코델타(BDA: 북한의 돈세탁 의무를 맡고 있던 마카오은행)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중지해야 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BDA는 북한의 반발로 6자회담의 중요한 걸림돌이었다. 좌파정권의 토대가 좌파정권 스스로 어느 정도 구축한 한국민의 反美분위기였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이제 지난 일이다.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로 무장했다. 이것은 확정된 새로운 現實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도 發想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이와 관련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본다.
첫째는 통일문제에 대한 대한민국의 의지와 책략을 새로운 각도에서 강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 金正日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고 북한의 경제사정이 최악이고, 후계문제는 원만치 못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북한체제가 미구에 붕괴할 것이라고 관측하는 것은 너무나 안이하다. 또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대한민국에게는 따로 해야 할 엄청난 과제가 있다.
지금 5029라고 해서 북한급변시의 여러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독일再통일과 같은 과정이 한반도에서 되풀이될 것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다. 당시 東獨의 강력한 後見이었던 소련은 거덜난 상태였다. 그러나 북한의 後見인 중국은 G-2로 거론될 만큼 강력하다. 러시아도 統獨당시의 소련이 아니다. 더욱 독일에 대해서는 東西간에 2+4라는 독일문제처리의 포뮬라가 있었다. 그래도 미국의 강력한 도움이 없었으면 統獨은 불가능했다.
북한체제 급변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아버지 부시가 독일문제를 다루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즉 미국의 초점은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한반도의 현상안정이다. 미국은 중국의 정치적-군사적 이해권인 북한문제를 두고 중국과 統韓문제에 대한 갈등을 벌일 수 없다. 아마도 難民문제와 북한이 보유한 핵, 화생방무기에 대한 관리가 미국의 주요관심사가 될 것이다. 그것도 중국의 절대적인 협조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 시점에서 한국정부는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한국사회는 끝없는 분열로 요동칠 것이다. 따라서 통일을 위해서는 새로운 한국 나름의 策略이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이 核무장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현재로선 至難한 길이다. 그러나 세계 核보유국 쳐놓고 美國을 제외하곤(英國은 맥마흔 협정에 의해 순조롭게 처리했다) 그 至難한 길을 걷지 않은 나라는 없다. 우리도 치명적 내지 制限的인 加害力을 갖지 않고선 변화하는 세계에서 견디기 힘들다고 본다. 그럴 경우에는 分斷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는 지리한 左右갈등도 차원과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그 같은 의지 하에서 戰作權회수를「구걸」하기보다 韓美동맹관계의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自尊 自立的 여지를 준비하지 않으면 北核문제와 우리의 내부갈등에 대한 해답을 얻기 힘들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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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氏, 정치인중 유일하게 "核무장" 주장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 포기해야"
金成昱
이회창 前한나라당 총재의 출마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李 前총재의 핵무장 발언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李 前총재는 정치인 중 유일하게 北核에 대응한 한국의 핵무장을 거듭 주장해 온 인물이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지난 해 10월19일 세종문화회관 특강에서『북핵 상황이 악화될 경우 한국도 핵무장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기정사실화하면서 일본 등 주변국의 핵군비 경쟁 조짐이 나타날 경우 차기 정권은 장기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나는 그간 한국의 핵 보유를 반대해왔지만, 핵우산을 가진 미국과의 동맹이 약화된다면 스스로 핵 능력을 갖춰 인접 핵국가들을 억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고 눈앞에 닥친 재앙을 외면하는 정권에 대해서는 「국민저항권' 발동도 고려해야 한다』며 『이 정권에 대한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대북지원, 협력과 관련한 정부조치에 불복종하고 저항하는 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손으로 쓰는 것이다』>
李 前 총재는 11월20일 경남 창원컨벤션센터(CECO) 강연에서도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못하면 일본과 대만이 핵 군비를 준비하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韓美 양국의 동맹이 약화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핵을 보유하겠다고 나오면 미국에 대한 우리의 강한 「북핵 폐기」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손으로 쓰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동맹국이라도 우리의 운명을 송두리째 맡길 수는 없다. 우리 자신이 혼연일체가 돼서 전력투구를 해야만 주변국들도 우리를 돕는 것이지 (노무현 정권과 같이) 반대로 되서는 우리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재차 핵무장을 주장했다.
<『現정권에 대해 국민저항권 발동 고려해야』>
李 前총재는 『그동안 좌파 정권 집권에 빌미를 제공한 자책감으로 조용히 지내왔다』며 『그러나 이 정권이 하는 걸 보면 싹수가 노랗다. 노무현 정부는 북핵을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북핵을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있다』고 盧정권을 비판했다.
그는 『좌파정권을 확실하게 끝내야 한다. 다시 속아서 다음에도 좌파정권이 들어선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온 국민이 저들의 깜짝쇼에 다시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손해가 있겠지만 (후손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북핵 포기 제재 압박,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07-11-03, 18:00 ]
미국의 核우산은「찢어진 우산」
- 趙甲濟, 金哲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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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05, 0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