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정말 힘듭니다”

[특집:화폐개혁 이후 1년]뉴욕타임즈 샤론 라프라니에르 기자의 머리기사.
오늘부터 본 방송은 뉴욕타임즈가 의뢰하고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마련한 8명의 북한주민 인터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이 인터뷰는 여권을 가지고 중국으로 나왔던 문자 그대로의 '북한주민 인터뷰'로 이름과 거주지 등은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첫번째 순서로 '자료집' 발간에 관여했던 뉴욕타임즈 샤론 라프라니에르 기자의 머리기사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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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의 증언은 북한당국의 정책이 고통을 오히려 어떻게 확산시켜는지 보여준다.]
-샤론 라프라니에르 기자-


<비틀거리는 경제>

경제학자들은 연기가 나지 않는 높은 굴뚝이 있는 북한 위성 사진들을 인용하며, 북한 공장의 네 개中 대략 세 개는 가동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 경제는 김정일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종식시키기 위한 다자간 회담에서 빠지기 시작한 2006년 이래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천안함 사건도 경제에 더욱 손해를 입힐 것이다. 한국에서 거의 모든 무력을 중지했고, 이것은 해산물 매매와 다른 수출에서 연간 3억3300만 달러의 손해를 북한에 발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1954년 한반도가 분단되었을 때, 남한은 이웃 나라들보다 가난했다. 자료에 따르면, 현재 남한 노동자들의 평균 수입은 북한 노동자들의 15배이다.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돌어오는 탈북자의 수도 지난 10년간 꾸준이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 해에만 3000명의 탈북자가 한국으로 들어왔다.

북한 인구조사와 유엔 인구기금에 따르면, 유아와 임산부 사망률이 1993년에서 2008년 사이에 적어도 30%나 뛰어 올랐고, 기대수명은 같은 기간 3년이 줄어 69세라고 밝혔다.

유엔 세계식량계획은 5세 미만 북한 어린이 세 명중 한 명은 영양실조라고 한다. 네 명중 한 명 이상이 식량원조가 필요하지만, 후원자들이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는 나라에 원조를 보내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화폐개혁은 그 고통을 가중시켰다. 화폐개혁의 목적은 북한의 방대한 지하거래, 즉 장마당에서의 현금 거래를 현금이 바닥난 정부 사업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장마당은 많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소득의 원천이지만, 이것은 경제적 사회주의 국가의 신조에 위배된다. 이론적으로는, 미성년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 국영기업들은 30년째 시들어 가고 있고, 북한 사람들은 국영기업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한다.

잡초가 집단 농장을 뒤엎는 동안 농부들은 자기 밭을 가꾼다. 도시 노동자들은 국가과제를 피하면서, 녹슨 공장을 뒤져 빼낸 금속에서부터 중국에서 밀수한 텔레비전까지 모든 것을 팔러 다닌다.

“무역을 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동그란 얼굴에 머리를 묶은 51세쯤 보이는 전직교사는 말했다. 그녀는 충성스런 국가 일꾼에서 불멉 밀수자가 되었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곤경을 벗어날 수 없었다.

<너무 굶어 공부조차 할 수 없어…>

그녀는 북한에서 5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청진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서 30년을 가르쳤다. 2004년, 일일 업무가 오전 업무로 줄어, 학교는 정오에 수업을 마쳤다. 적어도 그녀가 맡은 학급 학생 50명중 15명은 한 시간만 참석하고 떠났다. 그들은 배가 고파 공부를 할수 없었던 것이다.

“굶어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정말 힘듭니다.”라고 말했다. “책상에 앉아 있는것도 그들에겐 힘드니까요.”

선생님들도 배고프긴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월급으로는 쌀 1Kg도 살 수 없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1998년 자녀가 3학년 되던 해에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대신 이웃집에 보내어 바느질을 배우게 하였다.

그녀도 2004년 학교를 그만두고 청진의 주요 시장에서 옥수수 국수를 팔기 시작했다. 간판대들과 플라스틱 방수포들로 둘러싸인 넓게 트인 지역에서 상인들은 중국 치약, 바늘, 금지된 한국드라마 DVD를 판다.

하지만 국수는 거의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좀더 위험한 장사를 하기로 했고, 국가에서 통제하는 상품들, 즉 잣과 인기 있는 차에 쓰이는 산딸기를 팔기로 했다. 그러나 10월에 그 계획도 망쳤다. 그녀와 그녀의 동업자가 한 마을에서 17개의 자루에 물건들을 넣어 오던 중, 초소 경비대원에게 걸려 그들을 통과시켜주는 대가로 받는 뇌물 대신 가지고 있던 것들을 몽땅 다 몰수당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30만 원의 빚뿐이었다.

45세의 아주 마른 건설노동자도 동일하게 개인장사가 가족의 유일한 살 길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자로서 나라가 정해준 업무량을 뿌리치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청진 국영 건설 회사에서는 그를 고용해도 그 회사는 생산물자도 별로 없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현금도 없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3분의 1 이상이 한 달에 5000원을 내고 회사 업무일지에 체크를 하고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나온다는 것이다.

더 작은 규모의 국영회사에서는 이같은 돈을 내는 관례가 널리 펴져, 이 돈이 회사가 부도나지 않게 해 준다고 62세 청진 상인 할머니는 말했다. 청진의 제철소와 같은 큰 회사들조차도 2007년 이후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고, 다만 한 달에 10일치의 식량만을 배급해 줄 뿐이라고 할머니와 다른 탈북자들은 말했다.

“만약 노동자들의 돈을 주지 않는다면 그 회사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다?” 라고 그녀는 진지하게 반문했다.

최근, 건설노동자의 회사는 좀 활발해졌다. 나라에서 2012년 김정일의 아버지이자 북한의 창설자인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해 청진의 포장된 도로들을 재포장하고 병원과 대학을 지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대가를 지불했다. 각각의 가정에서 매당 지역당 위원회에 17개의 부대자루에 자갈을 채워 가져가야 했다.

국가 월급이라곤 한 푼 없이, 그는 그의 기지로 돈을 번다. 10월달이면 위험한 해안 물살 속에서 그가 조종하는 배에서 잡은 오징어를 판다. 그 나머지 기간에는 자전거를 타고 매일 32Km를 달리면서 팔 수 있는 물건을 찾는다. 대개 공장에서 산 세제 같은 물건을 그의 아내가 중앙시장 밖에서 12% 올린 가격으로 자주색 방수천 위에 올려 놓고 되판다.

북한 당국은 주기적으로 시장에서의 가격, 시간, 매매 물건, 상인들의 나이와 성별, 그리고 심지어 그들이 자전거를 탔을 때 물건을 끌고 갈수 있냐 없나 또는 그들의 등에 물건을 맬 수 있냐 없나까지 단속한다.

[정리]한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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