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3일은 신의주 反共학생의거 65주년이다.

65년전 신의주학생의거는 反蘇(반소)·反공산당 봉기였다.
당시 사건결과 발표를 보도한 신문기사(朝鮮日報, 1945. 12. 9)

‘新義州 反共學生義擧(신의주반공학생의거)’는 1945년 신의주의 6개 남녀중학교 학생들이 ‘공산당 打倒(타도)’를 결의하고 反蘇(반소)·反공산당 시위를 벌인 사건을 말한다.

 

< 배경 >

1945년 11월16일 평안북도 龍巖浦(용암포)에서 열렸던 기독교사회당 지방대회에서 평북자치대 용암포 대표가 폐교 조치된 수산기술학교(공산당의 정치훈련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의 복구를 요구하고, 공산당 용암포 대장 李宗洽(이종흡)의 만행 등을 규탄하였다.

 

< 전개 >

연설을 경청하고 있던 학생들은 만세를 외치며 ‘학원의 자유’와 ‘공산당 타도’를 외쳤고, 공산군과 소련군은 경금속 공장의 노동자들을 使嗾(사주)해 이들의 행동을 저지했다. 그 와중에 평안교회 홍 모 장로가 노동자들에 의해 현장에서 살해되고 학생과 시민 1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 소식이 신의주시에 있는 평안북도 학생자치대 본부에 전해지자 신의주시 6개 남녀중학생들이 11월23일 오전 9시 학교 강당에 집합해 ‘공산당 타도’를 결의했다. 이들은 3개조로 나뉘어 1조는 평안북도 인민위원회를, 2조는 평안북도 공산당 본부를, 3조는 신의주 보안서를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오후 2시 일제히 행동에 들어갔다.

 

1조인 신의주동중학교와 제일공립공업학교 학생들이 평안북도 인민위원회에 도달하자 보안부에서 기관총을 亂射(난사), 상호간에 공방전이 벌어졌고 13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2조인 사범학교와 제2공립공업학교 학생들은 평안북도 공산당 본부의 앞뒷문을 부수고 진입, 공산당의 무차별 사격을 받으며 黨舍(당사)를 점령했으나 10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를 냈다. 3조인 평안중학교와 신의주공립상업학교 학생들은 목표 지점으로 시위행진을 하던 중, 소련군의 집중사격을 받으며 물러났다. 뒤늦게 이들의 봉기 소식을 들은 사범학교의 부속 강습생과 신의주南공립여자중학교 학생들은 市인민위원회를 습격, 기밀문서를 뺏는 등 공산당원들로부터 그들의 과오에 대해 사죄를 받고 돌아왔다.

 

< 결과 >

사건 후 피살된 학생은 23명, 중경상자 700여명이 되었고, 2000여명이 투옥되었다. 이 사건은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의 만행과 이들과 야합한 북한 공산당의 동족탄압행위였다. 11년이 지난 1956년엔 이 사건을 기려 11월23일을 ‘反共(반공)학생의날’로 제정했으며 한 동안 교과서에도 신의주 반공학생의거에 대한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