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 충실하자

*이 기사는 월간조선 독일 통신원 백선균씨의 글입니다.

백선균
baik.trd@t-online.de


탄핵사태를 혼자 즐기는 노무현





실정과 잦은 상말, 말실수가 점점 더 소수를 만들어가지만 오직 살 길은 의회장악뿐이라고 착각한다. 미국은 의회에 관한 한 여소야대이다. 민주주의체제의 통치는 여당의 지배가 아닌 야당설득으로 가능해진다. 이 평범한 사실을 노대통령은 애써 외면해왔다. 대한민국 양대 헌법기구의 갈등은 드디어 탄핵사태를 빚어냈고, 국민은 헌정초유사태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국가의 불안과 혼동, 분열의 대가를 치러야 할 사태는 여하간 매우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탄핵사태의 원인제공자이고 원천인 그는 그의 버릇대로 탄핵사태의 모든 책임을 남에게 미루고 느긋이 즐긴다. 조짐은 엄청난 불행을 예고한다. 노대통령은 서민대통령을 자처했지만 그가 서민을 위하여 한 일은 없다. 그는 치사한 그의 상말버릇을 덮기 위하여 서민을 상말을 좋아하는 천민으로 만들었다.

헌정사에 불행하지 않은 대통령이 없다. 헌정사의 불행은 탄핵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필자의 주장근거는: 개인적으로는 자업자득의 업보이지만《국가적 불행을 헌법기구가 막지 못했다》이다. 헌정은 민중 또는 폭력에 의하여 중단되는 불행을 거듭해 왔다. 국회의 무능은 최고권력자의 거수기 노릇뿐이었다. 그건 민중의 희생을 결과했다. 최고권력자의 의회지배욕망은 국회권력을 약화시키는 큰 요인이 됐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에 비추어 헌법 틀 내의 제도상 이루어진 금번 탄핵은 -물론 나름대로이지만- 헌정사적 장거∙민주주의의 쾌거라 부르기 서슴지 않는 所以(소이)가 된다. 탄핵으로 헌정이 중단되지 안 했다. 결코 과거와 다른 점이다.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절대로 견제대상에서 벗어나려는 관념은 沮止(저지)돼야 한다. 당장 국회의 반대를 아랑곳 하지 않고 임명한 KB사장의 편파와 전횡은 사회문제로 거론된다. 그는 간첩 송두율에게 민주주의 투사의 갑옷 입혀주는 데 앞장 선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국체를 여지 없이 흔들었다. 그는 소위 대한민국 내 열린 인식으로 둔갑된 사람 중 하나다.
차후 헌법기구간의 견제균형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유감없이 발휘돼야 한다. 각 헌법기구는 헌법정신과 규정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민의에 의하여 구성되는 대통령•국회 마찬가지다. 달리 길이 없다. 4처만 인구의 나라살림이 중구난방일 수 없다. 수십만의 군중이 불만을 들고 일어선다 해도 수용용기는 결국 제도와 법이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마련 없이 불가능하고 실천 없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법은 제도를 실천하고 보호한다. 국민이 법질서를 무시하면 나라는 허무하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헌법기구간의 견제와 균형에 대한 몰이해와 감정대립은 事端(사단)이다. 헌법기구인 헌재의 판단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민중의 감정표출과 이를 위한 무분별의 동원은 역사에 오랜 동안 커다란 덤터기로 남게 될 것이다.

본 난에서 전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씨의 국가적 실책 중 하나를 김대중 전 대통령을 탄핵 -굳이 탄핵이 아니더라도 확고한 견제기능동원- 하지 않거나 못 한 사실로 들었다. 대 북괴 퍼주기 정책 하나만 해도 그렇다. 관련 핵심인사들이 모두 국법의 판결로 감방에 들어갔음에도 그들을 지휘한 사람은 아무런 죄의식조차 없다면 국가적으로 뭔가 잘못돼도 한참이다. 선진국이라면 여하한 최종책임도 임명권자이다. 이러한 사항에 대하여 무감각한 국민의식은 국가발전에 암적이다.

노대통령의 국정능력도 문제지만 그의 국정 임 자세는 매우 의심스럽다. 그는 10일 박관용 국회의장이 제의한 여야 회담에 나라를 위하는 차원에서 응해야 했지만 겨우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불발됐다. 핑계는 물론 거짓이었다. 그의 이러한 국가관의 단면은 박의장의 경호 권 발동 결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고, 적법절차에도 불구하고 의정사에 또 하나의 흠결을 남겼다. 그 또한 대한민국 한 헌법기구의 장이다. 지난 1년간 대통령과 국회 두 헌법기관은 반목을 거듭했다.

서로 질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규정상 정해진 중요한 국회의견은 노대통령에 의하여 반드시 감정이 투입되어 무시되거나, 侮蔑(모멸)의 대상이 되었다. 두 헌법기관은 국가를 위하여 되도록이면 협력하며, 견제를 통한 균형을 이루어야 헌법의 취지임에도 반드시 오기의 《고유권한의 사족》을 다는 그의 취미는 어김없이 발휘됐다. 함으로써 언제나 국가를 불안케 해왔다. 《사필귀정》은 그를 정계에 입문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짧은 所懷(소회)다.

《일련의 선거관련 발언은 별 것 아니다, 즉 위헌사항이 아니다》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오히려 굳이 내세운다: 총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의를 왜곡할 수 있는》사태보다 더 명백한 위헌은 없다. 그는 무당적이고, 공정선거의 최종책임자이다. 대한민국의 각 정당은 헌법이 규정한 사항이다. 그는 신 당과 법적인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신분이다. 그의 심정을 법 조항에 대입할 수 있다 함은 그 나름대로의 법리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법리해석은 동업자들과 집안을 감싸기 위한 제멋대로이다. 그의 법 상식 또한 의심스럽다. 탄핵의 원천적인 책임은 그에게 있다. 더욱 가증스러운 건 현 사태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총선에 올인됐고, 신당의 여론지지도는 상승했다. 대한민국은 그에게 투기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못해먹겠다, 재신임 해달라, 그만두겠다는 둥 국민은 툭하면 그에게 볼모 잡히기 일수다. 민중을 동원한 혁명이 그의 탄핵정국을 즐기는 최후목적이라면 너무도 심각한 문제다.

어쨌던 탄핵이 감행됐고, 헌정사의 이정표가 됐다.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교과서에 마련한 것이다. 함부로 불려지는 대권∙통치가 없어지게 됨으로써 민주주의는 성큼 성장했다. 물론 지혜로운 향후의 방향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죽 쑤어 개에게 주고 만다. 잘되지 않는다면: 노무현의 독재체제 아니면 대한민국의 철저한 붕괴다. 겨우 이만큼인(경제) 걸 까먹는다면 회복의 길은 한 참 멀다. 지난 두 정권이 말아먹을 만큼 말아 먹은 뒤끝이다. 악순환의 국가∙사회적 疲弊(피폐)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탄핵결과를 반대하고 있지만 이 또한 국민의식이라면 그만큼 성숙한 질의 표현이다.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인 사태는 매우 유감스럽다. 우려되는 바 전∙현정권이 물꼬를 터준 대한민국 내 용공적화세력들의 5열 삽입이다. 북괴의 지령은 이미 내려진 상태다. 때를 만난 듯 노대통령이 두둔하는 한총련 등 이적단체로 사법의 판단을 받은 단체들을 동원하고, 날뛰는 꼴을 두고 본다면 국가의 이성도 아니고, 국가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상적 정서일 수 없다.

渦中(와중)은 온통 진 사람들의 아귀다툼이다.

모두 이길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아스팔트 위에서 청춘의 한나절을 보낸 소위 일부 386세대와 그들과 附和雷同(부화뇌동)한 애송이들, 그들을 이용한 정치가 등이 뒤엉켜 나라를 거덜 내고 말 찰나이다. 나라는 더 이상 모두 죽는, 모두에게 상차기만 남길 공산당 식 혁명선동과 인민재판에 휘둘릴 수 없다. 참을성 있는 이성이 아쉽다. 민주시민의 合法順應(합법순응)은 참으로 요구된다. 재삼 강조하는 바 일단은 헌재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 노무현지지세력이다. 불법의 떼거리들이 지역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을 개들로 희화하는 인민재판 개들의 잔치에 휘말려서는 그나마 개판도 안 된다. 이제 노대통령은 헌재의 판결이 있기까지 권력이 정지되고, 대한민국 대표성이 박탈당하여 거의 개인신분에 지나지 않는 그를 위하여 국가기관인 국회와 국회의원 등이 폭파위협에 처한다면 나라는 끝장이다. 헌법과 법치가 위협당한다면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지난 1년의 무능과 분열, 혼동만으로 충분하다. 노무현은 -헌재의 판결이 남았지만- 대한민국헌법을 훼손 또는 훼손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기구로부터 탄핵당했다. 그 이상일 수도, 그 이하일 필요가 없는 사안이다.

이제 일어난 일이다. 일단은 고건 대행의 국정안정에 최대한 협조하고 각 정당들은 피차∙상호 잘잘못을 철저하게 따지고,《당리당략》을 떠난 국가미래사안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민지지를 얻기 위하여서도 그들은 반드시《잘못》부터 따지는 일대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탄핵 전에도, 탄핵 후에도 탄핵을 결정한 당과 국회의원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반을 넘는다는 진실에서 일은 시작돼야 한다. 우중에 야합한다면 選良(선량)일 수 없다.

분명한 건 누가 됐든 무능과 오기, 법 파괴, 민중선동에 의한 분열의 정치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노대통령이 분열을 방관으로 즐기며 재기의 기회를 모색하는 사태는 결코 막아야 한다. 그가 정히 억울하다면 헌재의 판결을 기다릴 게 아니라 그를 포함한 재선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전대미문의 일들이 벌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파렴치 김대업을 앞세운 당선은 정상일 수 없다. 한나라당의 차떼기와는 전혀 무관한 사항이다. 물론 적법성 여부는 본 난의 영역을 넘는 사항이다.

민주주의는 바꾸는 취미이고, 바뀌는 재미다. 탄핵 또한 廣義(광의)의 再選(재선)에 대한 희망에서 출발한다. 지고 이기는 건 民主常事(민주상사)다. 이긴 사람은 이긴 사람대로의 논리와 가치, 진 사람은 진 사람대로의 것 등은 다음 발전을 위한 역동의 준비기간을 마련 해 줄 것이지만 가를 만한 분기점이 없다. 민주주의가 빚어내는 승패는 겨우 잠깐의 일 –승복으로 다시 합친다- 이기는 해도, 아직 과도기 상태이지만 현재 어느 곳에도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없는 怏怏不樂(앙앙불락)뿐이다.

독일 국회토론은 정부 석을 향한 『당신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 창피하지도 않느냐?』 『당신 당장 그 자리 내 놓으라!』는 삿대질로 시작된다. 탄핵(의회주의 하의 불신임)발의는 독일국회의 일일 주요 의사일정(Agenda)이다. 반대와 비판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노대통령의 병은 드디어 탄핵사태까지 몰고 왔다.

왜 이 모양인가!?: 우리들 관행의 정치의식을 절대로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 정치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정치를 링 위의 경기 즐기듯 하려면 많은 인내와 훈련이 필요하다. 한 편 링 위의 정치가들이 민중의 환호와 비난에 일희일비한다면 이미 지도자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즐거운 질의 경기를 보여줄 수 없게 된다.

《대한민국 역사는 노무현 없이 역시 흐른다》확신을 가져도 좋다. 대한민국은 노무현 하나 때문에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노무현 식《신문만 안 보면 다 잘된다.》=《아무리 KBS, MBC 가 나라가 무너진다고 선동해도 대한민국은 탈없이 돌아가고 있다.》 대입해도 상관없다. TV를 암만 봐도 끄떡없다. 대한민국의 탄핵사태를 우려하는 외국나라는 하나도 없다.

《임기 중 대통령은 절대로 바뀔 수 없다》는 비민주적 관념과 정서보다 더 불확실한 건 없다. 불확실은 불안을 안길 뿐이다. 평상 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차분해져야 관용과 슬기의 판단이 가능해진다. 나라 안팍으로 선동에 놀아나고 군중심리에 빠져들 여유가 없다.

둘러봐도 사태를 추스를만한 棟梁(동량)이 없는 나라의 비극은 이토록 처절하다. 오랜 동안 철저하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회를 굴려왔다. 원로가 나서봐야 심한 모욕만 당한다. 가짜 원로에 가짜 서민들만 판친다. 반목과 질시: 사회에 만연한 《저까짓 게 뭐라고!》사태의 본질일는지 모른다. 어쩌랴! 대한민국의 위기극복 시스템과 능력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위 질이다. 수많은 우리의 지난 일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일상충실》은 언제나 나라공동체를 위한 구성원각자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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