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만들며 나는 속으로 부끄러웠다. 7~8년 전부터 뉴욕을 대여섯 번은 오갔고 이 공원을 찾은 것도 두 번이나 됐는데 이 참전비를 보지 못한 것이다. 참전비와 30m 정도 떨어진 바닷가 난간에서 ‘자유의 女神像(여신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찍고 갔다. 배터리 파크가 뉴욕의 상징물인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떠나는 유람선의 출발지란 생각만 했지 이런 기념비가 있는 건 몰랐다.
2010년 12월 초순 뉴욕에 온 지 사나흘 뒤에 배터리 파크를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바람이 몰아쳐 우산이 뒤집어질 정도로 궂은 날씨였다. 공원을 구경하는 관광객은 물론 자유의 여신상을 배로 가려는 관광객도 거의 없었다. 사진만 한두 장 찍고 바로 돌아왔다.
2011년 새해 첫날 뉴욕은 섭씨 10도 가까이 올라가는 모처럼 따뜻한 날씨였다. 바다도 보고 싶고 참전비도 제대로 보고 싶어 이곳을 새해의 첫 방문지로 택했다. 뉴욕 지하철 4호線 ‘볼링 그린’ 驛에서 밖으로 나오니 바로 배터리 파크다.
공원 남쪽에 한국전 참전비가 있다. 무슨 기념물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상상을 깨는 조각품이다. 총을 든 한 군인의 行軍(행군) 모습을 실루엣으로 만들었다. 군인 모습의 뚫린 공간을 북쪽에서 바라보면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이 채워주고 남쪽에서 바라보면 맨해튼 월스트리트의 빌딩숲이 공간을 메워준다. 작품의 제목은 ‘유니버설 솔저’다. 100여 개 이상의 응모작 중에서 뽑힌 맥 아담스란 작가의 작품이다.
1987년부터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6·25 참전 군인들이 기획을 하고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들이 후원해 1991년에 건립했다. 기념비를 세우는 데 기여한 '고마운 분들(기업 포함)'의 명단이 작품 옆의 돌에 적혀 있다.
해마다 한국전 終戰(종전) 기념일인 7월27일 오전 10시에 미국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이곳에서 기념식을 갖는다고 한다. 이때 실루엣을 통해 기념비 남쪽 엘리스 아일랜드의 風光(풍광)이 보인다고 한다.
기념비 4面엔 6·25 참전국들의 國旗(국기)가 새겨졌고 기념비를 빙 둘러 각국의 희생자 숫자가 적혀 있다. 미국의 경우 사망 5만4246명, 부상 10만3248명, 실종 8177명이었다. 9·11 테러 이후 2002년부터 시작한 아프가니스탄內 탈레반과의 10년 가까운 전쟁에서 죽은 미군의 수는 1000명이 약간 넘는 정도다. 5만 명이 넘는 한국전 사망자 숫자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배터리 파크는 1812년 영국과의 전쟁 당시 敵軍(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어진 클린턴 요새와 맨해튼 사이를 메워 만든 공원이다. 이 사이를 메운 흙은 월드 트레이트 센터를 지을 때 파낸 흙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공원엔 클린턴 요새 외에 26문의 대포, 1524년 처음 뉴욕항을 발견한 이탈리아의 탐험가 베라지오의 銅像(동상),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고발하는 박물관도 있다.
1991년 알 카에다의 9·11 테러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질 때 건물 앞에 36년간 있던 프리츠 쾨니히의 조각품 '스피어(Sphere:地球儀)'도 파괴됐다. 이듬해 3월 부서진 작품을 이 공원으로 옮겨 테러를 잊지 않겠다는 상징물로 전시하고 있다. 배터리 파크와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묘한 인연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배터리 파크 북쪽 길 건너엔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이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우리와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客地(객지)인 신대륙에 와서 겪은 1만 년의 興亡史(흥망사)를 볼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