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명 : 이스라엘(The State of Israel)
⊙면  적 : 20,770㎢(한반도의 약 1/10)
* 골란고원 및 팔레스타인 자치지역(가자, 서안지구)까지 포함시 총 면적은 28.023㎢
 
⊙지  형:   평원, 산악, 사막, 해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좁고 긴 형태
   (길이: 470km, 너비 135km) 
 
⊙기  후: 지중해성 기후(여름 고온건조, 겨울 저온다습)
- 우기 : 11월-4월
- 年 강우량: 500-750mm
⊙수 도 : 예루살렘(해발 750m, 인구 60만명)
* 국제적으로는 수도로 인정받지 못하며 각국 대사관 모두 텔아비브에 소재.
⊙인 구 : 약 705만명(2006.12월 현재)
- 유대인(80%) : 566만명(구소련 이민자는 112만명, 
                      대다수가 90년대 이후 이주)
- 아랍계 및 기타: 139만명(드루즈족 1.6%, 기타 3.6%)
 * 해외 거주 유대인(디아스포라): 약800만명(미국에 600만명 거주)
 
⊙언 어 : 히브리어 및 아랍어(공용어), 영어
- 공공기관, 식당 등에서 영어 통용
⊙종 교 : 유대교(80.1%), 이슬람교(14.6%), 기독교(2.1%),
          드루즈교(1.6%), 기타 (국교는 없음) 
 
⊙국가원수 :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대통령(2007.7 취임)
⊙정부형태 : 내각책임제
- 총리: Ehud Olmert (2006.5 취임)          
   *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2001.3 취임) 총리는 
     06.1월 뇌출혈 이후 현재까지 식물인간 상태
- 외교장관: 찌피 리브니(Tzipi Livni)
- 의 회 : Knesset(단원제, 120석, 임기 4년)
- 의 장 : 르우벤 리브린(Reuven Rivlin)
 

⊙국 경 일 : 유대력 5월 5일이 독립기념일(유대력에 따라 매년 변동)
⊙군 사 력 : 현역 186,500명, 예비군 445,000명
⊙화폐단위 : NIS(New Israeli Shekel)
- 환 율 : 평균 US$ 1당 NIS 4.0 정도(2007. 10 기준)
   GDP(2006) : US$ 1,950억불(PPP 기준, IMF 통계)
- 1인당 GDP: US$ 20,800
⊙상품교역(2006)
- 수출: 약 US$ 626억불 (다이아몬드, 소프트웨어, 화학제품, 전자,
            기계, 플라스틱,  농산물, 의류 등)
- 수입: 약 US$ 617억불 (원유, 차량, 철강, 기계류, 다이아몬드 원석 등)
 
⊙공휴일
-  매주 안식일(Shabat, 금요일 해가 진 때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 24시간)
   에는 대부분의 유대인 상점, 공공기관이 문을 닫으며, 대중교통도 운행 정지
-  연중 유대인 명절은 부림절(대개 3월), 유월절(4월), 현충일(4월), 오순절(5월),
    신년(9월), 대속죄일(9월), 초막절(9월), 수전절(성전보수일, 12월)이며,
    유대력에 따라 항상 바뀜.
 
 
1. 사회문화적 특성
 
o 국토는 좁으나 다양한 윤리적,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세계 각국에서 이주한 유태인과 아랍인, 그 밖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어, 사회가 역동적이고 활력적임. 사회구성원간의
  관계도 예의보다는 실리를 앞세우고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관계가
  이루어짐.
o 특히 2000년이 넘는 유랑생활(Diaspora)의 경험은 19C말 부터 형성된
  시온주의(Zionism)를 통하여 조상의 땅을 되찾으려는 열망을 구체화
  시켜, 이스라엘 안에서 자발성과 평등 주의에 입각한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치적, 사회적 유형을 만들어 가고 있음.
 
- 이와 함께, 건국을 전후하여 개척정신에 입각, 소련 및 중동부
  유럽으로부터 이주한 유태인들이 평등주의와 공동사회 원칙에
  기초하여 이상적인 농촌사회 건설을 시도한 키부츠(Kibbutz)는
  새로운 사회의 모델로서 세계 각국의 관심의 대상이 된 바 있음.
 
* 키부츠가 공동 소유제 등의 가치를 추구함에 비해, Moshav는 집단
  노동의 정신은 같으나 개별 소유제 및 영리 추구를 우선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
 
(1) 내부 갈등
o 지식인, 숙련된 노동자 등이 많은 유럽계(특히 동구 및 독일계가 주류)
  유대인들은 '아슈케나짐' 으로 불리며 건국초기부터 정치·경제·군사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반해서 미숙련 노동자로 이루어진
  아프리카·중동계 유대인들은 '스파르딤' 이라 불리우고 사회구조의
  하부층을 형성하여 유대인사회 안에서도 내부 갈등이 표출되고 있으나,
  점차 이스라엘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새로운 세대인 '사브라'들이
  사회의 주류로 성장하게 됨에 따라 이러한 갈등구조는 점진적으로
  해소되어 갈 것으로 기대됨.
 
(2) 종교의 자유
o 이스라엘 건국선언문(1948)은 모두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
  각각의 종교 공동체는 안식일, 신앙생활, 내부 문제를 관리하는데
  있어 자유로움. 각 종교는 법에 의해 종교 의회와 법원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으며, 종교 법원은 결혼, 이혼과 같은 개인의
  신상 문제에 대해 관할권을 가짐.
 
(3) 종교 사원의 종류
o 유대인 회당(Synagogue) : 전통적인 유태교 예배는 성인남자 열 명이
  모여야 가능함. 매일 세 번의 기도를 드리며 남녀가 분리되어 앉음.
  예배는 랍비, 선창자 또는 회중의 한 사람에 의해 주도됨. 랍비는
  신과의 중계자는 아니며 선생의 역할만을 담당함. 회당의 중심은
  신성한 궤(Holy Ark)로서 예루살렘의 성전산(Mount of Temple or
  Golden Dome)을 향하며 안에 토라(모세 5경) 두루마리를 넣음. 토라를
  일주일분으로 쪼개서 매일 읽어나가 1년이면 성서 전체를 읽게 됨.
o 이슬람교 사원(Mosque) : 이슬람교 예배인들은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봄. 남자와 여자가 분리돼 예배를 보고 신발을 벗어야 하고 의식적
  세정식이 거행됨. 무슬림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데
  메카의 방향은 사원 벽면에‘미라브’라는 틈새로 표시됨. 예배는
  이맘이라는 무슬림 예배 지도자에 의해 거행됨. 금요일은 전통적
  무슬림 안식일로 대중설교가 있음.
o 교회(Church) : 기독교 예배의 형식과 횟수는 종파에 따라 다름.
  모두 일요일을 안식일로 특별한 의식을 가짐. 예배는 신부나 목사에
  의해 거행되고 남녀가 함께 예배를 봄. 남자는 대개 머리 위에
  쓴 것을 벗어야 하나 여자는 머리를 덮음. 예배는 음악과 합창을
  수반함. 전통적으로 교회는 십자가 형태를 함.
 
(4) 성지
o 성지는 각 종교의 직권으로 관리되고 접근과 예배의 자유는 법에
  의해 보장됨.
- 유대교도 : 통곡의 벽과 성전산, 라헬의 무덤, 헤브론에 있는 마크펠라
  동굴 안에 있는 군주의 무덤, 랍비 시몬 바르 요하이의 무덤 등
- 이슬람교도 : 성전산에 있는 하람 아슈 샤리프, '바위 사원'과 알악사
  이슬람 사원이 여기에 포함됨. 헤브론에 있는 군주들의 무덤, 아코에
  있는 엘자자르의 이슬람 사원 등
- 기독교 교도 : 십자가의 길, 마가의 다락방(최후의 만찬), 예수님
  무덤(성묘) 교회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 수난과 십자가 박해의 장소들,
  베들레헴의 그리스도 탄생 교회, 나자렛의 수태고지 교회, 팔복산,
  갈릴리 호수 부근에 있는 오병이어 교회와 가버나움 등
- 드루즈족 : 갈릴리에 있는 히틴 혼스 가까이에 있는 네비 슈에이브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의 무덤) 등
- 바하이(19세기 중반에 이란에서 창시된 세계적인 독립종교)
: 하이파에 있는 바하이 월드 센터, 악고 부근에 있는 바하이교의
  창시자 바하알라의 전당 등
 
 
2. 교육
 
o 이스라엘의 교육은 어린이들을 다원화, 민주화 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것과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에 필요한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
o 영재교육은 별도의 학교를 두는 방식이 아니라, 평소에는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을 듣도록 하되, 일정한 시간동안 별도로 소집,
  영재들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커리큘럼을 가르치는 식으로 진행
  된다고 함.
 
(1) 취학전 아동 교육
o 5세 아동의 유치원 교육은 무료이며 의무사항임. 2세-4세 아동들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유치원 교육을 받고 있는 바, 이러한 유치원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유치원, 사립 유치원, 지방자치단체와
  여성단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일종의 day-care 센타) 유치원이 있음.
o 이러한 유치원 교육을 통해서는 언어 발달과 놀이집단을 통한 사회화
  교육에 치중하고 있음.
 
(2) 학교 제도
o 이스라엘 사회·문화적으로 다양성을 가지고 있어, 학교의 종류도 일반
  국립학교(대부분의 학생이 이곳에서 수학), 국립종교학교(유대인 전통에
  중점을 둔 학습), 아랍·드루즈 학교, 사립학교로 구분되어 있음.
o 6세에 취학하여 16세까지가 의무 교육이며, 국민학교(1-6학년),중학교
  (intermediate school, 7-9학년), 고등학교(secondary school, 10-12
  학년)로 구분되어 있음.
o 교육 과정은 이스라엘 정부(교육부)가 지정하는 의무 교육 과정이
  있으며, 또한 각 학교는 학생들의 필요 및 지역 사회의 요구 등에
  따라 교육부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교과 과정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음.
o 대학 : 테크니온 공과대학(하이파 소재), 히브리 대학(예루살렘 소재),
  와이즈만 연구소(르호봇 소재), 바일란 대학(라마트간 소재),
  텔아비브 대학(텔아비브 소재), 벤구리온 대학(브엘세바 소재) 등
  종합대학(모두 국립)과 각종 단과대학(일부 사립)이 있음.
 
3. 이스라엘 정세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개요
 
1) 배경
1948년 건국 이래 주변 아랍·회교 국가들과의 위협에 시달려 온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들 아랍·회교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한 평화 및 안보 확보는 이스라엘의 중요한 과제이며, 이집트(1979년)
및 요르단(1994년)과 각각 평화조약을 맺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음.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아랍·회교 국가들과는 긴장 또는 적대관계에 있으며,
특히 불투명한 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스라엘과 긴장관계에 있는 시리아
는 물론, 하마스 및 히즈불라 등 反이스라엘 테러조직을 지원하면서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란은 자국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음.
 
이러한 이스라엘-아랍 평화 달성을 위한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임. 왜냐하면 많은 아랍·회교 국가들이
내세우는 이스라엘과의 평화의 선결조건 중 하나가 이스라엘 건국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이기 때문임.
 
(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보는 관점
 
1)  이스라엘
이스라엘-아랍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출발점을 1967년
6일 전쟁으로 보고 있는 이스라엘 주류는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행위
중단의 대가로 이스라엘이 6일 전쟁을 통하여 점령한 지역의 일부
통제권을 넘겨 주는 것을 평화협상의 핵심으로 보고 있음. 그러나 모든
점령지역을 이스라엘이 그대로 통치하는 大이스라엘(Greater Israel)을 지향
하고, 팔레스타인측에 영토면에서 양보를 하더라도 가자지구(Gaza Strip)에
한정해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음. 1993년 오슬로 협정(Oslo Accords) 및 2000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 이후 이스라엘 지도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달성
을 위하여 별도의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설하는 방안(two state solution)을 수용
내지는 추진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음.
 
이스라엘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① 팔레스타인측의 과도한 요구와 ②계속되는 팔레스타인 테러세력의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공격 및 협상 파트너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테러세력에 대한 통제력 상실 또는 방조에 있다고 보고 있음. 특히 2007년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축출하고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후 이러한
관점이 강해지고 있음.
 
2)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측은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음. 따라서 원래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를 필두로 하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Palestine Liberalization Organization)는
 
①이스라엘을 없애고, ②이스라엘 때문에 팔레스타인 땅을 자의 또는
타의로 떠나게 된 팔레스타인人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재정착하는 것이
분쟁 해결인 것으로 보고 있었음.
 
그러나 상기와 같은 강경한 관점은 196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약해져
오늘날에는 이스라엘과의 협상 및 별도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two state
solution)을 추구하는 것이 주류임. 다만, 하마스 및 이슬라믹 지하드와 같은
극단세력 등은 여전히 이스라엘 말살과 같은 강경 주장을 펼치고 있음.
팔레스타인측은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이스라엘의 양보에 대한
인색함에 있다고 보고 있음. 또한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의 각종 치안조치
(security measures)가 팔레스타인인들을 경제적·사회적으로 압박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통한
평화 달성을 진지하게 추구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끊임 없이 의심하고 있음.
 
3) 미국
조지 H. W. 부시에서 클린턴을 거쳐 현직 조지 W. 부시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달성을 위하여 이스라엘은 1967년 점
령한 지역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며, 팔레스타인측은 테러리즘을 능동적으로
방지하고 이스라엘의 무조건적인 存立權(right to exist)을 인정해야 한다는 정
책을 견지하고 있음.
 
(3)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주요 현안 및 장애물
팔레스타인측 테러 및 이스라엘측 군사적 대응의 반복을 통한 양측간
    감정적 앙금 및 상호불신
예루살렘 지위문제(양측 모두 首都로 주장하고 있으나, 현재 이스라엘이
    실효적으로 지배)
팔레스타인측 테러 및 폭력선동
이스라엘측 치안조치(팔레스타인인의 이동 제한 및 서안지구·가자지구
    에 대한 물품 반출입 제한 등)에 따른 팔레스타인측 민생고
이스라엘 점령지역 및 점령지역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가자지구에 대한 통제력 상실(하마스의 가자
    지구 장악)
 
(4)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흐름
1) 마드리드 평화회의 및 오슬로 협정(1991~1993년)
1991년 제1차 걸프전쟁 직후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그 인접국들 간의 양자 또는 다자 회담으로 이어나가기 위한 서론”으로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이스라엘-아랍 분쟁 당사국 대표들이 회동하는 국제회의
를 소집함(Madrid Peace Conference). 회담은 워싱턴DC로 이어졌으나, 성과
는 거의 없었음. 다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접촉은 노르웨이가 주관하는
일련의 양자간 비밀협상으로 이어져 1993년 9월 오슬로 협정으로 결실을
맺게 됨. 오슬로 협정(공식명칭 Declaration of Principles on Interim Self-
Government Arrangements)은 안보리 결의 242호 및 338호에 근거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위하여 필요한 요소 및 조건을 협의하기 위한
계획을 담고 있음.
 
1995년 오슬로 협정의 주역 중 한 명인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이스
라엘 총리가 암살된 이후 평화협상은 추진력을 잃어 가게 됨. 팔레스타인인
들이 생활여건 향상을 느끼지 못하고 유대인 정착촌은 철거되지 않고 오히
려 증가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호전적 세력에 의한 산발적 자살 폭탄 테
러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대응하면서 평화 달성을 위한 여건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음.
 
2) 헤브론 협정 및 와이 리버 각서(1996~1999년)
1996년 5월 총선을 통하여 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상호주의정책’을 도입, 아라파트가 이끄는 PLO가
이스라엘에 대한 폭력 선동 및 테러리즘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책을
천명함.
 
1997년 1월 이스라엘과 PLO 간에 체결된 헤브론 협정(공식명칭 Protocol
Concerning the Redeployment in Hebron)은 헤브론에 배치된 이스라엘 병력
을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재배치하는 문제 및 이에 따른 치안조치 등
을 다루고 있음.
미국 매릴랜드 와이 리버(Wye River)에서 협상하여 1998년 10월 클린턴 대
통령 입회하에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아라파트 의장이 서명하 와이
리버 각서는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병력의 추가 재배치 및 관련 치안조치
문제를 다루고 있음. 이스라엘 국회(Knesset, 정원 120명)는 75-19로 동 각
서를 승인함.
 
3)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2000년)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주선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에서
에후드 바락(Ehud Barak) 이스라엘 총리는 아라파트 의장에게
①이스라엘이 서안 지구의 95%, 가자지구 및 東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측에
넘기는 대신 ②서안 지구 유대인 정착민의 85%를 차지하는 69개 유대인
정착촌을 팔레스타인측이 이스라엘에 양도하고, ③유대인 정착촌이 많은
서안지구 10% 지역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항구적으로 “잠정적 통제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동 방안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통치지역이 이스라엘측 우회로(bypass roads) 및 검문소(checkpoints)로
인하여 분단되고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및 정착이 곤란해질 것이라는
것이 팔레스타인측 주장임.
 
아라파트 의장은 이스라엘측 제안을 거부하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클린턴
대통령의 압력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아 결국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은
무위로 끝나게 되었음. 2001년 1월 이집트 타바(Taba) 회담에서 이스라엘측은
“이스라엘측 잠정 통제지역”을 제거한 地圖案을 제시, 팔레스타인측은 이를
협상 재개의 출발점으로 수용하였으나, 바락 총리하에서 추가협상이 이루어
지지 않는 가운데 2001년 2월 右派인 리쿠드(Likud)당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후보가 이스라엘 총리로 선출되었음.
 
4) 베이루트 정상회담(2002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진화계획을 제시하기 위하여 2002년 3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아랍권은 1967년 7월 4일
경계선으로의 복귀와 이스라엘-아랍 관계 정상화 및 집단적 평화조약을
교환하는 종합적인 평화안을 제시하였음(Arab Peace Initiative).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아랍권의 평화안을 환영
하면서도 평화안의 구체적 내용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측이 직접 협의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테러행위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힘. 그러나 실상은 아랍권의 평화안 내용 중 1967년 경계선
으로의 완전철수 및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인정을 이스라엘측이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임.
 
5) 평화 로드맵(2002~2003년)
2002년 7월 미국, EU, 러시아 및 UN의 주요 4자(Quartet)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포함한 평화 로드맵(a road map for peace)의 원칙 개요를
확립, 마흐무드 압바스(Mahmoud Abbas 일명 아부 마젠(Abu Mazen)) 현
자치정부 수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첫 총리로 임명된 후인 2003년
4월 로드맵을 발표하였음. (그 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은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협상의 파트너로서 팔레스타인 총리직 신설을 요구)
 
로드맵은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각각 독립적으로 행동을
취할 것과 양자간 핵심쟁점(난민 귀환권, 예루살렘 지위 등)은 양자간
신뢰가 조성될 때까지 처리를 뒤로 미룰 것을 제시함. 로드맵은
팔레스타인측에 대하여 ①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행사 또는 계획하는
개인 및 집단의 체포·단속 에서 가시적 성과를 올리고, ②재건될 자치정부
보안기구가 對테러조치 및 테러리스트 기반 발본색원 작전을 지속적·집중적·
효과적으로 실시할 것을 요구함. 한편, 로드맵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①2001년 3월 이후에 건설된 정착촌의 해체, ②정착촌 건설 중단, ③2000년
9월 28일 이후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내 이스라엘군 철수, ④통행금지 해제
및 ⑤사람과 물자 이동에 대한 제약 완화를 요구함.
 
그러나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측 모두 로드맵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 이스라엘은 2001년 3월 이후 건설된 정착촌의 극히
일부만 해체하였으며, 오히려 정착촌을 신설·확장하였음. 이스라엘은 軍民
모두 2005년 8월 가자지구로부터 완전히 철수하였으며, 가자지구내 유대인
정착촌도 해체하였음.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은 對테러 작전 수행을 위하여
팔레스타인측 통제지역에 수시로 군 병력을 투입하고 있음. 팔레스타인측도
팔레스타인인의 對이스라엘 폭력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하고 있는데,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군에 의한 군사작전 계속을 이유로 들고 있으나, 故
아라파트 수반 계열인 파타(Fatah)派가 이끄는 압바스 수반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하마스, 이슬라믹 지하드 등 對이스라엘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것도 큰 이유임.
 
6) 아나폴리스 평화회의(2007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종식 노력에 미온적이던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2007년 입장을 선회, 당사자간 대화 주선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으며,
2007년 11월 미국 매릴랜드주 아나폴리스(Annapolis)의 해군사관학교에서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에 EU, UN, 러시아, 중국, 아랍연맹
국가들이 참석하는 중동평화회의를 개최함.
 
아나폴리스 평화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양측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통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국체제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종식의 종착점임을 처음으로 공식문서로 확인한
점임.
 
 
4. 이스라엘 軍 (출처: 駐韓 이스라엘 대사관)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창설한 이스라엘 방위군은 국가의 방어 우산(보호막)을 제공한다.
방위군은 지난 45년 동안 5개의 중요한 전쟁에서 국가를 방위해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투훈련을 받은 무장 군대 중의 하나이다. 현재 방위군의 목적은 국가를 수호하고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모든 형태의 테러리즘을 억제하는 것이다. 평화확립을 포함한 주요 임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함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전반적인 안보를 확립하고, 이스라엘과
국경지대에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이끌고, 전쟁의 발발을 막기위해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이스라엘 방위군의 전략적 차원의 기본방침은
방어이다. 하지만 전술에서는 공격을 기조로 한다. 이스라엘 영토의 협소함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은 반드시 필요하다면 주도권을 가지고 공격을 당했다면 전투지를 재빨리 적의 영토로
전화해야 한다. 항상 적군이 수적으로 우세하지만 이스라엘 방위군은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질적인 우위를 유지한다. 최신식 설비의 대부분은 그것의 특수한 요구에 의해 이스라엘
내에서 개발되고 제조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방위군의 주 자원은 우수한 병사들이다.
 
방어태세 준비시 이스라엘 방위군은 초기 경고로 소규모 상비군(징집군과 직업군인으로 구성됨) 그리고 정규 공군과 해군을 배치한다. 이스라엘 군의 대다수는 예비군으로 정기적인 훈련과
복무를 위해 소집되며 전쟁이나 위기시 전국의 모든 부대로 동원된다.
 
국방위군은 3개 하부 조직 ( 육군ㆍ공군ㆍ해군)의 작전은 국방장관의 명령을 받는 중장
계급인 참모총장 지휘하의 합동 지휘소의 통제를 따른다. 수상과 국방장관의 추천을 받아
내각에 의해서 지명되는 참모총장은 임기가 3년이며, 보통 1년씩 연장된다.
 
전투 외의 시간에 남녀 군인들은 여가로서 기술자, 정보 및 통신원, 교사, 제도사, 행정 및 군수품
보급원, 컴퓨터 오퍼레이터, 의사, 법률가 등으로 봉사하고 있다. 처음부터 방위군은 개인의 후원
봉사뿐만 아니라 군인의 의무 복무 기간 동안 제공되는 오락과 교육 활동으로 군인들의 교육적,
사회적으로 요구에 응해왔다. 10등급(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신병은 고등학교 수준의
학력을 취득하도록 도와주는 위임 교육 과정에 등록하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군인은 의무복무 기간동안 방위군이 제공하는 기본 계획에 따라 학업을 끝마칠 수 있다.
직업 장교는 복무기간 동안 이스라엘 방위군의 비용으로 고등교육 기관에서 공부 할 수 있는
혜택을 받는다. 새로운 이주민들이 이스라엘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려는 국가의 노력의
일부로서, 방위군은 새로운 이주민들을 군대에 흡수하려는 특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전국에
분포 하는 이주민 적응 센터에 도움을 주고 히브리어를 가르칠 사람을 보내주거나 훈련 시킨다.
 
건국 당시부터 국가를 설립한 기업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스라엘 방위군은
민간인들에게 사후 혹은 보충 교육을 실시했고 인구 중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이민자들의
흡수에도 기여한다. 국가 위기 혹은 응급 상황시 방위군은 즉각 준비태세로 돌입하고 훈련된
군인들이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특별한 업무를 실행하도록 투입한다.
 
※ 軍복무 용어
 
의무복무 : 모든 신체 건강한 남녀는 18세가 되면 징집된다. 남자는 3년 여자는 21개월 동안
복무한다. 고등교육기관에서 수학하고 있는 우수학생들에게는 징집유예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새로운 이민자들은 그들의 나이와 이스라엘 입국시 부여된 체류 지위에 따라 더 짧은 기간동안 군복무를 이행하거나 면제된다.
 
예비군 복무 : 의무 복무를 마친 후 모든 군인은 예비군으로 등록된다. 남지는 51세까지
연간 39일간의 복무를 하는 데, 비상 사태 시에 복무 기간은 늘어날 수도 있다.
 
직업 군인 복무 : 의무 복무를 끝마치고 현재 방위군에 복무하는 모든 남녀는 직업장교나
임관하지 않은 장교가 될 수 있다. 직업 군인은 지휘관과 행정관으로 구성된다. 사관학교나
파일럿 학교 혹은 특수 군 기술학교 졸업자의 경우는 일정기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해야 한다.
 
 
 
외교관계가 없기 때문에 북한의 核실험 등에 간접적인 의사표시만 해오고 있음.
 
북한 핵실험에 대한 이스라엘 외교부 대변인 성명 (2009.5.25)
   - 이스라엘은 금번 북한 제2차 핵실험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전 세계와 같이 이스라엘도 이번 사태로 인해 발생될 우려에 공감함.
   -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북한의 핵확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함.
   - 이스라엘은 국제사회가 금번 북한 핵실험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함으로써 
     여타 국가들에게도 확실한 메시를 전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함.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이스라엘 외교부 성명 발표 (2010.5.25)
- 이스라엘 외교부는 5.25(화)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성명을 아래와 같이 발표함.
- 이스라엘은 한국 조사팀 및 국제전문가가 참여한 금번 조사 결과, 북한이 금번 천안함
   침몰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밝혀진데 대해 우려를 표명함.
- 이스라엘은 한국 정부의 자제력있고 책임있는 대응을 평가하며, 북한이 국제사회와 협력,
   동북아 및 중동지역에서의 안정과 평화 노력을 침해하는 행동을 감가할 것을 촉구함.
- 이스라엘 정부는 46명의 희생자들 및 그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