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동 洞名의 유래는 마을 뒤에 매봉산이 둘러싸여 있고 물 아래쪽 산부리에 돌이 많이 박혀 있으므로 '독부리'라 하던 것이 '독구리' 또는 '독골'이 되었는데 훗날 도곡으로 바뀌어 불려지고 있다.
이 독구리 마을은 조선시대 漢陽으로 입성하는 중간에 있는 마을로 지금의 말죽거리와
매봉산의 중간에 오솔길이 있으며 이 길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한양에 입성하기 전에 하룻밤 묶고 성문이 열리면 들어갔다 한다. 이 마을과 역마을은 대부분 토착주민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다.
姓氏를 보면 김, 이, 진氏등이 독구리 마을에 살며, 驛마을에는 김, 임氏가 집단 거주
하고 있다. 진씨는 원래 安東김씨인데 14代 前쯤 역적으로 몰려 이곳에 은거하면서 滅門(멸문)의 화를 입지 않기 위해 姓을 '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970年代만해도 서울 근교의 전형적인 농촌이 있었으며, 이 때 도곡동 네거리에서 15m 떨어진 곳에 '거리시장'이 발생하였다. 원지동, 세곡동, 성남시쪽에서 아낙네들이 채소류를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말죽거리를 넘어와 형성된 市場이다.
1963년 1월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도곡동으로 바뀌었다가 1975년 10월1일 신설된 강남구 관할로 바뀌었다. 1988년 1월1일 신설된 서초구 관할이 되었고 1989년 1월1일 다시 강남구 관할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구數
도곡1동 21,760명, 도곡2동 34,444명. 합계: 56,204 [출처: 강남구청(2011.1.4)]
*도곡동의 인근의 文化財
1. 宣靖陵(선정릉)
宣陵(선릉)과 靖陵(정릉)을 합쳐 宣靖陵(선정릉)이라 하는데, 선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495년에 성종의 능인 선릉을 세웠고, 그 뒤 1530년에 성종의 제2繼妃(계비)인 정현왕후의 능을 선릉의 동쪽에 안장하였다. 이는 왕과 왕비의 능을 정자각 배후 좌우 두 언덕에 각각 한 봉분씩 조성한 경우로 同原(동원) 異岡(이강) 형식이라 한다. 그 후, 1544년에 만들어진 중종의 능인 靖陵(정릉)이 1562년에 문정왕후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당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원당리의 풍수 지리가 좋지 않아 옮긴 것인데, 이곳 또한 매년 여름이면 능이 침수되어 재실에 물이 들어가는 피해를 입었다. 결국, 중종과 함께 안장되기를 바랐던 문정 왕후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 泰陵(태릉)에 홀로 안장되어 있다. 선정릉은 임진왜란 때 倭兵(왜병)에 의해 파헤쳐지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현재 든든한 모습으로 서울의 한 켠을 지키고 있다. 사적 제199호이다. 2009년 6월30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 ‘金正喜書板殿懸板(김정희서판전현판)’
봉은사 대웅전 오른쪽 언덕 위 판전(板殿) 건물의 현판이다.
판전은 경판을 보존하기 위한 건물로, 이 안에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수소연의(隨疏演義) 초판이 보존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 철종 7년(1856)에 율사로 이름을 떨친 남호(南湖) 영기(永奇)스님이 조성하였다고 한다. 지금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목판을 봉안하기 위하여 신축한 건물이 판전이고, 여기에 현판으로 걸린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곧 '김정희서판전현판'이다.
판전 글씨 중 낙관부의 '七十一果病中作(칠십일과병중작)'이란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추사의 末年(말년)작으로 유명하며, 이 글씨를 쓴 3일 후에 추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글씨는 말년의 작품처럼 투박해 보이나, 추사의 완숙한 서체를 잘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