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장(1999.12.24~2001.3.26)과 통일부 장관(1999.5.24~1999.12.23, 2001.3.26~2001.9.6) 등을 역임한 임동원 씨는 2008년 6월, 회고록 <피스메이커>(중앙북스, 2008)를 출간했다. 회고록에는 임씨가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장으로 발탁 돼, 이른바 정상회담을 준비한 과정과 김정일을 만났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문제는 임동원 씨가 회고록에서 6·15공동선언 사전 진행 과정, 김정일과의 대화 내용 등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내용은 그가 국정원장 신분으로 취득한 비밀에 해당하며, 일반에는 공개도 되지 않은 내용이다. 이는 국가정보원직원법을 위반한, 불법 행위일 가능성이 있다.
국가정보원직원법 제17조에서는 국정원 직원 또는 퇴직자가 지켜야 할 비밀의 엄수에 관한 조항을 규정했다. 임씨의 회고록과 관련된 조항은 17조 1항과 5항이다.
< 국가정보원직원법 17조(비밀의 엄수)
①모든 직원은 재직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지득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
②직원(퇴직한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이 법령에 의한 증인·참고인·감정인 또는 사건당사자로서 직무상의 비밀에 관한 사항을 증언 또는 진술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③직원을 증인·참고인·감정인으로 신청한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사건관계인은 당해 직원이 제2항의 규정에 의한 허가를 신청하지 아니함으로써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는 때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원장에게 증언 또는 진술의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④원장은 제2항 또는 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허가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 또는 군사·외교·대북관계 등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가를 거부하지 못한다.
⑤직원이 국가정보원의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발간 그 밖의 방법으로 공표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제4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⑥원장이 제2항 또는 제3항의 규정에 의한 증언 또는 진술의 허가를 한 경우에 법원은 공무상 비밀보호 등을 위한 비공개증언 등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다.>
大盜(대도) 조세형, 탈옥수 신창원 등을 변호한 嚴相益(엄상익) 변호사는 17조와 관련해, “국정원은 공개된 사실도 국정원 직원이거나 출신자는 발표할 수 없도록 하는 유권해석을 갖고 있다”는 법리해석을 내놓았다.
간첩 사건의 顚末(전말)이 모두 공개돼도, 이 사건에 관여한 국가정보원 직원은 사건과 관련된 어떠한 언급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17조 2항에 근거해, 국정원장의 허가를 받고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증언하는 것은 가능하다.
엄 변호사는 임씨가 회고록에 기술한 내용은 국가의 재산이라고 말했다.
“임동원 씨가 국정원장 신분으로 비밀 정보를 취득하고, 김정일도 만났습니다. 그가 취득한 비밀 정보, 김정일과의 대화 내용 등은 국가의 소유인데, 이것을 함부로 임씨가 발설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임동원 씨가 원장의 허가를 받아 책을 냈다면, 이 책을 허가해준 국정원 관계자가 문제인 것 아닙니까?”고 물었다.
엄 변호사는 “그렇습니다. 허가에 문제가 있습니다. 국정원 담당자가 ‘직무유기’를 한 것입니다. 임씨의 책을 허가해준 당시 국정원은 사실상 (간첩잡는 대공정보수사국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분위기랑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嚴 변호사는 “국가정보원직원법 17조 5항 때문에 이종찬, 권영해 前 안기부장도 저술하는 것과 관련해 문의한 적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17조 5항 위반 사례로 前 국정원 직원 김기삼 씨를 언급했다. 김씨가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근무 당시 취득한 내용을 바탕으로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를 저술했기 때문이다. 김기삼 씨는 현재 미국으로 망명해, 기소 중지 상태이다.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와 국가안전기획부 제1특보를 지낸 李東馥(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역시 <피스메이크>와 관련해, 엄상익 변호사와 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동복 대표는 “임동원 씨가 책에 쓴 내용은 공개해선 안되는 내용이고, 국정원직원법 위반입니다. 허가해줬다면 국정원 관계자에게 문제가 있습니다”고 했다.
기자는 이와 관련한 문제점들을 국정원에 문의했다.
▲임동원 씨가 쓴 내용은 국정원장 재직시 취득한 비밀정보이므로,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내용인데, 회고록 <피스메이커>를 통해 발설했습니다. 이는 국가정보원직원법 17조 1항을 위반한 것 아닙니까?, ▲만일 임동원 씨 국정원직원법 17조 5항에 근거해 국정원장의 허가를 받고 비밀 정보를 책에 쓸 수 있도록 허가했다면, 언제, 누가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까? ▲향후 <피스메이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실 계획입니까?
국정원은 “답변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이동복 대표는 ‘허가를 받았는지, 받았다면 누가 허가해줬느냐’보다는 ‘당시 국정원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동원 씨의 책이 2008년 6월 출간됐습니다. 이때는 노무현 정부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김성호 씨가 국정원장을 할 때입니다. 임씨의 책이 국정원의 허가를 받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허가를 김만복 씨가 내줬는지, 김성호 씨가 내줬는지도 확인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국정원의 인적구성 여건상 문제가 있는 임동원의 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김성호의 국정원도 김만복의 국정원 인적구성을 그대로 안고 갔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의 새로운 인적구성은 원세훈 원장(2009년 2월12일~) 취임 이후 실질적으로 진행됩니다. 앞으로 실무자들이 임동원 씨의 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김성호 前 국정원장(2008.3.26~2009.2.12)은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2006.08.30 ~ 2007.09.03)을 역임했다. 이후 이명박 정권 출범과 함께 국정원장에 발탁됐다.
얼마 전, 일본의 親北反韓(친북반한) 잡지 <세계> 2월호에 “남북관계 파탄은 이명박 정부 책임”이라는 취지의 글을 기고한 김만복 前 원장(2006.11.23 ~ 2008.2.21)은 노무현 정부시절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그는 2004년 2월, 국정원 기조실장을 시작으로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간사(2004년 11월), 국가정보원 해외담당 제1차장(2006년 4월), 국정원장(2006.11)에 오른다.
그 역시 <세계> 2월호 기고문에서 업무상 취득한 비밀 내용을 밝힌다. 2007년 11월, 국정원장 신분으로 평양에서 열린 노무현·김정일 회담에 참석한 그는 당시 논의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조성에 대한 김정일의 반응을 밝힌 것이다.
김만복 씨는 현재 著述(저술)과 관련해 국정원과 마찰을 빚고있다. 2010년 말, 남북정상회담 해설집과 북한 핵 관련 책을 집필하고 국정원 측에 출간승인을 타진했으나 국정원 측으로부터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국정원 측은 김 前 원장이 책 출간을 강행할 경우, “모든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직무상 알아낸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국정원 직원법 17조 1항을 적용해 위반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월27일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이 김만복 前 원장을 국가정보원직원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김만복 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만복 前 원장은 17대 대통령선거 전날인 2007년 12월18일 訪北,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났다. 2008년 1월, 그는 김양건 부장과 나눈 대화록을 특정 언론에 유출시킨 혐의로 국가정보원장에서 경질됐다. 김씨는 2010년 1월16일,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사단법인 양지회에서도 퇴출당했다.
김만복 前 원장의 전임자인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2005.7.11~2006.11.23)은 후임 국정원장 인선과 관련해, “일부 인사가 열심히 뛰고 있는데, 이들이 되면 절대 안 된다. 국정원 내부 발탁은 국정원 개혁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며 김만복 국정원장의 임명을 공개적으로 반대했었다고 한다.
김승규 前 국정원장은 당시 386간첩단 사건 ‘일심회’ 수사를 놓고, 청와대와 마찰을 빚어 원장직에서 물러났었다. 당시 김 前 원장은 ‘386간첩단 일심회 사건’을 ‘단군 이래 최대 간첩단’이라고 언급했었다. 그는 2008년 1월2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만복 원장 취임 후 ‘일심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임동원의 <피스메이커>의 비밀엄수와는 별개로, 그가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국정원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임동원의 회고록을 비밀엄수 위반 여부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더 큰 관점에서 그의 행태를 문제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는 임동원의 회고록에 나오는 많은 부분을 거짓말로 봅니다. 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회고록에서 주장한 김정일과의 대화 내용이 실제 주장인지도 검증해봐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임동원의 회고록이 단순한 비밀엄수를 위반한 것만을 문제 삼아선 안 됩니다. 그의 주장과 행동 하나하나를 문제 삼아야 합니다. 회고록의 분량(744페이지)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작성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 이전부터 집필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임동원도 국정원장 시절 정보 공개
- 李庚勳(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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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27, 10: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