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에 정보기관장을 임명한 무바라크의 계산

어제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反정부 시위 속에서 부통령에 국가 정보기관장인 오마르 슐레이만을 임명하였다. 그는 또 내각이 총사직한 直後 새 수상에 前 공군사령관 아하메드 샤피크를 임명하였다. 슐레이만도 장성 출신이고 군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통령, 부통령, 수상이 모두 장군 출신이다. 무바라크는 군대를 앞세워 사태를 수습할 생각인 모양이다. 이집트는 지난 30년간 사실상 계엄령체제이고, 별도의 계엄령 선포 없이 군대가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全國의 주요도시에 진주하였다.

부통령이 된 슐레이만은 73세로서 무바라크의 신임이 두텁다. 무바라크가 이디오피아를 방문할 때 장갑차에 타도록 강권, 암살자들이 쏜 총탄을 막도록 한 적도 있다. 그는 親美派이고, 무슬림 형제단 등 이슬람 과격세력에 반대하는 입장이며,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협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무바라크는 올해 대통령 선거에 아들을 내세울 생각을 한 듯하나 이번 시위로 세습의
꿈을 접지 않을 수 없었다고 판단된다. 그는 사다트 대통령이 1981년10월에 암살되었을 때 부통령이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데, 그 뒤론 부통령 자리를 없애버렸다가 이번에 되살린 것이다.

이는 슐레이만 부통령을 후계자로 선택, '명예로운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는다. 이집트 국민들이 슐레이만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벌써 슐레이만을 비난하는 구호가 등장하였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영국-프랑스-독일의 국가 지도부가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민주적 개혁을 촉구하고 있으나 이들 나라는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고 이슬람 과격파가 집권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무바라크를 향하여 물러나라는 식의 노골적인 압력은 넣을 수 없다.

중동의 평화가 그래도 이 정도로 유지되는 것은 宿敵관계이던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이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1978년에 평화협정에 합의한 덕분이다. 미국과 유럽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으로 이 평화체제가 깨지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징병제를 채택한 이집트 군대는 경찰처럼 권력층의 하수인이 아니라 국민의 군대라는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 시위대도 군대에 정면도전하는 일을 삼간다. 하지만 시위가 계속되고 무바라크에 대한 군부 지도층의 신뢰가 약화될 때 군대가 무바라크에 계속 충성을 바칠지, 시위대 편에 설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이번 이집트 사태는 젊은층의 높은 실업률, 식품 등 생필품 값의 폭등, 권력층의 부패, 貧富격차, 인근 튀니지 사태의 영향,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한 조직, 무바라크의 장기집권에 대한 싫증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일어난 것이다. 불만에 꽉찬 젊은층과 빈곤층에게 무바라크 一家의 부정부패는 특히 좋은 표적을 제공하였다.

후진국에선 경제가 발전할 때는 집권층의 부정부패를 문제시하지 않지만 경제난으로 빈곤층이 타격을 입으면 이 문제가 부각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악화된 세계경제가 튀니지, 이집트 사태의 한 원인이다.

한편 경찰이 일단 물러나 부분적으로 무정부상태가 조성되자 일부 시위대가 폭도화하여 약탈을 일삼고 있다. 이것이 제어되지 않으면 중산층 이상은 反정부에서 反시위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이집트는 이란이나 이라크와 달리 사회가 다양하고 개방적이며 무지막지한 학살의 전통이 약해 온건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할 것이란 낙관론도 강하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