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 수상소감
<안중근 기념사업회>의 여러 선생님 그리고 이 자리를 함께하신 여러친지분들,
얼마전 면회온 아내로부터 안중근의사의 순국기일을 맞아 이번에 새로 제정된<안중근평화상>의 첫 번째 수상자로서 제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3월 9일 검찰로부터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징역 15년 형을 구형받고 3월 30일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저는 그 소식을 듣고 먼저 두가지 가정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만약 안의사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이를 집행한 일제의 법관이 <안중근 평화상>이라는 상이름을 들었다면 그들이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라는 질문에 이어, 안의사가 만약 오늘 살아계신다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실까 하는 두 번째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당시에도 <실정법>이라는 근거를 들어 사형을 집행한 일제법관의 논리에 따른다면 안중근 이라는 <살인자>와 <평화>는 병립할 수 없다고 분명히 주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의사의 행위와 <평화>라는 개념은 공존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다음과 같이 펼칩니다.
나치독일때 지하에서, 때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문실에서 아니면 교수대에서 처절한 투쟁을 벌였던 투사들의 떨림과 긴장 그리고 충격을 독이릐 작가 페터 바이쓰(Pater Weiss)는 「저항의 미착 Aesthetik des Widerstandes」에서 그렸습니다.
허구가 아니라 사실을 기초해서 그렸기에 저는 실제 주인공의 아들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폭력의 고리를 부수기 위한 저항은 때로는 <파괴>를 동반할 수 밖에 없지만 이는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긍정을 위한 부정이 담는 긴장과 충격이며,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까지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의사의 모습에 일제 형리들조차 감동을 받았다는 숱한 이야기도 그러한 <저항의 미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토히로부미의 심장을 겨냥한 총알은 <명치유신>을 매개로해서 일어선 근대일본이 곧바로 펼친 제국주의의 첫 번째 제물이 된 조선을 위한 절대긍정을 보여준<충격의 미학>의 핵이었습니다. 또다른 의미에서의 <충격의 미학>을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애국>이라는 소설을 보여줍니다. 결국 미사마는 <천황>을 위한 친위 구테타를 <자위대>장교들에게 호소하다가 조소를 받고 실패하자 소설의 주인공처럼 스스로 배를 갈라 할복(割腹)자살했습니다.
이러한 <충격의 미학>을 부정과 죽음, 파괴의 미학일 뿐입니다. 안의사의 그것도 <동양 평화론>이라는 창조성과 긍정성을 제시한데 반하여 미시마는 이미 역사의 무덤 속에 들어있는 <천황>이라는 신화를 불러내어 새롭게 포장해 보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서 <교과서 파동>, <평화헌법>개정운동,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등으로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서울의 일본대사관앞에서 매주 열리는 <수요집회>가 600회를 맞았지만 일본정부는 <정신대>문제에 대하여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도 같은 맥락입니다.
만약 안중근 의사가 현실을 경험한다면 또다시 일본을 추상같이 꾸짖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안 의사는 못난 우리 자신들을 향해서는 더 매서운 질책을 보낼 것 같습니다. 해방이 되고도 이미 반세기가 넘었는데 아직도 일제 잔재를 해소시키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집안에서 매 맞는 아이는 밖에서도 매맞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오늘의 현실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의 일부지식인들은<국사해체>,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민족은 사상의 공동체일 뿐이다>라는 구미의 담론을 복창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탈민족>이라는 담론은 아직은 유검적인 매락을 담고 있어 이를 무비환적으로 동북아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안의사가 그의 생을 마감했던 만주도 <동북공정 東北工程>이라는 이름 밑에서 그들의 역사속에 완전 포섭시키려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한중일의 개별적 역사가 <동북아>라는 보편사속에 용해된다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지적해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설사 그러한 보편사가 있었다면 그것은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이나 구미에서 이야기되는 <중화문화전>과 같은 허구적인 보편이 있을 뿐이고,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개체성을 파괴했거나 아니면 무시한<보편 사>아닌 <보 편사>였습니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그렇게 개체가 보편에 강제적으로 동화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보편의 가능성도 열면서 공존 속에서 개체민족의 역사적 소임을 상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동양평화>를 주장했던 겁입니다.
안중근의사의 동양평화에 대한 이상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우리 현실이 알고 있는 문제는 정말 심각하고 근본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상을 담지해야 할 한반도가 아직도 분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안의사는 분명히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떻게 되어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반세기가 넘었는데 아직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가라고... 그래서 저는 안의사의 뜻을 기리는 현재적 의의는 무엇보다도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만드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통일되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한반도만이 동북아의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중심국의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요즈음 이야기되는 경제 의미에서의 <동북아 물류 중심 국>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저항의 미학>에 비추어 새로운 긍정성을 확인해 보고 있습니다.
민족분단이라는 기막힌 현실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하나가 되는 조국을 위해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저들 <해방이후 최대간첩>이라는 누명을 덮어 씌워 처단하려는 기막힌 상황속에서 <안중근 평화상>을 저에게 수여한다는 쉽지 않은 결정은 바로 안의사의 유지를 따라 제가 계속 흔들림 없이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라는 뜨거운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몸은 한평 공간에 갇혀 있지만 저의 정신을 여러분들과 함께 하면서 따뜻한 우리 민족의 봄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3월 26일
서울구치소에서 송두율 드림
안중근평화상수상소감
- 송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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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3-30, 09: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