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복 교수의 이메일 통신
2004-03-30 10:56:00
국회가 지난 3월14일 본회의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것을 가리켜 ´의회 쿠데타´라고 매도하는 주장이 이번 4.15 총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드는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3월12일 탄핵안 국회가결 후 정동영 의장이 이 날 사태를 ´합법을 위장한 의회 쿠데타´라고 단정한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특히 TV 대담을 통해, 이를 반복 강조하고 있고 북한도 그 동안 ´조평통 대변인 담화´(3월15일)·´조선중앙통신 논평´(3월17일)·´한민전 시국선언´(3월19일) 등을 통해 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은 이 같은 ´의회 쿠데타´ 운운의 주장을 근거로 해서 4.15 총선거를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쪽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데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횃불´ 시위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3월12일 국회에서 이루어진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 과연 ´의회 쿠데타´일까요?
Ⅰ국회의 탄핵안 가결이 ´의회 쿠데타´일까요?
1. 무엇이 ´쿠데타´인가?
아래에 소개하는 <국어사전>과 <백과사전>들이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본시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쿠데타´(Coup d´etat)는
▶일부의 권력층이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하여 비합법적 방법으로 국가통치권, 즉 정권을 탈취하는 행위로,
- 일반적으로는 군대, 경찰 또는 그 밖의 무장집단이 은밀하게 계획하고 무력을 사용하여 기습적으로 정권을 빼앗고,
- 정권 장악에 성공한 뒤에는 보통 군사력을 등에 업고 계엄령을 선포한 뒤 의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통제하면서 반대파의 체포·탄압, 정부 요인의 불법납치·감금·암살 등 억압조치가 뒤따르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쿠데타´의 사례는 프랑스의 경우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테(나폴레옹 1세)의 ´쿠데타´와 1851년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가 있고 1922년 이탈리아에서 ´검은 셔츠의 로마진군´으로 정권을 장악한 베니토 무쏠리니의 ´쿠데타´도 성공한 ´쿠데타´의 사례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392년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을 몰아내고 이씨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쿠데타´와 1961년의 5.16 군사 ´쿠데타´가 역시 대표적 성공사례였습니다.
▶´쿠데타´는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이동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뜻에서 피지배계급이 권력을 빼앗아 생산관계의 변혁을 도모하는 혁명과는 그 성격을 달리 합니다.
2. 3.12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국회가결이 과연 ´쿠데타´인가?
◇우리 나라 헌법 제65조가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 ´탄핵´은 대통령 의 ´언행´이 ´탄핵사유´에 해당된다는 것이 절대 다수의 국회의원들의 판단일 때 국회가 ´검사´의 입장이 되어서 재적 2/3 이상의 찬성으로 그러한 ´탄핵사유´에 해당한다고 국회가 판단한 대통령의 ´언행´을 헌법재판소에 ´기소´하는 사법절차에 불과합니다. 최종적으로 문제가 된 대통령의 ´언행´이 과연 ´탄핵사유´가 되느냐의 여부를 ´판단´하여 ´심판´하는 것은 국회의 몫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몫입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국회의 탄핵안 가결은 '무력이나 폭력을 동원하여 비합법적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더구나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더라도 대통령의 ´신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 다만 헌법재판소에서 ´심판´이라는 이름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이 ´정지´될 뿐입니다. 그리고 ´탄핵소추´로 인하여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기간에는 역시 헌법 제71조의 규정에 의거하여 합헌적으로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다고 해서 누구로부터 '정권을 탈취'하는 것도 아니고 '정권을 탈취하는 주체'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태를 가리켜 ´의회 쿠데타´라고 단정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하고도 위험한 정치적 선동 이외의 다른 아무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3월 9일 ´발의´로부터 3월 12일 국회본회의에서의 무기명 비밀투표에 의한 ´가결´, 그리고 헌법재판소로의 ´이송´과 헌법재판소에서의 ´심판´ 진행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처리되어 온 과정은 그 어느 한 대목도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없이 적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오히려 그 동안에 있었던 대부분의 ´불법행위´는 열린우리당과 열린우리당 중심의 소위 ´탄핵반대 연합세력´의 몫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불법적인 농성으로 탄핵안의 정상적 표결처리를 저지하여 3월 12일 국회본회의에서 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을 불가피하게 만들었고 탄핵안의 국회 가결 이후에는 방송윤리규정을 공공연하게 위반·유린하면서 공중파 TV 방송의 일방적인 편파보도를 강요하면서 ´야간 촛불시위´로 여론을 선동하여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압력을 가하는 불법·탈법행위를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열린우리당과 열린우리당 중심의 ´탄핵반대 연합세력´들은 지금 ´정당한 법절차´(Due Process)를 외면하는 공중파 TV 방송의 공공연한 편파 보도와 ´야간 촛불시위´ 등의 탈법·불법적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여론의 세몰이´로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데 전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같은 열린우리당과 열린우리당 중심의 ´탄핵반대 연합세력´들의 움직임은 ´여론의 세몰이´라는 신종 ´폭력´을 동원하여 헌법재판소라는 헌법기관의 정상적 임무수행에 탈법·불법적 압력을 가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야말로 오히려 신종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지탄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Ⅱ. ´탄핵 정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1. 적법 절차에 의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발의
▶3월 9일 오후 159명의 국회의원(한나라당 108명, 민주당 51명)이 서명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사무처에 접수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65조②항에 의거하면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국회의원 재적 1/3 이상의 발의가 필요합니다. 이 날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서명한 국회의원 159명은 재적 271명의 1/3인 91명보다 68명이 많은 숫자이기 때문에 이 발의는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같은 날 오후 6시27분 본회의에 보고되었고 본회의는 이 안건의 법제사법위원회 회부를 결의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국회법 제130조②항에 의거하여 이 안건에 대해서는 본회의에 보고된 시각인 3월 9일 오후 6시27분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전에 본회의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로 표결이 실시되어야 하게 되었습니다. 즉, 이 안건에 대한 무기명 비밀투표는 늦어도 3월 12일 오후 6시27분 이전에 실시되어야 하는 시한이 설정되었으며 이 시한 안에 표결이 실시되지 못하면 국회법의 같은 조항에 규정된 바에 의거하여 3월 12일 오후 6시27분을 경과하는 시점에서 자동적으로 폐기되게 되었습니다.
2. 열린우리당 소속의원들의 불법적 농성과 의사진행 방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직후부터 열린우리당 소속의원들이 의장석이 있는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하여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국회는 과거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집권여당에 의한 많은 ´날치기´가 있었고 많은 경우 ´의장´이 ´의장석´을 벗어난 지점에서 편법으로 ´날치기´ 의사진행을 ´사회´한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2002년 3월 7일자로 발효된 개정국회법은 제110조①항에서 '표결할 때는 의장이 ´의장석에서´ 표결할 안건의 제목을 선포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여 과거에 있었던 ´날치기´ 의사진행을 봉쇄해 놓은바 있습니다. 이번 열린우리당의 농성은 국회법의 이 조항을 악용, 의장의 ´의장석´ 착석을 물리적으로 방해하여 '의장석에서 표결할 안건의 제목을 선포'해야 하는 국회법의 소정 절차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함으로서 문제의 탄핵소추안이 72시간의 ´시한´을 넘겨 자동적으로 폐기되게 하려는 명백한 ´불법행위´였습니다.
▶열린우리당 소속의원들은 3월11일 박관용 의장의 ´의장석´ 접근을 물리력으로 방해하여 불법적인 방법으로 국회본회의 개의를 저지했습니다. 박 의장은 3월 11일 오후 6시경 '오늘은 본회의 개의가 불가능하므로 내일 10시에 본회의를 열겠다'면서 '야당 의원들이 끝내 의장의 의장석 착석을 방해한다면 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하고 퇴장했습니다.
3. 국회의장의 적법한 ´질서유지권´ 발동
▶열린우리당 소속의원들의 불법적 단상점거는 3월 12일에도 계속되었습니다. 3월 12일 오전 11시경 경위들의 경호를 받으면서 본회의장에 입장한 박 의장은 국회법 제145조②항의 ´질서유지권´을 발동하여 경위들로 하여금 단상을 점거 중이던 열린우리당 소속의원들을 물리적 방법으로 들어내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국회법 제145조는 ①항에서 '국회법 또는 국회규칙에 위배하여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한 때'에는 '이를 경고 또는 제지'하도록 규정하는 한편 ②항에서 '①항의 조치에 응하지 아니한 의원이 있을 때'는 '당일의 회의에서 발언함을 금지하거나 퇴장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불법적인 단상점거로 적법하게 발의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라는 중요 의안의 표결이 저지되고 있는 상황하에서 국회법이 규정하고 있는 표결시한에 쫓기고 있는 국회의장이 국회법 제145조②항의 법정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적법한 행위였습니다.
4.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적법한 표결과 가결
▶이렇게 하여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들이 국회 경위들에 의해 본회의장 밖으로 끌려나가고 다른 일부 의원들은 본회의장 의석으로 옮겨져서 야당 의원들의 인간 바리케이드에 의하여 단상 접근이 봉쇄된 상태에서 의장석에 착석한 박 의장의 사회로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무기명 비밀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투표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및 자유민주연합, 그리고 무소속 의원 등 195명이 참가하여 그 가운데 193명이 가표를 던짐으로써 탄핵안을 가결시켰습니다. 193명의 찬성은 헌법 제65조②항이 요구하는 의결 정족수 재적 2/3인 181명보다 12명이 더 많은 숫자였습니다. 이 같은 표결 경위와 결과는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5. 대통령 탄핵안의 적법한 헌법재판소 이관
▶3월 12일 국회에서 가결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같은 날 오후 국회법 제134조①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헌법재판소로 이관되었습니다. 9명의 심판관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 제38조의 규정에 의거하여 앞으로 180일 이내에 이 사안을 심판하여 ´탄핵´을 '결정'하거나 아니면 '기각'을 해야 합니다. 헌법 제113조①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9명의 심판관 가운데 6명의 찬성이 필요하며 6명의 찬성을 얻지 못할 때는 이 탄핵안은 '기각'됩니다.
6. 대통령의 권한행사 정지
▶헌법 제65조③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3월 12일 오후 5시15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권한행사 정지´는 헌법의 같은 조항과 헌법재판소법 제50조의 규정에 의거하여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이 ´정지´되어 있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으로서의 ´신분´과 ´처우´는 유지되며 따라서 ´청와대´를 ´주거지´로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7. 국무총리의 대통령직 ´권한대행´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종결될 때까지의 기간은 헌법 제71조의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 기간 중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하는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헌법 조항에 따라 3월 12일 오후 5시15분부터 고 건 국무총리가 헌법과 관련법률상의 모든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8.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 복귀 문제
▶헌법재판소가 6명 이상의 심판관의 '찬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헌법재판소법 제23조②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기각'되고 그 순간부터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권한행사'를 재개합니다.
9.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면?
▶헌법재판소가 9명의 심판관 중 6명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을 '결정'하면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 제53조①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노무현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하며 그 순간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으로부터 '파면'됩니다. 헌법 제65조④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일단 노 대통령을 대통령직으로부터 '파면'하는 데 그칩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 제65조④항은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파면'되는 경우 '이에 의하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자연인´의 신분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우에 따라 그에 대한 '탄핵'을 초래한 사유와 그 밖의 기타 사유로 인한 '민사·형사 소추'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쿠데타´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의 정의
´쿠데타´(coup d´etat 프): '[명] 폭력에 의한 불법 정변. 일부의 권력층이 무력이나 폭력을 뒷받침하여 국가 통치권을 빼앗는 행위' [서울; 동아출판사, 1988년 중판(5쇄) <동아 프라임 국어사전> 1945쪽]
<백과사전>의 정의
쿠데타(Coup d´tat; 프): '무력을 사용한 비합법적 정권탈취 행위. <국가에 대한 일격>이라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일부 지배계급이 자기권력을 더 확장하기 위하여 또는 다른 부분이 가진 권력을 빼앗기 위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쿠데타는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이동이라 할 수 있으며, 피지배계급이 권력을 빼앗아 생산관계 변혁을 도모하는 혁명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다만 혁명정부를 구 지배계급이 무력으로 뒤엎는 활동도 쿠데타라고 한다. 쿠데타는 군대·경찰 및 그 밖의 무장집단이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것이 일반적이고, 권력을 빼앗는데 성공하면 보통 계엄령 선포·의회해산·언론통제·반대파 탄압 등의 억압조치가 따른다.
역사상 유명한 쿠데타는 프랑스의 B. 나폴레옹(나폴레옹 1세)·L.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이 행한 쿠데타이다. 나폴레옹 1세는 1799년 11월 9일 무력으로 의회를 급습하여 총재정부를 타도하고 스스로 제 1 집정이 되었다가 황제가 되어 독재적 지위에 올랐다. 1851년 나폴레옹 3세는 무력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지위를 강화하여 제정(帝政)의 길을 열었다. 이 두 경우는 모두 무력을 사용하여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빼앗아 제정을 확립하고 독재체제를 확립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쿠데타로는 1922년 이탈리아 B. 무솔리니가 로마 진군으로 정권을 빼앗아 파시스트 독재정권을 수립한 것이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제3세계 여러 나라에서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다. 독립 후에도 제3세계 여러 나라는 제국주의로부터의 경제적 종속구조를 벗어나지 못하여 빈곤과 기아상태가 계속되었고, 다국적기업에 의존한 개발로 농촌은 황폐화, 도시는 빈민화 되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민중의 불만을 증대시켜 왔다. 이때 민중운동이 힘을 발휘하여 현상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유일하게 조직된 세력을 가진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민중운동을 가로막기 위한 반동적 쿠데타가 통례이지만, 민중지지가 뒷받침된 급진적 장교들의 진보적 쿠테타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진보적 쿠데타로 수립된 정권은 민중의 기대에 따라 일정한 사회개혁을 이루어 진보적 역할을 해낸다. 그러나 그 개혁을 자기통제 아래에서 시행하므로 민주적 운동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어 한계가 있다.
한국에서는 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이 바뀐 일이 있다. 73년 9월 칠레인민연합정부를 무너뜨린 쿠데타의 경우처럼 민중운동이 고양된 가운데 수립된 혁신적 정권을 타도하고 제국주의 권익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어나는 쿠데타도 많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쿠데타는 거의 제 3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선진국에서도 경제적·정치적 위기는 쿠데타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터넷 <야후 백과사전>]
´쿠데타´: '동일 체제 내에서 지배자의 교체를 목적으로 하며, 혁명과는 달리 민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쿠데타라는 말은 ´국가에 대한 일격 또는 강타´라는 뜻으로, 영어의 ´stroke of state´ ´blow of state´에 해당하는데, 세계 각국에서 보통 프랑스어인 쿠데타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 전형적인 예가 프랑스적 기원을 가지기 때문이다.
1799년 11월 9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테는 디렉투와르(統領政治)를 폐지하기 위하여 의회에 대하여 쿠데타를 감행하였고, 나폴레옹 3세는 1851년 12월 2일 의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의 임기를 10년으로 연장한 다음, 이듬해 황제가 되었다. 또한, 두 나폴레옹 모두 인민투표에 의해서 표면상의 합법성을 취득하였다. 쿠데타는 은밀하게 계획되어 기습적으로 감행되는 것이 보통이고, 반대파의 체포·탄압, 정부요인의 불법납치·감금·암살, 군사력의 강압 등을 배경으로 하거나, 의회를 강점하고 주요정부기관이나 언론기관을 탈취·점령하는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그리고 괴뢰(傀儡)정권을 수립할 때도 쿠데타의 방법이 종종 이용되기도 한다.
역사상 유명한 쿠데타의 예로는 1922년 10월 B.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에 의한 정권 획득, 1933년 3월 히틀러에 의한 나치스의 정권 획득, 1940년 F. 페탱의 비시정부 수립, 1967년 그리스의 군부 쿠데타 등이 있다. 중남미 제국(諸國)에는 특히 쿠데타가 자주 발생하여 1945∼1960년에 무려 30명의 대통령이 쿠데타에 의해서 교체되었다. [인터넷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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