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월24일 카이로에 있었다. 언덕 위에 지은 시타델이란 명칭의 요새를 구경하고 저녁 식사 자리로 가는데 심한 교통정체를 만났다. 1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데 근 두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다. 안내자는 소규모 시위가 있다고 했다. 다음날은 '경찰의 날'이라고 하여 공휴일이었다. 이날부터 反정부 민주화 시위가 본격화되었다.
카이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중의 하나이고,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중 하나이다. 서울 면적 정도에 인구가 2000만 명 넘게 산다. 카이로를 다니는 자동차는 거의 700만 대라고 한다. 車道(차도)엔 車線(차선)도 신호등도 없다. 자동차, 오토바이, 당나귀, 자전거가 같이 다닌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5분의 1인데, 80%의 시민들이 휴대전화를 가졌다.
카이로는 경제력으론 아프리카에서 1등이다. 이집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걸쳐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이집트 영토인 시나이 반도는 아시아 대륙에 속한다. 카이로는 사람으로 넘쳐 난다. 거리엔 행인, 商人(상인), 그리고 할 일 없이 오고 가는 이들이 늘 무리를 이룬다. 특히 젊은 이들이 많다. 29세 이하 인구가 반이 넘는다. 과거에 인구폭탄이란 말을 많이 썼지만 젊은층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불만덩어리가 되어 정치적 인구폭탄이 될 수 있다. 아랍세계를 뒤흔드는 시위의 주인공들은 어디를 가나 불만이 쌓인 젊은층이다. 카이로에서 눈에 뜨이는 건물 두 개가 있다.
언덕 위의 요새와 모스크, 그리고 도시의 배경그림 역할을 하는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는 4600년 전에 만든 것이고 요새는 12세기, 모스크는 19세기에 세워졌다. 피라미드 사진은 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찍힌다. 실제론 카이로 도심에서 차로 20분 거리이다.
카이로엔 서기 970년에 파티마 왕조가 세운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신학교(알 아즈하르)가 있고, 중동에서 가장 큰 카이로 대학이 있다. 알 아즈하라 신학교의 학자들과 聖職者(성직자)들은 이슬람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는 순니파 신도들의 생활과 관계되는 문제에 대하여 지침(파트와)을 내린다. 최근엔 9·11 테러에 반대하는 지침, 여성들의 음핵을 제거하는 풍습을 금지시키는 지침을 내렸다. 카이로 대학은 아라파트와 후세인 등 중동의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학생수 20만 명, 교직원수 1만5000명. 이슬람 신학, 사상, 교육, 영화, 기타 대중문화에서 중동의 흐름을 이끄는 도시가 카이로이다.
중동의 카이로,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이스탄불, 예루살렘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문명의 중심도시이다. 가장 오래된 도시는 8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다마스쿠스이고, 가장 분쟁적인 도시는 예루살렘이다. 가장 오랜 기간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친 도시로선 카이로와 이스탄불이 쌍벽일 것이다.
1517년 맘루크라는 투르크族 출신 노예戰士(전사) 집단이 다스리던 이집트는 오토만 투르크에 점령된다. 이후 400년간 카이로는 이스탄불에 밀렸다. 이스탄불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이던 시절엔 콘스탄티노풀로 불렸다.
인구, 정치력, 군사력에서 中東(중동)의 3大 이슬람 국가는 이집트, 터키, 이란이다. 이집트와 터키는 親(친)서방 국가이고 이스라엘과도 관계가 좋은 편이다. 이 세 나라는 인종적, 문화적으로 서로 다르다. 이집트는 아랍족, 터키는 투르크족, 이란은 아리안족이 主流이다. 이란은 아랍문자를 쓰지만 말은 다르다. 터키는 케말 파샤의 근대화 개혁 이후 아랍문자를 버리고 알파벳을 쓰고 있다. 이집트, 터키는 政敎(정교)가 분리된 나라이고 이란은 神政(신정)체제이다. 근대화(민주화·산업화)가 가장 성공한 나라는 터키로 꼽힌다. 군대가 근대화의 중심세력이었다.
이슬람 세력은 사우디 사막에서 일어났지만 이집트와 이란 및 시리아 같은 文明의 중심지를 점령, 그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흡수함으로써 格이 높아지고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있었다. 다만 기독교의 종교개혁과 같은 내부 개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 전근대적인 요소가 많고 이것이 산업사회와 대중민주사회에 맞지 않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카이로 이야기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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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09, 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