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혁명은 4·19혁명이 해결하지 못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5·16 이후 우리 군은 60여 년간 건국의 礎石(초석), 호국의 干城(간성), 근대화의 견인차, 민주화의 울타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2월14일 오후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문화일보홀에서 열린 ‘제160회 趙甲濟 기자의 現代史 강좌’에서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가 5·16 군사혁명과 軍의 역할에 대해 한 말이다.
趙甲濟 대표는 “5·16군사혁명 후 朴正熙는 주자학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士農工商(사농공상) 질서를 타파하려 했다. 朴 대통령은 ‘自助’, ‘自立’, ‘自主’를 혁명의 논리와 통치철학으로 삼아 개방형 경제개발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朴 대통령은 서구 민주주의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자고 했던 민간 정치세력을 일종의 ‘事大주의자’로 보았습니다. 우리의 정치적 토양과 국민들의 교양수준이 未備(미비)한데 막무가내로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했습니다.”
趙 대표는 “朴正熙는 ‘민주주의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했다. 즉, 만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朴 대통령만이 서구 민주주의 직수입에 제동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朴 대통령을 가리켜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던 진정한 민주주의의 건설자”라고 했다.
趙甲濟 대표는 대한민국 국력이 우위에 선 것도 “근대화 과정에서의 군대의 역할 덕분”이라고 봤다. 趙 대표는 “통일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중심 세력 역시 軍이며 어떤 측면에선 대학보다 군에서 배우는 지식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1991년 在美교포 서진규 씨가 발표한 논문을 인용해 5·16 군사혁명 이후의 국민여론도 소개했다.
“1991년 40세 이상 어른 467명 중 응답자의 46%가 ‘혁명을 지지했다’고 답했습니다. 범위를 넓혀 808명의 사람들에게 ‘5·16혁명의 한국 발전에 대한 영향’에 대해 물었을 때 응답자의 62%가 ‘5·16 군사혁명이 한국의 발전을 위해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박정희의 통치방식에 대해 응답자의 69%는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 여론조사는 1961년 5월16일, 美軍 방첩대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혁명에 관한 면접 여론조사 결과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당시 10명 중 6명이 ‘혁명에 찬성’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趙甲濟 대표는 “이집트, 터키, 아일랜드에서 볼 수 있듯이 軍은 그 나라 근대화의 중심역할을 했다. 軍事문화가 민주주의에 역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군의 잘 정비된 시스템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촉진시킨다”고 했다. 그는 터키를 예로 들며 “케말 파샤(아타튀르크)는 근대화의 임무를 군대에 맡겼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배제되고 세속화 된 터키의 군대는 오히려 민주화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趙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국방비는 GDP의 약 2.8% 정도이다. 앞으로 4% 정도로 높여야 하며 그렇게 되면 북한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체제를 수호하는 믿음직한 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더욱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强軍 육성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趙成豪(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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