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博 대통령 왼쪽에 앉은 송호근 교수의 글

國軍에 냉소적이고, 김대중을 美化.
李明博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인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비서관회의에 취임식 때 맸던 넥타이 차림으로 참석했다. 그의 왼쪽엔 이날 특별 강연자로 초청된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앉았다. 宋 교수는 특별강연에서 “국가의 손길과 돌봄을 기다리는 민심과 자율적 시민의식을 갖고 정권을 감시하는 냉혹한 비판자의 민심이 공존하고 있다”며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것은 ‘愛民’이고, 공정경쟁은 ‘爲民’이다. 양면을 잘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李 대통령이 특별히 모셔 온 것으로 보이는 宋 교수는 어떤 言動을 한 사람인가?
작년 4월6일 기자가 조갑제닷컴에 쓴 글을 소개한다.


<<오늘자 중앙일보의 '송호근 칼럼' 제목은 '천안함에서 보내온 送信'이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도대체, 그날 밤 9시15분부터 22분까지 7분 동안 천안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정부와 군당국은 사건 발생 11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정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는가? 언론 보도에 의하면, 천안함에 이상이 발생한 것은 9시15분, 인근 기지에서 폭음을 감지한 시각은 16분, 그리고 함미가 가라앉은 시각은 22분이었다. 이 운명의 7분을 해명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군사정보망은 부실한가?

최초 상황 발생 시각이 15분이 아니라 22분이었다는 군당국의 발표도 믿기지 않는다. 도시 지역에서 경미한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도 그 전모가 여러 대의 감시카메라에 잡히는 것이 ‘IT 한국’의 정보통신력일진대, 첨단 해군의 주력함을 24시간 관찰하는 정보망이 없다는 것, 있다 해도 전투함의 개별 상황을 일일이 탐지하긴 어렵다는 것이 변명인가, 현실인가?>

서울대 宋 교수는 판단근거를 언론보도에 두고 있다. 그러면서 軍당국의 발표를 不信한다. 軍보다 언론을 더 믿는 모양이다. 문제는 그 언론보도가 틀렸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당초 사고 발생 시각을 3월26일 오후 9시45분께로 발표했다. 이튿날엔 사고시각을 오후 9시30분으로 정정하고, 지진파가 탐지된 4월1일에는 9시22분으로 수정, 확정하였다. 천안함이 침몰된 시각은 9시22분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立證(입증)된 사실이다.

캄캄한 한 밤중에 海上에서 일어난 돌발사건에서는 최초의 사고발생 시각 보고가 헷갈리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사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잘못이 바로잡힌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MBC 등 오보와 억측이 체질화된 몇몇 언론이 이 단순실수를 확대해석하고, 억측에 근거하여 소설 같은 기사를 쏟아내는 바람에 宋 교수 같은 이도 軍당국보다 誤報(오보)가 습성인 언론을 더 믿게 된 듯하다.

사고 당일 가족과 통화하던 한 실종 장병이 9시16분쯤 `비상이 걸렸다'며 전화를 끊었고, 같은 시각에 또 다른 실종자의 휴대전화 문자전송이 중단됐다는 증언을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그러나 군 당국에서 그 뒤에 조사하니 승조원이 9시22분에도 통상적인 휴대전화 통신을 한 것이 밝혀졌다. 즉, 9시22분까지는 아무런 비상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보와 왜곡을 많이 하는 기자들일수록 全知全能(전지전능)한 하나님 입장에서 사소한 실수를 트집잡아 사건의 본질을 의심하는 추측기사를 많이 쓴다. 사건의 최초 현장은 항상 혼란상태이다. 그때의 기억과 기록은 틀리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고 인간이 기계처럼 정확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들은 정작 자신들의 기사는 엉망진창으로 쓴다. 남을 비판하는 데 주력하다가 보면 자신의 허점을 잊기 쉽다.

침몰시간에 대한 모든 의문점은 지난 1일 확인된 지진파 관측으로 풀렸다. 9시22분에 관측된 진도 1.5의 人工지진이 천안함을 침몰시킨 대폭발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 2차 폭발도 없었다. 지진파 발생 시각은 천안함 선장의 침몰 시각 증언 및 군당국이 공개한 침몰장면 동영상과도 일치하였다.

그 뒤에도 시간문제를 갖고 의혹제기 기사를 쓴 기자들은 재교육이 필요한 이들이다. 문제는 이런 언론의 의혹제기가 드디어 서울대학교의 교수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軍당국을 불신하고 언론을 더 믿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宋 교수가 조선, 동아일보를 읽었다면 시간문제에 대하여 큰 오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 운명의 7분을 해명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군사정보망은 부실한가?>라고 개탄하였는데, '운명의 7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MBC 기자 등의 억측 속엔 존재하지만.

宋 교수는 <대한민국의 수병답게 바다에서 마지막 숨을 거둬 영광이기는 하지만, 전사(戰史)에 남을 해전도, 형체가 뚜렷한 적과의 교전도 아닌 상황에서 수장되었다는 게 아쉽기는 하다>고 하였다. 이것도 速斷(속단)이다. 천안함은 '형체가 뚜렷한 적과의 교전도 아닌 상황에서' 침몰한 것이 아니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의하여 침몰한 것은 확실하다. 그 충격을 가한 것이 북한의 잠수함정이 발사한 어뢰나 부설한 기뢰일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조사가 진행중이다.

宋 교수의 사실오인은 언론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기자는 사실을 추구하고 학자는 진실을 추구한다. 진실은 사실보다 등급이 높다. 그런 학자가 기자를 믿으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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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 "잠수함 기지 공격, 그건 술김에나 하는 소리"

趙甲濟

북한의 잠수함정이 발사한 어뢰를 맞아 천안함이 침몰하였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일부 기자, 학자, 정치인들이 "영구미제 사건이 될 것이다" "무력보복은 안 된다" "북한 소행으로 밝혀져도 보복수단이 없을 것이다"는 방향으로 입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오늘자 중앙일보 칼럼에서 <여론 선도용으로 대통령이 되풀이 강조했던 ‘단호한 대응’에 걸맞은 ‘단호한 수단’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사곶 잠수함기지를 ‘쓸어버리는 것’? 그건 술김에나 하는 소리고, 이미 시간을 놓쳤다. 속초함이 새떼를 포격할 때 도망치는 잠수함을 요격했어야 했다>고 썼다.

그는 또 <유엔 안보리에 제소해봐야 각종 제재에 이골이 난 북한이 꿈쩍이나 할 것인가? 국제재판소로 이관해서 배상을 요구한들, 굶주린 북한이 무얼 내놓겠는가? 핵과 미사일을 쥔 손에 힘을 더 넣게 만들 뿐. 그래서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함미 인양으로 한숨 돌릴까 했던 우리는 결국 이렇게 답안 없는 문제를 넘겨받았다>고 단정하였다.

그는 화살을 안으로 돌려 <46명의 젊은 생명을 그냥 보낼 수 없고, 구멍 난 안보를 묵과할 수 없다. 군의 초기대응 태세와 정부의 위기관리체계를 대대적으로 수리하라고 소리치고 싶은 게 오늘의 국민심사다>고 해석하였다. 즉, 가해자에 대한 응징은 포기하는 게 좋고 피해자에 대한 문책과 보완에 주력하자고 주장한 셈이다.

"대통령은 시간을 끌지 말고 北의 범행임을 공식화하고 응징에 착수하라!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금지, 휴전선의 對北(대북)방송 再開(재개), 韓美(한미)연합사 해체 작업 중단, 국가차원의 對北(대북)풍선보내기 등 쉬운 일부터 시작하라!"(국민행동본부 성명서).

우리에겐 이처럼 북한에 대한 수많은 보복수단이 있는데 왜 송 교수는 서둘러 북한에 대한 응징 수단이 없는 것처럼 미리 단정하는 것일까?(중앙일보가 주로 이 방면으로 여론을 끌고 가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송호근 교수의 사실 인식력에 결함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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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송호근 교수의 김대중 극찬에 대하여
'세기의 부랑아 김정일을 길들인' 사람은 김대중이 아니다. 김정일이, 김대중을 길들인 사람이다.
趙甲濟

오늘 중앙일보 칼럼에서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극찬하였다.

<스웨덴 한림원은 세기의 부랑아 북한을 길들인 공적을 높이 샀지만, 우리에게는 국민소득 100달러에서 1만 달러에 이르는 험난한 도정(道程)의 온갖 투쟁과 저항을 대신 짊어진 순교자의 의미가 더 커 보였다.>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순교자' '세기의 부랑아 북한을 길들인' 사람으로 묘사한 것은 지나치다. 김대중은 세기의 부랑아 김정일 앞에서 굴종하였지 그를 길들인 적은 없다. 대통령이 국민들을 속이고 간첩 두목에게 4억5000만 달러를 보내주도록 하곤 국민들에겐 간첩 신고하라고 하였다. 김대중 정권 때 북한으로 들어간 현금은 核과 미사일 개발에 쓰였다는 것이 定說이다.

김대중은, 그렇게 많은 돈을 건네 주고도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단 한 사람도 데려오지 못하였다. 돌려달라는 요구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轉向하지 않은 빨치산과 간첩 출신 63명을 보내주었다. 그 가운데는 일본인을 납치해가지고 가서 북한에서 죽게 하였던 신광수도 끼여 있었다.

2002년 서해 사태 때 김대중 정권하의 군 지휘부는 도발 조짐을 알고도 햇볕정책에 충실하기 위하여 미온적인 대응을 하다가 기습을 받았다. 김대중은 군에 대하여 북한 함정이 NLL을 넘어오더라도 절대로 먼저 쏘아선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하여 수십 명이 죽고 다치는 비극을 불렀다. 김대중씨는 박정희 앞에선 당당하였으나 김정일 앞에선 고분고분하였다. 김정일이 김대중을 잘 길들인 것이다.

김대중씨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데 방해를 한 인물들에 대하여 보복적인 수사를 철저히 하였다. 그는 대통령의 특권으로서 살인을 저질러도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는 특혜를 누리면서 시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하였다. 특히 大選에서 진 李會昌 후보의 정치자금을 수사하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정치자금을 수사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런 김대중씨에게 '순교자'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칼럼은 이어진다.

<2009년 4월, 그는 젊은 시절의 분신이자 그보다 더 무모하고 순진무구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일갈했다. 반민주 권력에 아부하지 말고 들고 일어나라고. 육신은 쇠락했지만, 열정은 펄펄 살아 있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임종 일기에 썼을 때, 그는 자신을 괴롭힌 세상과 화해했다. 그는 빈곤한 나라의 궁핍한 정치를 민주주의의 궤도로 쏘아 올린 발사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무모하였다기보다는 무식하였고 절대로 순진무구하지 않았다. 보수층을 향하여 '별놈', 헌법을 '별놈', 군대를 '인생 썩히는 곳'이라고 저주하고, 북한의 허수아비 국회인 최고인민회의장을 '인민主權의 전당'이라고 美化하고 4000만 학살자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힘 센 자신의 형을 '시골의 별 볼일 없는 사람', 대우건설 사장을 '좋은 학교 나와서 출세한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비아냥거려 자살로 몰고갔던 자를 '순진무구했던'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송호근 교수는 나와 다른 韓國語를 쓰고 있는 셈이다.

빈곤한 나라의 궁핍한 정치를 민주주의의 궤도로 쏘아 올린 사람은 김대중을 포함한 한국인 전부였다. 특히 공이 많았던 두 사람은 자유민주주의의 노선을 정한 李承晩, 경제건설로 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만든 박정희였다. 김대중씨는 10등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反민주 권력이라고 선동한 것을 '열정'이란 말로 美化할 순 없다. '失言' 또는 '妄言'이 맞다.

칼럼은 이어진다.

<하의도 섬 소년은 위대한 정치인이 되어 떠났다. 1만 달러 수준에서야 비로소 꽃피었던 한국의 민주주의를 100달러의 암흑지대로부터 꿈꾸고 달려 왔던 그가 있었기에 환한 세상을 누리는 우리들은 그가 떠난 태평로에 남았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위대한 정치인? 대한민국의 헌법상 정통성, 정체성, 정당성을 정면으로 부정한 6.15 반역선언이 위대한 것이었나? 선동, 거짓말, 속임수에선 '위대한' 바가 없진 않았다. 물론 이때의 '偉大한'은 역설적 표현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되어서야 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송 교수의 自認은 그렇게 만든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 같은 기업인들, 그리고 묵묵히 법을 지키면서 살아간 국민들이야말로 진정한 한국 민주주의의 건설자였음을 웅변한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을 때 한국인의 국민소득은 100 달러 아래였다. 이 시대를 송 교수는 '암흑시대'라고 표현하였다. 자유가 없어서 '암흑시대'가 아니었다. 가난하였기에 '암흑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광명을 선물한 것은 생산하고 건설한 사람들이다.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의 功도 물론 있다. 송호근 교수는 김대중씨가 암흑시대를 광명의 시대로 만든 공을 독차지하도록 하고 생산-건설세력의 공을 무시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깽판-건달세력과 생산-건설세력의 대결장이었다. 김대중과 박정희는 어느 편으로 분류될까? '그가 있었기에 환한 세상을 누리는 우리들' 속에서 '조갑제'는 빼주어야 할 것이다. 내가 환한 세상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네 가지 요소 덕분이다.

1. 자유민주주의 체제
2. 이승만 박정희 같은 위대한 지도자
3. 한미동맹
4. 근검 성실한 국민들

송 교수는 김대중에게 '위대한'이란 찬사를 되풀이하였다. 역사적 평가가 거의 끝나서 안심하고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써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치인은 이승만, 박정희뿐이다. 김대중이 역사평가에서 '위대한'이 될지 '악랄한'이 될지는 아직 더 기다려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富者나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함은 이제 세계 정치학계의 定說이다. 그리하여 양식 있는 학자들은 박정희나 이승만을 독재자라 부르지 않는다. 우선 제도를 만들고 경제를 건설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자유주의를 지향한 권위주의적 지도자라는 의미에서 Liberal Authoritarian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이승만은 6.25 전쟁중에도 국회를 해산하지도 선거를 중단하지도 언론을 검열하지도 않았다. 민주주의를 시작한 지 3년째인 나라가 이 정도 하였다면 잘 한 것 아닌가?


참고로 '강철군화'라는 필명을 쓰는 한 40대 기자의 글을 싣는다.

<애덤 쉐보르스키와 페르난도 리몽기는 1950년에서 1990년 사이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을 조사했다 (1985년 달러화 기준).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 미만인 국가들의 정권 평균수명은 8년으로 나타났다. 1500달러에서 3000달러 사이는 18년 정도 지속되었고, 6000달러 이상의 국가들에서는 상당히 탄력적으로 나타났다.
1인당 6000달러 이상을 버는 국가에서 민주 정권이 붕괴될 확률은 1/500이었다. 일단 부유해지면 민주주의는 불멸하는 것이다. 대략 9000달러 이상의 소득이 있는 32개의 민주정권들의 지속연수는 총 736년이다. 단 한 곳도 붕괴되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69개 빈국 중 56%인 39개 민주 정부는 실패하고 말았다.(파리드 자카리아, '자유의 미래')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장 파리드 자카리아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1인당 3000달러에서 6000달러의 소득 수준에서 민주주의 전환을 시도한다면 성공하리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역설한다.
그는 "다수의 국가들이 1945년 이후 대략 1인당 GDP 6000달러를 전후한 시점에 안전한 자유민주주의가 되었다"면서 지난 30년 사이에 권위주의 독재에서 자유민주주의로의 전환에 성공한 스페인,그리스와 포르투갈을 그 예로 들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김대중을 바츨라프 하벨, 넬슨 만델라, 레흐 바웬사 등과 함께 '자유의 역사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그러나 자카리아는 "그들의 승리가 왜 가능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는 "혹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1인당 소득이 아니라 '도덕의지'라며, 위 관심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사람은 YS나 DJ,혹은 그 추종자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에 대해 자카리아는 신랄하게 따지고 든다.
" 우간다와 벨로루시, 그리고 이집트는 결의에 찬 도덕적 명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의 운동가들도 1960,1970,1980년대에 모두 실패했다. 실제로 반체제 인사였던 김대중 前 대통령 역시 그 당시 대부분 기간 동안 투옥되어 있었다. 왜 그가 1970년대에는 실패했으며, 1990년대에는 성공했는가? 그가 1990년이 되자 갑자기 '도덕 의지'를 갖게 되었는가?

자카리아는 독재정권은 여러가지 요인으로 붕괴되지만,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 무엇이 민주주의를 지속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역사적으로 가장 간단하고 훌륭한 대답은 국가의 富"라고 말한다.

자카리아는 그 이유로 첫째, 국가의 경제발전은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분파(사기업과 광범위한 부르주아지)들이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을 획득하도록 하고, 둘째, 이 분파들과의 협상에서 국가는 덜 폭압적이고 덜 변덕스러워지며, 규칙 지향적으로 사회의 요구(최소한 사회 엘리트 집단의 요구)에 응답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 과정에 자유화로 귀결되었다고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좋은 것들의 功을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모든 惡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것처럼 비과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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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미화한 송호근이 국군을 열심히 때리는데...
조영환(올인코리아)

평소에도 교묘하게 우익세력과 남한정부를 때리고 좌익세력에 도움이 되는 언행을 했다고 보수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온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연평도 포격사건을 계기로 북괴에 비난의 필탄(筆彈)을 퍼붓지 않고, 필탄의 총구를 이명박 정부와 군대에 겨누었다.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김정일이 가장 바라는 짓을 송호근이 하고 있는 것이다. 탁상머리에 앉아서 이 세상사를 망상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한 듯한 몽상한 잡설을 송호근이 중앙일보를 통해서 또 늘어놓았다고 판단된다. 성인군자나 무패장군 같은 주장을 송호근 교수가 한국 정부와 군대에 늘어놓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적을 이롭게 하는 자해적 행위에 불과한 짓을 송호근이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부와 군대를 때리지 못할 바보가 없는데, 사회학자가 그 바보짓을 하고 있다.

송호근은 "연평도가 공격을 당한 지난 주 화요일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은 마음이 편치 않다. 불안하다. 허탈하다. 포화가 멎은 후 57년 동안 다스려왔던 전쟁의 공포가 이렇게 느닷없이 다시 엄습해올 줄이야 상상도 못했기에 불안하다. 땀 흘려 번 돈을 쏟아부었던 저 국방 상태가 해안포 백수십 발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허술했음을 목격했기에 듬직했던 성벽이 무너지듯 허망하다"며 연평도 포격에 대해 허술한 국방력을 개탄했다. 일면 맞는 듯한 개탄이지만, 자세히 보면 맞지 않는 공허한 망발이다. "전쟁의 공포가 이렇게 느닷없이 다시 엄습해올 줄이야 상상도 못했기에 불안하다"는 송호근은 분단상황과 선군정치를 망각한 화성인이 아닌가? 김정일의 선군정치 앞에 전쟁 가능성을 매일 느끼고 살아온 게 제정신을 가진 국민들이다.

송호근 교수의 국방력에 대한 착각도 수용하기 힘들다. 정상적인 애국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좌익정권을 거치면서 철저하게 해체되고 약화되어진 국방력에 우려와 경각을 끊임없이 외쳤는데, 송호근은 이런 허물어진 국방력에 깜짝 놀랄 정도로 국군의 실태에 어두웠던 것이다. 송호근은 "백주 대낮에, 해안포 기지의 포문이 열리고 백수십 발의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실전 상황에서 겨우 네 문의 자주포로 응사했던 게 대한민국의 실력이자 방위전략의 모든 것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는가"라며 "국민의 안위를 지켜줄 국가의 허우대가 그토록 허약했음을 인정해야 하는 공허감은 급기야 자제할 수 없는 분노로 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회학자라는 자가 대한민국의 안보와 치안에 그만큼 무지했다는 송호근의 자기고백에 불과하다.

송호근은 자신의 무지와 무관심을 개탄하지 않고 군대를 비방하는 못된 양심의 소유자로 보인다. 송호근은 "수백 명의 군사전문가, 수백 명의 현역 장성, 수천 명의 퇴역 장군이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 가장 민감한 작전지역인 서해 5도를 겨우 열두 문의 자주포로 버텨왔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서해5도를 점령하려는 북괴의 전략과 이를 경고한 보수애국진영의 목소리를 송호근은 한번도 듣지 못했는가? 서해NLL을 무력화시키려고 북한이 도발할 것이라는 보수우익진영의 세미나와 기자회견과 집회에 송호근은 한번이라고 우호적 관심을 둔 적이 있는가? 오히려 송호근은 서해NLL의 무력화를 북괴가 노린다고 아우성친 보수우익진영에 적대적이지 않았는가? 평화의 이름으로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지원한 김대중에 대해 송호근은 어떤 비판을 가했나? 김대중의 사이비 평화주의에 홀린 무식자는 한국의 안보에 입을 다물어라.

그런 송호근이 이제 와서 갑자기 군대를 비롯해서 남을 비방하고 정부에 개탄을 쏟아내는 것은 탁상머리 먹물의 전형적인 무책임과 이중성과 몽상성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송호근의 "출동도 못한 해군이나, 상공을 맴돌면서 화염이 치솟는 것을 구경만 한 공군은 군대가 아니다. 그냥 공중 에어쇼였을까. 기습 포격을 한 시간 이상 당하면서도 첨단 화력을 쓰지도 못했던 대한민국의 군대는 그 허망한 실제 모습을 드러냈다"는 개탄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라는 무책임한 객의 망발에 불과해 보인다. 그런 개탄을 사회학자가 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사회학자라면, 분단상황에서 안보와 치안을 중시하는 논설을 쓰고, 적에게 무방비 상태의 군대를 미리 지적하고, 그리고 무감각해진 국민의 안보의식을 미리 다잡도록 촉구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김대중식 거짓 평화주의에 홀려 전쟁을 평화로 착각한 송호근이 이제 누굴 나무랠 수 있나?

이제 와서 "한반도의 화약고 NLL의 심장부 연평도를 지켰던 것은 고장 난 장비, 망가진 전략 시나리오, 그리고 확전(擴戰) 공포였다"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씨불어댄들, 그것은 차 떠난 뒤에 손을 드는 격이 아닌가? 서울대에서는 사회학을 그렇게 뒷북치기로 가르치는가? 송호근은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이전에 국가의 안보와 사회의 치안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관심을 집중시킨 글을 썼는가? 송호근은 국방과 치안을 약화시키는 깽판세력에 비판적은 논설을 얼마나 썼는가?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는 애국자들을 교묘하게 할키는 정치선동을 송호근이 자행해온 것은 아닌가? 이제 와서 마치 자신은 국방과 치안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성자처럼 착각해서, 군대와 정부에 호통치는 송호근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송호근 같은 뒷북치기 전문가가 사라지면, 대한민국의 국방과 치안은 정상화될 것 같다.

서울대의 사회학자라는 자가 이런 판국에 정부와 군대에 불평불만만 자극하는 선동을 하는 것 자체가 국방허물기가 아닌가 판단된다. 송호근은 "(연평도 주민의) 소개 명령이 즉시 하달되고, 해군 함정과 공군 헬기가 즉각 출동해서 공포에 떨고 있는 연평도 주민을 일사불란하게 육지로 대피시킬 거라고 기대했다. 청와대의 지하벙커 회의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전략적 포인트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지하벙커에 모인 전략사령탑의 어느 누구도 주민의 안전한 후송작전을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며 연평도 주민들의 불만도 확대재생산했다. 책상머리에서 상상만 하고 살아서 그런지, 송호근은 연평도의 전시상황을 마치 책상머리의 망상 정도로 착각하는 것 같다. 또 전쟁상황이 서울에서 발생되면, 누가 주민들을 소개하고 안전하게 대피시킬지 송호근은 지금 한번 확인하기 바란다.

민방공훈련을 한다고 정부를 향해서 삿대질을 해대는 국민들은 어떤 세력이 만들었는지 송호근은 지금 한번 판단내리기 바란다. 민주화의 이름으로 지식인들을 송호근과 같은 몽상가들로 만들어버린 좌익정권의 기운이 아직도 한국사회에 유령처럼 떠도는 상황에서 누가 주민의 안전을 돌볼 것이라고 송호근은 망상하는가? 서울에 포탄이 떨어지면, 지금 연평도보다 백배나 너 우왕좌왕할 것을 사회학자 송호근은 상상도 못 하는가? "국가가 보내준 어떤 수송수단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상비약과 옷가지도 놔둔 채 어선과 여객선을 타야 했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을 달랠 국가의 손길은 없었다. 보트 피플이나 다름없었다"는 송호근의 개탄은 탁상머리 먹물의 갑작스러운 몽상에 불과해 보인다. 서울대에 둥지튼 사회학자가 反정부 불만을 부추기는 선동이나 하면 되나?

"59년 전, 흥남 철수에는 그나마 미국의 대형 수송선이라도 있었지만, 2010년 연평도 철수에는 똑딱선과 꽃게잡이 어선 선단이 거센 물결을 헤치고 뭍으로 달렸다"는 송호근의 화려한 문장력은 전쟁이 끝난 뒤 난민의 허망한 개탄에 불과하다. 송호근은 이런 허망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세뇌와 선동에 자신이 얼마나 부역했는지부터 자성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 좌익세력에 송호근이 얼마나 대적하는 삶을 살았는지 지금이라도 뉘우치는 글을 써올리기 바란다. 이제 송호근과 같은 개념이 없이 살아온 군중인간은 억장이 무너져야 한다. 몇 배로 응징하겠다는 결기에 찬 정부의 선언이, 최첨단 화력으로 재무장하겠다는 군 수뇌부의 사후 다짐이, 괘씸하다 못해 불쾌하게 들릴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지 송호근은 되돌아봐야 한다. 송호근이 무너진 국방과 해체된 치안을 나무랠 자격이 있나?

송호근은 자신이 "한국의 아버지들이 사명감을 갖고 치러냈던 군 복무의 결과가 고작 후진국 군대만도 못한 오합지졸의 광경으로 연출되고, 한국의 어머니들이 눈물을 삼키며 보낸 자식들을 싸늘한 시신으로 돌려받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군대"를 만드는 데에 얼마나 공헌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제 와서 "월급에서 꼬박꼬박 제했던 그 엄청난 국방비는 다 어디에 썼기에 손 한번 못 써보고 침몰당하고 피폭당하는가? 용맹스러운 훈장과 화려한 제복에 빛나는 그 군사전문가들은 민간 연락선이 부지런히 탈출 행렬을 도울 때 어떤 상념에 잠겨 있었는가? 세기의 부랑아 집단과 대적하는 대한민국에 도대체 믿을 만한 방위전략은 있는가, ‘국민의 군대’는 있는가?"라고 송호근이 아무리 개탄해도 그것은 자신의 언행에 대한 촌각의 반성도 없는 후안무치한 비방으로 들릴 뿐이다.

연평도 포격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군대와 미군을 비방하고 폄하하는 송호근식 요설에 이제 각성된 국민들은 질린다. 북괴의 포악한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송호근의 지난 논설들은 대한민국의 안보불감증에 주범이 아닌가? "미국의 호화군단이 해상시위를 한들, 천안함과 연평도에서 산화한 우리의 아들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연평도의 부서진 삶과 국민의 무너진 신뢰는 복원되지 않는다. 버려진 연평도, NLL의 전략적 요충지 연평도가 그렇게 버려져 있었다면, 대한민국 어느 곳도 그렇게 버려져 있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라고 아무리 송호근이 개탄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무너진 국방력 앞에서 송호근은 허탈하고 망연자실해야 마땅하다. 좌익세력에 의해 무너진 국방력과 치안력을 개탄해온 우익인사들은 지금 연평도 포격사건에 망연자실하지 않는다. 일어날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연평도 포격사건에 정부와 군대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자들은 지금까지 김대중-노무현 좌익정권의 국방력 약화를 비판해온 우익인사들뿐이다. 국방과 치안에 아무런 감각도 없이 좌익세력의 선동대 노릇을 해온 먹물들이, 이제 북괴의 공격이 선명해지자, 남한 정부와 군대를 악랄하게 매도하는 것은 이적행위나 다름 없다. 한국 군대와 정부가 적의 공격에 무능하게 대응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침략한 북괴를 비판하지 않고 남한 정부와 군대를 집중적으로 비난하는 송호근의 요설은 무책임하고 反국익적인 해코지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치안과 국방에 적대적인 선동을 살다가 이제 와서 남한 정부와 군대를 비방하는 요설가들은 진짜 국방을 허무는 숨은 세력이 아닌가?

송호근은 서울대 사회학자답게 김대중의 사이비 평화주의를 비판할 정도로 지식적으로 성숙하기 바란다. 송호근은 김대중을 "스웨덴 한림원은 세기의 부랑아 북한을 길들인 공적을 높이 샀지만, 우리에게는 국민소득 100달러에서 1만 달러에 이르는 험난한 도정(道程)의 온갖 투쟁과 저항을 대신 짊어진 순교자의 의미가 더 커 보였다... 2009년 4월, 그는 젊은 시절의 분신이자 그보다 더 무모하고 순진무구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일갈했다. 반민주 권력에 아부하지 말고 들고 일어나라고... 그는 빈곤한 나라의 궁핍한 정치를 민주주의의 궤도로 쏘아 올린 발사체였다"고 김대중을 극찬했다. 송호근이 평화를 가장한 전쟁광의 도우미가 아닌가? 요사스런 송호근은 한국의 군대와 정부를 때릴 자격이 없으니, 입을 다물어라!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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