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독일 통일은 단점만 記述, 베트남 共産통일은 발전像 부각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주)미래엔 컬처그룹 ① / 독일의 자본주의 흡수통일에 대한 부정적 이해 유도…그릇된 통일관 심어줄 우려.
(주)미래엔 컬처그룹(舊 대한교과서)에서 발행한 2011년 한국史 검정교과서는 8단원 349페이지 탐구활동 ‘각국 통일과 그에 따른 문제점’에서 베트남의 共産통일과 독일통일을 다루고 있다. 베트남은 공산국가였던 北베트남의 무력통일이었고, 독일의 경우 자본주의 국가였던 西獨 주도의 평화적 흡수통일이었다. 교과서에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베트남은 1985년 이후,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등 개혁에 성공해 발전을 이룩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면을 서술한 반면, 독일 통일은 “서독의 자본과 엘리트에 의해 흡수통일 방식이 내적통일에 많은 문제점을 안겨주었다”고 부정적으로만 기술하고 있다.


베트남式 통일과 독일式 통일을 편향적으로 비교한 대한교과서


탐구활동으로 “자료를 보고 베트남과 독일에서 통일 후 발생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자”고 제시하고 있다. 제시된 자료의 편향성으로 학생들은 부정적으로 서술된 독일 통일방식이 문제가 더 크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통일 방안은 무엇이며 그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토론해 보자”라는 두 번째 질문에서도 베트남이 통일 이후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긍정적인 측면만 서술되어 있어 베트남의 통일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고 답할 가능성이 크다.

대한교과서는 독일통일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과거의 통계만을 인용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본문 중 “東獨 경제가 빨리 부흥되지 않고 20%에 가까운 높은 실업률이 지속…”이라는 내용은 廉燉載(염돈재. 現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박사의 著書 《올바른 통일 준비를 위한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과 비교했을 때 사실이 아니다. 廉 박사는 “독일 통일 이후 신연방주(舊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2006년(19.2%)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2009년 현재 실업률은 13.0%)”고 밝히고 있다.

그는 “동서독 주민 모두 통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東獨 주민들은 자유와 풍요를 만끽하고 있으며 서독 주민에 비해 ‘2등 국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메르켈 총리, 플라첵 사민당 당수, 티어제 前 연방하원 의장 등 동독출신 인사들이 통일독일을 이끌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대한교과서는 이런 사실은 간과하고 “동독인 사이에 통일 현실에 대한 회의가 커졌다”며 대다수의 舊 동독 주민들이 통일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것처럼 말했다.

廉 박사는 “동서독간의 생산력 격차도 다소 완만하기는 하나 계속 좁혀지고 있다. 1992년 이후 2004년까지 신연방주의 국내 총생산량(GDP)이 두 배 가까이 성장하여 1991년 국내총생산에서 7%에 불과하던 비중이 2008년에는 11.7%로 상승했다. 1인당 GDP는 서독지역의 35%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72%, 2008년에는 79%에 달했다”며 舊 동독 지역의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있음을 전했다. 그는 “아직도 동서독 지역 간의 격차해소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독일경제는 통일 후유증에서 거의 벗어나 과거 서독 수준의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하고 있다.

2010년 이코노미스트紙는 2009년 貿易수지 黑字가 가장 많은 나라가 독일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2009년 4월~2010년 3월 사이 무역흑자는 2072억 달러로서 2위인 러시아의 1388억 달러, 3위 중국의 1387억 달러를 앞섰다. 2010년 3월의 산업생산액은 1년 전에 비하여 8.6% 증가하였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드는 것이다. 실업률도 프랑스의 10%보다 낮은 7.8%이다. 또한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한 1990년 이후부터 2009년까지 독일은 세계수출 1위 국가였다.

반면, 베트남은 월맹에 의한 공산통일 이후 독재체제를 더욱 가중시켰고 정치는 월남처럼 부패해졌다. 베트남 공산당은 국민의 私有재산을 말살했으며 언론·출판·결사·종교의 자유를 압살했다. 그들은 월남 정부의 부패에 대항해 시위를 벌였던 지식인, 학생, 종교인들을 탄압해 공산당 주도의 전체주의 국가로 전락시켰다.

일본의 共同통신사가 발행한 《1992년 世界年鑑(세계연감)》은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90년 230달러”라고 밝혔다. 이는 공산 통일 이전의 1인당 국민 소득액보다도 적은 액수다. 베트남의 경제는 통일 후 계획경제정책으로 인해 주민들의 삶은 궁핍해졌다. 결국 통일 이래 90여 만명이 조국을 버리고 미국 등으로 도망쳤다.

공산당 지도부는 1980년대 중반부터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모방한 ‘도이모이’를 차용, 체제개혁에 착수했다.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의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고 베트남인들의 사유재산 소유와 자유기업체제를 부분적으로 허락한다는 것이 골자지만 정치적 민주화가 아직 미비하고 공산당 一黨 독재체제도 유지되고 있어 개혁의 효율적 성과를 기대하기엔 이르다. 2011년 1월9일 字 매일경제신문의 ‘베트남 경제위기 얼마나 심각한가?’라는 기사를 보면 “베트남은 개방경제 체제의 초기 단계를 이제 막 벗어난 상태로 아직 경제 규모와 체제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날 만큼 크지도 않고 자유화돼 있지도 않은 상황”이라며 “베트남 경제의 불안이 확대될 경우 정부의 강력한 통제정책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 바 있다.

대한교과서는 탐구활동의 베트남과 독일 통일에 관한 서술 뿐 아니라 8단원(냉전체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단원 마무리·더 알아보기(350페이지)’에서도 편향적인 자료제시를 하고 있다.


참고자료에 제시된 자료들


여기에 소개된 조정래의 소설《태백산맥》은 출간 이후 한국 현대사 왜곡과 親北좌편향 논란이 일었던 작품이다. 영화《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역시 6·25전쟁을 다루면서 국군과 미군은 양민을 학살하거나 주민들을 괴롭히는 존재로 그리고 인민군은 美化하는 등 사실과 다른 장면이 나와 여론의 비판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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