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계속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계속 되고 있다'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이 후배 기자에 쓰는 답글




관련기사
- 조갑제 편집장, '시민 운동가' 인가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은 3일자 조선일보 노동조합 회보인 ‘조선노보’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계속되고 있다’란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글은 최근 조선일보의 한 후배 기자가 조선노보를 통해 조 편집장에 쓴 ‘조갑제 편집장, 시민운동가인가’라는 글에 대한 답입니다.
chosun.com은 지난달 20일 조 편집장에 보내는 글을 전재한 바 있고, 이에 따라 조 편집장의 답글도 싣습니다. (편집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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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기자의 글을 유럽 여행 중에 읽었습니다. 고마운 글이었습니다. 제가 쓴 글을 헌 책방에서까지 찾아내 꼼꼼히 읽어주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조선일보-월간조선 기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민과 불안들을 핵심적으로 제기한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성현 기자는 제가 1980년대에 썼던 기사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라고 좋게 말해주었고, 최근 개인 사이트에 올린 저의 글들을 「완고한 기성세대의 이미지」라고 비판하면서 「기자는 관찰자」여야 하고 「소위 개혁이나 진보에 대해서 더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저의 행동논리를 결정하고 있는 상황인식의 바탕은 이러합니다.

『남북한 무장대치상황의 본질은 민족사적 정통성과 삶의 樣式(양식)과 선과 악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국가공동체는 主敵(주적)을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국민의 자격을 갖고 살기 위해서는 김정일 정권과 그 추종세력을 敵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무를 집니다. 기자는 대부분의 사안에서 관찰자여야 하지만 김정일 세력에 대해서는 관찰자로서만 남아 있을 특권이 없습니다.

월간조선의 두 기자(金容三-金演光)는 탈북하여 중국에서 숨어 지내던 세 명의 납북어부들을 관찰(취재)하다가 그들을 아예 조국으로 데려와버렸습니다. 두 기자의 행동은 언론의 正道(정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언론의 精髓(정수)를 보여준 것입니다.

김성현 기자의 눈에 제가 「완고한 시민 운동가」로 비쳐지도록 한 글들은 거의 전부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에 대한 경우에 한정됩니다. 이 경우에도 저는 「신념이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李穗根(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기사를 비롯하여 제가 썼던 많은 용공조작 폭로 기사가 그런 사례일 것입니다.

오늘날 조선일보-월간조선의 기자됨은 고통이자 영광이고 행운입니다. 세계 언론사상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지난 85년간 해왔던 것과 같은 비중의 역사적 업적을 남긴 예는 없을 것입니다. 나라를 잃었던 일제시대 조선 동아가 우리의 정부였습니다. 정부가 민족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두 신문이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민족지인 것입니다. 민족의 고민을 조선일보의 고민으로 끌어안고 민족과 함께 상처 받고 민족과 함께 일어섰다는 점에서 민족지인 것입니다.

李承晩(이승만)에서 全斗煥(전두환)까지의 권위주의 정권 시절 조선 동아가 굴종했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만큼 천박한 사실왜곡은 없습니다. 김성현 기자를 비롯한 젊은 기자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언론자유는 1987년 6·29 선언 이전에 일했던 기자들이 독자들과 함께 싸워서 얻어낸 것입니다. 그렇게 쟁취한 언론자유를 공짜로, 그것도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쓰고 있는 것이 선동기관으로 전락한 지금의 어용방송· 친북언론들입니다.

조선일보·월간조선, 그리고 저는 현존 권력과는 긴장관계를, 지나간 현대사에 대해서는 긍정적 시각을 늘 유지해왔습니다. 국가공동체의 가치관인 자유민주주의와 민족문화를 수호·계승·발전시키고 조선일보의 언론정신을 이어가는 것-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이러한 민족사적 짐의 무게 때문입니다.

저는 김성현 기자의 글에서 『소위 「개혁」이나 「진보」』 라고 표기한 것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한국의 언론이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과오는 反民族-守舊(반민족-수구)세력인 김정일과 그 추종자들을 「진보」라고 추켜주고, 세계사적인 진보를 이룩한 한국의 정통주류세력을 「守舊-보수」라고 격하하는 용어선택일 것입니다.

기자들은 그들을 「친북」, 「좌익」이라고 정확하게 규정할 용기가 없으니 그들이 불러달라는대로 김정일의 전위대 한총련까지도 「진보」라고 표기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피아식별 기능을 마비시킨 기회주의의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습니다. 언론이 씌워준 「진보」라는 탈 뒤에 숨어서 前근대-守舊-親김정일 세력들이 벌이고 있는 불법소요는 이제는 「진보적 행동」이 되어 법망까지 피해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성현 기자의 사려 깊은 표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단체가 「반역혐의자」를 「민주인사」라 미화하고 그에게 「안중근 상」을 줄 수 있었던 것도 언론이 이들을 「진보」라고 격려해왔기 때문입니다.

기자의 정확한 용어 선택은 독자들이 상황을 직시하도록 해주는 핵심입니다. 청와대와 국회까지 옮기는 遷都(천도)를 盧武鉉(노무현) 측이 주문하는대로 「행정수도 이전」이라고 써주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수도이전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과 글로써 먹고사는 기자들이 좌파 선동가들의 말장난에 넘어가 正名(정명)의 문법을 버림으로써 국민들의 판단력을 흐려버린 과오는 강제된 「천황만세!」보다도 더한 것입니다. 기자도 이념으로 무장해야 좌익 선동의 실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理念(이념)이란 「이론화된 신념」이니까요.

김성현 기자는 예술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저질 코미디인 「황산벌」에 대한 저의 영화평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계백과 관창의 황산벌 전투 이야기는 민족의 유산입니다. 195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저 또래의 소년소녀들은 그 비장한 이야기를 통해서 애국심에 눈을 떴습니다. 국민 교육의 소재이기도 한 민족사의 소중한 추억을 우스개 소재로 써먹은 것을 비판한 단 한 사람의 기자가 저라면 쓸쓸한 역사입니다.

신라가 당시의 세계최강제국(唐)을 한반도에서 밀어내고 달성한 삼국통일을 제가 옹호하는 것은, 최초의 민족통일국가 건설과 최초의 국민국가 건설은 같은 민족사적 정통성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신라통일의 부정은 대한민국 부정으로 直進(직진)하기 십상입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분열정권 수립으로 보는 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2월말 기자 회견에서 『남북한이 지방정부가 되는 국가연합 방식으로 통일하되 수도는 개성으로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영토조항과 통일방안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사실상 북한정권의 연방제 적화통일방안의 핵심 내용을 수용한 놀라운 발언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月刊朝鮮 이외의 어느 언론도 대통령의 이 反헌법-反국가적 발언을 진지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한국 언론은 위기의 본질을 직시할 안목과 용기를 잃고 있습니다.

盧정권이 계급적 증오심까지 드러내면서 국민을 분열시켜 법치국가를 해체 위기로까지 몰아가고 있는 그 본질적 위험성을 언론은 애써 외면해왔습니다. 야당도 선거법 위반 정도의 피상적 문제의식으로써 탄핵의결을 관철했다가 「사소한 것으로 대통령을 밀어내려 한다」는 반발에 부딪쳤습니다.

김성현 기자의 비판 중 상당 부분은 제가 한국의 상황을 본질적으로 인식하고 정확한 용어로써 전달하려고 하는 데 대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시민운동가 같다고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정확한 말쓰기」일 뿐입니다.

저는 安秉勳 부사장이 퇴임사에서 한 말을 기억합니다.

『언론의 자유는 기자 개개인이 지켜내는 것이다』

『2+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선동적 권력으로부터 위협당할 때 기자는 폭력적 권력 앞에서 그러했듯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處變不驚(처변불경)-놀라지 말고 겁먹지 말고 눈감지 말고 우리도 무기를 듭시다. 사실의 무기를!

(조갑제·월간조선 편집장)


입력 : 2004.04.04 08:25 06' / 수정 : 2004.04.04 08:38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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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100자평은 총 89건입니다.
김인숙(sese1000)
218 17 우선 조갑제 편집장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지금만큼 선동정치놀음에서 허우적댈 때도 없었던 같다.오히려 겉으론 참민주주의를 내세우며 교묘하게 본분을 위장한 무리들의 파시스트적이며 친좌익적행태들이야말로 우리가 배척하고 경게하여야 할 것이다. (04/04/2004 08:45:14)

김현철(mssln)
146 12 좌익광란에도 불구하고 조갑제님 같은 분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겁니다. (04/04/2004 08:50:47)

정대현(jdh002)
121 73 ① 조갑제는 『남북한 무장대치상황의 본질은 민족사적 정통성과 삶의 양식과 선과 악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고 주장하는데 그런 북한과 UN에 동시에 가입하고,'남북은 상호간에 체제를 존중한다'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한 것이 노태우 정권이다.또한 국가 연합방식의 통일 방안은 89년 노태우 정권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의 내용이다. (04/04/2004 09:04:28)

고성찬(kosungchan)
112 6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한 독재자가 우리 한반도의 북쪽에 존재하고 있읍니다.대한민국에 있는 레닌.주사파들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합니까? 우리의 주적(主敵)은 분명히 북쪽의 김정일독재입니다. 김정일이의 어떠한 부분이 바뀌었읍니까? (04/04/2004 08:44:28)

정대현(jdh002)
110 60 ②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2002년 5월 김정일 특별전용기를 타고 방북해 김정일과 면담하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박근혜는 '(김정일이) 대화하기가 편한 사람으로 느꼈다.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며 '(김정일에게)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최첨단 비디오 기기를 선물했다.'고 말한바 있다.조갑제 논리라면 김정일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김정일 특별 전용기를 얻어 (04/04/2004 09:09:08)

정대현(jdh002)
100 47 ③ 타고 김정일에게 최첨단 비디오 기기까지 선물한 박근혜야 말로 대표적인 친북세력 아닌가.75년 박정희의 언론탄압에 맞서 <자유언론 실천운동>을 벌였던 32명의 조선 기자들이 해직당했다.그 이후로 조선이 이들 해직기자에 대한 복직이나 보상조치가 있었던가? 전혀 없었다.그래놓고 지금의 언론자유가 마치 조선이 독재정권과 싸워 얻어낸것처럼 떠드는건 낯두꺼운 얘기다. (04/04/2004 09:15:51)

정민규(umjungm)
50 118 조갑제 선생. 어떤말을 해도 당신의 고집은 변하지 않겠지만 이제 당신의 글로 인해 이나라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것입니다. 당신의 과오를 인정하시고 당신의 글로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사죄하십시요. (04/04/2004 08:44:52)

홍승걸(soocheun)
41 4 역시 우리나라 제일의 논객다운 글입니다. 공감이상입니다. 특히 노무현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 말은, 헌법위반으로 탄핵사유가 되는 것입니다. (04/04/2004 08:55:04)
조갑제 편집장, '시민 운동가' 인가



다음 글은 조선일보 노동조합 발행 ‘조선노보’ 19일자에 실린 조선일보 인터넷뉴스부 김성현 기자의 글입니다.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기 위해 chosun.com에 띄웁니다.(편집자 주)
조갑제 월갑조선 편집장께.

작년 여름 휴가를 이용해 편집장의 ‘대사건 대추적-대폭발’을 읽었습니다. 동네 헌 책방에서 발견하곤 반갑게 집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 광주부터 1985년 2·12 총선, 1987년 6월 항쟁을 다룬 편집장의 취재기를 읽으며 저는 묘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특히 생생한 취재를 통해 ‘선명 야당’이던 신민당의 약진을 중산층·20~40대·아파트 주민·고학력자의 지지 때문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한 구절에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아직 푸르렀던 1980년대 편집장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발로 뛰면서 쓴 기사에 대한 자긍심이 어떤 것인지 책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편집장의 글을 보면서 끄덕였던 고개를 언제부턴가 가끔씩 설레설레 젓고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첫 계기는 ‘남북통일은 평양 주석궁에 국군의 탱크가 진주할 때 완성된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사실이 정의와 국익을 구현하려는 것이지 정의가 사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편집장의 언론관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저는 그 글을 보며 의아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글은 사실이 아닌 의견, 설명이 아닌 주장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편집장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보면서도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2002년 ‘전투적 우파에의 기대’에서 “한국의 우파는 이제 전투적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지요. 사회 일각에 퍼지고 있는 친북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지만 “헌법 수호기능을 총동원해 반란을 저지하는 행동으로 나서야 하며 지금부터 그런 동원력을 준비할 때”라는 구절은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일부 전·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미 ‘친북 좌파’ 의혹을 제기하셨기에 그 우려는 더해갔습니다. “국가와 헌법,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역 독재 정권에 대해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군인도 포함된다”는 글에서 기자가 아닌 시민운동가의 모습이 자꾸 연상되는 것은 저만의 기우(杞憂)일까요.

작년 말 편집장께선 홈페이지에 “탄핵 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야3당의 합의만 이뤄지면 된다. 이를 만들어낼 인재는 없는가”라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뒤 한나라당이 조순형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대신 개헌 등을 조건으로 다는 건 어떨까하는 이야기가 “시중에서 많이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불특정인을 취재원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주의를 거의 매일 받고 있는 저로서는 이처럼 아찔할 정도의 이야기가 ‘시중’을 근거로 작성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기자 역시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언제든 자유롭게 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실리는 글의 성격은 엄격하고 정밀해야 하는 기사와는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서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가운데 일부는 기자로서 쓸 수 있는 한계를 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특히 언론의 메커니즘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독자들은 편집장의 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이 같은 의견을 곧바로 조선일보의 공식 입장과 등치시키도 합니다. 편집장께서 회사와 사회에서 차지하고 계신 비중이 결코 적지 않기에 이 후배는 때때로 곤혹스러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는 작년 영화 ‘황산벌’을 유쾌한 웃음과 씁쓸한 감정을 동시에 갖고 보았습니다.

코미디가 ‘역사의 희화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포장할 수도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선 “한국사의 가장 비장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파괴하고 우스개로 만든 비(非)국민적, 반(反)역사적 행태” “민족사적 범죄”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셨습니다. ‘한국사의 로마는 신라’라는 평소 편집장의 지론을 알고 있기에 역사에 대한 논쟁을 감히 펼칠 생각은 없지만, 글을 읽으며 저는 최소한의 유머를 불허하는 완고한 기성세대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희극이란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천하고 어리석으나 사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소설의 한 구절을 영화에 대한 변론 삼아 뒤늦게 인용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보수의 갈 길에 대한 편집장의 견해에 작은 이견을 적어봅니다. 저는 산업화와 근대화의 혜택을 사실상 가장 많이 누려온 20~30대가 그 공과(功過)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있다는 주장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최근 자주 회자되는 ‘보수의 위기’를 더 보수적인 방식으로 돌파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유보적입니다.

지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저는 사건 기자로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촛불 시위’를 수 차례 취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부 주최자들은 ‘반미’나 ‘친북’을 조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과격한 퍼포먼스를 벌였으며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조금 더 균형 있는 한·미 관계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시위를 복잡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저는 보수가 소위 ‘개혁’이나 ‘진보’에 대해 더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내 선·후배들도 이 같은 주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보수가 자신의 가치를 더 벼려서 공세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인 뒤 자정(自淨)해야 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서 강조하셨듯 기자가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인 이상,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초조하더라도 시국을 끈기 있게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사회를 갈갈이 찢고 있는 ‘이분법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고난의 현대사를 묵묵히 지켜온 조선일보 80여년 역사를 손쉽게 평가절하하고 매도하는 ‘철부지’들이 적지 않은 지금, 이 같은 글이 그들에게 한번 더 마구잡이로 악용되지 않을 지 적지 않은 걱정이 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시점에서, 편집장의 글을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습니다. 막 6년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후배의 용기로 여겨주십시오. 봄이 왔는데도 아직 춥고 탁하기만 합니다. 편집장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김성현·인터넷뉴스부)


입력 : 2004.03.20 08:14 09' / 수정 : 2004.03.20 08:56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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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100자평은 총 255건입니다.
정대현(jdh002)
496 472 ② 제목의 글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이런 조갑제의 주장에 박수쳤던 극우세력이 촛불시위는 불법이라며 원천봉쇄 하라고 떠들고 있다. 정권 타도를 위해 국민과 군인이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은 합헌이고, 국민의 뜻을 짓밟고 멋대로 대통령을 내쫓은 국회에 대해서는 촛불시위 하는 것 조차도 불법인가? 너희들은 총을 들어도 합법이고 우리는 촛불만 들어도 불법이냐? (03/20/2004 09:11:16)

조창섭(ccs1179)
447 306 그래도 조선일보가 있어 나는좋다 방송신문 다중심을읺고사는데 조선은 정도를 겉고 있지않는가..// (03/20/2004 08:50:38)

조정익(jijo)
332 181 '국가와 헌법,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역 독재 정권에 대해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군인도 포함된다' 절절이 공감합니다. 조갑제님 존경합니다. (03/20/2004 08:58:47)

최강길(bud0109)
203 24 나의 생각입니다.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으로만 가는 것도 좋지만 항상 이런 견제의 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글도 자주 실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에 반해서 조편집장님의 글도 실었으면 합니다. 싸움이 아닌 토론의 장으로서... (03/20/2004 08:55:42)

김경애(n0047)
177 93 모처럼 조선일보 답지 않은 균형감각 있는 글이네요. 조선일보는 조갑제,전여옥,김대중등을 동원 하여 국가원수에 대하여 욕설에 가까운 글들을 올리고 있는데 차떼기 기관지라고 젊은 사람들이 구독을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 하세요. 제발2002.12.19일'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와 같은 사설은 더이상 없기를 기대 합니다. (03/20/2004 09:14:35)

정대현(jdh002)
172 114 ① '정권이 나서서 반역과 독재에 대한 국민의 합법적 대응의 길을 막으면 국민은 국가와 헌법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그런 정권을 반역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 속에는 물론 군인도 포함된다. 이런 저항권은 4.19처럼 물리력을 동원하더라도 합헌적이다.' 작년 8월 조갑제가 <'친북 비호' 독재정권 타도는 합헌(合憲)> 이라는 (03/20/2004 09:04:41)

김홍근(hgkim8923)
147 32 오랜만에 좋은글 보는군요! 여기에는 조 편집장만 해당되지 않습니다.조선일보 전 직원이 해당됩니다.부디 열린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시길... (03/20/2004 08:53:36)

김경애(n0047)
144 77 자전거를 주지 않아도 밥솥을 주지 않아도 2002.12.19일 대통령 선거일의'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 와 같은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그간의 기사와 사설에 대한 사과와 반성 하는 태도만보여도 독자는 100만명 정도 더 늘어날 것이다. 제발 균형 감각을 가지는 조선일보가 되길 바란다. 국민의 눈높이가 얼마나 높아 졌는지 조선일보는 정녕 모른단 말인가? (03/20/2004 09:23:53)

김민관(silvermonkey)
137 24 민주주의란 이렇게 타협, 견제와 이해, 공존이 있어야 존재할수있다. 대전제는 그 주제가 정도를 걸어야함이다. 노사모가 주장하는 조선과 야당의 멸망은 타협,견제,이해,공존을 떠나 주장자체가 정과 도를 벋어난 악이다. 포용과 이해는 없고 죽임과 박살만이 있다면 그건 이미 죽은 사회이며 죽은 승리일 뿐이다 (03/20/2004 09:13:16)

김태균(navko)
90 161 성현아..아부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구나..너무 속보이는데..이런글 올라온다고 조갑제는 좋아하겠지? 단순하니깐.. (03/20/2004 08: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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