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목표는 아사드 대통령이었다. 1980년 6월26일 다마스커스를 방문한 말리 대통령 환영만찬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슬림 형제단이 잠입하여 아사드를 향해 기관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다. 아사드는 발밑으로 굴러오는 수류탄을 발로 차냈다. 경호원 한 사람이 다른 수류탄 위로 몸을 날려 대통령을 보호하고 爆死했다.
  아사드의 보복은 빨랐다. 감옥에 있던 수백명의 형제단원들을 불러내 처형했다. 형제단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사형에 처하는 법을 공포했다.
  1982년 2월 무슬림 형제단은 원리주의적인 순니파가 많이 사는 古都 하마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전국적인 봉기를 선동했다. 하마를 해방구로 선포했다. 아사드는 군부대를 투입하여 강경진압에 나섰다. 형제단에 대해서 최후통첩을 하고 일반 시민들도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반란군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2월2일 진압군은 전투기와 탱크까지 동원하여 하마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중심부의 골목이 좁아 탱크가 진입하지 못하자 폭격하여 길을 텄다. 2주간 계속된 시가전으로 쌍방에서 1만 명 이상이 죽었다. 형제단 여자들은 진압군 병사들 속에서 자폭하는 숫법을 썼다. 그 뒤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라크에서 유행이 된 自爆테러가 이때 처음으로 등장했다. 하마 중심부에 있었던 옛 궁전과 모스크도 사라졌다. 진압군은 하마 시내를 뒤지고 다니면서 부상자들까지 찾아내 확인사살했다.
  이 무자비한 봉기와 진압은 그러나 시리아에서 원리주의자들의 반란을 근절시키는 효과를 보았다. 아사드의 진압은 많은 시리아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형제단은 테러숫법이 너무 잔혹했기 때문에 민심을 잃었다. 내가 만난 한 시리아 여성은 “서방세계는 아사드에 대해서 감사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사건 뒤 ‘하마의 교훈’이란 말이 유행했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아사드가 하마에서 했던 식으로 하는 것이란 뜻이었다.
  하마 도심부로 들어서니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실업률이 12%라는 증거이다. 시리아를 여행하면서 가장 안쓰러웠던 것이 할 일 없이, 유령처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시리아 사람들은 키가 날씬하게 크고 얼굴이 길다. 중동에서 가장 잘 생긴 민족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런 사람들이 無爲徒食하고 있다. 인간에게 할 일이 없다는 것만큼 기막힌 일은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가 부럽지 않은 유적으로 가지고도 시리아는 관광을 통해서 연간 10억 달러도 벌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하마에 들린 것은 노리아스라는 水車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하마를 지나는 오론테스 강물을 끌어올리는 이 장치는 지름이 20~30m나 된다. 서기 5세기부터 가동했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거리이다. 움직이지 않는 水車 너머 언덕 위엔 호텔이 서 있다. 시가전에서 죽은 반란군을 집단 매장한 땅 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오랜 역사와 문화적 축적으로써 중동의 지식인 사회를 이끌었던 시리아는 한때 중동을 풍미했던 汎아랍주의 바트당을 만들어냈다. 1947년에 창당한 바트당은 汎아랍주의-사회주의를 이념으로 하면서 공산주의와 이슬람 원리주의를 반대했다. 시리아의 바트당은 중동의 여러 나라에 지부를 두었다. 집권에 성공한 것은 시리아와 이라크이다. 후세인도 물론 바트당 출신이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은 이라크 군대와 함께 바트당을 해산해버렸다. 이것이 권력의 공백을 초래하여 이라크의 시아파-순니파 내전을 통제불능사태로 몰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바트당은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해 이슬람 원리주의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아사드와 후세인은 무자비한 탄압과 反美정책으로 미국을 괴롭혔지만 동시에 이슬람 원리주의를 억제했다. 이라크가 종교내전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차라리 후세인을 그냥 두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랍사람들과 이슬람 문화는 근대 국민국가를 만들어 운영해본 경험이 日淺하다. 이슬람은 교리상 종교공동체를 강조하므로 종교와 계급의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국민국가와는 맞지 않는 면이 너무나 많다. 그 점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와 공산당식 계급투쟁을 다 같이 거부하는 바트당은 상당히 진보적이다.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바트당이나 아사드와 후세인의 그런 역할을 看過하는 경향이 강했다. 중동을 지배해본 경험이 있는 영국 사람들은 비교적 정확한 시각을 갖고 있지만 세계를 움직일 힘이 없다.
 
 
 사진 : 2주간의 시가전으로 수만 명이 희생되어 묻힌 곳엔 고층건물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