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스 스피치'를 보고

말더듬이 국왕 조지6세를 보며 사내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생각하다

말더듬이 국왕

 

오래간만에 좋은 영화를 봤다. ‘킹스 스피치’. 툼 후퍼가 감독한 이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각색상을 수상했다.

 

‘킹스 스피치’는 영국왕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는 조지5세의 둘째 아들이다. 왕위계승서열 2위였던 그는 형인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이혼녀 심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차 버리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오른 인물.

 

다른 경우 같으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고 환호해야 할 상황이겠지만, 조지 6세에게는 정말 원치 않는 왕좌였다. 그는 말더듬이었던 것이다!

때는 막 라디오와 영화 등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들이 정치적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소련에서는 에이젠슈타인이 영화를 이용해 볼셰비키의 이데올로기를 전파(傳播)하고 있었고, 나치 독일에서는 불세출의 선전선동가인 히틀러와 괴벨스가 라디오와 영화 등을 이용해 국민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었다.

조지 6세의 부왕(父王)인 조지5세도 왕실의 엄숙주의를 깨고 만국박람회 개회식에 나가 연설을 하고,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마이크 앞에 앉아 국민들에게 성탄인사를 하는 등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애쓰곤 했다.

유럽의 긴장이 점점 더 고조되던 1930년대 중반, 국왕이든 총리든 간에 대중 앞에 서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국가지도자의 필수조건이었다. 그런데 대영제국의 국왕이 말더듬이인 것이다!

 

만국박람회 폐막식 연설을 맡아 버벅 댄 것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공식석상에서 말을 더듬에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남편 요크공(즉위하기 전 조지6세의 호칭/콜린 퍼스 扮)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부인(엘리자베스 母后/헬레나 본햄 카터 扮)은 남편의 말더듬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호주 출신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 扮)을 만난다.

 

요크공은 말더듬이 치료를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 그의 등을 떠민 것은 ‘의무감’이었다. 그때 이미 형인 웨일즈공(후일의 에드워드8세)는 미국인 이혼녀 심슨 부인과의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었다.

조지 5세는 이 스캔들로 인해 웨일스공이 왕위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요크공이 왕위를 이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보고, 둘째아들의 말더듬을 고쳐보려 노력한다. 요크공은 아버지의 이런 압력을 받아들인다.

 

조지 5세가 서거하자 웨일즈공이 1936년 1월 에드워드8세로 즉위한다. 부왕이 승하한 직후 왕위의 엄중함보다는 심슨 부인과의 사랑이 좌초할 것을 먼저 걱정하는 형을 보면서 요크공은 내심 자신이 왕위를 계승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시작된 요크공의 말더듬 고치기 작전. 민중과 괴리된 채 왕실에서만 자라온 중년의 왕자와 호주 태생의 실패한 연극배우 출신 언어치료사는 말더듬 치료 과정에서 크고 작은 충돌을 빚으면서도 점차 우정을 쌓아간다.

 

에드워드 8세는 즉위 후 1년을 못 채우고 심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에서 물러난다.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가 없다면 왕의 의무를 만족스럽게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유명한 퇴위연설과 함께.

 

책임과 의무

 

그와 함께 요크공은 조지6세로 영국 왕위에 오른다. 즉위 직후 고관대작(高官大爵)들 앞에서의 짧은 연설을 망쳐버린 조지6세는 왕위가 주는 중압감에 눌려 왕비 앞에서 눈물을 쏟는다.

 

그래도 대관식은 언어치료사 로그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잘 넘어가지만, 더 큰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이 그것이다. 대독선전포고(對獨宣戰布告)가 있은 후 조지6세는 대(對)국민연설에 나선다. 아직 말더듬이 증세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던 조지 6세는 로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신의 힘을 다해 연설을 해 나간다. 조지 6세는 미증유의 대전쟁을 눈앞에 둔 국민들을 고무하고, 위로하고, 격려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쥐어짜듯이,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서서히 힘과 열정을 담아가면서 한 마디 한 마디 이어나가는 조지 6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거대한 책무를 짊어진 한 사내의 처절한 몸부림을 읽었다.

 

피하고 싶었던 짐,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짐을 짊어지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자기가 감내하기에는 무거운 짐, 그리고 끝내 그 짐을 감당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인 사내의 안간힘이 느껴졌다.

더욱이 그 짐이 어디 보통 짐인가? 국가에 대한 책임이라는 이 세상 짐 가운데 가장 무거운 짐이 아니던가?

책임, 의무, 책임, 의무, 책임, 의무...........

 

짐의 무게는 다르지만, 사내들은 다 그런 짐을 짊어지고 산다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내에 대한 책임, 자식에 대한 책임, 직장에서의 책임, 그리고 이 나라 국민된 책임....

 

‘킹스 스피치’를 보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장애를 극복하려는 조지 6세의 노력, 가슴 훈훈하게 하는 왕과 평민의 우정 등등.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건진 의미는 바로 ‘책임’과 ‘의무’였다. 그리고 그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한 사내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짐했다. 크건 작건,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 - 남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이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의-를 결코 피하지 않겠노라고....

 

덧붙임)

1.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도 늘 어느 정도의 왜곡은 있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윈스턴 처칠은 에드워드8세와 심슨 부인과의 스캔들 속에서 일찌감치 에드워드8세의 퇴위를 예견하고 요크공에게 왕위 계승 가능성을 시사(示唆)한다. 조지6세가 즉위한 후 두 사람은 서로 신뢰하는 훌륭한 동반자인 것으로 그려진다.

사실 처칠은 왕실에 대한 전(前)근대적이고 낭만적인 충성심에 바탕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에드워드8세에 대한 무익(無益)한 충성을 바쳤다. 독불장군적인 행태와 나치즘의 대두에 대한 직설적인 경고 때문에 안 그래도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처칠은 이 때문에 영국정계에서 더욱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영화에서는 볼드윈 총리가 대독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네빌 체임벌린이 총리가 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대독유화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 네빌 체임벌린이고, 처칠은 그 뒤를 이어 총리가 됐다.

영화 속에서 조지6세는 형과는 달리 나치독일의 대두를 걱정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책무를 깨달아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조지6세와 영국왕실 대부분은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나치독일과의 유화책을 지지했다. 조지6세는 처칠을 탐탁치않게 여겨 네빌 체임벌린이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처칠보다는 친독파(親獨派)인 핼리팩스경(卿)이 후임 총리가 되기를 바랐다.

물론 조지6세와 왕실은 전쟁이 난 후에는 국민과 동고동락하면서 국민들의 구심점이 됐다. 그가 1952년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도 전쟁 중 쌓인 심신의 과로가 큰 원인이었다.

영화 속에서 현모양처로 나오는 왕비(엘리자베스 모후)는 국민들의 존경 속에 천수를 누리다가 2002년 102세로 타계했다.

 

2. 에드워드8세는 퇴위한 후 윈저공이 된다. 이후 그의 행적은 그리 '쿨(Cool)'하지 않았다. 친나치적이었던 그는 히틀러를 비롯해 나치독일의 수뇌부와 가까이 지냈고, 제2차대전이 터진 후에는 나치를 등에 업고 복위(復位)하거나 영국의 섭정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처칠은 이런 윈저공을 바하마 총독으로 사실상 유배(流配)를 보냈다.

 

3. 이미 두 번이나 결혼했던 미국인 이혼녀 심슨 부인이 윈저공을 사로잡은 이유는?

영국의 역사가이자 저술가인 폴 존슨에 의하면 그녀는 ‘볼티모어 클린치’라고 하는 성교(性交)기술에 능했는데, 이 기술을 가지고 조루증을 앓고 있던 에드워드8세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볼티모어는 미국의 무역항으로 중국 광동상인들이 많이 드나들었으며 ‘볼티모어 클린치’도 중국인들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심슨 부인에게도 중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세기의 로맨스’로 포장된 것과는 달리, 윈저공과 심슨 부인 사이는 원만하지 못했으며, 윈저공이 심슨 부인에게 눌려 산 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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