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방에서 퍼온 글입니다.
진보 없는 한국의 진보주의
글쓴이 최성재/직업 50,남
붕어빵에 붕어 없듯이 한국의 진보주의에는 진보가 없다.
진보는 모름지기 냉철한 현실 인식 하에 그를 개선하기 위해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주의는 입만 떼면 과거 타령이다. 스스로는 손 하나 까딱 않고 종과 상민을 부려 호의호식하던 조선의 양반들이 중국 상고 시대의 복고에 목을 매던 것과 흡사하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는 까마득한 1300년 전의 신라 통일에서 민족적 비극의 원류를 찾는다. 고구려가 통일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간직한다. 김유신과 김춘추의 원수로 삼는다.
돈도 많고 스타도 즐비한 막강 전력의 삼성이 단 한 번도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 못하고 돈이 없어 정규 선수도 겨우 확보한 거지 군단 해태가 한국 시리즈에서 9전9승한 것을 보고, 김응룡 감독과 선동렬과 박건배 사장을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해태에게 박수를 보내고 삼성에게 손가락질하는 게 정상이다. 이길 때는 이기는 이유가 있고 질 때는 지는 이유가 있다. 그걸 배워야 한다. (명장 김응룡 감독을 모셔 와서야 비로소 삼성은 2002년에 우승의 헹가래를 칠 수 있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선수가 훌륭해도 장군에 해당하는 명감독이 없으면,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도자가 그만큼 중요하다.)
역사는 당위(Sollen)가 아니다. 역사는 현실(Sein)이다.
이 세상의 어떤 나라도 처음부터 컸던 나라는 없다. 한 고을에서 시작하여 그 작은 고을이 잘하고 또 잘하여 세계적인 대제국을 세우는 법이다. 중국을 통일한 진, 한, 당, 송, 명, 중국을 삼킨 원, 청 이들도 처음엔 보잘것없는 한 고을에 불과했다. 마케도니아도, 로마도, 대영제국도,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신라 통일 후에 더 크고 더 센 나라로 만드는 것은 신라 후의 고려와 조선의 몫이지 신라의 몫이 아니었다. 신란들 왜 발해를 삼키고 일본을 삼키고 당을 삼키고 싶지 않았을까. 알짜배기 중소기업을 물려받은 아들이 허구헌 날 술집에 틀어박혀 아버지보고 왜 대기업을 물려주지 않았느냐고 떼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버진들 왜 대기업을 일구고 싶지 않았을까.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키우는 건 자식이 할 일이다. 어떤 대기업도 30년을 버티기 힘들다. 새로운 중소기업이 새로운 대기업으로 치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어떤 강대국도 200년이 거의 한계이다. 스스로 썩기 때문이다. 작은 나라가 치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주의자의 '과거 타령' 은 이승만 욕하고 박정희 헐뜯기로 이어진다. 두 독재자 때문에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여 민족정기를 잃었고, 민주주의를 짓밟아 한국의 온갖 병폐가 독버섯처럼 생겨났다고 개탄한다. 이 이론에 맞는 증거를 산더미같이 찾아서 말하고 쓰고 읽고 듣고 부풀린다. 그 이론에 맞지 않는 증거는 그들이 찾은 증거의 산을 한 입에 삼킬 바다처럼 거대해도 그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남의 힘에 의한 해방이란 역사적 공간에서 남북 두 나라 지도자가 과연 애국을 했는지 매국을 했는지, 민주를 했는지 독재를 했는지, 하는 것은 국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들의 인권이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가, 자유지수와 평등지수가 실지로 얼마나 높은가, 등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200년 300년의 민주화 산업화 전통의 나라와 동일 잣대로 비교하면 안 된다. 비교하려면 서구의 150년 전, 250년 전과 비교해야 한다. 그리고 동일한 출발선상에 선 북한과 비교해야 한다.
민주와 독재가 절대적인 기준이 없고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성인의 잣대이다. 미국의 남북 전쟁을 노예해방을 위한 성전이라는 초등학생의 정답을 성인이 되어서도 고이 간직하고 앵무새처럼 되뇌면 안 된다. 최소한 성인이라면 북부의 상공업과 남부의 농업이 맞붙어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맞게 결국 비전의 지도자 링컨이 이끈 북부가 이겨 농공상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여 세계제일의 강국으로 발돋움할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을 얘기해야 한다. 링컨이 인권이라는 명분뿐만 아니라 연방제 유지와 경제통합이라는 실리를 함께 아우른 위대한 인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일제를 잘 청산했다는 북한이 왜 인류역사상 가장 악랄한 독재 국가가 되었는지, 나치를 철저하게 청산하여 단순한 사무를 볼 사람도 귀했던 동독이 왜 그렇지 못했던 서독에게 맥없이 무너졌는지, 동독의 주민들이 만장일치로 서독에 편입되길 원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걸 찾아야 한다. 만약 북한 주민에게 지금 아무런 강제 없이 자유의사로 한국과 북한을 택하라면, 선진국에 비하면 문제가 아직 많고 많지만, 틀림없이 99.9999퍼센트 한국을 택할 것이다. 아니 120 퍼센트 찬성할 것이다. 손을 두 번 든 사람이 수두룩할 테니까.
일제 청산과 공산 정권 수립, 일제 미청산과 자본주의 정권 수립을 기준으로 새파란 소련군 대위 김일성과 미군이 심히 껄끄러워 한 늙은 독립투사 이승만을 비교하고, 산업화와 독재를 기준으로 김일성과 박정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누가 잘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왜 한쪽은 달동네 주민도 이밥에 소고기 국을 수시로 먹을 수 있고, 왜 한쪽은 당 간부도 이밥에 소고기 국을 먹기가 그리 힘든가. 왜 한쪽은 아무 말이나 다 할 수 있고 왜 한쪽은 민주투사 김대중과 김영삼, 노조, 데모가 존재할 수 있었으며, 왜 한쪽은 죽어가면서도 자식을 생각하여 유언으로 '김일성 수령님 만세,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외치는 자유밖에 없고 노동신문과 매스게임밖에 없는가.
2차 대전 이후에 나라를 세운 나라만 해도 백 개가 넘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나라도 백 개가 넘는다. 그러나 그 중에 대한민국에 발끝도 따라오는 나라가 없다. 정치를 제대로 못하면 경제는 10년 안에 결딴난다. 만주족에게 빼앗기고 일본에게 시달리던 중원에서 한족이 떨치고 일어나 명이 멸망한 이후 무려 300년만에 다시 한족 천하를 만든 모택동도, 한족 역사상 처음으로 만주를 차지하여 진시황 이래 가장 넓은 통일제국을 건국한 모택동도 정치를 제대로 못하자 그의 생전에 굶어 죽은 자만 3천만 명이 넘었고 맞아 죽은 자도 1천만 명이 넘었다. 악몽의 25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후 등소평이 정치를 잘하자 10년만에 '작은 평화(小康)'가 찾아왔다. 불과 25년만에 중국은 세계가 두려워하는 나라가 되었다.
만약 한국이 정치를 그렇게 잘못했다면, 어떻게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잘하고 못하고는 상대적이다. 서구의 그 어떤 위대한 지도자도 만약 해방 공간의 한국에 태어났다면, 별 볼 일 없었을 것이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위한 토양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는 평등과 획일을 구분하지 못한다. 북한식 획일을 평등이라 하고 남미식 인기주의를 복지라 한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는 노조와 노동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한국의 노조는 90년대 이후 거대한 권력 집단이 되어 실지로는 공기업과 대기업 중심으로 전 노동자의 11% 내지 13%밖에 대변하지 못하지만, 괴이하게도 전 노동자를 대표하는 걸로 된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노조에 가입 못한 87% 내지 89%의 노동자 곧 조직이 없는 절대 다수의 노동자와 100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는 오히려 노조의 권한이 강화될수록 소외되어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을 무시한다.
오늘날 한국의 노조는 진보주의의 대변인이 되었다. 사실은 그들은 기득권자에 지나지 않는다. 논 10마지기(2000평) 가졌던 농민도 지주로 분류되어 그 자손은 대대로 반동으로 낙인찍혀 인간 행세를 못하는 북한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노조 가입 노동자는 대지주에 해당한다. 평균 연봉 5천만 원이면 쌀을 250가마니나 살 수 있는데(국제시세로는 1500가마니), 이것은 과거에 옥답이라야 겨우 쌀 두 가마니 나던 때와 비교하면 최상급 논으로 쳐도 무려 논 125마지기를 가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소득에서 세금 뺀 나머지는 100% 순익에 해당하기 때문에 농사 비용을 감안하면, 한국의 대기업과 공기업 노동자는 해방 공간에서는 200마지기의 땅(국제 시세로는 1200마지기)을 가진 대지주에 해당한다. 같은 한국 안에서도 중소기업의 노동자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노동자에 비해 그 소득이 반도 채 안 된다. 연봉 1200만원이 안 되어 소득세를 아예 면제받는 노동자가 아직도 40%가 넘는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는 증오와 사랑을 구별하지 못한다. 스스로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본주의의 온갖 혜택을 누리는 기득권자이면서 실체가 불분명한 기득권자에게 대한 증오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현실에 맞지 않는, 기업이나 나라가 감당 못할 인기 위주의 정책이 실은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더욱 불쌍하게 만드는 정책임을 모르고, 그들을 짓밟는 증오의 정책임을 모르고 사랑의 정책이라 확신하고 '개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다. 의약분업과 교육개혁을 생각해 보라.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지 않은가. 그러고도 잘못을 모른다.
보수 속에 진보가 숨어 있는 수가 많고 진보 속에 보수가 숨어 있는 수가 많다. 말과 행동, 이상과 현실이 따로 놀 때, 우리는 말과 이상의 안개를 넘어 행동과 현실이란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2004. 4. 5.) (2001. 12. 25.)
한국의 자칭 진보주의엔 진보가 없다
- 최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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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4-07, 09: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