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아름다운 백령도, 北進統一의 교두보

趙甲濟 대표 '우리는 왜 서해5도를 지켜야 하는가' 주제로 백령도 안보 강연 가져

趙甲濟 대표는 김필우(金弼雨) 前 인천시 의원의 초청으로 백령도(白翎島)를 방문, 20일 오전 ‘우리는 왜 서해5도를 지켜야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이날 강연에는 해병 제6여단 부대장 및 장병, 백령농협 임원 등 軍官民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강연이 끝난 뒤 趙 대표는 백령농협 관계자들의 안내로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찾아 戰死者들의 넋을 기렸다. 趙 대표의 주요 일정을 사진으로 엮었다.

 

 

[사진설명1] 백령도(白翎島)는 면적 45.83㎢로 인천 북서쪽으로 191.4km 떨어져 있다.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백령도에는 현재 약 1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은 군인이고 나머지 절반이 백령도 주민들이다.

 

백령도는 본래 황해도 장연군에 속했다. 광복 이후 옹진군에 편입되어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이 됐다. 원래 명칭은 곡도(鵠島, 삼국시대)인데,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 같다고 해서 백령도가 됐다. 

 

국내에서 14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척지 매립으로 8번째 큰 섬이 됐다. 1월 평균기온 -4.5도, 8월 평균기온 25도, 연강우량은 755.8mm이다. 진촌리 조개무지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서해의 해금강이라는 두무진(頭武津)과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서 두곳뿐인 사곶 천연 비행장으로 유명하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趙甲濟 대표 뒤편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백령도 도착 전 잠시 들리는 대청도 선착장이다.

 

인천에서 백령도로 가는 뱃길은 시속 50km의 쾌속선을 타고 장장 4시간 20분을 가야 한다. 지도만 보면 백령도 주민들은 '북한 지역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 같다. 백령도에 삶의 터전을 잡은 것만으로도 그들은 누구보다도 용감한 사람들이다. 

 

 

 

[사진설명2] 趙甲濟 대표는 백령도 방문 이튿날인 20일 강연에 앞서 김필우(백령농협조합장) 前 인천시 의원, 해병 제6여단 부대장(준장) 및 경찰 관계자 등 도내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 이번 강연에는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의 저자인 탈북시인 장진성 씨가 동행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 앞서 천안함 46용사를 추모하는 ‘바다에는 해병의 묘비가 없다’를 낭독했다.

 

趙 대표는 이날 강연에서 “우리는 지금 南과 北이 아니라 善과 惡으로 갈라져 있다”면서 “민족사의 정통세력인 대한민국이 이단세력(異端勢力)인 북한에 맞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군과 하나가 되어 백령도를 사수해온 주민들에게 “민족사의 결정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불침항모(不沈航母) 백령도가 통일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3] 강연이 끝난 뒤 趙甲濟 대표는 곧장 김필우 前 인천시 의원의 안내로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찾아 묵념을 했다. 위령탑은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爆枕) 당시 초병이 물기둥을 관측한 지점으로 사건발생 현장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다.

 

위령탑 앞에 위치한 보조탑에는 천안함 46용사의 얼굴이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보조탑의 양 옆에는 해군참모총장의 비문과 이근배 시인의 추모시가 음각되어 국민 모두의 추모의 마음을 담아놓았다. 위령탑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설치되어 있다.

 

세 개의 삼각뿔이 8.7m 높이로 치솟아 있는 주탑은 대한민국의 영해와 영토, 그리고 국민을 언제나 굳건히 사수하겠다는 조국수호 정신을 상징한다.

 

전사자 가운데 故민평기 상사가 눈에 들어왔다.

 

故人의 어머니 윤청자 씨는 지난 달 25일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 영주함에 3.26 기관총을 기증했다. 3.26 기관총은 윤청자 씨가 기탁한 1억898만8천원의 성금으로 구입한 K-6 기관총 18정으로 ‘북한에 의한 천안함 격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이처럼 명명됐다.

 

천안함은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정이 쏜 어뢰에 맞아 폭침됐다. 

 

 

[사진설명4] 백령도는 전 주민의 80%가량이 기독교 신자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하나님’과 ‘귀신 잡는 해병대’가 악(惡)의 세력인 북한 공산집단으로부터 백령도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뒤로 하고 일행이 찾은 곳은 백령도 최초의 교회인 중화동교회다. 백령도 모든 교회의 모교회(母敎會)인 중화동교회는 개화파 정치인으로 알려진 허득 공(許得 公)과 서경조 목사(당시 장로)에 의해 1898년 10월 9일 설립됐다.

 

1866년 한국기독교사의 첫 순교자로 알려진 토마스(Robert Jerman Thomas) 선교사가 백령도를 찾아 온지 32년 만에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온 영국인 토마스는 1865년 9월13일에 백령도 서북단의 두무진 포구에 상륙해 섬사람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고 약 두 달 반을 머물렀다. 이후 그는 중국으로 갔다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대동강변에서 순교했다. 1900년 9월에는 서울에서 언더우드 목사가 중화동 교회에 와서 허득을 비롯한 7명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중화동교회가 위치한 중화동은 35가구의 주민이 모두 중화동교회의 성도이다. 백령도에는 중화동교회를 비롯해 진촌교회, 진촌 한사랑교회 등 12개 교회가 있다.

 

이날은 중화동교회의 전응류 목사가 직접 나와 조 대표 일행에게 백령도 교회의 현황과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전 목사는 백령도에서 태어나 신앙으로 고향을 지켜온 목회자다.

 

 

[사진설명5] 배를 타고 두무진(頭武津)을 찾았다. 백령도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서해안 최북단의 섬이라는 이유로 실제보다 더 멀게 느껴지고 위험해 보이지만 여행지로서는 최고의 섬이다. 한국의 그 어떤 곳보다 청정하다.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백령도 두무진의 경치와 생태계는 국내 다른 어떤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고 아름답다. 두무진은 한국의 유일의 물범 서식지로 매년 5월이 되면 물범들을 기암괴석과 함께 배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두무진이라는 명칭은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사진설명6]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되어 있는 사곶해변의 모습이다. 사곶해변은 해수욕장 겸 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하다. 썰물 때에는 거의 수평에 가깝게 평평한 모래사장이 너비 200m, 길이 2㎞가량 이어진다. 규조토로 되어 있어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다.

 

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자동차가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는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이용한 천연비행장은 전 세계적으로 이곳과 더불어 이탈리아의 나폴리해안 뿐이다. 6.25전쟁 때에는 실제로 천연비행장으로 활용됐다. UN군 전초기지로서의 비행장 역할을 해 軍작전에 크게 공헌했다.

 

 

[사진설명7] 특이한 이름의 ‘콩돌해안’은 백령도의 지형과 지질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는 곳이다. 콩돌해안은 백령도 남포동 오금포 남쪽해안을 따라 약 1km 정도 형성되어 있고 내륙 쪽으로는 軍부대의 해안초소와 경계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둥근 자갈들은 백령도의 모암인 규암이 파쇄(破碎)되어 해안의 파식(波蝕)작용에 의하여 마모를 거듭해 형성된 잔자갈들로 콩과 같이 작은 모양을 지니고 있어 ‘콩돌’이라 한다.

 

색상이 백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회색 등으로 형형색색(形形色色)을 이루고 있어 해안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콩돌’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약 1만 5천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하다.

 

이곳 자갈이 악성피부염에 효과가 있다해서 자갈을 대량으로 가져가는 일이 생기자 이를 막기 위해 1997년 천연기념물 제392호로 지정, ‘콩돌’의 반출을 법으로 금지했다.

 

좌측으로 부터 김필우 前 인천시 의원, 조갑제 대표, 최형묵 백령농협 과장의 모습. 백령도가 고향인 김필우 前 시의원은 9대에 걸쳐 대를 이어 고향을 지켜왔다.

 

그는 백령도 現代史의 산증인이다.

 

[사진설명8] 해병대 제6여단 사령부 앞 도로변을 비롯해 백령도 곳곳에 '조갑제닷컴'의 안보강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백령도 주민들은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늘 북한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오히려 군인보다 더 군인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백령도 주민들은 청교도적 검소함과 상무(尙武)적 기질이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 軍民 관계도 매우 좋다. 좌익세력이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은 청정구역이다. 백령도 주민들의 투철한 반공정신이 무너지면 곧바로 '대한민국의 심장' 수도 서울에 위기가 닥칠 것이다.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백령도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백령도 주민들이 왜 保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趙 대표를 초청했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주민들은 연평도 다음은 백령도가 북한의 공격 대상이 될 것으로 보는 듯 했다.  

 

이 때문에 백령도가 대만의 금문도(金門島)처럼 요새화(要塞化) 되길 원하고 있다. 백령도를 사수하는 것은 한국인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키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불침항모(不沈航母) 백령도’가 가라앉지 않도록 온 국민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진설명9] 백령도에서 괘속정(快速艇)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뱃길에 인천대교를 지나쳤다. 인천대교는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송도를 연결한다.

 

2005년에 착공해 2009년 10월16일에 완공됐다. 총연장 21.38㎞에 교량 구간 18.35㎞이다. 사장교(斜張橋)의 경간(徑間, 다리의 기둥과 기둥 사이)은 800m로 세계 5위의 길이, 대한민국 1위의 길이를 자랑한다.

 

50여 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해온 趙甲濟 대표는 항상 “대한민국은 작지만 큰 나라”라는 말을 한다. 북한 공산집단의 지속적인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순전한 신앙(信仰)으로 백령도를 지켜온 주민들을 보면서 趙甲濟 대표의 말이 옳았음을 실감했다.

 

인천대교 위로 일곱 빛깔의 '수평 무지개'가 떠있어 사진에 담았다. '수평무지개'는 행운이 온다는 속설을 갖고 있다. 좀처럼 보기드문 무지개다.

 

대한민국의 앞날이 저와 같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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