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방 글
大韓民國에 있어서 復活節의 의미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영화를 보지 말라고 권한다. 그런데, 보지 말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반드시 본다. 교회엔 십자가가 달려 있다.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 못 박혀 돌아가시고, 돌아가신지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는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도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좌파 목사는 조선조는 유교 때문에, 대한민국은 기독교 때문에 망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조선조의 본질성을 연구할 때는 유교를 이해해야 하고, 대한민국의 본질성을 연구할 때는 기독교를 연구해야 된다는 말로 바꾸어야 옳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일반인의 통념을 깼다. '빌라도총독'이 상당히 인간적으로 나왔으며, 그때 군중들이 광기의 파시스트 군중이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성경을 모르는 이들도 상황이 파악되도록 되어 있다. 빌라도 총독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는 식민지 민족의 응집력과 단합성을 기도한 사람이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 그리스도를 벌하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빌라도총독의 위에 씨저황제에 거스르는 반역을 하겠느냐는 군중들의 매몰찬 목소리에, 빌라도총독은 사람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을 예수님에 내리게 된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쇠조각이 달린 채찍으로 예수님이 맞는 장면이다. 그 쇳조각이 예수님의 살에 박히는 장면은, 그 파시스트 군중 속에서 예수님을 안타깝게 바라봐야 했던 다수의 입장인 관객의 마음에, 아픔으로 꽃혀 온다.
이제 껏 예수님 형상에서 자주 나왔던 가시면류관을 바라보는 입장도 너무 아팠다. 또, 파시스트 군중 속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예수님의 제자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이 영화를 본 관객에서 여성분들이 참기 어려운 장면은, 채찍으로 두들겨 맞아서 완전히 탈진해 버려서 십자가를 들고 가다가 털썩 넘어지고 털썩 넘어지고 그런 예수님을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입장일 것이다.
빌라도총독이 惡人이 아니라 독재자 하수인에서는 나쁜 편이 아닌 쪽으로 그려지자,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선명하게 예수님의 고통 자체가 인간의 죄로 드러난다.
대한민국의 이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념에서 이어지고, 그들을 고통에서 견디게 해준 기독교를 생각해야 한다. 식민지 시대 역사책의 서술은 건국을 이루어냈기에 가능한 부분이 많다. 그러한 독립운동가들에게 식민지에서의 해방과 대한민국의 건국은 예수님의 부활과 사실상 같은 의미였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다. 소련군대를 업은 북한공산집단은 기독교를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게다가 식민지에서의 해방을 갈구하고 완전한 독립국가(근대국민국가)를 이루어내려는 소망과 달리, 북한과 친북좌파는 贊託을 지지하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배반하였다. 김일성의 불법남침으로 빚어진 6.25 사변은, 더욱 우리의 삶을 침체 시켰다.
전쟁 폐허가 된 곳에서 우리 민족에는 부활절의 의미에 새로운 내용이 들어갔다. 이 폐허를 견뎌내고 잘 살게 되는 것이다. 세계 속의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도록 하는 근대화 운동의 완전한 구현이 부활절의 의미였다.
그러나, 잘 살게 되는 것에 대해서 靈的인 면을 완전히 제거하고 物質的인 차원으로만 사고하는 이들이 다수가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復活節의 의미가 필요하다. 그것은 근대화의 음지에 대한 포용의식에 쌓여진, 우리의 교만에서 빚어진 지나친 좌파의식으로 겪는 혼란의 종식일 것이다. 지나친 좌파의식은 결국 기독교의 완전 부정으로 나아간다. 이 종식은 열심히 기도하면서 매사에 감사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과정에서 조금씩 치유될 것으로 여겨진다.
[80년대 후반에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일본식 할복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개인의 義를 향한 순결성을 주장하면서도, 누구를 위해서 대신 고통을 받는다는 차원의 기독교 모티프를 딴 좌파들을 기억한다. 하도 그 기억에 공포스러워서, 예수님의 고통을 일본식 할복 문화에 덧씌워서 해석하는 이들에게는, 이 영화는 적극 추천 대상이다.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의미가 그만큼 선명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인간이 善하려고 할 때 얼마나 善해질 수 있는가와, 속물적 대중성에 안주하려고 할 때 얼마나 惡해질 수 있는가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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