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독립신문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필자는 익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國破山河在
L형 !
오늘은 편지투로 긴 글을 쓰려 합니다. 왜 그렇게 하고 싶어 졌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군요. 봄이 무르익기 때문일까요.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 의사당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들을 보노라면 문득 문득 시성(詩聖)으로 추앙 받는 두보(杜甫)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 시성의 시심과 시의 함의(含意)야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고 해도 단순한 글자 풀이만으로도 느낌이 예사롭지 않은 요즈음입니다.
“나라는 깨어 졌는데 산하만은 그대로구나....” 전화(戰禍)로 나라꼴은 황폐해 지고 국민 생활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시대- 이처럼 참담한 시대상을 보는 시인의 영탄(詠嘆)이 지금 우리가 부닥치고 있는 시대 상황을 새삼 생각케 합니다. 이념으로 국론이 분열하고 개인의 생존에는 좀처럼 희망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시인의 묘사처럼 나라가 깨어져 가는 듯한 형국으로 느껴진다면 지나치게 비관적인 시각입니까.
L형!
두보가 ‘춘망(春望)’이라는 시제로 이 시를 쓴 시기는 저 유명한 ‘안록산(安祿山)의 난’으로 나라가 극도로 혼란해진 때입니다(서기 757년). 잘 알려진 대로 중국역사에서 가장 은성(殷盛)했던 당(唐)나라는 그 안록산의 난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안록산의 난은 전문적인 분석을 별도로 하면 그 원인이 한 여인을 익애(溺愛)한 황제의 일탈(逸脫)이 결정적 원인이 되어 일어난 참화입니다. 국가 리더십의 잘못으로 초래된 비극의 시대에 민중이 겪게 되는 고통을 시인은 불후(不朽)의 절구로 남긴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글자 그대로 혁명적 상황에 와 있습니다. 말하자면 난세(亂世)입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그 혁명적 상황이 교과서적 혁명논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혁명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민중의 힘으로 일어나고 성취되는 것인데도 우리의 지금은 상당수 시민세력이 시민운동의 이름으로 도달하려는 듯한 국가의 이념적 변신에 권력이 동조 내지는 조장하는 듯한 협의까지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단순히 국가 리더십의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라고 하기에는 그 정치-경제-사회적 파장이 너무 심대한 게 아닙니까.
따라서 노무현 정치가 안고 있는, 그리고 ‘노사모’로 대표되는 일부 시민 세력의 본질적 특질을 깊이 천착해 봄으로서만이 시대상황의 숨겨진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노무현 리더십’의 본질을 명확히 읽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일본의 한 유력 신문은 한국 국회의 탄핵소추 직후 노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바로 “‘한(恨)’의 정치”라고 해설한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 “서민적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정치 스타일의 이면에는 학력 콤플렉스를 포함해 자신의 과거로부터 가져온 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한’이 있는 것 같다. 노무현 정치는 그래서 좋게 말하면 약자 중심을 위한 ‘사회개조의 이상주의’지만 나쁘게 말하면 콤플렉스에 의한 ‘한’ 풀이 정치가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본 언론의 이 같은 분석은 적확할까요. 언론사의 일본 특파원을 지낸 L형이나 저나 어설픈 일본 이해로 판단할 때 그 분석은 어느 정도 맞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진실을 꿰뚫은 분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특성을 각각 ‘한’의 문화, ‘원(怨)’의 문화로 보는 논리가 있지 않습니까. 이를 뒷받침하는 상징적 전거(典據)로서 보통 한국의 고전 소설 춘향전과 일본의 전통 연극 ‘주우신구라’(忠臣藏)가 꼽힙니다 (문학 평론가 이어령).
춘향전에서 춘향과 이도령의 맺힌 한은 재회의 순간 눈 녹듯이 모두 풀립니다. 한이 풀렸음으로 변학도에 대해서도 ‘봉고파직(封庫罷職)’ 정도로 응징을 끝내게 됩니다. 한은 이처럼 풀면 마음속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주우신구라’는 사무라이 47명이 자기들의 영주(領主)를 위해 벌이는 피의 복수극이지요. 섬기던 주인을 모욕했다는 이유만으로 중앙정부의 의전 담당관리를 살해한 후 모두 할복자살하는 ‘주우신구라’의 내용이야말로 ‘원’의 문화를 단적으로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한’은 “푸는” 것이지만 ‘원’은 “갚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과연 “푼다”는 걸 전제로 한 ‘한’의 정치일까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한’의 정치인이기보다 오히려 ‘원’의 정치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권 이후 탄핵소추까지 거침없이 토로한, 그리하여 숱한 정치적 파장의 원인이 된 그의 발언들로 미루어 보면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을 세상에 대한 인식은 ‘한’이 아니라 ‘원’이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애써 여러 사례를 들출 필요가 있을 까요. 그는 스스로를 약자라며 보수 언론 등 비판진영을 줄곧 원망해 왔습니다. 그뿐입니까. 행정 수도 이전을 ‘천도(遷都)’라는 왕조 시대의 용어로 의미 부여했고 ‘천도’ 바로 ‘지배계급의 교체’라고 까지 설명했습니다. 그가 지목하려 한 ‘지배계층’은 누구입니까.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서 그가 말해 버린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그의 인식체계에는 기본적으로 기왕의 세상에 대한 미움과 불신, 심지어 적대감까지도 깊게 배어 있음을 감지토록 합니다.
적어도 내 느낌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인식의 본질도 역시 ‘원’의 정서이고 노 대통령은 ‘원’의 정치를 위해 그 민중 정서를 적절히 (아마 정확히는 교묘히)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 대통령의 ‘홍위병(紅衛兵)’을 자임(自任)하며 “악랄하게 전진하자”는 등 전투적 언어 동원을 서슴치 않는 지지세력의 위세를 통해 그들의 의식 깊숙이 자리잡은 ‘원’의 정서를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할까요. 거의 40대 이하의 세대가 주류를 이루는 이들 전투적 시민세력이 어째서 그런 섬뜩한 정서를 서슴없이 드러내는 것일까요. 개인적 분석으로는 그들이야말로 ‘포식(飽食)의 세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적어도 평균적으로는 궁핍을 모르는 세대입니다. 개인이고 집단이고 간에 궁핍의 고통을 체험하지 않으면 세상을 자기 본위로 해석하려는 심리가 상대적으로 강합니다. 그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현실에서 추방됐을 뿐 아니라 어느 정치 리더로부터는 투표장에도 “출입금지(出入禁止)” 요구를 받은 60-70대가 무엇 때문에 그들이 지향하는 이념적 목표의 오류를 지적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 이름이 세상에 회자(膾炙)되는 그들의 지도부 몇몇은 그 이유를 잘 알면서도 이를 격렬히 매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체제를 근본부터 까부수는 것(차마 체제전복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일 터이기 때문입니다.
L형!
세대 얘기가 나온 김에 이제 추방당한 세대가 되 버린 60-70대의 삶과 그들의 시대를 새롭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을 듯 싶습니다. 오늘의 60-70 세대야말로 가감 없이 ‘한’의 세대, ‘원’의 세대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는지요. 그 두 세대는 그만큼 고통의 세월을 살아 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와 시대에 대한 한과 원을 극복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60대인 나로서는 70대가 살아온 신산(辛酸)의 세월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따라서 60대가 평균적으로 어떻게 생존을 이어 왔느냐 하는 것만을 적을 수 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60대의 자기 변호를 여기 기록해 보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의 정치로 볼 수밖에 없는 노 대통령의 리더십과 ‘원’의 정서로 무장하고 ‘홍위병’을 자임하는 노 대통령 지지세력의 구성원들이나 6-70대를 선동적 언어로서 “모욕”한 어느 정치 리더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참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 우리들은, 이미 자주 얘기되는 대로 농경ㅡ산업화ㅡ정보화 시대를 살아온 세대다. 농경 시대에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냈고 사업화 시대의 개막시기에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멀리는 리비아의 사막에서부터 가까이는 구로동의 창고 같은 사무실 혹은 작업장에서 말 그대로 ‘피와 땀’을 흘리고 서러움을 삼키며 밤낮 없이 일했다. 우리는 그러니까 청춘의 시기부터 50대의 중 후반에 이르기까지, 상징적으로 표현하면, 새벽에 집을 나와 녹초가 된 육신을 이끌고 자정 넘어 귀가하는 일상을 살아왔던 셈이다.
우리 세대는 사실상 ‘고아세대(孤兒世代)’라고 규정할 수 있다. 저 1950년대의 시대공간에서 아직은 순수한 영혼의 어린이였으나 바로 그런 나이였기 때문에 어느 세대보다도 그 전쟁의 와중에서 숱한 우리의 동년배들이 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만큼 평균적으로 볼 때 어느 세대보다도 이별의 슬픔, 굶주림의 고통을 가장 뼈저리게 체험한 세대다.
우리는 그 때, 시대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 할 수 있을 만큼은 철이 들었으나 그 참담한 정황을 스스로의 힘으로 대처ㅡ극복할 수 있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 전쟁에 추호의 책임이 없었음에도 그 전쟁의 가장 혹독한 피해자였다는 의미다. 우리의 유년은 그렇게 상처 입었고 그런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험난한 세상과 만났다. 그리고 이 ‘풍요’의 시대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첨병’이었으나 그 풍요를 여유롭게 향유하는 데는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철저히 소외되고 말았다, 그 삶의 역정에서 우리세대가 거의 예외 없이 절감한 것은 ‘평등이념’의 허구성이고 ‘자유민주체제’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국회의 탄핵 소추 후 한달 가까이 지났고 탄핵소추의 심판 마당으로 변질된 듯한 총선도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공식 선거운동일 직전까지의 여론 조사 결과로만 예측한다면 사실상 노 대통령이 만들어 낸 정당이 의석 과반수를 초과하는 거대 여당이 될 가능성까지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탄핵소추라는 치욕적인 수모를 당한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일단 정치적 ‘한’ 풀이정도는 하게 되는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사실은 그 다음이 걱정입니다.. 노 대통령의 성정(性情)으로 보아 과연 그의 당이 승리하는 것만으로 “탄핵 ‘한’ 풀이”가 끝났다며 ‘원’의 정치 스타일을 청산하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결론을 말해야 할 순서에 이른 듯 합니다. 노 대통령이 넉넉한 마음으로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기왕의 탄핵 소추는 헌재의 판정에 관계없이 그것 자체로서 그의 임기 내내 정치적 ‘주홍글씨’로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헌재가 어떤 ‘판정’을 내린다 해도 탄핵을 격렬하게 반대해온 친노(親盧) 진영이나 탄핵찬성을 주창해온 반노(反盧) 진영 어느 쪽이든 그대로 ‘승복’할 리가 없습니다. 헌재 결정이후에도 이 사회의 갈등과 대립양상이 더욱 첨예해 지리라는 우려도 그 때문입니다. 물론 여권은 야권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탄핵을 철회해야 한다지만 헌재 결정 이전에 ‘결자해지’의 결단을 해야 할 당사자는 사실상 노 대통령입니다.
노 대통령의 결단 없이는 ‘국파산하재’의 시국상황은 수습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과 같은 ‘탄핵시국’이 지속되는 한 “유일한 승리자는 김정일 뿐”이라는 지적(미 Time지)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결단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L형도 그 답을 잘 아실 터이기에 여기에 애써 적시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것은 대통령이 ‘원’의 정치를 넘어서는 자기희생이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 길만이 그가 탄핵수모에서 벗어나 역사에 책임지는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깨어진 상황을 묘사하면서 시제를 ‘춘망(春望)’이라고 한 시인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시대의 봄을 L형과 함께 절실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國破山河在
- 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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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4-09, 23: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