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 '한반도기' 사용을 반대했던 고(故)손기정 옹. 서울올림픽 성화봉송 당시 모습.
정부 차원의 공식행사에서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사용하는 것은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들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반(反)헌법적 6.15공동선언 제1항의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통일, 제2항의 김일성의 ‘낮은단계연방제’ 합의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행위다.
한반도기는 1963년 1월 스위스 로잔에서 동경올림픽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에서 북한이 먼저 단기(團旗)에 한반도기를 표시하는 방안을 제기해 시작됐다.
북한은 당시 남북한 단일팀 단기로 ‘전면 태극기-후면 인공기’안과 ‘한반도 지도 중앙에 오륜표시’안을 제시해 한반도기 문제가 처음 등장하게 됐다.
당시 북한 대표들은 태극기도 아니고 인공기도 아닌 中立的인 한반도기를 갖고 나가면 서로 敵對感도 없어지고 통일의 상징도 되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우리 측 대표들은 당연히 태극기를 단기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태극기가 남한만의 상징이 아니라 예로부터 내려온 韓民族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회담의 우리 측 대표단(김진구 대한체육회 이사 등 5명)일원으로 참석한 고(故)손기정 대표는 북한이 단기로 내놓은 두 가지 안에 대해 손을 들어 한반도기 절대불가론을 펼쳤다.
손기정 대표는 당시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서 우승한 그날 우리 민족이 얼마나 분해서 울었느냐? 그 때 가슴 속에 그리던 국기가 무엇이었느냐? 우리의 국기는 당연히 태극기라야 한다”고 주장, 회담장의 분위기가 일시에 숙연해지며 북한이 궁지 몰리게 됐다.
북한은 그러나 1979년 제35차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 관련 남북탁구협회 회의, 1984년 LA올림픽 단일팀 구성 관련 체육회담, 1990년 북경 아시안 게임 단일팀 구성 남북체육회담 등에서 줄기차게 한반도기 채택을 주장해왔다.
이후 1990년 주요 국제대회 단일팀 구성 관련 남북 체육회담에서 북경 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 회담 당시 잠정 합의안을 기초로 독도-마라도-마안도 등 기타 섬은 생략키로 최종합의, 1991년 제41회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서 현재의 한반도기가 최초로 사용됐다.
이후 한반도기는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김대중-노무현 좌파 집권과 함께 정부공식 행사 및 친북-반미-용공 시위에 단골처럼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집권과 더불어 1998년 8월5일 남측민화협창립준비위원회 발족식에서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가 단상에 게양됐다.
이후 ▲2000년 9월15일 시드니 하계 올림픽 입장식 한반도기 사용 ▲2002년 9월 29일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기수단이 한반도기 사용 ▲2002년 9월7일 ‘남북통일축구’ 당시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입장객 태극기 압수 소동 ▲2003년 8월21일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입장식 한반도기 사용 ▲2004년 8월13일 아테네 올림픽 입장식 한반도기 사용 ▲2005년 평양 6.15행사 및 서울 8.15 행사 한반도기 사용 등 좌파 집권 기간 내내 태극기의 권위는 짓밟혔다.
2002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애국청년들이 인공기를 소각하자, 대통령인 노무현이 나서서 유감을 표명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서울 광화문 공원에서 열린 애국단체 행사시, 애국단체 회원들이 인공기를 소각하려 꺼내들자 사복경찰관이 쏜살같이 뛰어들어 인공기를 낚아채 달아났었다.(그 사복경찰관은 시민들에게 ‘빨갱이’로 오인되어 죽도록 얻어터졌다)
이외에도 서울 시청 앞 국민대회 등에서 인공기를 소각하려 할 때마다 전경들이 달려들어 불을 끈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의 국무총리 이해찬은 2005년7월15일 ‘광복60년 기념사업’ 추진사항 점검 회의에서 “남북공동행사를 통하여 민족화해를 내외에 과시” 할 것을 강조하면서 “북측 대표단에 대한 손님맞이에 만전을 기하여 민족화합의 장”이 되도록 하라고 지시 했다. 당시 이해찬은 애국단체의 인공기 훼손 행위 엄단 방침을 시달했다.
2005년 8월14일 남북통일축구 대회가 열린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당시 통일부 장관 정동영의 지시로 태극기 반입이 금지 되고 인공기 보호령이 시달됐다. 당시 태극기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청소년 관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줬던 애국단체 회원들은 좌파단체의 습격을 받아 머리가 터지고 옷이 찢어진 채 경찰의 포위망에 3시간여나 감금-억류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정동영은 인공기 보호령을 내린 뒤 2005년 12월13일 제주도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상의에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달고 북한 대표단을 만났다. 그러고 나서 태극기를 거꾸로 단 것이 문제가 되자 ‘직원의 단순 실수’였노라고 얼버무렸다.
왜 이 같은 사건들이 백주대낮 대한민국에서 벌어졌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은 2005년 5월21일 북한의 대남공작 기관인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위장단체인 조평통의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 담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한민전은 대남 선전선동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일제와 미국식민통치 100년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대한민국 국호, 국기, 애국가를 모두 없애버리라”고 지령을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좌파정권은 2006년 2월7일 이태리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남북한 동시입장’을 빌미로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인 KOREA 대신에 현지어 표기라는 궁색한 변명을 곁들여 북한 정권이 끈질기게 주장 해온 COREA로 변경 사용하는 반역을 저지르기도 했다.
대만(자유중국)은 1971년 10월25일 중국 공산당에게 대표권을 빼앗기고, 올림픽에서 中華民國이란 국호와 국기인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의 사용을 금지 당했다.
대만 선수단은 ‘REPUBLIC OF CHINA’라는 정식국호를 금지 당하고 ‘TAIWAN’ 또는 ‘CHINESE TAIPEI’라는 이름으로 국제대회에 겨우 참가를 하고 있으며, 가슴에는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 대신에 ‘대만 올림픽위원회기’를 달고 초라한 모습으로 다니고 있다.
우리는 지금 태극기와 한반도기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 상징인 태극기를 지키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대만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태극기를 모독하는 ‘역사의 오물’들을 우리 손으로 하루라도 빨리 박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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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밟고 선 이 여인은 누구인가요? 노무현 세력은 태극기를 敵으로 대하여왔습니다.
-태극기를 금지하고, 좌익깃발인 한반도기를 내세우고, 인공기를 육탄으로 보호한 노무현 세력은 민족반역자에겐 굴종하고, 좌익을 밀어주고, 대한민국을 저주하였습니다.
*2002년 9월7일: 서울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 입장객들은 태극기를 압수당하였다.
*2005년 8월14일 남북통일축구 대회가 열린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당시 통일부 장관 정동영의 지시로 태극기 반입이 금지 되고 인공기 보호령이 시달됐다. 청소년 관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줬던 애국단체 회원들은 좌파단체의 습격을 받아 머리가 터지고 옷이 찢어진 채 경찰의 포위망에 3시간여나 감금당하였다.
*정동영은 2005년 12월13일 제주도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상의에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달고 북한 대표단을 만났다.
*2000년 9월15일 시드니 하계 올림픽 입장식 때 태극기를 없애고 한반도기 사용, 2002년 9월29일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기수단이 한반도기 사용, 2003년 8월21일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입장식 한반도기 사용.
*2002년 여름 애국단체 회원들이 인공기를 소각하려 꺼내들자 사복경찰관이 쏜살같이 뛰어들어 인공기를 낚아채 달아났다. 그 사복경찰관은 시민들에게 ‘빨갱이’로 오인되어얻어맞았다.
-덮어준 노무현 비자금 수사를 재개하고,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철저히 하여 부산서민들의 피 땀 어린 돈을 등친 '광주일고 출신' 금융마피아들을 단죄하라! 이들로부터 돈을 받은 政官界 및 언론계 인사들을 聖域 없이 끝까지 수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