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左派가 완전장악

조희문 인하대학교 교수

[再錄: 2011년 6월3일자 보도] 보수성향의 조희문(인하대 교수) 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좌경화된 한국 영화계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조 교수는 뉴라이트 진영의 사상-이론지인 계간 ‘시대정신’ 최신호 게재 논문에서 “우파 정권이라 믿은 이명박 정부가 3년을 넘기고 있지만 문화예술계는 좌파가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문화예술계에서 좌파 성향에 매몰된 분야로 영화계를 지목하며 “(영화계의) 스타급 감독이나 배우, 시나리오 작가, 음악가, 제작자, 기획자들 중에서 좌파적 성향을 보이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조 교수는 2010년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詩’를 언급하며 “이창동 감독이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좌파 문화정책을 주문했던 경력이나 봉준호 감독이 민노당원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도 공개적으로 비판-비난하는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영화 ‘詩’에 등장하는 마지막 시 ‘아네스의 노래’는 이창동 감독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의 詩는 영화 속에서 詩문학 강좌에 다니던 여주인공 미자가 마지막 날 완성한 시로, 자신의 손자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한 여중생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각에서는 미자의 詩가 자살한 노무현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이 감독은 지난해 5월27일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과의 인터뷰에서 “극중 마지막에 등장하는 詩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고 쓴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는 김미화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관객들이 많았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 썼다. 정신적인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당연히 정서나 삶에 대한 생각이 배어 있을 것이다. 부정할 수 없다.”

한편, 조 교수는 우파의 이념적 공유, 조직, 실행이 좌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거나 무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좌파는 “조금이라도 차별받는다고 느낀다면 이들은 아직도 ‘문화예술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부정하는 수구 보수의 만행’이라며 날을 세운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노무현 정권 5년은 좌파 문화예술을 주류 세력으로 고착하는 단계로 만들었다”면서 “노 대통령 정권이 끝났을 때 문화예술계의 지형은 완전히 좌편향 일색으로 변해 이들이 사실상 중심을 차지했다”고 단언했다. 

[관련기사] 한국판 ‘文化쿠데타’, 그 실체를 해부한다

“새 정부, 진정한 의미의 ‘우파적 정신혁명’ 일으켜야”

 2008년 1월20일자 보도

 
김대중·노무현 집권 10년간 문화계는 정치계와 못지않은 이념 대립의 진원지였다. 순수예술을 지향했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좌천됐고, 좌파정권과 이념적 코드를 공유했던 소수 문화운동가들이 문화 권력을 접수, 점령군 사령관 노릇을 하며 ‘문화(文化)쿠데타’를 주도했다.

특히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함께 문화계에 진주한 좌파 예술인들의 문화권력 접수는 사전에 면밀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이들은 40년간 ‘예총’(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이 장악했던 문화 권력을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으로 넘겨 문화계의 ‘새판 짜기’를 주도했다.

1988년 창립된 민예총은 ‘부정적 과거유산의 극복과 사회개혁을 통해 민족문화의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한다’, ‘통일문화를 끊임없이 준비해 통일의 시대를 열어간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반대 성명 등을 발표해왔다.

노무현의 등장과 민예총·문화연대·작가회의의 급부상

특히 민예총 산하 ‘민족문학작가회의’(작가회의)는 문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해온 단체다. 이들은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하여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참다운 민족문학을 이룩하는 데 앞장서 왔다”면서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회의는 줄곧 국보법(國保法) 폐지를 요구해왔으며, 지난 2005년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가 ‘6·25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을 때 강씨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또 다른 축인 ‘문화연대’는 지난 1999년 김대중 정권이 ‘문화예산 1%’ 목표를 달성했을 때 예산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되는지 감시하겠다며 결성된 단체다.

민예총이 현장 예술인단체라면 문화연대는 이론가들이 중심이 된 단체다. 최근 들어 민예총보다 영향력과 위상면에서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연대의 창립선언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가장 큰 문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가와 시장, 그리고 문화제국주의 세력이다. 문화연대는 국가기관과 자본에 의한 문화권력 및 자원의 독점 경향, 다국적 문화산업의 문화주권 침탈에 따른 문제점을 비판하고 시정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문화연대는 그동안 미군기지 이전 문제, 한미 FTA와 같은 정치적 문제에 단체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명했을 뿐만 아니라 ‘졸속 교원평가제를 반대 한다’면서 친북좌파 성향의 전교조(全敎組)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이들 좌파 성향 문화·예술 단체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좌파정권의 등장과 함께 문화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2003년 2월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노문모’(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출신의 이창동 감독이 문화관광부(문광부) 장관에 임명된 후, 민예총과 문화연대 출신 인사들이 문화예술단체의 장이나 주요 임원 등으로 줄줄이 진출했다.

작가회의 이사장 출신으로 그동안 재야에서 국보법 폐지, 주한미군철수, 6.15공동선언 이행 등을 주장해온 소설가 현기영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으로 임명됐고 사무총장에는 강형철 작가회의 상임이사가 기용됐다.

1,100억원의 돈을 주무르는 문화권력(문화예술위)의 등장

문예진흥원행정혁신위원회에는 민예총 일일문화정책뉴스 담당 편집자 출신의 안성배씨와 작가회의 소속 회원인 김형수(시인)씨가 임명됐다.

문광부 산하단체인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에는 이영욱 문화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문화관광부 내 자문기구인 문화행정혁신위원회에는 박인배 민예총 기획실장, 문화연대 문화개혁감시센터 소장을 지낸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등의 인사들이 임명됐다.

 
문광부 장관 정책보좌관에는 이영진 작가회의 문화정책위원장, 김종선 노문모 간사가 각각 기용됐다. 이어 문화계 주도세력을 대대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강내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강찬석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 이영욱 전 문화연대 부위원장 등 문화연대 인사들이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 위원에 임명됐다.

이와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장, 국립국악원장, 국립연극원장에도 민예총 출신 인사들이 임명되자 문화예술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전국대학 국악과 교수 포럼’은 국립국악원장 임용 철회와 장관 사퇴를 촉구했으며, 연극계인사들은 ‘연극인 100인 성명’을 통해 “문광부는 민예총 중심의 인사 정책을 중지하라”면서 분노를 표명했다.

한편, 이 같은 인사파문은 그동안 독임제 행정기구로 존속하던 ‘문예진흥원’을 민간 주도의 ‘문화예술위원회’(문화예술위) 체제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더욱 고조됐다. 문예진흥기금 등의 재원을 관장하며 영화와 방송을 제외한 문학·미술·음악·무용·연극 등의 장르에 지원 사업을 주도해온 문예진흥원은 규모나 위상, 지원의 범위 등에서 대표적인 예술 지원 기구였다.

이런 문예진흥원을 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조성된 재원과 지원행정, 조직 등을 그대로 유지하며 운영주체를 새롭게 전환하겠다는 시도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이 같은 우려는 문예진흥원이 한해 1,100억원의 돈을 주무르는 문화예술위로 개편되면서 현실화됐다.

문화예술위(11명의 위원 가운데 예총 인사 두 명)는 출범과 함께 그동안 예총에 지원하던 예산을 차단하고 민예총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10년 전인 1997년 예총은 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연간 5억 8천만 원의 지원을 받았다. 당시 회원수는 1백20만 명. 1988년 창립해 회원 10만 명에 불과한 민예총은 5천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 예총에 대한 지원은 동결된 반면 민예총에 대한 지원액은 크게 늘어났다. 1999년 꾸준히 증가해 2002년 3억5천만 원에 달했다.

현재의 문화계, 공산혁명 직후 러시아 상황과 유사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2004년에는 민예총 본부에 대한 지원액이 예총과 똑같은 5억8천만 원으로 65%나 증가했다. 회원수와 규모 면에서 예총의 10분의 1도 안되는 민예총이 과거 10년 동안 온갖 특혜를 받으며 문화 권력의 핵심으로 성장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민예총 본부 뿐 아니라 민예총 산하 단체에 대한 지원액도 크게 늘렸다. 일례로 2004년에는 예총 산하 단체에 총 22억원이 지원된 반면 민예총 산하 단체에는 15억여 원이 지원됐다. 그러나 2006년에 이르러서는 민예총 소속단체가 22억여 원, 예총 소속단체는 19억여 원이 지원되어 역전 현상이 빚어졌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문화예술위 위원들이 자신들과 관련된 단체를 집중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006년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예술위 위원들이 자신이 대표로 있거나 관련 있는 단체에 지원한 기금은 59억9420만원에 달했다.

문화예술위 산하 9개 소위원회 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88명의 소위원회 위원 가운데 25명이 자신이 대표로 있거나 관계하는 단체에 11억4300만원의 지원을 결정했다. 예를 들어 극장 경영자 출신인 강준혁 문화예술위원은 춘천인형극제 이사장과 김수근 문화재단 이사, 사물놀이 ‘한울림’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면서 이들 단체에 모두 10억9900만원을 지원했다.

미술평론가인 박신의(경희대 교수) 문화예술위원은 남편인 A씨가 대표로 있는 미술인회의와 자신이 이사로 있는 문화사회연구소 등 8건에 걸쳐 12억21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자료에 나와 있다. 민예총 충북지회에 소속되어 있고 민족극운동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종관 문화예술위원은 민예총 충북지회 등 4건에 걸쳐 1억8700만원을 지원했다.

이처럼 자기 배 채우기에 급급했던 문화예술위는 지난 2005·2006년 정부산하기관 경영평가에서 16개 연기금 운영기관 가운데 연거푸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편, 좌파 진영은 이창동·정동채·김명곤 문광부 장관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문화 권력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이들은 문화계 조직·행정·자금·이론 영역을 한 손에 거머쥔 또 다른 거대 권력이다.

이처럼 한국판 ‘문혁’(文革)을 주도해온 좌파 정권의 문화 예술 정책에 대해 조희문 상명대 영화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은 ‘이념적 과잉’에 갇힌 채 문화와 예술의 위상을 정치화 시켰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한국의 문화계는 공산혁명 직후 영화산업을 국유화하고 모든 문예활동을 이념선전 수단으로 동원하고자 했던 러시아 상황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 점은 개인의 창의성과 공동체적 자유와 품위와 연대감을 살릴 수 있는 건강한 문화와 예술의 회복이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 대통령을 강조한 만큼 많은 경제 정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은 전무하다. 따라서 새 정부는 진정한 의미의 ‘우파적(자유민주적) 정신혁명’을 통해 지난 10년간 국민들의 마음을 지배했던 좌파적 이념을 털어내고 이념 선동의 도구였던 문화를 시장과 민간에 돌려주는 일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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