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在五 특임장관은 3일 "47년 전 6·3 시위 때 군(軍)이 대학을 점령하고 위수령을 내리고 드디어 나는 대학 제적과 함께 수배자가 됐다. 제 인생의 갈림길이 됐다"고 했다. 李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은 1964년 군이 계엄령을 내려서 학생운동을 탄압한 그날"이라며 그렇게 적었다고 한다.
1964년 6월3일 韓日회담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대가 서울 도심지를 뒤덮자 朴正熙 정부는 서울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 軍을 투입, 질서를 회복하였다. 이걸 '학생운동을 탄압하였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이 정부의 장관이고 제2인자로 일컬어진다는 것은 비극적이다.
당시 정부는 독재정부도, 군사정부도 아니었다. 1963년 10월 大選과 11월 總選으로 뽑힌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대통령이 정부를 구성하였다. 언론도 지식인도 자유롭게 정부를 비판하였다. 야당과 학생들도 그랬다. 朴 대통령이 추진한 韓日회담은 역사적으로 정당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그 내용이 굴욕적이라고 주장, 반대 시위를 하였던 학생들도 청춘의 열정으로 할 일을 하였다. 하지만 60을 넘긴 나이에도 그 당시 시위대가 법질서를 유린하여 외교활동을 방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왜 계엄령을 펴 학생운동을 탄압하였느냐고 울분을 토한다면 성숙한 정신상태라고 보기 힘들다. '군이 계엄령을 내렸다'는 記述은 사실이 아니다. 계엄령을 내린 사람은 박정희 정부였고, 군부가 아니다.
이 정부가 공인해준 한국사 교과서는, 노태우 정부가 문익환, 임수경의 불법 訪北행위를 처벌한 걸 통일운동 탄압이라고 기술하였는데, 이재오 장관 같은 사람도 그 수준의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런 교과서가 나온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李 장관은 이 정부가 광우병 난동꾼들을 경찰력으로 진압한 것도 '탄압'이라고 생각하는가?
짤막한 글이지만, 집권당의 간부가 부정적 역사의식과 위험한 法治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64년의 계엄령을 탄압이라고 규정하려면 아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당시 朴 대통령은 선거를 통하지 않고 정권을 잡았다.
2. 정부가 언론자유, 선거의 자유, 사유재산권을 말살하였다.
3. 군대가 정권 유지나 탈취를 위하여 계엄령을 펴 평화적 시위를 진압하였다.
47년 전의 계엄령은 上記 세 조건중 하나도 충족시키지 않는다. 軍은 민간 정부의 명령을 받들어 合憲的으로 출동, 벌질서를 회복한 것이다. 이는 탄압이 아니다.
李在五 장관의 부정적 역사관과 위험한 法의식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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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04, 18:51











